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이 ‘공포’라는 반사회적 착취사회야말로 공존불가한 적대적 공포사회 아닌가?
중대재해가 집중되는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한사코 거부하던 정권(고용노동부)과 자본, 언론들이 이제는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확대시행이 사업주(자본가)에게 “처벌대상”이 된다고 이 법 확대적용에 대해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무서워서 사업 못하겠네”…중대재해법 반년만에 손질, 왜?
머니투데이 김주현 기자 | 2022.06.27
[MT리포트] 기업 발목잡는 ‘죄와 벌’③ 기사는 편집자주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대한민국 기업인들은 매일같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죄자가 된다. 평범한 투자 결정도 실패하면 배임죄로 몰린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공정거래법도 끊임없이 기업인들의 목을 옥죈다. 이에 새 정부가 경제형벌 개선을 약속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꿈은 과연 이뤄질까.”
위 기사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뭘 지켜야 하는지 불명확한 상황에서 대표가 처벌받을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있다”는 전승태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 산업안전팀장의 말을 소개하며 자본가들의 심정을 전달하고 있다.
도대체 우리가 두려워해야 것은 무엇인가? 중대재해로 죽어 나가는 노동자들의 목숨인가? 가장 노동자들의 죽음으로 가족들이 떠안게 되는 극도의 불안과 공포, 하루 아침에 파괴되는 생존의 위협인가?
아니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떠민 자본가들의 처벌인가?
노동자들의 목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자본가들이 무한이윤을 얻는 것인가?
자본가들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걸었다면 그것은 대다수 횡령 부패 비리, 불법 정치자금 제공, 불법편법의 경영권 인계 등 개인기업비리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정권과 자본가들, 그리고 그 이해를 대변하는 대다수 파렴치한 언론들은 중대재해 처벌이 두려움이라고 호들갑스럽게 떠들고 있다. 노동자들이 전쟁과 같은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다치는 것이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이윤의 탐욕에 눈멀고 노동자들의 목숨따위야 안중에도 없이 재해 예방을 외면하거나 소홀히 해 처벌을 받는 것이 두려워해야 할 것들이라는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자본가들의 사회, 자본가들의 무한착취를 보장하는 사회에서는 이처럼 이윤을 위한 인간살해의 전도된 상황이 정상이고 마땅한 도덕이고 바람직한 가치가 된다.
사실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법명칭은 중대재해의 원인, 중대재해의 살인자들을 은폐하는 중립적인 명칭이다. 자본가들과 권력의 방해로 기업살인법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둔갑하고 그 내용도 기업살인을 막기에 극히 미흡한 법이다.
중대재해가 아니라 처벌이 공포라는 저들 살인동조자들의 호들갑스러운 선전은 사실 자본가들의 처벌에만 있지 않다. 실제 이 미흡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을 받고 감옥에 갈 자본가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정부기관에서는 이 법 시행으로 영세 빵집과 동네음식점들이 줄줄이 폐업을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데 나날이 강화되는 재벌의 독점과 경쟁격화로 중소영세 사업주들이 날로 폐업하고 이를 보장해왔던 정권이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으로 폐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더욱이 기업살인의 위중한 죄만큼 장기간 구금되어 죗값을 치를 자본가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중층 하도급, 원하청 제도로 실사용주를 은폐하는 유연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제 기업살인의 진짜 책임자들은 그 누구도 기업살인으로 처벌을 받을리 만무하다.
자본과 권력이 처벌을 핑계삼아 호들갑스러운 공포를 조장하는데 그것은 처벌 자체가 아니라 중대재해, 즉 노동자살해의 책임이 자본가들이라는 것, 자본가들이 이윤을 위해 노동자살해에 눈감거나 적극 조장한 것이라는 게 드러나는 것에 있다.
그동안 자본가들이 중대재해 책임을 부주의한 노동자 개인들의 책임으로 돌려 왔는데, 중대재해가 자본가들의 탓이고 이 착취 체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그것으로 인해 무한이윤 추구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그보다 진짜 공포는 노동자들이 만연한 기업살인 노동자살해에 맞서 이 살인 착취 체제에 맞서 투쟁하는데 있다.
지하철과 발전소, 조선소 등 일터 곳곳에서 노동자들, 청년 노동자들, 심지어 청소년 노동자들이 중대재해로 죽어 갔고 지금도 그렇다. 직업병으로 점진적(?)으로 사망하고 질환을 얻은 노동자들은 셀 수조차 없다.
미흡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외주화”처럼 노동자들을 중대재해로 몰아넣는 제도와 법률, 인식, 이데올로기, 폭력기구 같은 초과이윤 보장체제는 굳건하게 비호되고 있다.
장시간 노동, 고강도 노동, 야간노동, 작업중지권의 사용에서 보듯 무노조, 무권리 상태도 노동자들의 중대재해와 직업병을 지속시킨다.
중대재해 처벌이 공포라는 인식의 중심에는 자본가들이 있다. 노동자들이 그 인식의 중심에 있다면 지극히 당연하게 목숨을 위협하는 중대재해가 공포가 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이 공포라는 자본가들 중심의 사회와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존엄한 존재로 대접 받는 사회는 하나가 될 수 없다. 이 양자는 필연적으로 적대적이고 공존할 수 없다. 노동자들에게 노동자 죽음을 방지하는 것이 공포고 노동자들의 만연한 죽음이 추구해야 할 사회적 가치가 되는 이 죽음의 착취사회를 타도해야 한다. 전도된 사회를 뒤집어 노동하는 인간이 존엄한 지위를 누리는 정상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노/정/협
이 기사를 총 68번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