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날, 동국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은 왜 삭발을 했나?

동국대학교 학생 김도균

이 투쟁이 시작된 건 지난 2017년 12월의 추운 겨울날이었다. 투쟁의 요구는 간단했다. 2017년 12월 31일자로 정년퇴직하는 청소노동자 8명의 빈자리를 채워 달라. 이때까지 동국대학교에서는 총 86명의 청소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중 8명이 정년퇴직으로 현장을 떠나면서 남아있던 노동자들에게 노동강도의 증대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너무나도 단순한 요구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투쟁이 장기화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국대학교는 이 단순한 요구에 완고한 태도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동국대학교는 최저임금 인상과 재정적자를 이유로 청소노동자 8명의 신규채용은 어렵다며 자신들의 두 가지 안을 노동자들에게 제시했다. 첫 번째 안은 정년퇴직한 청소노동자 8명의 빈자리를 근로 장학생 15명으로 대체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안은 8명의 인원을 충원하되, 노동시간을 하루 8시간에서 7시간으로 한 시간씩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안은 모두 청소노동자들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개악 안이었다. 근로장학생을 청소업무에 배치한다 하더라도 이들의 업무는 도서관 청소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화장실 청소 및 가장 고된 업무에 대한 기존 청소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증대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렇게 될 경우 학생과 노동자가 일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정년퇴직한 8명의 인원을 충원하는 대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 역시 사실상 임금삭감을 의미하기 때문에 청소노동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노동조합이 나서서 학교의 안을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동국대학교는 일방적으로 근로장학생 모집을 강행했다. 노동조합은 계속해서 교섭과 면담을 요구했지만 동국대학교 측은 단 한 번도 이에 응하지 않았으며 서서히 노조파괴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농성돌입과 ‘태가BM’의 등장

2018년 1월 29일, 노동조합의 계속되는 요구에도 학교 측이 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자 청소노동자들은 총장 면담을 요구하며 동국대학교 본관을 점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이런 와중에 동국대학교는 학교의 청소구역을 둘로 나누어 한 쪽은 기존의 청소용역업체가 담당하게 하고, 다른 한 쪽은 신규 용역업체인 ‘태가BM’이 담당하도록 하여 각각 동국노조(어용)와 민주노조를 관리하도록 했다. 연세세브란스병원 등에서의 민주노조 파괴로 잘 알려진 태가BM이 신규 용역업체로 들어왔다는 소식에 조합원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가BM은 자신들이 용역업체로 선정되자마자 파업 중인 조합원들에게 자신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문자를 보내 사실상 해고를 통보했다.

태가BM이 신규 용역업체로 들어오자 학교 측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력화하고, 농성장을 없애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학교 측은 먼저 교직원과 용역업체 직원들을 동원하여 파업으로 인해 발생한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파업이 무력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동자들이 온몸을 던져 저지하려 했지만 다수의 교직원과 용역업체 직원들을 고령의 청소노동자가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교직원들은 노동자들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쓰러져 있는 노동자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패륜적 욕설을 뱉으며 쓰레기를 탈취해갔다. 뿐만 아니라 교직원들은 노동자들이 다른 건물의 쓰레기를 사수하기 위해 본관을 비운 틈을 타 농성장을 철거하기 위해 본관 주변을 서성이며 도발했다. 도서관에 있는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을 기습적으로 침탈하여 청소노동자와 교직원들 사이에 일대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지키고 빼앗기기를 반복하면서 벌써 40여일이 흘렀다.

투쟁의 힘은 노동자와 학생의 연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투쟁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노동자들로부터 듣게 되었다. 그만큼 많은 학생들이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고 있다.

지난 2월 13일 진행된 동국대학교 청소노동자 투쟁문화제에는 학내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여 청소노동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연대의 마음을 나누었다. 또한 문과대학을 비롯한 단과대 학생회들은 학생과 노동자를 이간질시키는 학교의 근로장학생 모집 공고를 규탄하고 약자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청소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교직원과 용역업체 직원들이 쓰레기를 탈취하려하자 수업을 듣던 다수의 학생들이 강의실 밖으로 뛰쳐나와 교직원을 저지하였다는 일화가 회자되기도 했다.

동국대학교에 민주노조가 만들어진 이후 다년간의 투쟁으로 이어진 청소노동자와 동국대학교 학생들의 연대는 청소노동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러나 동국대학교 측은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학생들의 여론을 반전시키고자 교직원의 신분을 숨긴 채 학생커뮤니티에서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음해하는 등 여전히 반노동자, 반민주노조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세계 여성의 날, 삭발을 하다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동국대학교 측은 태가BM을 퇴출할 수 없다는 것과 청소노동자 신규인원을 충원할 수 없음을 재확인했다. 결국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청소노동자 18명의 집단 삭발식이 진행되었다. 늙은 여성노동자의 검은 머리카락이 잘려나가고 염색으로 감춰져있던 흰머리가 드러날 때, 집회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흐느껴 울었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학교인데 어째서 고령의 노동자들이 머리를 밀어야 하는가. 모두가 비통함에 몸서리쳤다.

삭발식이 있기 얼마 전, 학교의 700억 원대 회계부정과 교직원들에 대한 임금인상이 폭로되면서 모든 이들의 분노를 더했다.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청소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던 동국대학교 측의 논리가 거짓임이 드러난 것이었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이유는 오직 민주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함이었음을, 노동자들은 분명히 했다.

삭발을 마치고 청소노동자들은 이제 인원충원을 넘어 청소노동자에 대한 직접고용을 요구하기로 결의하고 이후 더욱 강력한 투쟁을 전개할 것을 다짐했다. 이제 투쟁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이 투쟁에서 패배하면 뒤이어 벌어질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전 사회적 구조조정이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국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동국대학교만의 투쟁이 아니고 청소노동자들만의 투쟁도 아니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이 우리 모두의 앞에 놓여 있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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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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