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좌파의 불모성은 부메랑이 되어 자본주의 체제 수호 노선이 되었다
신좌파 다원주의 노선 무엇이 문제인가?4
만약 신좌파에게 단점이 있었다면, 그 단점은 자신들이 권력에 대해 행한 도전을 보다 나은 사회의 재건으로 변화시키지 못했던 전세계적인 무능력에 있는데, 바로 이 무능력이 이 운동이 겪은 급격한 흥망성쇠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신좌파의 상상력 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 조지카치아피카스 지음, 이재원/이종태 옮김, 1999, 이후)
68혁명의 유명한 구호이기도 했던 “상상력에 권력을”이라는 구호에서 보듯, 신좌파 노선은 자본주의를 아무리 비판한다 하더라도 불모의 노선이다. 불모의 노선은 자본주의를 극복할 현실적 전망도 없고 자본주의를 대신할 새로운 사회의 전망도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대안은 자본주의 내에서도 찾을 수 없고 사회주의가 아닌 모종의 상상의 체제에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철폐하는 과학적 정치노선 대신에 “상상력”으로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없으며 “상상력”이 새로운 권력의 담지자가 될 수도 없고 “상상력”으로 새로운 사회의 건설자가 될 수도 없다.
이들 신좌파 이론은 지식인들의 이론으로 노동자계급을 사회변혁의 주체로 간주하지도 않았으며 노동자들의 계급투쟁과 철저하게 유리되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글은 추상적 경구와 현학적인 내용으로 가득차 있고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에 대한 단 한 줄의 의미 있는 과학적 인식도 없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자본주의를 비판(추상적이고 현학적 문체로)하나 현실의 사회주의를 부정하기 때문에 결국은 자본주의를 제대로 비판, 폭로할 수 없었고 결국은 자본주의를 지키는 노선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은 제국주의 자유주의자들(리버럴)의 노선이 되었고 그 노선은 지난 번 글에서 인용했듯, 수정자본주의처럼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을 위해 충실하게 복무하는 노선이 되었다.
“신좌파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르쿠제는 미국에서 정보기관에서 근무하며 반공주의자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는 1946년에 설립된 OSS 후임 기관인 미국 국무부 산하 정보연구실에서도 근무했다. 1951년까지 유럽 지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지시에 따라 세계 공산주의위원회(CWC)의 심리전에 대한 과학적 결과를 분석했는데, 이 때의 관찰과 분석은 소련 뿐만이 아니라 국제 공산주의 조직 외부의 공산당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광범위한 연구에서 냉전 체제 시대의 공산주의 이해와 미국 정부 기관의 전략적 논의에 대해서 분석하면서 데탕트 정책을 옹호하고 있다.(나무위키)
마르쿠제는 “나치체제를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하기 위해서”라며 CIA의 전신이었던 정보기관에서 일했던 자신을 변명하지만 파시즘이 자본주의로부터 자라나고 공산주의를 무너뜨리고 독점자본주의를 혁명적 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한 가장 반동적인 사상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반공주의 전력을 변호하기 위한 파렴치한 논리에 불과하다.
더욱이 파시즘과 소비에트 둘 다를 전체주의로 보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 보다 나은 진보적 사회라고 간주했던 신좌파 노선에서 마르쿠제의 이러한 행보는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사적소유 철폐, 생산수단의 국가수중으로의 집중이 왜 공산주의의 요체가 되었는가?
신좌파 비판 연재글1 서두에서 신좌파의 다음과 같은 정치적 특성을 인용한 적이 있다.
1. 사전적 의미에서 신좌파는 1960년대 서유럽과 북미에서 비판이론⋅구조주의⋅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좌파 조류다. 신좌파는“계급투쟁과 노동운동에 집중하는 전통적인 좌파와 달리 다문화주의, 동물권, 여성주의, 성소수자 운동, 환경 운동, 기타 소외 계층에 대한 인권 신장 운동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전통적 맑스주의의 계급투쟁이론 및 혁명 노선을 포기하고, “구좌파에서 중시하던 자본주의, 제국주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나 미시적 불평등과 일상의 권위주의, 인간 소외 등에 주로 관심을” 둔다. (주1. https://ko.wikipedia.org/wiki/%EC%8B%A0%EC%A2%8C%ED%8C%8C, 홍승용, “신좌파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서 재인용)
신좌파가 “정통적 맑스주의의 계급투쟁이론 및 혁명 노선을 포기하고”, “구좌파에서 중시하던 자본주의, 제국주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인가?
《공산당선언》에서 사적소유 철폐를 공산주의 운동의 요체라고 주장한 이유는 자본주의 본질이 자본가적 사적소유가 지배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토지, 공장, 기업, 원료 등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체제이다. 토지의 사적소유도 현 인류와 후대인류가 공유해야 하는 공적 재산인 토지를 개인들, 특히 자본가들이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체제다. 더욱이 투기와 투자가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 조건 하에서 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막대한 특혜는 거대 자본에 대한 토지집중을 부추기는 근거가 된다.
사실 자본이라는 것도 자본가들이 가진 최초의 화폐를 제외한다면 과거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노동의 산물이다. 자본가들이 가진 최초의 화폐 형태의 자본조차도 역사적으로는 농민을 수탈하고 노예들을 억압하고 해외 식민지 원료를 수탈한 결과로 생겨났다. 자본가들의 최초 자본이 다른 사람의 노동의 결과를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자본가 개인의 땀과 노동의 결과라해도 그 이후의 거대한 자본의 축적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노동에서 나온 것이다. 사적소유제가 아니라면 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독점할 역사적, 도덕적, 경제학적 근거가 없다. 자본주의 국가와 법률은 근로인민을 억압하면서 사적소유 체제를 수호하는 방파제이다. 기업과 공장은 사적소유 때문에 자본가들의 것이지만 실제로는 노동자들의 집단적 소유물이다.
주식회사만 보더라도 전체 주식의 일부만 보유하더라도 최대주주가 되어 자본가들이 기업의 소유주가 되도록함으로써 자본주의 기업제도 자체를 통해 자본의 기업소유 대신 사회적 소유의 정당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물신숭배가 지배하는 체제다. 자본가들이 계약을 통해 정상적인 임금(보통은 정상 이하로 낮추려고 시도하지만)을 지급하는 것으로 착취는 은폐되어 있지만 노동자들의 생산과 서비스의 일부가 임금으로 지급되고 나머지 지불되지 않는 비용이 자본가들의 이윤이다.
노동자들이 이 사회의 생산자이며 건설자이다. 파업으로 생산과 서비스가 멈출 때 이것이 증명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마치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먹여살리는 것으로 현실을 전도하여 자본의 억압과 착취, 지배를 정당화 한다. 기업 살리기, 국가경제 살리기를 위해 노동자들의 희생해야 한다는 자본의 거짓 이데올로기가 여기로부터 나온다.
자본주의의 사적소유로부터 그 근본적 문제인 무정부성과 무계획성이 나온다. 자본주의에서는 각 기업별로 생산계획을 잡지만 다른 누가 얼마나 생산할지, 소비는 어떨지 모른다. 전 사회적으로는 무정부적이고 무계획적 생산이 지배하는 체제다. 이것이 자본주의를 주기적 공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생산물은 과잉생산 되어 상품이 지천으로 넘쳐나는데 노동자 민중은 빈곤으로 허덕인다. 자본과 부는 점점 더 소수에게 집중되는데 반해 노동자 민중의 상대적ㆍ절대적 빈곤은 계속되는 불평등한 체제다.
도시는 점점 더 과밀되고 토지가는 점점 더 치솟아 주택문제가 심각해진다. 반면 농촌은 인구감소와 일거리 감소로 쇠퇴해간다.
제국주의 체제는 민족억압과 약탈, 침략과 전쟁을 야기한다.
신좌파는 반자본주의 언사를 이따금 사용하지만 이러한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할 아무런 방도가 없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자본주의 모순을 근절하고 인간이 해방되기 위해 정립되었다. 사회주의는 인류의 관념적 가치가 아니라 실제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제국주의 식민지배를 무너뜨리면서 성립되었다.
전통적인 좌파가 계급투쟁, 특히 자본가들의 지배와 착취에 맞서서 투쟁하고 노동자들을 해방의 중심 계급으로 사고하는 것은 자본주의 모순을 분쇄하고 혁명으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다.
전통적인 혁명좌파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사회의 모순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근본모순을 분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신좌파가 강조하는 “미시적 불평등과 일상의 권위주의, 인간 소외 등”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며 어떻게 해결가능한 것인가?
신좌파 다원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인권과 환경, 인종주의, 장애인, 여성들의 문제도 각각의 개별적인 영역에서 분리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제국주의 지배의 산물이기 때문에 사회혁명이라는 근본목표 속에서 단결해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신좌파들은 사회, 역사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계급투쟁, 민족해방 투쟁을 ‘거대담론’이라고 무시하고 배격한다. 이러한 ‘거대담론’이 개인의 인권이나 차별, 억압 등의 문제를 무시하기에 이러한 구체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억압의 문제를 자본주의 착취와 억압과 분리시킬 수 없고,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자본의 착취극대화, 고용허가제 같은 악법과 인종주의적 편견과 분리시킬 수 없으며, 생태의 파괴도 자본의 무한착취와 무계획적 자연파괴와 분리시킬 수 없다.
인간 개개인의 권리와 존엄한 삶이 실업, 복지의 결여, 저임금, 사회적ㆍ정치적 권리의 박탈, 민주파괴, 문화적 향유 기회의 박탈 속에서 영위될리는 만무하다.
제국주의의 내정간섭과 경제제재, 전쟁과 약탈 속에 인권과 약자들의 권리가 송두리째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무정부주의와 신좌파는 불모의 반공주의로 하나가 되었다
사회주의 국유화나 중압집중을 반대하는 자치는 신좌파의 이상이 자본주의임을 보여준다.
신좌파는 사회주의 국유화나 중앙집중 생산계획 체제를 부정하고 탈집중화를 주장한다.
경제의 국유화나 의사결정의 국가 집중을 통해 신좌파가 제시한 자유로운 사회의 형태를 정의내릴 수는 없다. 신좌파가 제시했던 자유의 형태는 의사결정의 탈집중화, 국제적인 산업의 사회화, 노동자와 지역 공동체의 자주관리였으며, 이에는 민주주의를 경제적ㆍ문화적 측면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에 확대해야 한다는 욕구가 포함되어 있다. 구호로 보자면, 신좌파가 부르짖었던 “민중에게 권력을”ㅡ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ㅡ이라는 요구가 이와같은 자유로운 사회로 향하는 정치적 길잡이의 역할을 했다.(《신좌파의 상상력 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 조지카치아피카스 지음, 이재원/이종태 옮김, 1999, 이후)
신좌파는 맑스주의, 공산주의의 요체인 사적소유 철폐, 생산수단의 국가수중으로의 집중과 이를 위해 필수적인 전 사회적 계획체제를 반대한다. 신좌파는 의사결정의 집중은 탈자유라고 본다. 국가는 계급 없는 사회, 착취없는 사회를 조직해 나가는 사회주의 국가라 해도 반대한다. “의사결정의 탈집중화”를 하면서 “국제적인 산업의 사회화”를 어떻게 구현하겠다는 것인지 해명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와 지역 공동체의 자주관리”는 지역마다 혹은 더 세분화 해서 기업마다 자치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결국 자본주의 무정부성과 무계획성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수천, 수만 개의 지역마다 자주관리를 하고 이 지역마다 난립한 기업의 의사결정을 집중시키지 않고 자치를 한다면 이는 자본주의 기업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소위 혁명이라는 것은 낡은 권력을 뒤엎어 새로운 권력을 수립하는 것이지만 새로운 권력이 다시금 민중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악순환 되는 정치 본연의 모습은 부정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정치혁명 그 자체가 부정된다.(《아나키즘》, 玉川信明, 오월)
프루동이 그리는 미래 이상사회는 대개 노동자 자신이 자치관리하는 기업을 경제단위로 하여 지역·지방·국가로 연합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 푸르동의 경우, 국유화가 아니라 ‘사회화’이다.(같은 책)
소비에트에서 무정부주의자들의 이상이 바로 신좌파의 이상과 동일했다. 소비에트 내부의 아나키스들은 볼셰비키 혁명 정부에 맞서 혁명, 반혁명을 선동했다.
‘Golos Truda’지는 봉기 직후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어떠한 형태의 지배도 거부하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 이 생디칼리스트 잡지는 소비에트를 향해, 정당 지도자들이나 이른바 인민위원회들로부터 자유로운, 분산된 독립된 단위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만약 어떤 정치적인 집단이 그들을 압제의 수단으로 변화시키고자 시도한다면 인민들은 다시 한 번 무기를 들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1920년 3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차 범러시아 식품공장 노동자대회는 아나코 생디칼리스트 집행부(막시모프, 야르추크, 그리고 세르게이 마르크스)가 제안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들은 이 결의문을 통해 볼셰비키 정권이 프롤레타리아와 농민들에게 “무제한적이고 비통제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려고 하며, 가공할만한 집중화를 모순점에 이르기까지 진행시키고 있고 …… 나라 전체에서 생기있고 자발적이며, 자유로운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결의문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소위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것은 사실상 정당 심지어 개인적 인간들에 의해 프롤레타리아에게 행사하는 지배권이다.” 이 대담한 문장을 직접 쓴 막시모프는 비정당적 소비에트와 자유노동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회를 요구한 것이다.(폴 애브리치, 《러시아 아나키스트 1917》, 예문)
이들 무정부주의 자치주의자들처럼 신좌파가 공산주의와 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에 반대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들은 자유와 집중, 참여와 집중을 대립하는 것으로 본다. 이들은 자유와 자치를 말하면서도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최고조의 집중, 즉 독점체의 지배와 집중된 국가권력의 지배를 어떻게 분쇄할지 아무런 전망이 없다.
자본주의에 맞서는 가장 고도의 권위적 행위가 혁명이다. 이를 앞장서 수행하는 것은 가장 잘 조직된 프롤레타리아와 당이다. 그런데 자치와 분산을 자유로 보고 혁명권력의 국유화와 집중된 권력을 반대하는 신좌파가 혁명에 찬동할리가 만무하다.
사회주의 국유화는 가장 높은 형태의 사회화된 생산이다. 국유기업과 국영농장이 바로 사회적 생산기업의 모습이다. 사회주의 국유화와 협동적 생산체제는 바로 자본주의 분업체제의 무정부적 생산과 무계획성에 맞서는 생산형태이다. 이는 노동자와 농민의 아래로부터 이해와 요구와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신좌파는 자본주의로부터 새 사회로 이행하는 이행전략이 부재하다. 그런데 신좌파는 이행전략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상상력에게 권력을” 부여하라고 외쳤던 신좌파의 상상력은 자본주의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 사진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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