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가 없는 평온한 경지를 말하는 우치다 다쓰루에게 맑스의 맑이라도 찾을 수 있는가?

맑스는 《공산당선언》에서 문자로 기록된 이래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역사의 본질에 대해 밝혔다. 고대 노예제는 노예 소유주와 노예 간의, 중세 봉건제는 지주ㆍ봉건귀족 대 농노 간의, 현대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것이다.

맑스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역사를 움직이는 근본동력이라고 했는데 이는 객관적 관계 자체가 비주체적으로 역사발전의 동인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이것의 실제 의미는 생산력은 점점 더 발전하는데 이를 질식시키고 특정 착취계급이 부와 생산결과를 독차지하는 적대적 생산관계가 계급투쟁을 만들어 내고 이것이 역사를 움직이는 근본동력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계급투쟁에서 피억압자들, 피착취자들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승리하지 못하는 투쟁이고 새로운 억압자를 만들어 낸다고 할지라도 이 투쟁이 기존 지배계급을 몰락시키며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면서 그만큼의 역사적 발전을 가져온다. 이 투쟁에서 피억업자들, 피착취자들이 승리한다면 역사는 비약적인 진보를 하게 된다.

맑스가 계급적대를 말하여 계급적대가 생긴 것이 아니다. 맑스는 실제 존재하는 적대적ㆍ분열적 현실을 과학적으로 통찰하여 밝힌 것이다. 이 계급적대 현실을 아무리 아름답게 치장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이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다. 이는 도리어 현실의 적대를 호도ㆍ은폐함으로써 적대적 현실을 낳는 체제와 착취자들에게 봉사할 뿐이다.

한겨레21은 최근 2025년 5월28일한국을 방문한 일본의 저명한 ‘맑스주의자’ 우치다 다쓰루의 내한 강연을 대대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맑스 꼬뮤날레 행사에서 맑스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듯이, 한겨레21이 소개하는 우치다 다쓰루의 사상에는 맑스주의의 맑도 찾을 수 없다.

한겨레21은 우치다 다쓰로의 사상이 마르크스와 도를 결합시켰다고 하면서 그 핵심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우치다가 말하는 ‘무도’란 한자로 ‘닦을 수’(修) 자를 써서 한국인들이 ‘수행’(修行)이라고 일컫는 몸과 마음의 실천을 가리킨다. 신간 ‘목표는 천하무적’에서도 우치다는 “‘적이 없다’(無敵)는 것은 ‘적’이라 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 온화하고 너른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썼다. 종교로 보면 각성, 열반, 해탈에 가깝다. 한마디로 도를 닦는 일이다.

“신체적 공포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는 뜻이다. 수행은 어제의 나를 버리고 연속적인 자기 쇄신이 이뤄져야 하지만, 이데올로기는 거기에 집착하고, 머무는 것을 뜻한다. 나 또한 (이데올로기적 폭력과 권력에서 느끼는) 혐오와 공포가 있다. 그 고착을 어떻게 해제해나갈 것인지가 나의 테마이자 미션이기도 하다.”(마르크스와 무도, 한 몸에서 울리다 사상-수행 잇는 철학자이자 무도가… 신간 ‘목표는 천하무적’ ‘용기론’ 펴내, 한겨레21 1566호, 이유진기자, 2025-06-01)

여기서 소개하는 우치다 다쓰루의 사상에는 현실도피적인 도인의 풍모만 있을 뿐이다.

맑스는 <포이어 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지금까지의 철학은 세계를 해석해 왔지만 문제는 실천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맑스주의 철학의 본질에 대해 주장했다.

여기서 맑스는 과학적 인식과 실천을 대립시킨 것이 아니라 과학적 인식과 실천의 결합을 강조한 것이다.

맑스는 단 한 번도 유유자적하는 도인의 풍모를 말하지 않았다. 맑스는 자아개발을 그 자체로 실천의 목표로 삼지 않았다. 맑스는 혁명적 실천 속에 이 사회 모순된 구조를 타파해 나가고 현실투쟁 속에서 실천과 인식을 더 높은 수준에서 반복하며 개인도 변화ㆍ발전해 나간다고 했다.

세상을 변혁하려는 현실의 맑스주의자는 유유자적하는 존재라기 보다는 현실과 끊임없이 충돌하고 불화하고, 현실 운동의 상태에 대해 전전긍긍하고 고뇌하고 실천 속에서 자신의 인식의 한계를 발견하고 각성하고 다시 인민대중들 속에서 힘을 얻으며 전진하는 모순적 존재이다.

맑스는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체하지 못한다고 했다. 전진하고 실천하는 인민대중 속에서 비판은 현실을 변혁하는 강력한 힘을 발견하는 것이다. 맑스는 비판은 비판 대상자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절멸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맑스를 말하며 맑스의 혁명적 사상을 해체해 나가는 우치다 다쓰루의 도인적 풍모는 강력한 혁명운동으로부터 혁명적 사상운동이 몰락하고 천황제와 미제를 용인하고 반북주의에 빠져 있는 일본 공산당의 모습에서 보듯, 일본 진보운동의 지적, 사상적, 조직적 파산과 파탄상태를 보여줄 뿐이다.

“(이데올로기적 폭력과 권력에서 느끼는) 혐오와 공포가 있다.”는 우치다 다쓰루의 사상에는 혁명적 이데올로기, 혁명적 권력을 포함해 모든 이데올로기, 모든 권력을 부정하고 적대함으로써 종국에는 실존하는 반혁명적 이데올로기, 반혁명적 권력과의 일전을 회피하고 이를 기지의 사실로 인정하고 순응하는 반혁명적 이데올로기, 반혁명적 권력만 남게 된다.

이러한 반맑스, 반혁명 사상을 유포하는 소부르주아 한겨레에게는 계급의식이 없다. 한겨레가 창간정신인 한겨레 민족의식을 잃은지 오래니 한겨레에는 남는 게 없다. 계급적대를 은폐ㆍ호도하는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현존하는 계급적대를 은폐ㆍ호도함으로써 이 적대를 양산하는 부르주아, 제국주의에 봉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사를 총 17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