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진보진영’에 창궐하는 위험한 사상적 조류 —극좌모험주의, 종파주의, 포스트모더니즘(사회반달리즘)—에 대한 생각들
안토니 정(폴란드 거주ㆍ전국노동자정치협회 회원)
1. 극좌모험주의의 해악과 종파주의의 관계
스스로를 «사회주의 조직»이라고 칭하는 일부 조직들이 내란사태의 본질—동북아 지역에서 전쟁을 유도하려는 제국주의의 비호를 받아 파쑈세력이 국정 장악을 시도한 사건—을 부정하고, «보수양당론»을 웨쳐대며 «총파업» 또는 «계급혁명»과 같은 정세에 맞지 않는 전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인민대중은 파쑈내란이 당면한 최대의 위험요소이자 주되는 사회모순이라고 판단하고, 내란청산을 구호로 웨치며 내란수괴와 그 곁가지 쓰레기들의 철저한 청산을 요구하였다.
정세인식이 결여된 투쟁지침의 설정은 매우 해롭다. 일부 사회주의자들은 인민의 요구와 정세의 구체적 흐름을 외면한 채, 교조적 구호와 공허한 추상성에 기대어 운동을 지도하려 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대중 속에서 고립을 자초할 뿐 아니라, 실제로는 반파쑈 민중전선을 분열시키고, 궁극적으로는 파쑈정권의 존속에 간접적으로 봉사하는 반혁명적 결과를 낳는다. (스페인 내전에서의 뜨로쯔끼주의자들의 분열적 행동만 보아도, 극좌모험주의가 반혁명에 어떻게 악용되는지를 알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극좌모험주의가 종파주의와 결합될 때 발생한다. 종파주의란 전체 혁명운동의 대의를 무시한 채, 특정 단체의 교조와 노선을 절대화하고 그 외 모든 세력을 부정하며 협력을 거부하는 사상적 독단주의다. 이는 실제로 공동의 전선 형성을 가로막고, 인민대중의 실천적 요구를 배반하게 만든다. 오늘날 일부 극좌파들이 대중적 반파쑈 투쟁과의 접점을 거부하고 오직 자신들의 ‘정통성’만을 웨쳐대는 태도는 전형적인 종파주의의 연장선이며, 결과적으로는 전체 운동을 약화시키는 자해적 행위로 귀결된다.
지금 시기 사회주의자들이 해야 할 과제는 추상적 명분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구체적 요구 위에서 반파쑈 전선을 확대하고, 자주적 인민민주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정치투쟁을 실천적으로 조직해나가는 것이다. 교조주의와 종파주의, 그리고 모험주의의 삼중오류를 단호히 극복하지 않는다면 혁명운동은 대중으로부터 완전히 유리되고, 제국주의와 그 주구들에게 판가리싸움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2. 포스트모더니즘적 사회반달리즘의 해악성과 제국주의
오늘날 이른바 ‘적록보라’로 지칭되는 일부 좌익 흐름은 본래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의 계급적 정체성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정체성 정치, 성별․인종․소수자 중심 담론을 부유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탈계급 담론을 주입하고 있다. (본인은 이러한 흐름을 일종의 반달리즘으로 규정한다.) 이 경향은 반제·반파쑈투쟁의 중심에 계급모순이 아닌, ‘억압받는 개인의 표현’이라는 추상적이고 비역사적인 명제를 세움으로써, 인민대중의 실천적 투쟁을 해체하고 정치적 전선을 사상적으로 분열시키는 해악적 결과를 낳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본질적으로 ‘대서사’의 붕괴를 전제한다. 이들은 계급혁명, 민족해방, 인민주권과 같은 사회구성체적 변혁운동을 «전체주의적 담론»이라 폄하하며, 모든 사회적 실천을 ‘상대화’하고 ‘다원화’된 기표의 유희로 대체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체주의는 철저히 제국주의 세계질서와 사상적으로 공모하고 있다. 왜냐하면 제국주의는 피억압 민중의 집단적 실천을 가장 두려워하며, 그에 대한 대응으로 계급, 민족적 조직과 투쟁을 무력화 시키는 탈정치적 흐름을 장려해 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은 자본주의적 ‘다문화주의’ 및 ‘시장다원주의’와 결합하여, 제국주의적 세계체계의 ‘소프트한’ 통치기술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적록보라 흐름은 종파주의 및 극좌모험주의와도 깊이 얽혀 있다. 각자의 정체성 기준에 따라 «진보» 또는 «혁명성»의 기준을 자의적으로 설정하며, 공동의 전선을 ‘불순하다’고 낙인찍고 전술적 단결을 거부하는 파편화된 정치행태는, «내가 아니면 모두 부르조아»라는 종파적 고립주의로 귀결된다. 이들은 실천의 전장을 공허한 언어놀이와 상징투쟁의 공간으로 대체하며, 결과적으로는 인민대중과의 유기적 연계를 상실한 정신승리 또는 지적유희의 난장이 열린다.
이처럼 적록보라적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는 실천 없는 선언, 전략 없는 이념, 계급 없는 좌익의 환상 속에서 운동을 이론적으로 붕괴시키며, 사회주의의 대중적 역량을 축소시키는 데 일조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제국주의 질서가 설정한 ‘정치의 탈정치화’ 전략에 암묵적으로 편승하면서, 반제전선의 분열을 구조화하는 기능까지 수행한다.
이러한 문화적·사상적 반달리즘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극복 없이, 오늘날의 사회주의운동은 그 어떤 판가리싸움도 인민의 승리로 향도할 수 없다.
이 기사를 총 18번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