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환영(幻影)으로 맑스를 환영(歡迎)하는가? 맑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과학적, 혁명적 운동을 부활시키자!
맑스 탄생 200주년이다. 맑스는 1818년 5월 5일 태어나 1883년 3월 14일 사망했다. 맑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맑스 관련 서적이 앞다퉈 발행되고 있고, 각종 언론에서도 맑스와 맑스의 삶과 사상을 묘사하는 글들로 넘쳐나고 있다. “청년 마르크스”(감독 라울 펙)라는 영화도 개봉되었다. 이쯤 되면 가히 죽은 맑스의 화려한 부활이라고 선언할만하다.
그런데 맑스는 진정으로 부활하고 있는가? 맑스의 부활을 명목으로 하되 실제로는 맑스, 맑스주의를 새로운 형태로 매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특히 반공주의로 맑스주의가 억압되고, 80년대 맑스주의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지만, 10여년도 되지 않은 짧은 시대를 마감하고 동유럽과 쏘련 사회주의의 해체와 더불어 “맑스주의의 위기”가 도래했던 한국사회에서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현실은 더욱더 참담하다. 현재 한국에서 맑스의 부활은 혁명적 원칙과 역사의식, 현실변혁의 의지나 실천을 위한 투쟁성과 박진감, 살아 있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과학성과 생동감이 빠져버린 “마르크스” 환영(幻影)의 부활, 반공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부활이다. 맑스주의는 과학으로 환영(歡迎)할 것이지, 주술행위로 환영(幻影)할 대상이 아니다. 이는 맑스주의의 혁명성을 폐기했던 세력들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모순의 증대에 따라 맑스를 전면 부정할 수 없게 되자 맑스와 맑스주의의 부활을 기념한다는 명목 하에 부관참시하려는 조직적인 책략이다.
심지어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극우 신문도 맑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기사를 쓰고 있는데, “작금의 한국 개헌안은 옛 소련이나 동독, 북한과 쿠바 등 계획경제를 표방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헌법에 훨씬 가깝다.”, “무슨 미사여구로 포장을 하든 지금 북한의 정체(正體)는 ‘가부장적 김씨 세습 독재체제’일 뿐이다.”(<200살 마르크스의 넋두리 “‘사이비 공산주의’ 유령이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다”>,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주간조선, [2505호] 2018.04.30.)는 조선일보의 무지, 천박함이나 노골적인 반공주의에 비해, “불평등이 존재하는 한 마르크스주의는 영원하다”(조종엽 기자, 동아일보, 2018-05-02)는 동아일보 기사는 신선해보일 정도다. 그런데 그 중 중앙일보에 실린 윤소영 교수의 인터뷰가 압권이다.
“맑스주의 가치론의 대가”로 불리던 정운영 선생이 말년에 중앙일보에 기고를 하면서 맑스주의 신념을 배반했는데, 윤소영 교수는 그보다 훨씬 더 천박하고 속물적이게 자본의 신문 중앙일보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윤소영은 “김정은의 3대 세습으로 백두혈통이 마르크스주의를 계승한다는 것도 처참한 얘기다. 군주정이 부활…” 운운하며 중앙일보의 입맛에 맞춰 종북몰이를 선동하고, “노동자주의”(“남한에서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주의 때문에 타락했다”, [서경호의 직격 인터뷰], 중앙일보, 2018.05.11.) 운운하며 중앙일보의 노동자에 대한 경멸과 공세에 부응하는 자신의 정치적 타락을 만천하에 고백하고 있다.
지적혼란을 넘어 혼돈에 빠진 “진보적 지식인”은 이제 무엇으로부터 진리를 구할 것인가?
이문열의 『영웅시대』를 반공소설로 보지 않는다. 작가의 부친이 모델인 소설 속 주인공은 끝까지 공산주의에서 전향하지 않는다. 해방 정국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수박 겉핥기식 얼치기로 받아들인 지식인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해 경고한 것이다. 소설이 나온 게 1984년이다. 예술가의 본능적 감수성으로 80년대를 미리 걱정한 게 아닌가 싶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문열을 이해하기 위해 올 여름 그의 고향 경북 영양에 내려가 볼 생각이다(같은 기사).
최근 남북관계의 ‘화해’와 ‘평화’ 분위기로의 변신에 따라 반공반북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은 재빠르게 세태에 맞춰 ‘화해와 평화’의 사도로 변신하고 있다. 그런데 윤소영 같이 ‘우직한’ 학자는 그 발 빠른 세태를 따라잡기는커녕 쏘련 사회주의 해체 이후 견지한 반쏘 반북주의를 그대로 발전시켜 월북한 아버지 컴플렉스로 평생을 반공반북주의로 살아온 《레테의 연가》 이문열을 찾아 나서며 진보를 최종적으로 청산하는 레테, “망각의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 망각의 강을 건너기 전에 이미 과거의 기억은 내려두고 왔기 때문에 윤소영에게 최소한의 학문적 양심과 부끄러움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극히 드문 예이지만 학계의 윤소영에 필적하는 타락한 분자가 정치운동 내에 있다면 그는 바로 한때 혁명가에서 “종북몰이” 사도로, 급기야 조선일보 인터뷰를 통해 노동운동을 비난하며 반공주의를 설파하는 주대환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수정주의 아버지 베른슈타인과 그 정치적 자식들
맑스의 이름을 빌어 맑스와 맑스주의를 호도하는 정치적 원조는 베른슈타인이다. 베른슈타인은 맑스주의를 부정한다고 하지 않고 시대에 맞지 않는 맑스의 일부 입장을 수정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수정주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맑스의 사상 체계 자체가 워낙 총체적이었고 전일적이었기 때문에 전체 사상을 부정할 수 없었고, 당시 독일 사회민주당 내의 정치 지형상 맑스주의를 전면 부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맑스의 일부 입장을 수정한다는 베른슈타인은 맑스의 핵심적인 혁명적 사상을 비판하며 종국에는 맑스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베른슈타인은 맑스의 계급과 계급투쟁 대신에 중산층 이론과 계급화해 사상을 부르짖고 자본주의 ‘붕괴론’을 카르텔과 신용기관 발전으로 공황 없는 자본주의 발전이론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협동조합 노선을 주창하며 기존 국가기구 타도를 부정했다.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각종 반맑스 사상은 그 원조인 베른슈타인 사상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재탕하고 있다.
마르크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냉대, 특히 제도권의 두려움은 그의 사상에 대한 오해가 가장 큰 이유다. 이는 기득권이 마르크스의 사상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르크시즘’이라는 ‘이즘(ism)’을 덧씌워 그의 사상에서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혁명만을 부각한 데서 주로 기인하지만, 그의 추종자들 역시 정치투쟁의 일환으로 그를 우상화하고 교조화한 탓도 없지 않다. 생전의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이 더러 왜곡되고 굴절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스스로 말하길,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성일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특집,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16호] 2018년 04월 30일).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계급투쟁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인식을 확장하는 자만이 진정한 맑스주의자다”라고 했는데, 이들 ‘좌파’는 맑스주의로부터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고사하고 “계급투쟁”마저도 앗아가고 있다. 맑스 사상으로부터 세상을 변혁하는 “정치투쟁”의 무기를 발견하는 것이 “우상화”이고 “교조화”라고 하여, 이들은 맑스주의로부터 혁명성이 빠진 “수정주의”를 발굴하려 한다. 그것은 맑스주의를 비혁명적으로 순화하고, 순치하여 “제도권의 두려움”, “오해”를 없앰으로써 “기득권”, 즉 착취계급도 거리낌 없이 수용할 수 있는 “마르크스”를 전파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지배계급에 대한 투항과 항복을 맑스주의의 이름 아래서 위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특히 한국에서 맑스주의에 대한 논의는 한국의 정치적 후진성만큼이나 지적으로도 천박한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다. 맑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한다고 하면서 맑스와 맑스가 정초한 사상을 분리시키는 사조가 거리낌 없이 유포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를 마르크스 자신으로부터 떼어내는 방식으로 마르크스의 의미를 재해석하려는 경향이 엿보인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두드러지는 흐름이다. 책마다 그 결은 다르지만, 영국의 정치사상사가인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가 쓴 마르크스 평전 <카를 마르크스-위대함과 환상 사이>(아르테), 프랑스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마르크스의 철학>(오월의봄), 16개 열쇳말로 마르크스를 조명한 토머스 스타인펠트의 에세이 <마르크스에 관한 모든 것>(살림) 등이 대체로 이런 흐름 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최원형 기자, ”신화도, 유령도 아닌 200살 마르크스“, 한겨레, 2018-05-04).
그렇다면 맑스와 맑스주의를 통합시키는 방식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와 한몸인 마르크스의 모습은 무엇인가? 1989년 국내에 출간됐다가 마르크스 탄생 200년을 맞아 이번에 다시 출간된 <마르크스 전기>(노마드)를 참고해볼 수 있겠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설기관 마르크스·레닌주의연구소가 1973년 영어로 펴냈던 이 책은, 풍부한 사료를 통해 마르크스의 삶과 사상을 재구성하는 한편 그것을 러시아 혁명을 거친 ‘현실 사회주의’ 탄생에 이르는 역사와 하나로 꿰어 매끄럽게 풀이해낸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독일 철학과 프랑스 사회주의, 영국의 정치경제학을 치열하게 연구하며 혁명적 계급인 프롤레타리아가 세상을 변혁할 도구로서 마르크스주의를 완성해나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머리말에 등장하는, 신으로부터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프로메테우스와의 비유는 ‘마르크스주의와 한몸인 마르크스’의 고전적 이미지이기도 하다(한겨레, 같은 기사).
한국에서 《마르크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에서 발행한 이 책은 “제16장 마르크스주의 : 노동인민의 공산주의 건설 투쟁의 깃발”에서는 당시 쏘련 사회주의 내부에서 논란이 됐던 내용들을 일부 담고 있지만, 그럼에도 맑스의 삶뿐만 아니라 기회주의와 투쟁하면서 정립해왔던 맑스주의의 혁명적 사상에 대해서 체계적이고 상당히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맑스와 맑스주의를 분리시키는 방식과 의도는 무엇인가? 한겨레의 같은 기사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16년 나온 평전 <카를 마르크스>는 <마르크스 전기>와 여러모로 대척점에 위치한다. 경제학자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이 옮긴 이 책은 ‘위대함과 환상 사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마르크스에게 덧씌워진 ‘환상’을 걷어내야 19세기 정치사상사 속 마르크스의 ‘위대함’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지은이는 마르크스 자신을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떼어놓을 뿐 아니라, 그의 사상적 동반인 프리드리히 엥겔스, 더 나아가 마르크스의 최대 저작인 <자본론> 및 정치경제학으로부터도 떼어놓으려 시도한다. 거칠게 옮기자면, 마르크스는 독일 관념론의 영향을 받은 철학적 사변으로부터 노동, 소외 개념 등 자기 이론의 주된 틀거리를 도출해내긴 했으나 이를 정치경제학적으로 증명하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된 논지다(한겨레, 같은 기사).
홍기빈은 “마르크스주의는 애초 엥겔스와 독일 사회민주당 세력들이 만들어낸 허상이”며, 맑스가 “‘사회민주주의적’ 관점을 드러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홍기빈은 “철학적으로 볼 때 마르크스를 유물론자라고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오해라고 한다. 유물론/관념론이라는 대립 구도 자체가 다윈 이후의 시대이자 엥겔스가 한창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론 체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19세기 후반의 유행이었을 뿐, 19세기 전반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라고 한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칸트와 헤겔의 독일 관념론의 전통에 서 있는 것으로 보아야만 그의 능동적인 인간 노동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홍기빈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 “실천적 지식인 마르크스에 대한 오해 … ‘그는 프로메테우스 아닌 시시포스’”, 교수신문, 2018.05.08.)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홍기빈은 칸트, 헤겔 등 독일 고전철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헤겔의 변증법이 신비화 되고 거꾸로 서 있기 때문에 바로 세워야 한다고 했던 맑스의 유명한 주장을 제 멋대로 무시한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홍기빈은 전형적인 사민주의자다. 홍기빈은 착한 자본주의의 전도사다. 홍기빈은 칼 폴라니주의를 내세우며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으로서 ‘사회적 경제’”를 주장한다.
이렇게 엄연히 존재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구성되는 사회의 실재를 무시하고 사회 전체를 시장 경제의 영역으로 포섭하려는 억지를 계속한다면 이는 끝없는 긴장을 낳고 결국 시장 경제 자체마저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경제란 본래 개인과 집단의 ‘좋은 삶’을 가능케 할 물적 수단을 조달하는 행위임을 기억할 것이며, 사회 속에서 인간들이 그러한 ‘좋은 삶’을 추구하면서 벌이고 맺는 무수한 활동과 다양한 관계를 인정하면서 그 속에 경제적 활동이 다시 묻어 들어가도록 경제적 관계를 재조직할 것을 주장한다(홍기빈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 “21세기 한국 자본주의와 칼 폴라니 연구소 출범의 의미”, 교수신문, 2015.05.12.).
그런데 홍기빈이 “사회적 경제”를 주창하는 이유는 자본주의는 “시장 경제 자체마저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 것”을 우려해서 이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시장이 지배하는 자본주의가 “끝없는 긴장을 낳고 결국 시장경제 자체마저 파국”으로 만들면서 파괴할 것이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경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파국을 피하게 하는 것, 이는 결국 노동자 인민이 전 사회적, 국가적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계획생산을 하는 체제를 위한 노동자 인민의 투쟁을 “피하기 위해서” 자본주의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것이다.
2008년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 과잉생산 공황, 즉 “금융공황” 이후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자본주의 고쳐 쓰기”, “착한 자본주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시리즈의 연속선상에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전형적인 자본주의의 수정주의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여 “사람 중심의 경제”를 만들 수 있는가?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독점자본이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떻게 독점자본의 시장과 사회 전체에 대한 지배를 타파하고 사회적 경제를 세울 것인가? 과연 사회적 경제는 독점자본을 극복할 힘이 있는가?
우리는 사회적 경제, 대표적으로는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에 대해 비판한 바가 있다.([노동자의 사상] 4호, “사회적기업, 그 환상에 대한 실천이론적 폭로!”와 ([노동자의 사상] 5호 , “자본주의 붕괴와 이행문제”, ‘3.협동조합 운동, 200년 동안 지속된 지독한 환상’을 보라.) 그런데 이들 사회적 경제는 기업들이 끝없는 착취욕에 빠져 추구하는 이윤 극대화와 정리해고, 비정규직, 임금삭감, 복지축소와 빈곤의 확대, 만성적인 대량실업, 소자본의 파산, 전쟁과 파괴, 환경재앙, 반생명적인 먹거리와 소비재 등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할 아무런 전망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의 독점도 전혀 건드리지 못한다. “사회적 경제”에 바탕을 둔 이러한 기업들은 끊임없이 파산과 생성을 거듭하며 이리떼에 잡아먹히면서 내몰리는 양떼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결국 “사적 소유 철폐”와 “정치권력 장악”을 가장 중요한 공산주의 운동의 목표로 제시했던 맑스주의와 폴라니주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는 맑스주의의 혁명적 사상을 부정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맑스주의 부정을 은폐하기 위해서 이들은 맑스와 맑스주의를 분리하는 요술을 부려 반맑스주의 사상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맑스주의를 부정하는 전형적인 방법은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먼저 쏘련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뒤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현실 사회주의를 부정하는 방법은 수십 년 동안 현실 사회주의의 대표격인 쏘련 사회주의의 실질적인 건설자인 스탈린을 비방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일각에서는 스탈린을 부정하고 레닌을 옹호하는 방법도 있지만, 스탈린이 맑스레닌주의를 확고하게 옹호했기 때문에, 대개의 비난은 스탈린과 쏘련 사회주의를 부정하고, 그 스탈린 사상의 출발이 레닌에게 있다며 레닌을 부정하고 레닌 사상의 출발에 엥겔스가 있다고 엥겔스를 부정하고, 더 나아가 맑스의 영원한 사상적 벗이자 맑스주의를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인 엥겔스와 맑스를 분리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이제 맑스만이 남았다. 홀로된 맑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당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미공개 원고의 출간은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철학적 성격의 위 저작들, 특히 <수고>가 특별했던 것은, 그것이 한편으론 비인간적 면모를 노골화하는 당시 대량생산 독점자본주의에 대하여,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점차 생산력주의에 매몰되면서 인간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소비에트 체제에 대하여 강력한 ‘비판의 무기’를 제공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마르크스는 이미 이론적으로 청산해서 출간의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던 <수고>가 <자본론>과 동급의 저작으로까지 격상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김공회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마르크스, 그는 정말 ‘공산주의의 아버지’일까”, 2018-05-06)
이처럼 맑스를 휴머니즘과 소외를 말했던 초기 맑스와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말했던 후기 맑스를 분리하는 것으로 반맑스주의는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그 최정점에서 급기야는 맑스와 맑스주의조차도 분리하는 것으로 맑스주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비맑스, 반맑스 개량주의자들에게 급진적 민주주의자 시절의 맑스, 엥겔스의 초기 저작과 《독일 이데올로기》와 《공산당 선언》을 기점으로 한 변증법적 유물론자의 성숙한 저작은 “형이상학적”으로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T. I. 오이저만이 《맑스주의 철학성립사》에서 입증했던 것처럼, 맑스주의의 성립은 “역사적 · 논리적 연속성을 함축하는 것”인데, 이는 “결과적으로 맑스주의 철학의 형성은 19세기 초반의 가장 탁월한 철학적 · 경제적 사회주의 이론들의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인 연속인 동시에 그것들의 부정이며, 그 교의의 형성에 내재한 특수한 모순의 해결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급진적 민주주의자로서의 맑스, 엥겔스의 초기 저작과 변증법적 유물론자로서 성숙한 맑스주의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이 통일되어 성립, 발전되었던 것이다. 초기 저작의 기초 없이 후기 저작이 있을 수 없고, 또한 초기 저작의 질적 발전 없이 후기 저작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흐루쇼프의 20차, 22차 쏘련 공산당 당대회에서 “스탈린 개인 숭배”와 잔혹한 “스탈린 독재 체제”에 대한 폭로가 있은 뒤에, 전 세계적으로 반쏘비에트 유로꼬뮤니즘 열풍이 일었는데, 이들 반쏘비에트 “공산주의자들”은 비인간적인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인간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소비에트 체제”조차도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봤다. 그 때문에 1844년 맑스의 초기 저작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소외”를 일면적으로 강조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닌 휴머니즘으로서의 맑스의 초기 저작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 반쏘비에트 “공산주의자들”은 결국 맑스주의의 혁명적 원칙을 다 버리고 자본주의 체제에 투항하는 것으로 사회민주주의 개량주의자들의 뒤를 따라 갔다.
흐루쇼프가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일환으로 부각시킨 스탈린 체제의 “잔혹함”은 흐루쇼프 수정주의자들과 제국주의 체제에 의해 극심하게 과장, 왜곡되었는데, 그것은 당내 관료주의자들의 숙청과 제국주의와 내부 반당행위, 반혁명적 테러와 생산 파괴 책동과의 계급투쟁의 일환 속에서 “계급독재”가 극단화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등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쏘련 해체 이후에 구쏘련의 인민들과 혁명적인 국제 공산주의 운동은 이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고, 그 정점에 있었던 스탈린 시대를 온전하게 평가하면서 쏘비에트 체제의 부활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런데 “생산력주의에 매몰되면서 인간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소비에트 체제”라고 비난을 당하고 있는데 정작 스탈린은 “생산력 이론”에 맞서 투쟁했다.
어떤 사람들은 제국주의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제2인터내셔널의 정당들이 만일 제국주의자들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전쟁을 내전으로”를 선언하겠다고 위협했다고 한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그 당들은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구호를 걷어치우고 “조국 방어 전쟁”이라는 정반대의 구호를 실천하였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와 같이 구호를 바꾼 결과 수백만의 노동자가 희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거나 어느 누가 변절하였다거나 노동계급을 배신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모든 것은 다 당연히 일어날 대로 일어난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인터내셔널이 원래 전쟁의 도구가 아니라 “평화의 도구”이기 때문이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그 때에 존재하던 “생산력의 수준”에서는 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죄”는 “생산력”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카우츠키 씨의 “생산력 이론”이 “우리에게” 정확히 설명해 주는 바이다(스탈린, 《레닌주의의 기본에 대하여》).
《쏘련에서의 사회주의의 경제적 제 문제》에서 스탈린은 사회주의 생산관계와 생산력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주의에서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은 존재하는데, 이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이 둘이 적대적으로 변하면서 사회주의 체제 위기를 낳을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반대로 등소평의 “흑묘백묘론”, 즉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생산력주의는 사회주의 내 수정주의의 산물이었다.
조선일보는 위에서 언급했던 방식대로 반맑스주의 지적 전통의 상투적인 “규칙”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미테랑 대통령의 특별보좌역과 유럽개발은행 총재를 역임한 프랑스의 석학이 쓴 이 책은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를 분리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가 지적하는 마르크스 왜곡의 주범은 평생의 동지이자 후원자로 ‘전방위 당’의 개념을 만들어낸 엥겔스, 사후에 저술을 정리하면서 경제이론을 왜곡시킨 카우츠키, 선진국이 아니라 후진국(러시아)의 혁명 이론으로 전화시킨, 레닌,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론으로 전도시킨 스탈린이다. 이들은 다른 위대한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에게서 발견되는 모호하고 다의적(多義的)인 이론들을 각자의 필요성에 맞게 “변혁”하고 “발전”시켰다(“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조선일보, 2006. 10. 13).
조선일보가 《마르크스 평전》(자크 아탈리)을 소개하면서 한 말인데, 극우파쇼 언론인 조선일보가 반쏘비에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도 오늘날 맑스 탄생 200주년에 ‘마르크스’의 이름을 빌어 맑스를 부관참시하는 반맑스주의자들이 지배계급의 이해에 얼마나 부합하는 어릿광대극을 벌이는지 잘 알 수 있다.
무정부주의적 ‘맑스주의’와 반맑스주의 지적 전통의 상투적 ‘규칙’
이제 한국의 이른바 “진보진영”에서 맑스주의를 얼마나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는지 보자.
정치권력을 타파하고 노동자 계급의 권력쟁취를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제시했던 맑스주의 앞에 무정부주의적 ‘맑스주의’라는 수사를 붙일 수 있는가?
무정부주의와 맑스주의는 조화될 수 없다. 맑스주의는 프루동, 바쿠닌 등 소부르주아 무정부주의와 투쟁하며 만들어졌다. 그러나 맑스,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에서 소부르주아 사회주의, 부르주아적 사회주의, 반동적 사회주의라는 수식을 붙여서 이를 통렬하게 비난했던 전례를 따라서 무정부주의적 ‘맑스주의’라는 제목을 붙였다.
맑스주의를 주장 또는 참칭하되 실제로는 무정주의적 사상에 대해 우리는 무정부주의적 ‘맑스주의’라고 칭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맑스주의(?) 정치단체 <다른 세상을 향한 연대>에 실린 글을 여러 차례 비판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비판의 대부분은 이들이 무정부주의적이라는 점에 있다(이에 대해서는 “누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가? – 반권위 자치주의자들의 유행상품인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2017년 8월 5일, “러시아 혁명과 사회주의에 대한 변질적 이해 – 전도(顚倒)된 인식이 낳은 사회주의 전도(前途)의 봉쇄”, 2016년 8월 8일, “비속하기에 비속하게 보는, 반레닌주의 비평가들에 대하여 – 오발탄이 되어 버린 변혁재장전의 기회주의 재장전”, 2015년 11월 27일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맑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실린 이 정치단체에 실린 기고글(이정인, “마르크스주의의 체계?”, 2018.5.11.) 역시도 한국 ‘맑스주의자’들의 지적혼란과 무정부주의적 혼돈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글이다. 이정인은 한때 <사회주의노동자신문> 활동을 하고, <붉은글씨> 를 통해 “좌익공산주의” 진영과 지적, 정치적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이 글을 보면 이정인이나 “좋은 글의 재게재”라며 이 글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다른 세상을 향한 연대>의 정치적 뿌리가 얼마나 혁명적 근본이 없고 혼란스러운지 알 수가 있다. 게다가 이정인은 글 전체에 걸쳐 1차 자료를 인용하여 전거(典據)를 밝힘으로써 자신의 근거에 과학성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신에 일방적인 왜곡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정인의 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혼자만의 입장이 아니고 반쏘비에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 속에서 나온 것이므로 그것의 문헌적, 철학적, 정치적 근거의 정당성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먼저 “스탈린은 1950년대 정치경제학 교과서 편찬 작업에도 깊이 개입하여 「소련에서 사회경제적 문제들」이라는 논문을 썼다. 여기서 그는 경제법칙의 객관성을 강조하며 사회주의 상품경제라는 개념을 제시했”다고 하여, 마치 스탈린이 사회주의에서 “상품경제”를 확산시킨 것으로 오해하도록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또한 “1936년 새로 개정된 소련 헌법은 소련이 계급이 사라진 전(全)인민의 국가가 되었으며 마침내 사회주의 사회에 진입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가 계급의 폐절과 함께 국가 일반이 소멸된 사회이며 상품과 화폐가 폐절된 사회라고 생각했다. 현실의 소련 사회와 마르크스·엥겔스가 생각한 사회주의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는 주장도 터무니없다.
이정인은 1936년 11월 25일 발표했던 스탈린의 “쏘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맹 헌법 초안에 대하여”라는 저작을 전혀 읽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스탈린이 “1936년 새로 개정된 소련 헌법”에서 “기본적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했다”, 이는 “즉 맑스주의자들이 다른 말로 공산주의의 첫 단계 혹은 낮은 단계라고 부르는 그것을 실현했다”는 주장을 맑스와 엥겔스가 말한 계급의 폐절과 국가 일반이 소멸된 높은 수준의 공산주의가 실현됐다고 하는 주장에 마구 갖다 붙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정인은 스탈린이 여기서 “전 인민의 국가”를 주장했다고 하는데, 스탈린은 이 사회는 적대계급이 청산되었고, 대신에 “노동자 농민으로 구성되어 있고, 바로 이 근로 계급들이 주권을 잡고 있으며, 사회에 대한 국가적 지도(독재)는 사회의 선진 계급인 노동 계급에게 속하며”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노동자 계급의 사회에 대한 국가적 지도(독재)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정인은 쏘련공산당(CPSU) 22차 당대회에서 채택된 흐루쇼프의 주장인 “전 인민의 국가”를 풍문만으로 갖다 붙이는 것이다. 이러한 학문적 몰염치가 바로 비방의 출발점인 것이다.
이정인은 “<자연변증법>은 엥겔스가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쓴 원고들로 출판한 적이 없는 글이었다. 하지만 소련 정부는 한 페이지 안에서도 거의 20년 간격을 두고 쓰여진 원고들을 짜깁기 하는 방식으로 이 저작을 재탄생시켰다.”며 맑스와 엥겔스의 저작들을 남김없이 출판하려고 했던 쏘비에트 정부의 노력을 비하한다. 더욱이 “이렇게 만들어진 스탈린주의 이론 체계는 마르크스주의가 노동자들의 혁명적 이론에서 지배계급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재구성 된 결과였다.”며 권력을 잡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맑스주의 사상에 충실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전파하려는 노력을 폄하한다.
권력을 잡은 계급이 전파하는 맑스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계급의 통치 이데올로기”라는 주장은 권력에 부정적인 반동사상의 일종이다.
대량살상 무기가 있다고 아무 근거도 없이 규정하거나 혹은 실제로 규정하여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사용하고 있거나 사용할 의도가 있다고 비난함으로써 악마화된 국가들은 종종 여론의 유리한 관점을 가지고 군사행동을 하는 미국에게 도덕적 의무를 부여한다. 미국이 재식민지화하려는 구 식민지 지도자들과 관련해 “잔혹한 정권”, “야만적 독재자”, “도덕적 수치”에 대한 도덕적 훼손과 현란한 언사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좌파들은 전쟁을 찬성하는 데에 동원되고 (번역자: 제국주의자들에 의한) 위로부터의 국제적 계급투쟁에 복무한다.
좌파 협력자들은 도덕적으로 지지받을 수 있는 영역을 가지고는 철저히 무기력하게 인식하고 있다. 해방의 목표를 추구하는 모든 국가는 잔인하고 살인적이거나 도덕적인 불명예와 논거로 비난하며 그 국가의 해방 목표가 가짜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따라 공적 권력이 없는 사람들만이 억압과 착취에 맞선 계급투쟁에 가담하고 공적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억압의 대리인이라고 여긴다(스티븐 가우언스, “크루즈 미사일 공격: 시리아에 대한 워싱턴의 장기 계급전쟁의 새로운 단계”, 노동자정치신문, 2017년 4월 21일).
스티븐 가우언스는 “좌파 협력자”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전 세계적으로나, 한국사회에서도 상당수의 이른바 “좌파들”, 특히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현실 사회주의나 중동이나 남미의 진보적 권력 등에 대한 악의적인 비방에 호응함으로써 제국주의의 이해에 봉사하는 반동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을 잡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권력이 자신의 “공적권력”, 공식적 지배권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회의와 부정은 “아래로부터의”라는 수식 하에 은폐된 무정부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중앙집중주의에 대한 부정과 “분산적 계획”, “민주적 계획”으로 자본에 투항한 시장 사회주의의 일종이기도 하다.
이정인은 “소련이 사회주의 단계에 도달했다는 선언이 나오게 된 것은 1930년대 이후 소련 사회의 지배권을 확고히 굳힌 국가 관료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흔들 수 있는 내외부의 급격한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임의로 해석한다.
소련의 현실을 정당화하기 위한 국가 이데올로기를 재구축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소련의 새로운 지배층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모든 저작을 성서적인 절대 권위를 가진 텍스트로 만들고 그 구절들을 역사적 맥락에서 떼어내 조각조각 낸 다음 자기 입맛에 맞게 재구성해서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권위를 확보하려 시도했다.
이런 교과서 체계는 완전한 이론주의의 형태를 취했으며 엘리트주의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숙지하면 역사 발전 법칙을 알게 되는 것이고 사회 운영은 그런 법칙을 통달한 당 관료들에게 위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결과 마르크스주의는 대중 투쟁적인 요소보다는 단계론적이고 점진적인 사회 발전을 강조하는 이론 체계로 변형되었다(이정인, 같은 글).
“작업이 필요했다.”, “권위를 확보하려 시도했다.”, “가질 수밖에 없었다.”, “위임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론 체계로 변형되었다.”는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주장으로 과학적이고 논리적 입증을 대신하고 있다. 위의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스탈린의 저작이나 당시의 구체적 역사적 상황을 직접 인용해야 할 텐데 그러한 과정도 난폭하게 생략하고 있다.
이정인의 스탈린과 스탈린 시대에 대한 비판은 레닌에게로 향한다. 맑스주의는 수미일관한 총체적인 과학이다. 이정인은 이를 부정하고 이를 “마르크스주의를 하나의 완결된 이론체계로 이해하는 경향을 온전히 스탈린의 것만으로 돌리기는 어렵다”라며 레닌에게로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제 2 인터내셔널 사민주의자들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해 방식은 1913년 레닌이 쓴 「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가지 구성 부분」이라는 소논문에 잘 드러난다. 레닌은 이 짧은 논문에서 철학적 유물론과 정치경제학, 사회주의를 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구성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들의 세 가지 원천은 독일 고전철학과 영국 고전경제학, 프랑스 사회주의라고 말한다. 이런 설명 방식이 갖고 있는 문제점 중 하나는 사회주의 이론의 발전을 현실 운동과 독립적인 이론적 발전의 산물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
「레닌에 대해 말하지 않기」라는 논문을 쓴 영국의 사회학자 사이먼 클락은 플레하노프와 레닌이 제기한 철학적 유물론은 사실상 부르주아 철학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사회주의자라기보다는 인민주의자, 즉 혁명적 민주주의자(급진적 부르주아)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물론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레닌이 공장 내 노동조합적인 투쟁만으로 사회주의 의식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정치적 의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사실 그 정치적 내용은 사회주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차르 반대·보통선거제 쟁취 같은 민주주의적인 것이었던 게 사실이다(이정인, 같은 글).
이정인 같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초기 혁명적이었던 제2 인터내셔널과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사회배외주의적으로 타락한 제2 인터내셔널을 구별하지 않고, 레닌이 제2 인터내셔널의 영향을 받았다고 강조한다. 이들에게는 레닌이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과 싸우면서 《제국주의론》과 《국가와 혁명》을 쓰고, 혁명 이후에도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배신자 카우츠키》를 통해 투쟁하고 마침내는 사회민주주의 세력들이 “제국주의의 지주”로 전락했다고 하는 투쟁은 무시된다.
레닌이 맑스주의의 세 가지 구성 요소로서 독일 고전철학과 영국고전경제학, 프랑스 사회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맑스주의 사상의 주요 원천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 이론의 발전을 현실 운동과 독립적인 이론적 발전의 산물이라고 여”기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다. 레닌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주장했던 맑스주의 철학의 본질은 “반영론”인데, 사상이 “외부 현실의 반영”이라는 것은 레닌주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이정인은 레닌을 부정하기 위해 사이먼 클락과 같은 부르주아 사회학자의 입장을 두둔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사회학자의 주장을 빌어 “플레하노프와 레닌이 제기한 철학적 유물론은 사실상 부르주아 철학과 다름없다.”는 주장도 터무니없는 망발에 다름 아니다. 또한 이정인은 노동자 계급은 유물론적 사고를 가져야 하며 “민주주의 투쟁의 전위가 되어야 한다”는 레닌의 주장을 “사회주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적인 것이었던 게 사실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정인은 사회주의자로서 민주주의 투쟁 영역으로까지 계급의식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가지고 마치 레닌이 “인민주의자”, 즉 혁명적 민주주의자(급진적 부르주아)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이정인은 레닌의 이 저작이 “비판의 자유”를 옹호하며 맑스주의를 수정하는 베른슈타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묵살하는 것이다.
비레닌주의적 “사회주의자” 사이에서 레닌의 “외부로터의 테제”를 엘리트주의로 터무니없이 묘사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는 이미 성두현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레닌주의에 대한 저열한 왜곡을 반비판한 적이 있다.
앞에서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하면서 맑스주의를 해체하는 방법론을 인용했는데, 이정인도 예외가 아니다. 이정인은 솔직하게 현실사회주의와 스탈린을 비난하고 레닌과 엥겔스, 마침내 맑스까지 죽이는 딜레마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1990년대 소련과 동유럽이 붕괴하고 그 실상이 드러나면서 소련이 사회주의가 아닌 것 같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이로부터 마르크스주의를 살리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등장했다. 1992년 이진경이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논문에서 지적한 대로 이런 논의는 주로 죽은 마르크스와 산 마르크스를 가리는 문제, 즉 “마르크스→엥겔스→레닌→스탈린”으로 이어지는 소위 마르크스주의 정통의 계보를 어디까지 살리고 어디까지 죽여야 하느냐에 집중되었다.
레닌을 살리기 위해 스탈린을 죽였더니 레닌과 스탈린의 연관성을 부정하기 어려워 레닌까지 죽이게 되었다. 레닌과 스탈린 모두 제 2 인터내셔널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인식이 생겨났으며 그럼 제 2 인터내셔널에 영향 끼친 사람은 엥겔스니 엥겔스까지 죽이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마르크스라도 살리자고 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연관성을 도저히 부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마르크스까지 죽이고 나아가 사회주의 이론 전체를 부정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이정인, 같은 글).
“소련이 사회주의가 아닌 것 같다”? 왜 국가자본주의론의 반동성과 거짓말이 만천하에 드러나니 확신이 없어졌는가? 그런데 “마르크스주의를 살리려는 다양한 시도들” 중 하나인 이진경의 시도는 어디로 갔는가?
그는 기존의 사회주의 사회 역시 또다른 ‘근대 사회’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여기서부터 ‘근대성’에 대한 긴 모색이 시작됐다. 근대적 마르크스주의를 넘으려는 모색은 “맑스주의 외부에서 던져져야 했고, 맑스주의 안에 없는 것, 그 공백을 통해서 사유돼야 했다.” 푸코, 들뢰즈, 가타리, 네그리, 심지어 동양의 화엄학까지 끌어들였다. ‘수유+너머’ 연구실을 출범시킨 것도 이때문이다. 그는 여기서 “연구와 삶이 하나로 결합된, 근대적인 것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창안하고 실험하며 새로운 종류의 습속과 무의식을 생산하는 ‘연구자들의 코뮨’”을 시도했다.
이진경은 이제 “기존의 맑스주의, 지배적 형태의 맑스주의를 다른 것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계급과 혁명에 대한 구도에 다른 이질적 요소들이 침투해 뒤섞이는 것, 이미 자본주의 사회의 또다른 주류 계급이 된 노동운동을 소수화의 전략을 통해 새롭게 혁명화하는 것”을 통해 이뤄진다고 믿는다(안수찬 기자, “마르크스 근대성 넘어 ‘이진경주의’로”, 한겨레, 2006-04-07).
이진경은 “지배적 형태의 맑스주의”, 즉 맑스주의의 혁명적, 과학적 원칙을 “이질적 요소들”을 뒤섞어서 “다른 것으로 변형시키는” 것이었다. 이진경은 푸코, 들뢰즈, 가타리, 네그리 등 유럽의 반맑스주의를 표방하는 소부르주아 잡사상(이질적 요소들)의 유포자가 되었다.
이진경, 고병권 등의 “지식 공동체” “수유+넘어”는 현실의 자본주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데 무용하고 실천운동과 괴리된 일부 지식인들의 사변의 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프랑크푸르트 학파, 동독의 실천 논쟁, 사회학자, 반맑스주의자인 이진경에 이르는 일련의 주장들이 현실 사회주의와 스탈린, 레닌주의를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자이델이 단순히 실천만을 강조함으로써, 세계의 물질적 통일성이라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근본명제를 왜곡하였다고 비판한다. 결국 자이델에 대한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물질의 운동과 발전의 객관적 법칙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사회와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파악으로 이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실천논쟁”, ‘편역자 글 중에서’, 이선일 편역, 거름).
맑스레닌주의에서 법칙과 주체적 실천은 어떠한 관계를 맺는가? 《쏘련에서 사회주의의 경제적 제 문제》라는 스탈린의 저작에서 이와 관련한 부분을 요약하면 스탈린은 모든 사회는 그 자체의 고유한 발전법칙이 있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은 사회주의에서 기본 법칙의 특징과 요구는 “높은 기술의 토대 위에서 사회주의 생산을 부단히 성장시키고 개선함으로써 전체 사회의 부단히 성장하는 물질적 및 문화적 수요를 최대한으로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스탈린은 엥겔스의 《반뒤링론》을 인용하면서 사물발전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때만이 거기에 부합하는 올바른 실천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철학적으로 그것은 “합목적적”이 되는 것이다. 이는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맹목적인 실천이 아니라 과학적 인식에 바탕을 둔 올바르고 혁명적 실천을 강조하는 것이다.
마오쩌둥은 《실천론》에서 인식과 실천은 발전적으로 통일되어야 하는데 올바른 맑스주의적 인식은 보다 높은 실천을 낳고 이를 통해 더 높은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맑스가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마지막 부분에서 강조한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문제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는 부분은 인식을 배제한 실천이 아니라 올바른 인식과 혁명적 실천의 통일을 강조한 것이다.
스탈린이 1938년 썼던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에 관하여》에 대해, 이정인은 1960년대 쏘련에서 “엥겔스가 <반뒤링론>과 <자연변증법>에서 제기한 ‘부정의 부정’ 법칙을 임의로 삭제한 것은 수정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다시 ‘부정의 부정’ 법칙이 소비에트 교과서에 복원되는 과정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논의가 변증법적 유물론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까지는 나아가지는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들이 스탈린이 “부정의 부정” 법칙을 배제했다고 하여 스탈린을 비판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강조하기 위함인가?
맑스는 “변증법은 현존사태의 긍정적인 이해에다 또한 그 부정의 이해, 필연적인 몰락의 이해를 포함시킨다.”(≪자본론≫, 제1권 제2판 서문)고 주장했다.
스탈린은 자신의 위 저서에서 “형이상학”을 비판하며, 변증법은 “전체 자연의 사물과 자연 현상은 그의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 과거와 미래, 사멸하는 것과 발전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 대립물의 투쟁 즉 낡은 것과 새 것, 사멸하는 것과 발생하는 것, 소멸되고 있는 것과 발전되고 있는 것 사이의 투쟁은 발전 과정의 내용, 양적 변화의 질적 변화로의 이행의 내용을 이룬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철학적 인식은 “만일 세계가 부단한 운동과 발전 가운데 있으며 낡은 것이 사멸하고 새 것이 성장하는 것이 발전의 법칙이라면 ‘고정불변한’ 사회질서, 사적소유와 착취의 ‘영원한 원칙’, 농민은 지주에게,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예속된다는 ‘영원한 이념’이란 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스탈린의 변증법에 대한 정식화는 엥겔스와 맑스의 변증법적 인식을 혁명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데 충분한 정의이다. 이것이 무엇 때문에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부정의 부정”, 자본주의를 부정한 쏘련 사회주의를 다시 국가자본주의로 재차 부정하게 되었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표현하려는 부정적한 의도로 여기에 집착하는 것인가?
쏘련에서의 60년대 “이런 논의가 변증법적 유물론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까지는 나아가지는 못했다.”라는 주장에서 보듯, 혁명적 인식과 실천을 위해서가 아니라 변증법적 유물론의 수미일관하고 총체적인 체계를 부정하기 위함이다. 그의 글 제목이 “마르크스주의의 체계?”인 것은 우연이 아닌데, 사실 해체주의자들이 이러한 시도를 했다. 이들이 말하는 “부정의 부정”은 변증법적 부정이 아니라 비변증법적이고 전면 부정, 무익하고 무용한 부정인데, 현실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에서의 사상을 전면 부정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이정인 같은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 부류들이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가 “국가자본주의”라는 반동적 사상에 사로잡혀 이를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서 레닌과 엥겔스를 죽이고 종국에는 맑스까지 죽이면서 사회주의 이론 전체를 부정하게 되었다면 그들에게 남아 있는 진보성은 무엇이 있을 수 있는가? 여전히 맑스주의의 혁명성과 진보성을 조금이라고 움켜쥐려고 한다면 자신들이 어디서부터 출발해서 비맑스, 더 나아가 반맑스주의자들이 되었는지 심각하게 성찰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이 맑스주의를 다시 자신의 사상으로 세우려 한다면 자신들이 맑스주의로부터 멀어지다가 종국에는 “마르크스까지 죽이고 나아가 사회주의 이론 전체를 부정하는 딜레마”에 빠졌던 길을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 아닌가?
마르크스와 엥겔스 역시 인간인 이상 시대의 한계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억지로 산 마르크스와 죽은 마르크스를 가리고 소위 진짜 마르크스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 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파악이라는 방법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 자체에 적용시키고 그것이 가진 시대적 한계 속에서 합리적 핵심을 포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작업 속에서 마르크스조차 과감히 죽일 수 있어야 우리 운동이 죽은 이론과 과거의 영광에 대한 물신숭배를 넘어 현실 속에서 한 단계 전진할 수 있지 않을까?(이정인, 같은 글)
그러나 세찬 물살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용기와 대담함을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는 숙명주의와 패배주의밖에 남은 것이 없다. 현실 운동의 “한 단계 전진”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추락과 퇴보에 다리를 놓게 될 뿐이다. 맑스주의의 혁명적 계승자인 맑스레닌주의자들은 그 누구도 “마르크스조차 과감히 죽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맑스와 엥겔스는 “도그마가 아니라 변증법적 방법론”이라는 규정은 맑스주의의 혁명적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시키는 것이다.
맑스주의의 혁명적, 과학적 사상의 계승이 참된 21세기 맑스주의다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한국에서 맑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맑스와 맑스주의의 혁명적, 과학적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다. 맑스주의의 혁명적, 과학적 사상을 가지고 현실을 분석하고 현실을 진보적으로 발전시키고,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맑스주의를 가장 혁명적으로,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모범은 바로 레닌이다. 레닌주의는 제국주의 시대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시대의 혁명적 맑스주의라고 한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1) 1860~70년대: 자유경쟁이 절정에 달한 단계. 독점체는 거의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의 맹아에 불과하다. (2) 1873년 공황 이후: 카르텔은 상당히 발전했지만 아직 예외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아직 지속성을 갖추지 못한 일시적인 현상이다. (3) 19세기 말의 호경기와 1900~03년의 공황기: 카르텔은 경제생활 전반의 한 기초가 된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로 전화되었다.”고 자본주의 시대구분을 하고 있다.
맑스는 자유경쟁 자본주의 시대에 활동하며 사상을 발전시켰다. 맑스가 《자본론》에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독점을 낳는다고 했는데, 맑스는 논리적 수준에서 독점에 대해 규명한 것이었다. 제국주의는 곧 독점자본주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맑스는 카르텔이 출현하기는 했지만 독점자본주의로 발전하기 전에 사망했다. 1883년 맑스 사망 이후 엥겔스는 1895년 5월에 사망했는데, 엥겔스는 독점의 대규모적 발전을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엥겔스가 트러스트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고 분석한 것은 이 때문이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독점자본의 상부구조로서 들어선 제국주의 체제를 맑스주의적 방법으로 창조적으로 발전시켰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자본주의의 특수한 단계로서 제국주의 시대를 혁명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제국주의 전쟁을 혁명적 내란으로 발전시켰다. 인류를 참상으로 몰아갔던 제국주의 전쟁의 성격을 밝히고 위대한 러시아 혁명을 탄생시킨 맑스주의의 창조적 계승, 발전이 바로 레닌주의였다. “제국주의는 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의 전야이다”라는 레닌의 명제는 오늘날 더욱 더 고도화되고, 그리하여 더욱 더 야수적 폭력을 자행하고 있는 미국와 나토 제국주의의 모습을 볼 때 한층 더 현실성을 획득하고 있다.
1980년대 “불의 시대”, 혁명적 운동을 추구하던 한국노동운동은 역사적 한계는 있을지라도 대부분 변혁노선에 기반을 두었고 맑스레닌주의를 추구했다. 자주노선에서도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대한 학습과 이를 바탕으로 한국사회 성격을 규정하고 변혁하기 위한 노력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러나 쏘련 해체 이후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회의감과 운동의 진보적 발전에 대한 회의와 동요가 지배했다. 청산주의 운동이 운동을 청산하고, 불모의 개량주의와 각종 소부르주아 노선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같은 반맑스주의 사상이 새로운 맑스주의 노선인 것으로 위장돼 유포됐다. 이와 함께 운동의 혁명성과 과학성을 상실한 운동 내에는 분열과 동요, 패배주의가 창궐하게 되었다. “맑스주의를 넘어”라는 노선은 이제 맑스와 맑스주의를 분리시키고자 하는 반맑스주의로 성장하여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맑스 탄생 200주년인 2018년에 지배계급이 승인하고 지배계급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소부르주아 이론가들이 유포하는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성과 혁명성을 상실한 가짜 맑스주의이다. 이것이 결국 노리는 바는 쏘련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를 부정하는 반(反) “마르크스주의다.”
동유럽과 쏘련에서의 반혁명 이후 정치적으로 혼돈에 빠진 상태를 틈타, 현실 사회주의를 “국가자본주의”라며 사회주의 진영 해체를 환영하고, 심지어 쿠바와 북 같은 현실 사회주의를 타도해야 한다는 반동적인 사상이 급진적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광범위하게 보급되었다. “정통” 트로츠키주의는 이 “국가자본주의론”에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방어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현실 사회주의를 “관료체제”로 보고 정치혁명으로 분쇄하자고 하여 본질적으로는 “국가자본주의론”과 하나도 다르지 않는 반동노선이다.
북과 쿠바가 동유럽과 쏘련 사회주의 해체 이후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고난의 행군기”와 “특별한 시기”를 거치면서도 당과 전 인민이 일치단결하여 제국주의 진영에 맞서 싸우고 무상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민들이 나서서 “지도부”를 타도해야 한다는 노선은 현실감각이 전혀 없는 과대망상에 불과하다. 이 노선은 1920년대 중반 쏘련 공산당과 인민들 사이에서 철저하게 고립됐다가 반당 활동으로 추방당한 뒤 정치혁명으로 쏘련 “관료체제”를 타도하자고 하던 트로츠키만큼이나 초현실주의적이다. 이러한 반동적이고 초현실적 주장을 사회주의 국가들 내에서 행한다면 필시 인민들의 분노를 사서 단숨에 타도당할 것이다.
초현실적 가정이지만, 저들의 말대로 현실 사회주의에서 정치혁명이 이뤄진다면, 제국주의에 맞서 당이 전체 인민과 혼연일체가 되어 사회주의 생산과 기치를 일궈가는 상황에서 사회주의 경제토대는 유지되고 지도부만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당 자체가 파괴되고 반혁명적 내전을 불러일으켜 사회주의 생산관계가 파괴되는 자본주의 반혁명이 될 수밖에 없다. 제국주의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가 노리는 것이 바로 현실 사회주의와 “진보적인” 체제 지도부가 타도되어 체제가 붕괴되는 상황이었는데, 이라크, 리비아에서 이것이 현실이 되었고, 시리아와 베네수엘라에서 제국주의는 끈질기게 이 책동을 구사하고 있다.
결국 제국주의 공세 앞에서 “정치혁명”으로 현실 사회주의 “관료체제”를 타도하자는 “정통” 트로츠키주의 노선은 결국 현실 사회주의를 붕괴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제국주의의 이해에 철저하게 부합하는 “정통”적 반동 노선일 수밖에 없다. 쿠바와 북을 “관료체제”로 규정하고 “정치혁명”으로 타도하자는 주장을 하면서 어떻게 진보진영으로 가장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살펴봤던 것처럼, 조중동 같은 극우 신문이나 부르주아 신문에서는 혁명적, 과학적 노선이 빠진 가짜 “맑스주의”만을 선별적으로 전파하고 옹호한다. “마르크스주의”를 인정, 승인하는 체하면서 맑스주의를 특수한 역사적 조건 하에서 구현했던 쏘련 및 현실 사회주의를 부정하고 비방하는 수단으로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맑스주의가 현실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혁명적, 과학적 사상인데, 이를 위해 수천만, 수억 명 인민의 해방투쟁과 헌신으로 탄생한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를 부정하는 방편으로 맑스 사상을 활용한다면 그것이 온전한 형태의 맑스주의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일찌감치 “시장사회주의” 노선인 티토주의가 있었지만, 국제적 차원에서 국제 혁명 운동을 지도해야 하는 공산주의 운동의 분열과 후퇴와 혼란은 이미 1950년대 중반 흐루쇼프 수정주의와 함께 “유로 꼬뮤니즘”으로 등장했는데, 동유럽과 쏘련 사회주의 해체 이후에 더 노골적으로 혁명사상을 폐기했다. 이전에도 이러한 사상의 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로 이때부터 혁명적 맑스레닌주의 사상에 대비되는 반 마르크스 사상이 다양한 형태로 퍼지기 시작하다가 동유럽과 쏘련 사회주의 해체 이후에는 더욱 더 번성했다.
푸코, 데리다, 들뢰즈, 라캉, 지젝, 바디우, 알튀쎄르, 발리바르 등 각종 프랑스 현대 철학 사조나 하버마스, 마르쿠제,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에리히 프롬 등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네그리와 하트 등 이탈리아의 자율주의 사상은 통칭하여 “신좌파”,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서유럽 맑스주의” 같은 다양한 사상적 조류로 불리는데, 이들 모두는 현학적이고, 반쏘비에트, 반공주의를 공통분모로 하는 소부르주아 잡사상들이다. 현대의 각종 “진보사상”은 대개는 맑스주의를 대놓고 부정하지는 않지만, 맑스주의의 혁명성, 과학성을 빼고 맑스주의를 수정하고자 했던 베른슈타인 수정주의의 아류들뿐이다. 이러한 반쏘, 반북의 반공주의적인 ‘신좌파 사상’은 반공주의적인 트로츠키주의와 결합하면서 한국에서는 ‘종북몰이’와 제국주의 프로파간다에 부화뇌동하게 되었다.
이러한 각종 소부르주아 잡사상은 현실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맑스주의 사상이 제국주의와 현실 자본주의 착취체제를 분쇄하는 노동자 계급과 인민의 사상의 무기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데 복무할 따름이다. 이는 노동자 계급과 분리된 일부 ‘엘리트’들의 현학적 사상으로 노동자 계급이 맑스주의와 멀어지고 구체적인 현실 분석과 변혁의 무기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데 복무하는 반노동자적 정치노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또한 자본주의가 승인하고 인정하고 심지어 고무하는 비맑스, 반맑스 사상이다. 이는 노동자 계급과 인민이 자본주의 착취와 수탈을 부정하고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음험한 책략에 다름 아니다.
교조주의를 배격한다는 이름으로 수정주의를 옹호하기도 하는데, 맑스의 사상에 접근할 때 가장 먼저 취해야 할 태도는 우선적으로 철저하게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맑스와 맑스의 사상을 당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같은 맑스주의에 대한 충실한 이해 속에서 맑스의 사상을 현실에 혁명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맑스주의를 철저하게 이해할 때 특수한 역사적, 정치적 조건에 맞는 창조적 해석이나 발전도 가능하다. 21세기 혁명적 맑스주의자는 맑스레닌주의가 되어야 한다. 이제 다시 국제공산주의 운동은 20세기 공산주의 운동의 성과와 패배를 자양분 삼아 혁명적으로 부활하여 거대하게 혁명적 진군을 시작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앞두는 상황에서 한반도(조선반도)와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승리의 관건은 종국적으로 이 급변하는 정세에 어떻게 능동적으로 정세를 주도, 변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맑스레닌주의의 과학적, 혁명적 사상이 승리와 해방의 무기가 될 것이다.
맑스레닌주의 기치의 부활, 맑스레닌주의의 과학적 정신으로 현실 분석,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적 사상을 특수하고 구체적인 역사적, 정치적 조건 속에 구현하는 것, 특히 제국주의와 부르주아에 맞서는 투쟁의 무기가 되도록 하는 것, 이를 통해 한국사회 변혁을 일구는 것이 맑스 탄생 200주년을 맞는 우리의 과제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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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노동자주의에 함몰되어 있다는 한마디에 이렇게 발끈하는군요. 윤소영 교수의 핵심은 자본주의가 존재하는한 아직도 맑스주의는 유효하다라는 겁니다. 스탈린과 마오에 비틀어진 맑스주의가 아닌 레닌, 트로츠키, 로자, 그리고 일반민중이 진정 해방되고자 했던 그 혁명의 맑스주의를 말입니다.
참세상을 보니 탄생과 관련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한다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참여 인사들과 단체들을 보건데 과학적인 내용은 아닌 비과학 학술 들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