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란 국민과 그들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에르도안 아흐멧(Erdogan Ahmet)

2026년 1월 9일

https://neodemocracy.blogspot.com

모든 상황에 대해 암기된 이론을 처방전처럼 적용하는 태도는 맑스-레닌주의와 사회주의 투쟁의 가장 큰 적이 되어왔다. 특히, 독서와 연구에 게으르고 서구 부르주아-수정주의 저자들로부터 레닌주의를 배우면서도 자신이 “모든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레닌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장 나쁜 공산주의자들”이 (불행히도 터키에서도 적지 않은 수가) 이란(그리고 베네수엘라도)이 미국-이스라엘의 공격으로부터 방어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1970년대에 제기된 (제 자신도 무의식적으로 옹호했던) 반(反)레닌주의적, 트로츠키주의적, 조작된 이론인 “반자본주의적이지 않고서는 반제국주의적일 수 없다” 는 테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편, 일부는 이란을 제국주의 국가로 간주하기도 하며, 이는 널리 논쟁 중인 제국주의 정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 평가는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과 정치적 긴장은 중동에서의 제국주의적 경쟁의 표현이다” 라는 흔하고, 기계적이며, 추상적이고, 비실용적인 주장이다. 이스라엘의 적대감, 특히 이란에 대한 그리고 일반적으로 전 지역에 대한 적대감은 수십 년 전, 즉 “경쟁하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없던 단극적 세계 질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칭 사회주의자들은 우선 ‘제국주의’가 종합적이고 과학적인 의미에서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이들 중 일부는 심지어 이란을 제국주의 국가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추상적인 이론적 추론은 – 약간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역시 맑스주의를 포기함으로써 카우츠키가 도달한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1)

제국주의 개념은, 과학적 의미에서, “제국주의자들의 직접적인 경쟁자, 적, 반대자들을 향한 일종의 모욕적 용어” 로 전락해 버렸다. (2) 이러한 “암기된” 이론가들에게 있어서, 모든 선진국, 심지어 모든 저개발국은 이 정의가 그들의 주관적 관점에 맞는다면 “제국주의적”이다. 주관성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건의 모든 구체적 조건과 그 발전을 검토하기보다는, 기성의 결론과 주관성에 맞는 공식에 입각한 입장을 정립함으로써, 자신들의 주관적 판단을 지지하기 위해 궤변에 의지하도록 강요한다. 이것은 미국-나토의 파시스트적 침략적 제국주의를 평화주의를 통해 지지하는 배외주의적 궤변이다. 이는 구체적 사실을 감추고 맑스-레닌주의를 궤변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미국-나토에 대한 능동적 지지로 변질된다.

이란에 대한 제국주의적 공격은 이란에게는 반제국주의 전쟁이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에게는 제국주의 전쟁이다. 궤변으로 다른 주장을 하고 그에 기반해 입장을 취하는 것은 침략적이고 대량 학살을 자행하는 제국주의 편에 서는 것과 다름없다.

이미 극좌 구호 뒤에 숨어 평화주의를 주장하는 수많은 아나코-트로츠키주의자들이 있는 가운데, 이제는 단극적 세계 질서를 옹호하고, 모든 형태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거부하며, 소위 세계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지만 실천에서는 평화주의를 옹호하는 카우츠키주의-트로츠키주의가 등장했다. 이들은 한 동전의 양면으로, 서로를 보완한다.

스탈린은 이러한 왜곡과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나는 9개 공산당의 선언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공산주의자들은 무엇보다도 개별 국가들의 독립과 주권, 그리고 그들 사이의 지속적인 평화를 수호하기 원한다. 그들은 반동과 파시즘의 잔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위해 계속 투쟁하기를 원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노동계급의 상황을 진지하게 개선하고 싶어 하며, 이를 방해하려는 누구에게나 항상 반대할 것이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제국주의와 단일 국가에 의한 세계 패권에 저항하기를 원한다. 내 생각에, 사회주의자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어야 할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공산주의자들 자신이 모든 민주주의 세력을 스스로 결집시킬 위험이 있다.(3)

레닌과 스탈린의 가르침을 떠올린다면, 그것의 계급적 성격이나 형태에 관계없이, 제국주의자들과 식민주의자들에 가해지는 모든 타격은 사회주의 투쟁의 길에서의 승리이다. 이는 노동계급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대중을 이끌 능력이 있는 진정한 공산당이 없는 식민지, 반식민지, 봉건 국가들에게 특히 중요하다.

스탈린은 레닌주의적 접근과 입장을 혼란의 여지가 없도록 강조했다.

제국주의적 억압 조건 하에서의 민족 운동의 혁명적 성격은 운동 내에 프롤레타리아적 요소의 존재, 혁명적 또는 공화주의적 강령의 존재, 또는 민주주의적 기반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의 독립을 위한 아미르의 투쟁은, 아미르와 그의 동료들의 군주제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분열시키며 훼손시키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혁명적 투쟁이다.

같은 글에서 스탈린은 오늘날 좌파의 이름으로 반제국주의 투쟁에 반대함으로써 어떻게 반동 편에 설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하고 부인할 수 없는 예를 제공한다.

같은 이유로, 이집트의 독립을 위한 이집트 상인들과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투쟁은 객관적으로 혁명적 투쟁이다. 비록 이집트 민족 운동의 지도자들이 부르주아적 출신이며 부르주아적 직함을 가지고 있었고, 사회주의에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집트의 종속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영국 ‘노동당’ 정부의 투쟁은, 같은 이유로, 반동적 투쟁이다. 비록 정부 구성원들이 프롤레타리아적 출신이며 프롤레타리아적 직함을 가지고 있고, 사회주의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4)

따라서, 이란의 성직자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 벌이는 독립 투쟁은 객관적으로 진보적 투쟁이다. 이론을 왜곡하여 이 독립 투쟁에 반대하는 자들은, 그들이 사회주의 지지자라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반동적이다.

레닌의 말을 빌리자면, “반제국주의, 반식민지 투쟁에 대한 평가는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의 일반적 결산의 현재 결과, 즉 개별적으로가 아닌 세계적 규모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5)

이 주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모든 쿠데타에 반대한다”는 것과 같은 기계적 이유로 아프리카의 군사 쿠데타와 그곳의 반제국주의 투쟁에 대한 반대도 함께 언급해 보겠다.

수많은 서신에서 레닌은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장교 집단의 시도인 군대 봉기를 “쿠데타” 라고 부르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아일랜드 봉기(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장교 집단의 시도)를 평가함에 있어, 라덱과 쿨리셰르 모두 어리석게도 그것을 ‘쿠데타’라고 부른다. ‘군사 쿠데타’ 문제는 부르주아 평화주의의 맥락이 아니라 그 진보적 또는 반동적 성격에 기초하여 고려되어야 한다.” (6)

레닌이 말했듯이, “‘쿠데타’라는 용어는 과학적 의미에서, 시도된 봉기가 음모가들의 집단이나 어리석은 광신자들만을 드러내고 대중 사이에 어떤 동정심도 불러일으키지 않을 때만 사용될 수 있다.” … “‘순수한’ 사회 혁명을 기대하는 사람은 그것을 결코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혁명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혁명 자체를 위해 혁명을 지지하는 것이다.” (7) “한편으로 우리가 모든 민족 억압에 ‘반대한다’고 수천 번 반복하고, 다른 한편으로 억압받는 민족의 특정 계급들 중 가장 활동적이고 계몽된 부분이 그들의 억압자들에 맞서 일으킨 영웅적인 봉기를 ‘쿠데타’라고 규정한다면, 우리는 카우츠키주의자들과 같은 수준의 어리석음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8)

우리는 사헬 지역, 특히 부르키나파소의 군사 쿠데타를 제국주의와 식민지 약탈에 대한 타격으로서 환영합니다.

결론적으로, “반자본주의적이지 않고서는 반제국주의적일 수 없다” 는 구호는 트로츠키주의적 “반제국주의 투쟁(한때 로자 룩셈부르크가 옹호했던)은 과거의 유물이다” 는 생각에 뿌리를 둔 반(反)레닌주의적 관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관점에 기초하여, 그들은 단지 이란, 베네수엘라 및 기타 개발도상국들의 정부가 “사회주의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곳의 반제국주의적, 정치적 독립 투쟁에 반대한다. 이는 특히 공격적 제국주의의 이익에 봉사하는 반(反)맑스-레닌주의적 접근법이자 입장입이다.

글의 주제를 요약해 보자. 제국주의적 억압, 박해, 국가에 대한 임박한 공격 조건 하에서, 비록 이러한 시위가 진정으로 정당하고 민주적인 요구로 시작되더라도, 시위자들이 제국주의적 음모를 고려하지 않고 무관심하며, 그들의 요구가 반제국주의 구호와 통합되지 않는다면 지지될 수 없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이러한 시위는 제국주의 강대국의 도구와 대리인이 되거나 이용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레닌주의적 구호는 “반자본주의적이지 않고서는 반제국주의적일 수 없다”가 아니다. 반대로, 레닌주의적 구호는 “반제국주의적이지 않고서는 반자본주의적일 수 없다”이다.

레닌주의자들은 예외적인 상황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다. 따라서 맑스-레닌주의는 특수성과 보편성 사이의 직접적인 변증법적 연관성 하에 주어진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평가를 필요로 하며, 이는 주어진 시간과 장소에서 올바른 입장을 채택하기 위함이다.

(1) 레닌, N. 부하린의 팸플릿 〈제국주의와 세계 경제〉 서문

(2) 레닌, N. 부하린의 팸플릿 〈제국주의와 세계 경제〉 서문

(3) 스탈린과 영국 노동당 비밀 회담 기록 1947-10-18

(4) 스탈린, 레닌주의의 기초

(5) 레닌, P. 키예프스키에게 답함

(6) 레닌: A.G. 슐랴프니코프에게

(7) 레닌, 1916년 아일랜드 부활절 봉기의 교훈

(8) 레닌: 자결권 논의 총론

이 기사를 총 4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