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 쿠데타로 축출된 페루의 허약한 사회주의 정부
페루 대중의 분노와 에너지가 자유와 사회주의의 꿈을 실현하는 데 집중될 수 있을 것인가?
랄카(LALKAR) 저자
2023년 1/2월
* 랄카는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영국의 반제국주의 신문이다.
수십 년 동안 페루는 다른 많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2021년 7월 안데스 고원 출신의 겸손하고 검소한 학교 교사인 페드로 카스티요( Pedro Castillo)*가 이끄는 자유 페루당(Perú Libre)이 페루의 주요 정치 세력으로 등장했을 때 마침내 이 목표를 달성할 것처럼 보였다.
* 카스틸로는 2017년 교사 파업을 이끌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졌다.(역주)
페루 극우파 연합 세력이 장악한 의회 쿠데타로 대통령 자리를 박탈당하고 투옥된 카스티요 대통령 |
카스티요는 페루의 교육 예산에 엄청난 새 자극을 주고, 광산 기업을 국유화하고, 페루에서 사업하는 다국적 기업의 세금을 인상하고, 경직되고 고질적인 기존 부패한 의회를 대체할 진정으로 대표성을 가진 제헌의회 선거를 촉구하는 좌파적 사업을 추진했다. 그리고 1990년대 수치스럽고 살인적인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지시로 만든 헌법을 대체할 새 헌법을 작성했다.
페루 반동파, 부패의 상징인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 |
* 알베르토 후지모리(Alberto Fujimori)는 페루의 제54대 대통령으로 1990년 7월 28일에서부터 2000년 11월 22일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일본계 이민자의 자식이다. 1992년 4월 후지모리는 ‘친위 쿠데타(autogolpe)’로 페루 헌법을 정지시키고는 불법체포, 장기 구금, 고문 등 무자비한 인권탄압을 자행했다.
2000년 11월 야당 의원을 돈으로 매수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이에 저항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결국 실각해 일본으로 도주하였다가 페루로 송환된 뒤 장기 수감과 석방을 오가고 있다. 페루의 부패, 기득권 지배계급의 악랄한 상징인 후지모리의 구속 문제는 지난 선거에서도 첨예한 쟁점이 되기도 했다.(역주)
이 모두는 페루의 3,500만 주민, 특히 대다수가 잉카 언어인 케추아(Quechua)어를 사용하고, 비참한 빈곤이 아니었다면 비천한 조건에서 살지 않았을 안데스 지역 주민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그들은 카스틸로에게서 그의 상징인 안데스식 흰색 모자와 모든 사람을 위한 문자습득과 학습을 상징하는 연필 사업 문장(紋章)과 자신들을 동일시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 사업이 무뎌졌다. 카스틸로는 선거 1차 라운드에서 19%의 득표율을 얻은 ‘깜짝 패키지’였다. 후지모리의 딸 케이코를 상대로 한 2차 결선에서 카스티요는 44,000표라는 박빙의 승리를 거뒀다.
개표가 거의 끝나기도 전에 케이코 후지모리(Keiko Fujimori) 진영에서 근거 없는 사기 혐의가 퍼부어졌다. 페루의 단원제 의회는 계속해서 우익 및 극우파 세력들이 장악했다. 자유 페루는 130석 중 15석만을 차지했으며 나머지 5석은 동맹인 ‘페루와 함께당(Juntos por el Perú)’이 차지했다.
2021년 11월 후지모리 케이코의 지지자들은 ‘도덕적 무능’을 이유로 새로 취임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 동의안을 제출했다. 실패했지만 2022년 3월 또 다른 탄핵 시도는 아슬아슬 성공에 가까웠다.
카스티요는 계속되는 우파의 공세와 비난, 기업가들과 노골적인 반사회주의 언론의 점점 더 요란한 야유에 포위된 채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어리석게도 인민들 속의 무명의 성실한 사회주의자가 집권하도록 대중적 지지를 보낸 유권자를 결집시키는 대신 입법부의 적들에게 양보했다.
혹자는 그가 시골 교사로서 정치적으로 순진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은 그가 맑스주의자임을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주의적 동맹을 추구하는 치명적인 전략에 굴복했다는 것이다.
평론가인 프란시스코 도밍게스(Francisco Domínguez)는 카스티요가 냉혹하게 적대적인 의회의 변덕에 어떻게 굴복했는지 분석했다.
“의회의 무분별한 방해공작의 한 사례는 2021년 8월 17일 저명한 좌파 학자이자 지식인인 외교부 장관 헥토르 베자르(Hector Béjar)의 탄핵이었다. 그는 2021년 7월 28일 카스틸로가 임명하고 나서 고작 15일 뒤에 물러나야 했다.”
“이른바 베자르의 ‘범죄’는 장관 임명 전인 2020년 2월 선거 기간 중 공개회의에서 그가 ‘빛나는 길’[1980년)*이 나타나기 훨씬 전인 1974년 페루 해군**에 의해 테러리즘이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말한 것에 있었다. 베자르는 의회에서 처음으로 탄핵 당했는데 그 이후에도 많은 장관들이 멋대로 탄핵당했다…”
페루 공산주의 무장 항쟁조직 ‘빛나는 길’ 포스터와 지도자 아비마엘 구즈만. 구즈만은 반란혐의로 1992년 투옥되어 종신형을 살다가 지난 2021년 86세의 나이로 옥중 사망했다. 페루군은 구스만 체포 당시 미육군 특수부대 델타포스와 공동작전을 벌였다. 이를 통해서도 미국이 페루 내정의 배후 조종자임을 알 수 있다. |
* 페루 공산당은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José Carlos Mariátegui)에 의해 1928년 창당됐다. 이후 페루 공산당은 후르시초프 수정주의 등장과 중소 분쟁 이후 분화했다. 페루 ‘빛나는 길(Sendero Luminoso)’은 맑스레닌주의와 마오주의, 페루 공산당 지도자인 곤잘로 사상으로 무장한 페루 공산당(PCP)의 무장조직이다. 1969년에 처음 창설됐다. 위에서는 1980년에 보다 대중적으로 성장한 무장조직을 말한다.(역주: 위키피디아Wikipedia 참고)
** 페루 해군 내에서는 특수 대반란 부대가 설치되어 무장투쟁과 인민 대중의 투쟁을 잔인하게 진압하고 학살을 자행해 왔다.(역주)
“카스티요 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의회의 공세는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집권한 495일 동안 카스티요는 총 78명의 장관을 임명해야 했다. 베자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임명된 장관들은 예외 없이 언론과 기득권층(베자르의 경우 해군에 의한), 그리고 장관 임명을 막으려 했던 광적인 마녀사냥꾼들인 우익 의회 다수파의 맹공격을 받아 사퇴했다”
“베자르는 표면적으로는 1970년대 해군의 행위에 대한 정확한 논평으로 탄핵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페루가 리마 그룹(Lima Group)*을 포기하고 베네수엘라에 대한 불간섭 외교 정책을 채택했으며 일방적인 제재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탄핵되었다.”
* 리마그룹은 2017년 8월 8일 페루 수도인 리마에서 있었던 리마 선언 이후에 설립된 다국적 기구이다. 이 기구에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캐나다,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온두라스, 멕시코, 파나마, 파라과이, 페루 등 12개국의 외교장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기구의 대표자들은 만성적인 생필품 부족, 인플레이션, 여기에 대응하는 가격통제 정책, 폭력 시위 등 베네수엘라에서의 계속되는 위기로부터 평화적 탈출구를 모색한다는 명목으로 만나 선언문을 발표했다. 베네수엘라 위기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 사망 이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집권 동안에 미국의 경제 제제로 인해 발생한 것이었고 폭력적 시위의 배후 세력은 미국이었다. 리마 구룹은 베네수엘라 사태의 주범인 미국을 비난하기 보다는 인권회복과 자유선거와 민주주의 회복 운운하며 마두로 정부를 비난하는 반동적인 성격을 지녔다.(역주)
“베자르는 2021년 8월 3일에 새 정책을 발표했고 그의 해군 논평에 대한 ‘폭로’는 8월 15일에 이루어졌다. 그의 사임을 요구하며 공개 집회를 여는 군인들, 본질적으로 ‘직위에 적합하지 않는 인물’, ‘공산주의 사상’ 고수를 이유로 든 의회 세력 연합의 발의안 등 악마화 캠페인은 그 직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베자르의 후임자이고 2005년부터 이전의 여러 우익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역임한 직업 외교관 오스카 마우르투아(Oscar Maurtúa)에게도 다른 사안이지만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
귀도 벨리도(Guido Bellido)는 2021년 10월 다국적 자본이 운영하는 카미시아(Camisea) 가스를 국유화 하겠다고 위협했던 자유 페루당(Perú Libre)의 급진 성원이었다. 그는 장관으로 임명되자 페루 국가를 위해 이익 재협상을 거부했는데 2주 뒤에 사임해야 했다.”
“귀도 벨리도 자신은 표면적으로는 ‘테러주의에 대한 사과’를 이유로 사임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대담하게 페루에 속해야 할 자산을 국유화하겠다고 위협했다는 이유로 사임한 것이었다.”
“7월 29일부터 카스티요 정부 장관을 역임한 자유 페루당의 전국 지도자인 귀도 벨리도는 2021년 10월 6일 대통령의 요청과 그의 국유화 위협이 촉발한 반발에 의해 사임을 권유 받았다. 자유 페루당의 핵심 전국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세론(Vladimir Cerrón)은 공개적으로 대통령과 결별한 전례를 따랐다. 그는 10월 16일 카스티요에게 당을 탈퇴하도록 요청하여 카스티요는 당의 의회 지원 없이 떠났다. 그 이후로 자유 페루당은 여러 차례 분열을 겪었다.”(“페루 쿠데타(Golpe): 체포된 카스틸로, 인민들은 프란시스코 도밍게스에 의한 제헌의회를 요구한다”, 공공 열람실, 2022년 12월 23일)
의회 동맹자들로부터 권력을 빼앗기고 발 주변에서 총알이 터질 때까지 순응적으로 춤을 추던 카스티요는 12월 7일 국영 티브이에서 9개월 이내에 새 제헌의회 선거를 치르기 위해 일시적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비상 상황을 만들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세 번째 탄핵 시도를 막으려 했다.
리마의 미국 대사가 말했듯이, 이것은 탄핵이 진행되고 “의회가 그 권한을 수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위헌 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즉석에서 카스티요를 체포하여 투옥하는 신호였다.
거의 1년 반 동안 카스티요는 극히 경멸을 받고 있는 의회에서 구현된 페루 지배계급의 무자비한 적개심을 감내했다. 진보적 개혁에 대한 그의 소심한 시도는 그를 반대하는 국가기구, 즉 경찰, 군대, 사법부, 기업 조직 및 우익 언론 매체에 의해 좌절되었다.
그는 늦게까지 인민의 적극적인 지지를 호소하지 않았고, 페루의 강력하고 극심하게 부패한 과두 세력의 목표에 부합할 것을 보여준 디나 볼루아르테(Dina Boluarte)에 의해 임시 대통령으로 정식 교체되었다. 이번 임시 대통령은 6년 내에서만 6번째 대통령이다.
페루 반동 과두 세력을 등에 업고 쿠데타로 대통령에 취임한 디나 볼루아르테 |
사회주의의 기초
페루 작가이자 언론인, 사상가인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키(José Carlos Mariátegui) (1894-1930)는 맑스-레닌주의 사상을 전파하면서 페루와 해외 정치 지형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는 당시의 군사 독재 정권에 의해 이탈리아로 추방되어 막심 고리키, 안토니오 그람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1928년 마리아테키는 페루 공산당(PCP)을 창당했으며, 페루의 좌파 활동가 세대를 이끈 중요한 저작인 페루 현실에 대한 7가지 해석 평론을 출판했다.
페루 공산당의 창설자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키 |
그가 말했듯이 “물론 우리는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주의가 모조품이나 모방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웅적인 창조물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현실과 언어로 인도-아메리카 사회주의에 영감을 주어야 한다. 그것은 새 세대에게 합당한 사명이다.”
페루 공산당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상당한 정치적 세력을 유지했다. 흥미롭게도 좌파 장군인 후안 벨라스코(Juan Velasco) 하의 군부가 1968년 페루의 반동적인 민간 정부로부터 권력을 장악했다. 후안 벨라스코는 국가의 교통망과 전력망을 국유화하고 수백만 에이커의 개인 소유 농장을 노동자 관리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등 전면적인 진보적 개혁을 실시했다.
그는 또한 미국 소유의 유전을 무상몰수하고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인상했다. 또한 새 헌법을 도입하고 주요 공산주의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쿠바 지도자 카스트로와 있는 후안 벨라스코(왼쪽) |
병석에 누운 벨라스코 대통령은 1975년 총리 프란시스코 모랄레스 베르무데스 장군에 의해 축출되었다. 프란시스코 모랄레스 베르무데즈 총리는 훨씬 더 신중하고 보수적인 인물로 전임자의 여러 급진적 조치를 무효화하는 데 착수했다.
그러나 페루는 자유와 평등을 체험했고, 이것은 아마도 마오주의 ‘빛나는 길(Sendero Luminoso)’ 그룹과 ‘맑스주의 투팍 아마루 혁명 운동(MRTA)’이 페루 원주민들의 고귀한 유산을 불러일으켰던 이후 10년 동안의 광범위한 유격대 활동의 밀알이 되었을 것이다.
안데스 심장부에 거점을 둔 유격대들은 독재 권력이 되어 유격전사들과 안데스의 소외된 원주민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한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선출된 우익 정부를 몰아낼 뻔했다. 이는 사실상 내전이었다.
나중에 1980년에서 1992년 사이 빛나는 길 유격대에 맞서 페루 국가가 벌인 ‘더러운 전쟁’을 조사한 ‘진실과화해위원회’에 따르면, 이로 인해 발생한 70,000명의 사망자 중 적어도 절반은 페루 군대가 자행한 것이었다.
페루 인민들은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한때 대선 후보였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가 페루의 현재 위기에 긍정적인 개입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 예상대로 – 그는 페드로 카스티요를 “국가를 파산으로 끌고 가는 문맹자”, “페루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부르며 잔뜩 움츠려 들었다.
공산주의자로 성인 생활을 시작하여 우익 자유주의의 보루로 변모한 가련한 작자 중 한 명인 바르가스 요사는 1980년대와 90년대에 노벨상을 수상한 동료 콜롬비아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즈(Gabriel García Márquez)*과 공개 설전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르시아 마르케즈는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 혁명의 절친한 벗이자 아주 탁월한 작가였다.
*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백 년 동안의 고독》으로 국내에도 출판됐다.(역주)
새 전략을 모색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면초가에 몰린 페루 대통령이 구금과 투옥(혹자는 이를 ‘납치’라고 불렀다)을 통해 그의 배경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냈다. 파업은 자발적으로 일어났고 전국적 시위로 도로가 차단되었다. 노동자들은 리마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티티카카(Titicaca) 호수 푸노(Puno) 출신의 한 시위자 알폰소 나우인체(Alfonso Nahuinche)는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말했다.
“카스티요는 시골 출신 소박한 노동자들이 선출한 우리의 대통령이다. 그는 우리를 대표했다. 그분은 우리의 어려움과 요구를 이해했다. 그것이 리마에서 그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다. 나는 그가 의회 우익들이 판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탄핵은 카스티요에 대한 거부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 대한 거부이기도 했다.”
카스티요가 추구한 새 헌법은 페루를 원주민의 권리를 공식 인정하는 이웃 볼리비아와 같은 ‘다국적’ 국가로 만들었을 것이다.
급조된 임시 대통령 디나 볼루아르테(Dina Boluarte)는 신속하게 전국적인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소요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군과 경찰에 전권을 주었다. 과거 군대가 좌익 유격대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후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경멸을 고려할 때, 이는 군과 경찰에게 극도로 무신경한 조치였다. 군인들은 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실탄을 사용했고, 12월 말까지 30명 이상의 시위자들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카스티요 축출과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4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자들은 제헌의회, 기존 의회의 폐쇄, 카스티요 석방과 대통령 복권, 즉각 총선거 등을 요구했다. 일반적으로 페루에서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인정되지 않는 볼루아르테는 타협을 통해 다음 선거를 2년 앞당겨 2024년으로 미루는 데 동의했지만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양보할 의향이 거의 없었다.
한편, 경찰과 군대가 자국민에게 가하는 가혹하고 잔혹한 처사에 페루는 충격에 빠졌다. 대안 티브이 채널의 생생한 토론은 “페루의 민주주의는 항상 인종주의적이고 계급차별로 가득 차 인민에 반대하는 경제 권력, 언론 및 가톨릭교회와 함께 희화화되었다.”라고 결론내렸다.
보편적 사회적 인식은 약 200년 전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면서 물려받은 페루의 경제적 문화적 문제들, 즉 비옥한 해안 평야에 거주하는 혼혈 크리올로(criollos)이 70%는 빈곤선 아래에 살고 있고 그 일부는 인간 이하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산악지대 거주 원주민들 대다수를 희생시키면서 분열된 국가를 지배하는 문제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의 뻔뻔스럽고 의기양양한 기마상이 안전상의 이유로 리마의 중앙 광장에서 철거되어야 했다. 이제 지방에서 온 시위자들은 페루 엘리트 국가 의회의 오만한 음모에 격분하여 최초의 잉카 황제의 이름을 딴 이 도시의 망코 카팍(Manco Cápac) 광장에서 야영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안데스 피리를 연주하고 있다.
리마에 인접한 항구인 칼라오(Callao) 출신의 블로거이자 독립 저널리스트인 루즈 발타자르(Luz Báltazar)는 디나 볼루아르테 대통령에게 “여성 대 여성”에서 다음과 같이 직접 연설했다.
“당신은 사기꾼, 반역자, 암살자이고 당신의 권력과 냉소주의 메시지는 조롱에 다름 아니다. 나라가 애도하고 있다. 페루는 소수 외국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페루인을 위한 곳이다. 우리는 누구의 식민지도 아니다. 우리는 부패가 없고 살인자가 없는 민주적인 페루를 믿고 그럴 자격이 있다. 군인의 제복은 이미 더럽혀졌다. 우리의 역사를 재건하는 일은 페루 인민에게 달려 있다.”I
참으로 대중의 분노, 에너지, 결단력은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풍부한 자원과 풍부한 문화유산을 지닌 오랜 세월 고통으로 점철된 이 안데스 국가를 마리아테기와 그의 지지자들이 구상한 번영하고 진정으로 평등한 땅으로 성공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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