민주노총은 총궐기를 왜 11월에 하는가? -국정원 해체를 내걸고 당장 민중항쟁을 조직해야 한다

(2015년 7월 20일)

 

민주노총은 7월 15일 2차 ‘총파업’ 뒤에 11월 14일 하반기 민중 총궐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왜 일정박기식 민중 총궐기에 나서는가? 민주노총이 11월 14일 민중 총궐기에 나설 때는 이미 노동시장 구조개악이 완료돼 있을 텐데 그때 뒷북치며 총궐기에 나설 것인가? 국정원 선거개입과 사찰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사그라졌을 텐데 그제야 국정원 해체를 요구하며 총궐기에 나설 것인가?

이미 정권은 정치적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메르스 사태를 활용해서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조용하게 마무리했다. 그러는 찰나에 국정원 해킹 사건이 터져 나왔다. 이 사건은 국정원의 국민사찰뿐만 아니라 대선 개입문제와도 연관돼 있기 때문에 정권을 날려버릴 수 있는 엄청난 정치적 사건이다. 2012년 국정원 대선 개입에 분노하는 거대한 투쟁이 다시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세월호 학살, 청년 실업, 빈곤문제, 노동자에 대한 공세 등 박근혜 임기 3년 동안 누적된 불만과 분노가 함께 터져 나올 것이기 때문에, 이 투쟁은 2012년 보다 훨씬 더 파급력이 클 것이다.

쇠는 달아올랐을 때 쳐야 한다. 번번이 때를 놓쳤지만 지금이야말로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총궐기를 조직하고 나서야 할 때다. 민주노총이 나서서 국정원 해체와 국가보안법 철폐, 박근혜 퇴진을 내걸고 전국적인 수준의 전선체를 건설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노동시장 구조개악과 공공기관 정상화(황폐화) 공세를 박근혜 퇴진 투쟁과 결합시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 민중적 사안을 가지고 민중 총궐기를 조직해야 한다. 일정 박기식 총파업, 총궐기가 아니라, 국정원에 대한 전 국민적 분노가 활활 타오르는 지금 당장 민중항쟁 총궐기를 조직하고 나서야 한다.

지금 정세와 운동 수준에서 현장 투쟁은 자칫하면 노동자 요구들을 업종별, 시기별, 쟁점별로 분산시킨다. 경제주의에 머물 수 있다. 저들의 분열공작에 놀아날 수 있다. 노동자 투쟁과 박근혜 정권에 분노하는 광범위한 민중투쟁이 분리될 수 있다.

가두에서 싸워야 한다. 현장을 멈추고, 업무를 거부하고 가두로 뛰쳐나와야 한다. 설사 현장이 자본의 통제에 눌려 있고, 노사협조주의 지도부의 준동으로 당장 파업을 조직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연차를 내든, 조퇴를 하든, 퇴근 후든) 가두로 집결해서 단일한 전국적 정치 투쟁전선을 만들어야 한다. 미조직 노동자들과도 가두에서 같이 싸울 수 있다.

부정선거, 간첩조작, 국민감시와 사찰과 통제, 세월호 실소유주이자 세월호 학살 은폐, 조작의 중심에 국정원이 있다. 국정원 해체 투쟁은 세월호 투쟁을 다시 촉발시킬 것이다. 국정원 해체와 박근혜 퇴진 투쟁을 통해 노동자에 대한 공세도 일거에 분쇄할 수 있다. 노동자의 정치적, 경제적 권리를 대폭 신장시킬 수 있다.

민주노총 내에 팽배한 경제주의를 떨쳐버려야 박근혜 퇴진 투쟁은 승리할 수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레닌의 저 유명한 문장은 바로 우리 운동에 대한 준엄한 비판이자 정세적으로 가장 필요한 부분이 아니겠는가? 국정원에 대한 정치 폭로와 규탄 소재가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가? 들녘의 나락보다도 더 폭로와 규탄거리가 널려 있지 않은가?

“노동자 계급의 주의, 관찰력, 의식을” 정치생활 전반, 그것도 가장 첨예한 정치 문제로 돌려 지금 당장 민중 총궐기를 조직할 때이다.

“노동자 계급의 주의, 관찰력, 의식을 배타적으로, 혹은 그렇지는 않더라도 우선적으로 노동자 계급에게로 돌리려는 자는 사회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노동자 계급의 자기 인식보다는 정치 생활의 경험에서 생겨난, 현대 사회의 모든 계급들의 상호 관계에 대한 충분하고도 명료한 이해와 불가분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제 투쟁이 대중을 정치 운동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우리 ‘경제주의자들’의 설교는 그 실천적 중요성으로 볼 때 극히 유해하며, 극히 반동적이다. …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하다못해 귀엣말로 소곤거리면서라도 나름대로 얘기하고 있는 일들, 그리고 여러 사건들, 수치들, 판결문 등등에서 드러나고 있는 일들을 생생하게 펼쳐 보이고, 그 때 그 때 놓치지 않고 폭로하는 것만이 그러한 이해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이러한 전면적 정치 폭로는 그 자체로 대중의 혁명적 활동성을 교양하는 필수적이고도 기본적인조건이다.
인민에 대한 경찰의 야수 같은 대우, 이교도 사냥, 농민에 대한 구타, 추악한 검열, 병사들에 대한 학대, 이제 막 시작된 가장 순수한 문화 사업에까지 가해지는 탄압 등등에 대해 왜 러시아 노동자는 아직까지 별다른 혁명적 활동성을 보이지 않고 있는가? ‘경제투쟁’이 이를 ‘부추기지’ 않고 있기 때문인가? 이런 활동이 ‘가시적인 결과들’을 거의 ‘약속하지’ 않으며 ‘적극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기 때문인가? … 우리 대중 운동의 후진성에 대한 책임은 당연하게 우리에게 있으며, 이 모든 추악한 일들을 충분히 신속하고 명료하게 널리 폭로할 능력이 우리에게 아직 없었던 것도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가 이 일을 한다면(우리는 그렇게 해야 하며, 또 할 수 있다). 학생들, 이교도들, 농민들, 작가들 위에서 광폭하게 날뛰면서 그들을 능멸하는 그 검은 세력이 바로 자신의 생활 곳곳에서 자신을 억누르고 핍박하는 세력임을 가장 평범한 노동자라도 깨닫게, 또는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그런 것을 느끼게 되면, 자기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에게 호응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늘은 검열관에게 야유를 보내고, 내일은 농민 반란을 진압한 지방 행정장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모레는 종교 재판을 담당하는 법복 입은 헌병들을 단단히 혼내 주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노동자 대중에게 생생하고도 전면적인 폭로의 세례를 안겨 주기 위해 변변하게 한 일은 아직까지 없다. 아니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우리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도 이 같은 자신의 의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공장 생활이라는 좁은 틀 안에서 ‘지리한 일상 투쟁’의 뒤를 자생적으로 종종 따라다니고 있다.”(<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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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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