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수 외잘란의 사상과 로자바 혁명의 전개(5월 국제정세 토론회 발제1)

– 안준호(한신대학교 맑스주의 탐구모임 양산맑 회원)

1. 양심수 외잘란은 누구인가?

1999년부터 19년 동안 섬 감옥에 갇혀 있는 양심수 외잘란에 대해서 아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른다. 1946년 터키 남동부 쿠르드계 밀집지역에서 태어난 외잘란은 앙카라와 이스탄불에서 정치학과 법학을 전공하였다. 1975년 쿠르디스탄 노동자당을 창립하는 주도자 중 한 명이었고 84년부터 터키를 향해 처음에는 독립, 훗날에는 광범위한 자치권1)을 얻기 위해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당시 터키는 쿠르드족의 언어인 쿠르드어 사용을 금지하는 등 소수민족 억압정책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시리아로 망명하였으나 터키와 미국의 압력으로 시리아에서 방출되었고 그리스로 갔다가 남아공으로 망명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건너갔다가 99년에 CIA, 터키 정보당국, 모사드 등의 합동작전으로 인해 케냐에서 체포되어 구속된 뒤 터키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EU에 가입하고 싶었던 터키는 EU의 권고에 따라 사형제를 폐지하면서 그의 형벌을 종신형으로 대체하였고, 마르마라해에 있는 외딴 섬 임랄리 섬의 감옥에 외잘란을 지금까지 19년 동안 가둬두고 있다.

외잘란은 감옥에 있는 동안 지지자들이 보내주는 많은 서적을 탐독하였고 감옥에서 독창적인 사상을 발전시키게 된다. 아래에 나올 민주적 민족, 민주적 연합체주의 등의 사상들은 감옥에서 완성되어 세상에 나왔으며 쿠르드족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의 사상이 쿠르드족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문제였던 것인지 다른 것이 문제였던 것인지 2011년부터 출판물과 서적의 교류를 중단시키더니 변호사 접견을 금지하고 2014년에는 가족들의 방문까지 불허하였다. 유럽의 수많은 인권단체와 유럽회의의 내 고문방지위원회에서 감옥에 와서 면회를 주장했거나 감금을 끝낼 것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터키에서 활동하는 쿠르드계 진보적 대중정당인 인민민주당(HDP)에서 연례적으로 하던 면회 및 접견들도 금지되었다.

그가 갇힌 이후 그의 석방을 위해 터키, 유럽에 살고 있는 쿠르드 운동가들과 지지세력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그의 몸은 감옥에 있으나 그의 사상은 가두지 못하여 21세기 쿠르드족에게 Apo(삼촌)이라고 불리면서 정신적 지주로서 존재하고 있다. 현재 터키는 외잘란이라는 이름을 사실상 금지어로 못 박고 그의 이름을 말하는 자들은 모두 테러리스트와 연계되었다는 혐의로 구속하고 있다. 또한 앞서 말한 인민민주당의 공동당수인 데미르타스와 피겐 유크세크닥 의원이 쿠르디스탄 노동자당과 연계되었다는 혐의로 2016년에 면책특권을 박탈당하고 동료 의원 11명과 함께 구속하기도 하였다. 결국 지금 터키에서는 외잘란이라는 3글자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되는 순간, 정치범이 된다. 그가 종신형을 받은 이후에도 “외잘란 사냥”은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터키판 국가보안법이나 다름없다.

2. 외잘란 사상의 기원과 핵심 3가지

외잘란의 사상은 본래 맑스-레닌주의를 따랐으나 점점 그 노선에서 멀어지다가 99년 체포된 후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수 많은 이념적 영향 중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념은 머레이 부친의 사상이다. 머레이 북친은 미국 버몬트에서 활동한 생태사회주의, 코뮤날리즘(공동체주의) 사상가이다. 외잘란은 쿠르드족이 처해 있는 현실적 상황에 머레이 북친 등 많은 사상가들에게 영향받는 사상을 접목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핵심 사상은 민주적 민족, 민주적 연합체주의, 여성해방 3가지로 요약된다.

외잘란이 주장하는 민주적 민족이나 민주적 연합체주의, 여성해방 등을 이해하기 전에 일단 기존체제인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라는 존재에 대해 그가 어떻게 생각하였는지를 파악하여야 한다. 외잘란은 국민국가를 자본의 식민지이자 하수인으로 설명하면서 그들이 자본가 계급을 포함한 기득권층을 위해 봉사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사회 구성원들을 동일화 시키며 이러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말하였다. 국가가 신이면 민족주의는 종교라는 비유로 설명한다. 그리고 실제 종교(지역 특성상 이슬람교)는 민족주의와 결합되어 국민국가에 대한 종속을 더욱 심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또 성차별주의도 국민국가에 의해 강화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여성을 값 싼 노동력이자 인간 재생산 도구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잘란은 국민국가 체제를 대안이나 유용한 도구가 아니라 적으로 규정한다. 그러면서도 외잘란은 국가를 지금 당장 폐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하면서 기존 국민국가를 극복하는 다른 체계 즉 준(semi) 국가를 모색하게 된다.2) 앞으로 설명할 3가지 사상은 모두 자본주의와 그 자본주의를 유지하고 그 유지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억압하는 국민국가에 대한 비판과 그것을 극복하려고 나온 사상들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쿠르드족 현재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일단 지적하고 넘어가야 한다. 쿠르드족은 19세기 제국주의가 본격적으로 중동을 침략한 이후 4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어 서로 언어, 문자, 문화가 다른 경우가 많으며 같은 동네에 살아도 쿠르드어만 아는 사람부터 쿠르드어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이다. 이러한 현실적 조건이 외잘란이 언급한 사상을 만들어내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발제자는 판단한다.

2-1. 민주적 연합체주의

위의 국민국가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쿠르드족만의 국민국가 건설을 부르주아지의 입장만 대변하고 일반 쿠르드 민중의 이해를 반영하지 못한 주장이라고 주장한다. 위에서도 말하였듯이 국민국가는 자본의 하수인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밀어내지 않고 국민국가로 독립하는 것은 또 하나의 악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주장한다.3) 분리독립이나 기존 국민국가에 대한 비판으로서 나온 것이 민주적 연합체주의다. 민주적 연합체주의는 사상이자 외잘란이 구상한 정치적 체계다. 자본주의 독점자들이 국민국가를 통해 행하는 인위적인 질서를 반대하면서 각 스스로를 대표하는 공동체집단이 자신이 속한 곳의 특수한 문제를 다룰 수 있고 적법한 해법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치적 연합을 통해 종족, 문화, 민족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권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민국가는 권력 독점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때문에 중앙집권주의를 추구한다고 하면서 그 반대편에 민주적 연합체주의를 올려놓고 있다. 각 지역의 민주적 연합체의 본질은 자유롭게 토론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임을 언급하고 있다. 민주적 연합체들은 국민국가와의 관계에서 공존을 추구하면서도 자기방어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치의 틀에서는 대안적 경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잘란은 위에서도 읽었듯이 자본주의는 사회의 정치공간을 파괴해왔다고 계속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가 프랑스 혁명 이후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건 외잘란만 아는 사실이 아니고, 그러하다.

2-2. 여성해방

외잘란의 여성해방론은 여성이 어떻게 예속되었는가를 먼저 고찰한다. 이 내용은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과 많이 유사한데, 외잘란은 여성의 예속이 모든 예속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의 노예화가 모든 노예제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면서 책을 서술했던 엥겔스와 비슷하다.4) 외잘란은 “여성해방 없이 고국의 자유도 없다”라고 이야기 했다가 더 나아가서 “고국의 자유보다 여성의 자유가 먼저”라고 말하였다. 그 만큼 여성의 해방이 사회 전체의 해방이라고 인식하고 있던 것이다. 외잘란은 여성의 노예화 과정을 수렵생활로 조직된 남성 무력이 군사적 위계질서를 가지면서 종교(무당)과 씨족 연장자를 동맹으로 끌어들여 씨족 사회를 전복한 것과 아버지들이 사적 소유물을 상속하기 위해 남자아이들을 많이 낳게 하고 그 아이들을 좌지우지하였으며, 상속을 위해 부(父)의식을 성립시키면서 여성은 남성의 노예가 되었고 이는 어린이의 노예화, 같은 남성의 노예화로도 확장되었다고 말한다. 외잘란은 또 이러한 부권제(또는 가부장제)는 계급제와 권위주의를 낳게 되고 이것이 국가로 이행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유일신 종교는 여성에 대한 억압을 더욱 강화하는 장치로서 나타났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본주의는 여성을 값싼 노동력이자 노동력을 계속 생산해내는 출산 기계 정도로 만들었다고 외잘란은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외잘란은 여성해방을 위해서는 가부장적 위계질서와 국가주의, 자본주의와 맞서 싸우는 민주주의 투쟁을 주장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강력한 여성조직과 능력, 전투적인 여성운동을 주장하였다. 외잘란은 서구 페미니즘은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서구식 민주주의”5)의 한계를 깨지 못하고 위의 것들이 부족해서 한계에 봉착했다고 말한다.

2-3. 민주적 민족

외잘란은 민족의 개념을 아예 재창조 하고 있다. 그는 민족의 용어가 하나의 정의를 가지고 있지 못하는 점을 파고들었다. 기존 민족 개념은 씨족, 부족, 종족과 달리 국민국가에 의해 상상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주적 민족을 ‘자유로운 개인들과 공동체의 자유 의지로 형성한 공동사회’라고 말하였다. 민주적 민족은 민주적 연합체주의와 여성해방을 연결시켜주는 외잘란 사상의 기초이다. 한 편으로는 국민국가들이 1민족 1국가 1종교를 강제하는 것에 대한 거부를 통해 민주적 연합체를 정당화하면서 여성을 억압받는 집단이자 하나의 민족으로 해석하면서 여성해방을 받쳐준다. 민주적 민족의 큰 특징은 민족자결권에 대한 새로운 해석 시도에 있다. 국민국가로서의 민족자결권은 결국 배외주의로 나타났다. 그에 비해 민주적 민족 개념에서 말하는 민족자결권은 풀뿌리 민주주의로 정리된다.

다시 언급하면, 외잘란의 민주적 민족과 민주적 연합체주의는 쿠르드족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보면 이해가 되는데 현재 4국으로 흩어져서 오랜 세월 그 나라의 문화에 익숙해지다 보니 서로 맞지 않는 부분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는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 이전의 유대인들과 비슷하다. 쿠르드족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이스라엘 같은 1국가 1민족 형식의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민주적 민족이 나온 것이 아닌가 발제자는 생각한다. 민주적 연합체주의는 민주적 민족을 실현하는 정치체계이며 여성해방은 이 두 가지와 상호 연결된다.

그 외에도 환경보호6), 의료와 교육의 공공화, 경제적 자원의 사회화7)와 재분배 등을 이야기하였다. 이는 로자바 혁명에서 계승되어 실천되고 있다.

3. 외잘란 사상의 실천으로서 로자바 혁명

3-1. 쿠르드족이란 누구인가? 로자바는 무슨 의미인가?

쿠르드족은 국민국가가 없는 최대 소수민족이며 쿠르드어라는 독립된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이다. 쿠르드는 ‘산山’을 의미하는 단어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의 유목생활과 연관이 있다. 본래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 아래에 있었으나 1차 대전 때 오스만이 패한 뒤 영국과 프랑스의 자의적인 영토분할로 현 터키, 이란, 시리아, 이라크 지역으로 나뉘어서 서구에게 통치 받게 되었다. 1차 대전이 끝난 뒤 서구 열강은 쿠르드족에게 독립국가를 세워주기로 약속했지만, 이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2차 대전 이후 각 나라가 서구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독립이나 자치를 쉽게 누리지 못하고 억눌리거나 억압받아 왔다. 특히 오스만 제국의 해체 이후 성립된 터키 공화국은 무너지던 터키를 강하게 통일시키기 위해 쿠르드어를 완전히 금지하고 강하게 억압하였다. 로자바는 쿠르드어로 ‘서쪽’을 의미하는 말이다. 쿠르드족이 살아가는 영역을 기준으로 터키는 북쪽지역 바쿠르Bakur, 시리아 북부는 서쪽지역 로자바Rojava, 이란 서부는 동쪽지역Rojhilatê, 이라크 북부는 남쪽지역Başûrê으로 불리고 있다. 로자바 혁명은 쿠르드족의 서쪽 방향을 가리키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이며, 그리하여 본명인 북시리아 민주연방을 통칭 로자바라고 부른다. 시리아계 쿠르드족 역시 외잘란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고 있었다.

3-2. 시리아 내전과 로자바 분쟁 – 코바니 항쟁에서 북시리아 민주연방까지

2011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 정부군은 수도 방어를 위해 병력을 북부지역에서 이탈시켰는데 2013년부터 이라크를 넘어 시리아까지 영역을 넓힌 ISIS가 시리아 북부지역까지 공격하자 YPG(인민수비대)를 본격적으로 조직하여 맞서 싸우기 시작하였다. 시리아 북부까지 ISIS(다에쉬)에게 넘어갈 수 있는 위기 상황에서 현 로자바의 도시 중 하나인 코바니에서 쿠르드족들이 ISIS에 맞서 항쟁을 하였다. 이 때 미국과 서방의 군수물자들이 지원되면서 코바니를 사수하는데 성공, 본격적으로 ISIS 격퇴전에 나서면서 로자바의 영역을 확대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아랍인, 아시리아인8) 등 다른 민족들과의 연합군인 시리아민주군이 2015년 10월에 창립되었다. 계속되는 탈환전투로 덩치가 커진 로자바는 2016년 3월, 북시리아 민주 연방을 선포하면서 시리아 내 자치연방임을 표방하였다. 아랍연맹, 시리아 반군, 터키, 시리아 정부 등에서는 반발하였다. 러시아는 로자바의 자치조직을 인정하였으며, 2017년 9월에는 시리아 외무장관이 협상할 용의가 있다는 말을 하면서 태도를 바꾸었다.9) 그리고 2017년 10월 드디어 ISIS의 수도 락까를 시리아 민주군이 탈환, 해방시킴으로서 ISIS(다에쉬)와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3-3. 로자바의 정치실험 – 여성해방과 직접민주주의, 생산수단의 공동체적 소유

ISIS(다에쉬)를 몰아내면서 안정화된 로자바의 지역들은 외잘란의 사상을 실천하기 시작하였으며 그것을 로자바 사회협약을 통해 나타내었다. 여성을 억압하는 악습과 제도를 폐지하고 기초단위의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모든 지역의회(각 칸톤의 입법회의)에서 성별 비율을 각각 40%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맞추고 있으며 군사학교, 일반학교에서 성평등과 직접민주주의의 필요성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여성 무장조직 YPJ에서는 자신들의 강령으로 세계 여성들의 해방을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 그들은 ISIS(다에쉬)에서 해방된 지역에서 여성 억압적 악습들을 계속 제거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직접민주주의 원칙으로 칸톤의 각 위원회를 통하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의 대소사에 참여하여 운영하게 하고 있다. 또한 생산수단을 각 지역의 협동조합이나 주민, 노조가 공적으로 소유하고 공동생산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로자바에서는 현재 142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농업, 상업, 식품 및 요식, 교육, 의약 등에서 지역별 협동조합을 통해서 상부상조와 공동소유 자급자족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카미실리의 식품 제조 협동조합인 Yekbûn(일치라는 뜻), Tirbespiye(티르 베스 피)지역의 농업 협동조합인 Shehîd Hamo(셰 하드 하모) 등이 있으며 두 도시가 속해 있는 자지라 칸톤10)에서 운영되고 있는 협동조합은 87개 이상이며 그 중 농업 협동조합은 21개이다.11) 협동조합은 각 칸톤의 경제 위원회와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로자바 사회협약에서는 천연자원, 토지, 건물들을 공공의 재산으로 명확히 규정하여 법적 통제를 할 수 있게 해놓았다. 로자바 혁명은 전시의 경험으로 사람들이 서로를 평등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작된 실험이기 때문에 이 실험이 성공적으로 안착될 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직접민주주의 성평등 협동경제 이 3가지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4. 터키, 유럽 안티파들의 지지와 연대

코바니 항쟁 때부터 지금까지 로자바 혁명을 지지하고 지원하였던 가장 큰 세력은 미국과 러시아겠지만 정신적으로 가장 큰 지지세력을 꼽으라면 바로 유럽과 터키에서 활동하던 반 파시즘 활동가들, 소위 ‘안티파’라고 불리던 사람들일 것이다. 터키에서 활동하는 맑스레닌주의 공산당이 스페인 국제여단의 이름을 따라서 지은 국제자유여단의 모태를 만들면서 유럽과 터키에서 활동하는 안티파 활동가들이 의용군으로서 로자바 지역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인 ISIS(다에쉬)를 격퇴하는 것을 돕는 차원에서 들어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로자바 혁명과 외잘란의 사상을 지지하고 연대하기 위해서 들어오기 시작한다. 실제 전투에도 참여하며 최근에는 외잘란의 여성해방 사상을 지지하던 영국 출신 활동가가 로자바의 칸톤 중 하나인 아프린에서 터키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일이 있었다. 유럽 내부에서도 로자바에 연대행위가 이뤄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안티파와 로자바 지지자들이 메이데이에 터키의 아프린 침략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였으며, 4월에는 일부 활동가들이 외잘란의 석방을 외치면서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5. 터키의 침략과 로자바의 위기

역대 터키 정부는 쿠르드족의 자치권 운동 특히 외잘란과 연결된 모든 운동을 지속적으로 탄압해왔다. 시리아 민주군과 북시리아 민주연방이 들어선 이후부터는 에르도안 정권은 이들이 ‘테러리스트 외잘란’과 쿠르디스탄 노동자당의 하위조직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노골적으로 침략할 것이라는 협박을 하면서 미국과 러시아에게 로자바에 대한 모든 지원을 끊을 것을 주장해왔다.

그러다가 락까 탈환/해방 이후 로자바의 성장을 더 강하게 의식하게 된 에르도안 정권은 터키에서 테러집단으로 낙인찍힌 쿠르디스탄 노동자당과 연결되어 있다는 명분으로 로자바를 계속 비난하다가 2018년 1월 아프린을 침략한다. 그 동안 로자바를 지원하던 미국과 러시아는 터키와의 우호관계 때문에 이를 사실상 묵인하면서 방관한다. 2018년 1월부터 시작된 터키의 침략은 아프린 지역을 모두 함락한 3월 정도에 끝이 났는데 현재 아프린 지역은 로자바 혁명의 흔적이 점점 지워지고 있다. 여성들은 다시 부르카를 입고 돌아다니고 있는 등 매우 반동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터키의 필요성 때문에 사실상 방관하는 미국과 러시아의 태도 때문에 현재 로자바 지도부는 프랑스 마크롱 정부와 합의하여 프랑스 군대를 유프라테스 강 동쪽 구역에 주둔하게 하였다. 에르도안은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시리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재개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렇게 로자바는 현재 외부적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6. 양심수 외잘란 문제와 그의 사상과 실천에서의 의의와 한계

양심수 외잘란 문제는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범, 양심수 문제를 좀 더 국제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해준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한국과 터키의 공안탄압의 공통점은 양심수 문제가 특정 국가의 특유의 문제나 미개함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지배체제와 지배 이데올로기, 헤게모니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민주주의 문제에서 국제연대의 필요성을 다시 깨달을 수 있는 문제다. 또한 그의 사상은 여러 민족, 종족문제로 골치 아파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과 통일문제로 여러 논의가 많이 발생하는 한반도에서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다만 그의 사상은 쿠르드족이라는 이름만 공유하고 서로가 너무 각양각색이 되어버린 쿠르드족의 현실적 조건과 맞닿아 있다는 점은 잊지 않아야 한다.

로자바 혁명은 현재 내전과 전쟁, 극단적 이슬람주의와 독재, 제국들의 개입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중동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80년대 중반 이후 끝없이 우경화하고 있는 중동에서 변혁적 운동으로서 로자바 혁명은 새로운 사회는 가능하다는 것을 중동 민중들에게 보여주면서 중동의 역사를 다른 방향으로 틀 수 있는 정신적, 사상적 토대가 될 수 있다. 또한 로자바에서 행해지고 있는 세속주의와 성평등, 민주적 사회주의 실험들은 소련 해체 후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청산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무기력해진 여러 변혁운동과 진보좌파운동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한계가 있다면 외잘란의 사상은 철저하게 쿠르드족의 입장에서 서술된 사상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생태사회주의 또는 사회생태주의에 영향을 받았으나 주요 생산물자가 석유인 산유국이기에 환경오염은 필수적으로 나타나며, 로자바의 현 경제제도가 경제적 조건이 변할 때도 유지될 수 있는지도 심도 있게 논의해봐야 한다. 민주적 자치에서 시작되는 비非국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즉 상향식 시스템을 시행하는 것과 동시에 여당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연합당(PYD)의 1당 통솔 하에 민주연방이 운영되고 있는 모순이 존재한다. 이러한 모순은 로자바 혁명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만 한 것은 아니나, 외잘란 사상의 실천에서 나타난 모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며 만약 극복해야 한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장기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이 소규모 무장자치가 전 세계적 모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냉정한 고찰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로자바 혁명은 내전 및 국제분쟁이라는 매우 위급한 상황에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7. 발제를 마치면서

어떤 자가 지나가는 말로 나에게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국민만 잘 살게 하는 진보좌파는 위선이 아니냐? 자국민들을 학살하는 자보다 백 배 낫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외침은 어디로 갔는가? 자본과 군대는 빠르게 세계화 되는데 왜 노동계급은 유럽 노동자들끼리만 연대하고 일본 노동자끼리만 연대하고 한국 노동자들끼리만 연대하는가? 내부적으로는 이주노동자를 2등 시민 취급하는 것에 동조하고 밖으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에 대해 관심도 없이 외치는 진보운동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올해 2018년 4.3 추모식에 오키나와(류큐)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 현의원도 있었고 시민단체 회원도 있었다. 일본인 국적이 한국에서 어떤 이미지인지 알면서도 온다. 그들은 오키나와 학살을 당했던 자신들의 고향을 생각하며 4.3을 추모하고 연대한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오키나와 학살 추모일 날짜라도 알고 있었는가? 진보정당 대표가 6.23 추모일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내가 무지하여 그런 이야기는 듣질 못하였다. 나는 외잘란과 로자바를 공부할수록 그리고 오키나와에서 온 추모자들을 생각할수록 한국 진보운동이 너무나도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수많은 쿠르드족이 자신들을 차별해온 아랍인들을 구하기 위해 ISIS를 향해 총을 들 때, 우리가 ‘힙스터’, ‘맹동주의’라고 비판하는 유럽의 안티파 청년무리들이 총을 쥐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싸울 때 대한민국의 진보들은 무엇을 했는지, 필자인 나는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제국주의자이자 파시스트인 에르도안이 한국의 “촛불 대통령”을 만났다. 그 순간에 규탄의 피켓 한 번 들지 못한 나 자신의 비겁함과 어리석음을 책망하며, 지금 당장 눈앞의 것 밖에 보지 못하는 한국 진보운동에 슬픔을 금할 수 없다.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게 아니라 괜찮은 걸 ‘소비’하고 서핑 하듯 따라가서 추수하려고만 한 것이 아닌지 우리 자신에게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이렇게 편하게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을 때 누군가는 얼굴에 피와 진흙을 묻혀가면서 싸우고 있다. 200년 전에 태어난 어떤 현자의, 이미 빛이 바래 버려서 더 이상 대다수가 그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지도 않는, 독일의 관광상품이 되어버린 그 사람의 외침에 다시 혁명적 생명을 불어 넣어야 할 때가 지금이다. 아직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만국 단결의 원칙을, 그 끈을 놓지 말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후주

  1. 뒤에 언급될 민주적 연합체주의에 입각한
  1. “그렇지만 국가를 즉각적으로 폐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국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압둘라 외잘란, 『압둘라 외잘란의 정치사상 쿠르드의 여성혁명과 민주적 연합체주의』, 정호영 역, 도서출판 훗, 2018, p.77
  1. 그리고 쿠르드족의 독립은 그 종족이 4국(이라크 이란 터키 시리아)에 걸쳐 살고 있다는 현실 때문에 4국의 민족주의적 억압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고 문제해결을 어렵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외잘란의 생각이다. 압둘라 외잘란, 위의 책, p.89
  1. “이제 나는 여기에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자 한다. 즉 역사에 나타난 최초의 계급적 대립은 단혼제도에서 보게 되는 남녀 간의 적대적 발전과 일치하며, 따라서 최초의 계급적 억압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과 일치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김대웅 역, 두레, 2012년, p112. 같은 책의 p.79, 104, p.111도 같이 보면 좋다.
  1. 서구식 국민국가라는 표현으로 해석된다.(발제자)
  1. 자본주의를 극복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1. 외잘란은 국유화를 사회화와 등치시키지 않고 있다.
  1. 쿠르드족 같이 아시리아 지역에서 살고 있는 나라 없는 민족이며 기독교 인구가 많다.
  1. 하채림, 시리아정부 “쿠르드와 자치권 협상 용의“ 첫 공개 언급, 연합뉴스, 2017.09.27.
  1. 북시리아 민주연방을 구성하는 3개의 칸톤 중 하나. 이라크와 국경을 맞닿고 있다.
  1. Ahmed Samir, Cooperatives are Taking Root in North Syria, Hawar News, 2017.12.18 와 Azad Suffo, Agricultural Cooperatives in Hasakah Guarantee Economic Advancement, Hawar News, 2017.09.07 참고.

참고문헌 및 기사

압둘라 외잘란, 『압둘라 외잘란의 정치사상 쿠르드의 여성혁명과 민주적 연합체주의』, 정호영 역, 도서출판 훗, 2018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김대웅 옮김, 두레, 2012년

강주형, 터키서 언론ㆍ쿠르드 탄압 항의시위…경찰, 물대포 대응, 한국일보, 2016.11.06

Sirwan Kajjo, Writings of Obscure American Leftist Drive Kurdish Forces in Syria, VOA, 2017.01.06

김정우, [뉴스 따라잡기] 쿠르드족과 터키 관계, VOA, 2018.1.27

정은희, IS, 시리아 북부 점령 임박…터키·유럽, “쿠르드족 지켜라” 격렬시위, 참세상, 2014.10.28

하채림, 해방 ‘IS 수도’ 광장에 ‘쿠르드 삼촌’ 외잘란 얼굴, 연합뉴스, 2017.10.

최재훈, 코바니 전투, 그리고 로자바의 민주 연방제 실험, 참세상, 2015.03.02.

정은희, 코바니 혁명군, IS 격퇴 “암흑에 맞선 혁명의 승리”, 참세상, 2015.02.04.

정은희, 쿠르드 로자바 여성해방 운동…IS 때문만은 아니다, 참세상, 2015.02.12.

최재훈, 코바니 전투, 민주주의와 평등을 위한 싸움, 참세상, 2015.02.12

김지연, 쿠르드 연방제 자치정부 선포…시리아·터키 정부 반발(종합2보), 연합뉴스, 2016.03.17

김형욱, IS 상징적 수도 시리아 락까 사실상 탈환, 이데일리, 2017-10-15

하채림, 시리아정부 “쿠르드와 자치권 협상 용의” 첫 공개 언급, 연합뉴스, 2017.09.27

ANF, Protest against Turkish invasion of Afrin on Labor Day in Europe, ANFNEWS, 2018.05.01

ANF, Hunger strikes for Öcalan continue in Europe, ANFNEWS, 25 Apr 2018

심진용, 쿠르드 위해 싸우다 숨진 영국 여성, 왜?, 경향신문, 2018.03.20

유철종, “러시아, 시리아 내 쿠르드족 자치지역 허용 제안”, 연합뉴스, 2017.01.26

<동영상> Chris Den Hond and Mireille Court, ROJAVA: A Utopia in the Heart of Syria’s Chaos, orientxxi, 2017.07

<사이트> cooperativeeconomy.info

Zana Sidi, A Village in Rojava has Achieved Medical Autonomy through Self-organising in Communes, Hawar News, 2018.01.11

Murad Kinda, Women in Qamishlo Open Yekbûn Co-operative, Hawar News, 2017.11.17

Azad Suffo, Agricultural Cooperatives in Hasakah Guarantee Economic Advancement, Hawar News, 2017.09.07

Ahmed Samir, Cooperatives are Taking Root in North Syria, Hawar News, 2017.12.18

Loez, Kobane • Cooperatives as a tool for women’s empowerment, Kedistan, 2018.05.09

Murad Kinda, Zanîn Medicine Co-operative Prevents Selling of Expired Medicines in Qamishlo, Hawar News, 2017.10.28

ANF, ISIS standards in Afrin, ANFNEWS, 2018.05.06

이선목 , 터키-쿠르드 분쟁 격화…美 “터키 이해하지만 자제해야”, 조선일보, 2018.01.23

Helbast Shekhani, French troops arrive in Kurdish-controlled northeastern Syria: reports, Kurdistan24, 2018.04.28

이새봄, 『터키 에르도안 “시리아 공격 재개”』, 매일경제, 2018.05.07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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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양심수 외잘란의 사상과 로자바 혁명의 전개(5월 국제정세 토론회 발제1)”의 1개의 생각

  • 2018년 5월 25일 8:31 오후
    Permalink

    여러가지를 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최근에는 지난해 사지 아랍 – 가탑이/사우디 아라비아 – 카타르 간의 분열에 연속한 올해 이색렬 – 토이기/이스라엘 – 터키의 분열도 보고 있는데 일면 고무적인 측면을 두고 있지만 무엇보다 과거의 과학 변혃의 사상, 주의의 재건의 과제의 중요성을 더욱 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계기여야 합니다. 물론 외잘란의 최초창기의 사상, 주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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