뮬방적기에서 인공지능(AI)까지 파멸적인 자본주의적 기계이용에 맞서 착취체제를 철폐하자!
스팀 킹(Steam King)
에드워드 미드(Edward P. Mead)
한 냉혹한 왕이 있다
그것은 시인의 꿈속에 있는 왕은 아니다.
그러나 그 무서운 전제자를 백색노예들은 잘 알고 있다.
이 무자비한 왕은 바로 증기이다.
그의 팔은 무쇠로 되어 있다.
비록 팔은 하나 뿐이라 할지라도
저 힘센 팔에는 마법이 담겨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파멸된다.
고대의 잔인한 Moloch*와 같이
저기 서있는 천상의 골짜기에는
그 내부에 타오르는 불길이 있다
어린이들이 그의 먹이이다.
그의 승려들은 배고픈 무리이며
피에 굶주리고 교만하고 뻔뻔스럽다.
그들은 그의 거대한 손을 휘드른다.
그와 함께 피는 황금으로 변해간다.
노예의 사슬을 가지고 더러운 이윤을 위해
그들은 모든 천부적 권리를 속박한다.
그들은 사랑스런 여성들의 피눈물을 조롱한다.
또한 남성들의 눈물을 외면한다.
노동자의 자식들의 한숨과 신음들.
이것이 그들의 귀에는 음악으로 들린다.
소년, 소녀들의 뼈만 남은 그림자가
스팀 킹(Steam King)의 지옥에서 나타난다.
저 지옥이 바로 지구 위에 존재한다. 스팀 킹이 생겨난 이후로
절망이 여기저기를 휘감고 있다.
하늘이 꿈꾸는 인간의 마음,
그리고 인간의 육체가 그곳에서 살해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Moloch*왕 앞에 엎어져 있다.
너희 수백만의 노동자들이여!
그의 손에 묶인 채, 우리의 조국은
그에 의해 파멸할 운명에 처해 있다.
그 폭군은 소름이 끼치며, 교만한 공장 귀족은
황금과 노동자의 피를 빨아 먹고 있다.
국민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그들의 극악한 신과 마찬가지로
* 고대 페니키아 사람들이 아이를 제물로 바치고 섬긴 신
새 기계도입에 대한 증오심은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부르주아지는 역사상 극히 혁명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찬미하면서《공산당선언》의 서두를 썼다. 그것은 자본가들이 “이집트의 피라미드, 로마의 수도, 고딕 성당을 훨씬 능가하는 경이적인 대공사를 이룩하고 이전의 민족 대이동과 십자군 따위는 견주지도 못할 원정을 수행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등장은 이전 인류의 수천년의 생산력 발전 보다도 더 빠른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문명은 야만의 반대말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문명세계는 기술발전 속에 새로운 야만을 낳았다.
맑스와 엥겔스는 이 자본주의적 진보라는 것이 동시에 파괴적인 과잉생산 공황을 만들어내고 대량실업과 노동자의 자본에 대한 종속과 노예화,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파국적인 것이라며 준엄하게 규탄하기도 했다.
위에서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에서 미드(Edward P. Mead)가 쓴 시를 인용하고 있다.
영국에서 증기기관의 발전과 함께 생겨난 산업혁명이 문명을 가져왔다는 일방적인 찬미와 다르게 노동자들은 증기왕과 이 발견으로 인해 생겨난 공장제도에 대해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증기왕은 아무런 감정도 없이 “무쇠로 되어 있”는 기계장치를 낳았다. 이 무심한 기계장치에 의해 살아 있는 “수백만 사람들이 파멸”되었다.
자본가들의 “더러운 이윤을 위해” 도입된 전례 없는 신기술과 신기계로 수많은 노동자들의 삶을 잔인하게 짓밟는 최초의 충격은 뮬방적기로 대표되는 방적기계의 도입이었다.
엥겔스에 따르면, 이 자동식 뮬방적기의 도입은 1841년에 35개 공장에서 방추의 수는 99,429개로 증가한 반면 뮬방적공의 수는 1829년에 비해 1,083명이나 감소되었다. 방추의 수는 10% 증가한 반면 뮬 방적공의 수는 60% 이상이나 감소되었다. 1841년 이후 특히 방추를 2열로 설치하는 기술혁신으로 많은 공장에서 절반의 노동자들이 해고되었다. 심지어 어떤 공장에서는 80명의 방적공이 20명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스톡포드 면직물 산업에서는 1835-6년에 800명의 방적공이 고용되어 있었는데 1843년에는 140명으로 줄어들었다.
해고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당시 기계 도입으로 어린이 수준으로 임금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성인 노동 대신에 여성과 어린이 고용이 대폭 늘어나게 됐는데 10대 이하의 어린이들이 초기에는 14시간, 심지어는 16시간 중노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8-9세의 어린이가 고용되고 5살짜리, 심지어 레이스 공장에서는 2살짜리 유아가 일하기도 하는 경악스러운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린애들은 잠자리에서 옷도 걸치지 못하고 손에 옷을 든 채 공장감독의 구타와 발길질에 깨어나 공장으로 끌려가고 건조실 양모 속에 숨어 잠을 자거나 일이 끝난 뒤에는 지쳐 잠들곤 했다.
여성이 집안에서 아이를 돌보지 못하면서 방치됨에 따라 멘체스터 같은 공장지역에서는 9개월 동안 225건의 사고사 중에서 69명이 화재로 죽고 56명이 익사하고 23명이 추락사하고 77명이 기타의 사유로 사망하는 참상도 벌어졌다.
엥겔스는 이 참상을 “여성은 애를 낳는데 부적합하게 되었고 어린이들은 불구가 되었으며, 남자들은 쇠약해지고 손발이 잘려 나갔다”고 고발하였다.
하인리히 하이네가 <쉴레지엔 직조공들>이라는 시에서 “침침한 눈에는 눈물도 말랐다 그들은 베틀에 앉아 이를 간다 독일이여 우리는 너의 수의를 짠다 세 겹의 저주를 짜 넣는다”며 신과 부자들의 왕과 위선의 조국에 세 겹의 저주를 퍼부었던 것처럼, 영국의 참상이 곧 독일 노동자들의 참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새 방적기는 자국 노동자들만 착취한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생산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시장으로 눈독을 들이게 했다. 식민지 시장 개척은 인도 인민들을 살해하고 군사기구를 동원한 식민지 지배 회사인 동인도회사를 건설하게 하고 가장 추악한 전쟁인 아편전쟁으로 중국 인민들을 아편중독자로 만들고 중국 시장을 강제 개방하게 만들었다.
일제의 조선 지배도 면직산업과 관련되어 있는데 일제는 남면북양(南綿北羊)이라고 하여 남쪽에서 면화를 북쪽에서 양을 기르게 하여 조선을 일본의 원료 공급 기지와 상품 공급기지로 만들었다.
뮬방적기 도입이 가져온 최초의 충격에 대해 노동자들은 기계파괴운동(러다이트운동)으로 맞섰다.
러다이트 운동은 1799년 두 대의 양말 짜는 기계를 부쉈던 노팅엄의 기계파괴운동 지도자인 네드 러드(Ned Ludd)라는 전설적인 인물로부터 유래했다.
노동자들의 기계파괴 운동은 1811년 노팅엄 지역을 시작으로 요크셔, 랭커셔 등 공업지대로 확산되었다. 이들은 밤에 모여 기계를 전문으로 부수거나 공장에 협박 편지를 보내는 등 조직적으로 행동했다.
노동자그룹은 이 지역 공장을 습격해 63대의 스타킹 및 레이스 생산기계들을 부숴버렸다. 다음 3주 동안 피스톨과 총, 해머로 무장한 50명 가까운 노동자들은 200대의 기계를 추가로 파괴하는 등 이 지역에서만 1천대의 기계를 파괴했다.
이들은 단순 기계 파괴를 넘어 공장주를 공격하거나 공장에 불을 지르는 등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자본가들과 권력자들은 이 투쟁에 대해 ‘광기 어린 반란’으로 취급했다.
영국 정부는 1799년에는 ‘단결금지법’을 제정하여 법적 탄압으로 강경하게 대응하였으나 1811년말부터 1813년초까지 2년여 동안 폭발적으로 기계파괴 운동이 다시 전개되었다. 영국 정부는 기계 파괴를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중범죄로 규정하고는 1813년 2월 러다이트 운동을 주동한 열네 명의 노동자들을 교수형에 처하기도 했다. 또한 1만 2천여 명의 군대를 파견하여 노동자들을 진압하고 호주로 유형을 보내기도 했다.
극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동 면직기는 빠르게 확산되고 대량 실업을 낳았다.
잉글랜드 전체에서 동력직기는 1813년에 2400개에 불과했지만 1829년에는 5만5000개로 늘었다. 1833년에는 다시 8만5000개로 급증했다. 1850년대가 되면 22만4000개에 이른다. 반면 손으로 짜는 베틀 방직공은 1820년대에 50만 명에서 1840년대에는 10만 명으로, 1850년대엔 5만 명으로 계속 쪼그라든다.([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19세기 초 수공업 기술자들의 기계파괴운동…영국, 1만2000명 군대병력 투입해 강력 대응, 한국경제신문, 2022.06.27.)
새 기계도입에 대한 격렬한 저항과 증오는 가장 고귀하고 인간적인 감정이었던 것이다.
기술발전은 인류에게 축복인가? 재앙인가?
자본주의 초기 새로운 기술발전 도입이 “이집트의 피라미드, 로마의 수도, 고딕 성당을 훨씬 능가하는 경이적인 대공사를 이룩하고 이전의 민족 대이동과 십자군 따위는 견주지도” 못했던 것처럼, 뮬방적기 도입은 오늘날 에이아이(인공지능) 도입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기계가 기계를 만드는 공작기계 도입은 에이아이 도입으로 절정에 달했다. 인공지능은 개별적인 영역에서는 인간 지능의 수천, 수만배를 앞서기도 한다. 오늘날 생산력 발전이 가져온 파괴적 결과는 자본주의 초기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심각해졌다.
뮬방적기가 노동자들의 인간노동을 상당 부분 대체했다면, 자본주의에서 신기술 도입은 아예 인간 노동을 폐기하는 무인공장을 향해 가고 있다.
현대자동차 그룹은 인공지능 로봇(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2028년부터 단계적으로 생산 공정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노조는 지난 1월 7일 현대차그룹 최고 전략 회의인 글로벌리더스포럼(GLF)에서 무인공장 프로젝트인 ‘DF247’을 논의했다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사측은 생산현장에서 사람을 배제하고, 오로지 AI 기반 로봇만으로 운영할 수 있는 꿈의 공장을 구현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를 두고 “과거에 증기기관, 기계가 도입됐을 때 그 기계를 부수자는 운동이 있었다”며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다”며 “어차피 올 세상이면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공지능 발전은 과연 인류에게 축복인가? 재앙인가?
2016년 알파고(AlphaGo)의 등장부터 2022년 챗GPT(ChatGPT), ‘제미나이’를 거쳐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인공지능 발전은 인류의 삶에 축복을 가져다줄 것인지 재앙일지 첨예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의 초거대 인공지능은 양날의 검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양심 있는 사람들에 의해 사용된다면 인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잠재력이 있지만, 반대로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사용된다면 우리 사회에 큰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유창동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양날의 검’초거대 인공지능…축복인가 재앙인가, 2023.04.10.)
그렇다면 인류가 연 이 판도라의 상자인 인공지능은 인류에게 재앙이 될까? 축복이 될까? 인공지능에 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그 불확실성을 대변하듯 긍정과 부정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먼저 긍정론자들은 인공지능이 가져올 생산성 향상과 삶의 편리성 증진, 의료 및 교육 분야 혁신, 위험한 작업 대체,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 가능성 등을 주요 근거로 든다. AI는 인간의 노동력을 절약하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의사결정을 개선하며, 개별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긍정적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부정론자들은 인공지능이 가속화할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들은 무엇보다 소득 불균형에 따른 ‘부의 양극화’를 우려한다. 인공지능 학자이자 스탠퍼드대학교의 교수인 카플란은 『인간은 필요 없다』라는 책에서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서 가속화할 노동시장과 소득 불평등을 경도했다.(고재권 기자, 초인공지능 시대, 인류의 재앙인가? 축복인가?, 2025.10.15.)
여기에는 어떤 체제 하에서 어떤 목적과 수단으로 ‘양날의 검’이 사용될지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 인공지능이 “양심 있는 사람들”이나 반대로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 사용되느냐는 따라서 인류에게 축복이 되거나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은 지극히 공허하고 주관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도대체 양심과 악한 의도는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나의 양심이 타인의 양심과 충돌한다면 누구의 양심이 선하고 누구의 양심이 악한 것인가?
나의 선량한 개인적 양심과 정반대로 기술발전이 특정한 세력의 이익을 위해서만 이루어져 충돌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인공지능이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이익이 아니라 자본가들만 배타적 이익을 누리고 절대 다수 인류에게 해를 끼친다면 이는 축복인가? 재앙인가?
인공지능 긍정론자든 부정론자든 공통점은 그것이 자본주의적 이용이냐 사회주의적 이용이냐 따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계급지배 사회에서는 계급적 이해를 떠날 수는 없다. 인공지능이 축복이냐 재앙이냐 하는 논의는 진공 상태 속에서의 중립적인 논의가 될 수는 없다. 계급지배 사회에서 기술발전도 당파성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새로운 사회로 이행할 수 있다는 인식을 전혀 하지 못하는 자본가들과 그 대변자들은 자본주의 기술발전이 문제가 있지만 이를 전면 비판하는 이들을 “기계의 사용을 전혀 원하지 않는 사람이며 사회적 진보의 적이다”(맑스 자본론 1권 하 제15장 기계와 대공업)라고 비난한다. 자본가들과 그 대변자들은 자본주의에서 기술발전은 막을 수 없는데 그것이 좋게 사용될 수도 있고 나쁘게 사용될 수도 있는 선택가능한 문제로 보고 그 폐해를 최소화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맑스는 이에 대해 이렇게 신랄하게 비웃었다.
사람의 목을 자르기로 유명한 빌 사이크스(Bill Sikes) <디킨스가 지은 《올리버 트위스트》에 나오는 도둑의 수령>의 논법 꼭 그대로다.
“배심원 여러분, 물론 이 행상인의 목은 잘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죄가 아니라 칼의 죄입니다. 이러한 일시적으로 불쾌한 일 때문에 우리가 칼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칼이 없다면 농업과 공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맑스, 같은 책)
행상인의 살해 책임은 칼이 아니라 칼을 휘둘러 사람을 살해한 자에게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파렴치한 칼잡이의 논리를 구사하여 자본주의적 기술발전의 범죄성을 은폐하고 이를 옹호하고 있다.
기계 그 자체는 노동시간을 단축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시간을 연장시키며, 기계 그 자체는 노동을 경감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강도를 높이며, 기계 그 자체는 자연력에 대한 인간의 승리이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인간을 자연력의 노예로 만들며, 기계 그 자체는 생산자의 부를 증대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생산자를 빈민으로 만든다.(맑스, 같은 책)
그러나 맑스 시대부터 지금까지 자본가들과 그 이념적 대변자들은 자본주의 기술발전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자들을 단순노동에서 해방시킨다고 거짓선전을 해대며 자본주의적 기계도입의 파국적ㆍ파괴적 효과를 은폐한다. 대표적으로 일론 머스크는 2030년에는 인공지능이 2030년엔 인간 전체 지능을 뛰어넘어 보편적 고소득(보편적 기본소득) 시대를 열 것이라 전망한다.
자본주의 기술발전의 파국성ㆍ파괴성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다루려면 우리는 먼저 기술의 성격에 대해 살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은 당장엔 많은 실업자를 만들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일자리를 낳는다. “공급은 자신의 수요를 만든다”는 ‘세의 법칙(Say’s Law)’에 이런 사정이 담겼다. 재화를 팔아 번 돈은 궁극적으로 다른 재화들을 사는 데 쓰인다는 얘기다.
이제 로봇들이 그 일들을 하게 되면, 공장 노동자들은 넋을 지치게 하는 단순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실은 AI 자체가 단순한 계산을 반복적으로 하는 지겨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욕망에서 나왔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기술은 물론 문제들을 낳는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더 나은 기술뿐이다. 기계파괴운동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새 기술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생존하고 더 나은 삶을 산다.(복거일 사회평론가·소설가, [다산칼럼] 시대착오적인 21세기 러다이트 운동, 한국경제2026.02.02.)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망상적 주장이다. 이 자본의 대변자는 자본주의 기술발전이 당장은 일자리를 줄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늘린다고 주장한다. 먼저 이는 자본주의 기술발전으로 당장 해고되는 수십, 수백만의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삶의 파괴에 대해 외면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늘어나는 일자리에 기존 취업자가 수년 동안의 실업의 고통을 벗어나 취업한다는 보장이 없다.
과거 대우자동차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서 보듯, 해고 대신 “기술교육, 전직ㆍ취업알선”을 해주겠다는 주장은 정리해고를 정당화 하고 저항을 막기 위한 술책에 불과했다.
더욱이 일자리가 궁극적으로 늘어난다는 주장이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다.
“고용 없는 성장”은 자본주의 발전의 본질적 성격이다. 자본은 점점 더 소수 자본으로 집중되면서 독점으로 거대해지고 있다. 그러나 거대해지는 자본의 규모에 비해 노동자 고용은 상대적ㆍ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기계 이용의 목적은 노동력 사용을 기계로 대체하기 위함이었다. 자본가들은 신기계 도입과 기술발전으로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대체하려 했다. 더욱이 자본은 시장 상황에 따라 필요하면 쓰고 필요 없으면 가차없이 내치기 위해 노동자의 고용형태를 점점 더 유연화 된 노동으로 바꾸고 있다. 기술도입 이후 일자리의 태반도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로 대체되고 있다. 오늘날 만연한 실업, 특히 청년층에게 더욱 가중되는 실업은 고용 없는 성장의 추세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한 편으로는 자본주의적 기술발전을 찬양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이미 현실로 닥치고 있는 대량실업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기에 이를 그대로 보도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이 인공지능(AI)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가운데 사무직을 중심으로 1만6000명 규모의 추가 감원에 나선다…
앞서 아마존은 작년 10월 직원 1만4000명에게 해고 통지를 보낸 바 있다. 당시 베스 갈레티 아마존 수석부사장은 감원 배경으로 AI 혁신을 언급하며 “AI는 기업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빠르게 혁신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고 했다.
이번 인력 감축으로 최근 3개월간 아마존의 누적 감원 규모는 약 3만명에 이르게 된다.(이미 닥치고 있는 실업의 공포. AI發 해고 충격 현실로… 아마존, 또 1만6000명 감원 아마존, 3개월간 3만명 해고…30년 역사상 최대 규모, 박선민 기자, 조선일보, 2026.01.29)
“AI는 기업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빠르게 혁신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는 아마존 수석부사장의 말 중 “혁신”은 해고의 의미인데, 이는 자본주의 기술발전의 목표가 노동자들을 잘라내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일자리 90%, 6년뒤 AI로 대체 가능”(동아일보, 2024-07-16)는 더 충격적인 예상도 있다.
자본가들이 대량 실업을 우려하는 것은 노동자의 삶에 대한 우려 때문이 아니다. “이런 전망 속에서 대량 실업이 이어진다면 사회적 갈등은 불가피하다.”(‘노동 대전환’ 빠진 AI 혁명은 재앙…’고용 없는 성장’ 마주할 수도, 김인엽 · 최영총 기자, 한국경제신문, 2025.06.26.)는 기사 내용처럼, 해고로 인해 노동자들의 투쟁을 막기 위해서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조용환 전환”, 즉 노동자들의 저항을 막으면서 저임금 불안정 노동이 보편화 되는 유연 고용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2월 보고서에서 “AI가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지만 동시에 일자리의 51%는 AI로 인한 대체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당근마켓, 카카오페이 등 국내 굴지의 테크 기업도 정규직 채용을 줄이고 계약직을 늘리고 있다. 경직된 고용 시스템에 맞춰 기존 직원을 해고하기보다 신규 채용을 줄이는 ‘조용한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같은 기사)
오늘날 만연한 실업과 저임금, 불안정 노동은 분리된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 기술발전, 새로운 생산방식이 낳은 일관된 추세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기계파괴운동에 대해 자본의 대변자들은 “시대착오적인 21세기 러다이트 운동”(복거일 사회평론가·소설가, 한국경제, 2026.02.02.)이라고 중상을 한다.
그러나 기계파괴 운동을 했던 노동자들을 마치 수레와 맞서 싸우는 사마귀처럼 시대착오적이고 지극히 무모하며 폭력으로 얼룩진 광적인 투쟁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은 이 운동의 구체적 역사를 전혀 모르거나 의의를 외면하는 것이다.
이 운동은 광적인 투쟁이 아니라 절박하고 열광적인 투쟁이었다. 광적인 것이 있다면 수백만 노동자들의 삶의 붕괴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이윤의 탐욕에 매몰된 자본가들이었다.
이 운동은 역사발의 발전의 대세를 막는 무분별한 운동도 아니었다.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톰슨은 기계파괴운동 가담자들에 대한 오랜 중상에 대해 비판하고 이들 노동자들을 옹호하고 있다.
나는 가난한 양말 제조공, 러다이트 운동에 가담한 전모공, ‘시대에 뒤떨어진’ 수직공, ‘유토피아적’ 장인, 심지어는 꼬임에 빠진 조애너 사우스컷의 추종자들까지도 후손들의 지나친 멸시에서 구해내려는 것이다.(《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맑스와 엥겔스는 기계파괴운동의 한계를 비판했지만 그것은 그 운동 자체를 비난한 것이 아니었다. 러다이트 운동은 자본가들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이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이 초보적인 저항형태를 넘어 기계 자체가 아닌 기계를 반노동자적으로 사용하는 자본주의 착취체제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드워드 톰슨의 주장대로 이 투쟁은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정치적 행동”이었고 이 투쟁정신은 새로운 사회를 향한 계급적 투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에드워드 톰슨은 이 투쟁이 무분별한 투쟁이 아니고 조직적이고 구체적 요구를 가진 투쟁이었다고 하면서 이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개량된 그리고 끊임없이 개량되고 있는 기계의 무제한 사용(아니, 차라리 남용)
••• 빵 한쪼가리를 얻기 위해 잉글랜드의 노동시장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는 아일랜드 빈민에게 일자리와 생존수단을 제공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
••• 기계를 개량할 때마다 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들 一 남자들 一 을 제쳐놓고 어린아이와 젊은이와 여자들에게 맞도록 기계를 만드는 것.
이러한 결의문이 보여주듯이, 기계에 대한 직조공들의 반응은 흔히 생각하 는 것보다는 더 선별적이었다. 역직기에 대한 직접적인 파괴는 기계의 도입이 극단적인 고통과 실업을 동반한 경우(1812년의 웨스트 호튼, 1826년의 브래드퍼드)를 제외하고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1820년대 말부터 직조공들은 세 가지 제안을 꾸준히 밀고 나갔다.
첫째, 그들은 역직기에 대한 과세를 제안했는데, 이는 경쟁조건을 평등화하고 그 세금의 일부를 직조공들의 구호금으로 쓸 수도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수직공들이 구빈세의 적용대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무거운 물품세 부담을 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인공지능이 사회의 통제 하에 인류의 삶과 복리게 복무케하라
현대차가 지은 인공 로봇 이름인 아틀라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신으로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와는 형제 사이다. 아틀라스는 거인족 편에 서서 제우스로 대표되는 올림포스 신들과의 전쟁을 치렀고, 이 전쟁에서 패하면서 세상의 서쪽 끝에서 영원히 하늘을 떠받치고 있으라는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 현실의 아틀라스는 인간, 특히 노동자가 짊어질 멍애다.
맑스가 자본주의적 기계사용의 재앙에 대해 말한 것처럼, 엥겔스 역시 기술중립주의를 비판하며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질서가 잘 잡힌 사회에서는 그러한 진보가 환영할 만한 것이지만,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상황에서는 몇몇 개인들이 스스로를 위하여 이익을 독점하고 대부분의 생존 수단을 빼앗는다. 모든 기계장치의 진보는 노동자들로부터 일자리를 빼앗아 버리고 기술적 진보가 크면 클수록 실업자가 많아진다. 기계장치의 모든 진보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상업공황과 같은 파멸적인 영향을 미치고 빈곤, 고통, 범죄를 만들어낸다.(《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자본주의 이윤 체제 하에서 기술발전은 대량실업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류 절멸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인공지능이 핵무기 작동 시스템 전반을 관장하게 될 때 인간은 기계의 선택에 의해 절멸될 수 있다. 이미 전쟁에서 무인 비행기는 가장 효과적으로 병사들과 민간인들을 살상하는 무기가 되었다. AI가 인간의 의사결정과 개입을 넘어 자립적으로 판단하여 안전성 문제가 발생한다거나 자립화된 AI가 자가 복제하여 악성코드를 만들거나 외부 서버로 복사되는 현실적인 위험이 되고 있다. 2024년 이스라엘이 무선 호출기를 이용하여 레바논 헤스볼라를 대상으로 한다고 했지만 2,750명의 부상자와 34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던 무차별 테러를 자행했듯, 인공지능이 정보를 분석하여 테러에 이용될 될 수도 있다. 특히 이스라엘이 지금 활용하고 있는 안면인식 및 추적 시스템인 라벤더, where’s daddy는 하마스와 접촉이 있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표적으로 삼아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이처럼 칼이 문제가 아니라 칼잡이의 살인범죄가 문제듯, 테러와 전쟁 뒤에는 미국을 위시로 한 강도 제국주의가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싸우고 지배하는 미래 사회를 그리는 이야기들과 영화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는 순수 인공지능과 인간의 싸움이라기 보다는 인간을 매개로 한 인공지능과 인간의 싸움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과 사회의 통제에서 벗어날 때 생기는 위험성이다.
자본주의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자기한계에 봉착했다. 인공지능 체제의 무인시스템 하에서 무한정 쏟아져 나오는 상품은 과연 누가 소비할 것인가?
앞에서 “재화를 팔아 번 돈은 궁극적으로 다른 재화들을 사는 데 쓰”이기 때문에 공급은 수요를 만들어 낸다고 했는데, 자본가들의 위와 욕구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과잉생산물을 다 소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량의 실업자들과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의 소비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자본주의는 과잉생산 공황을 더 깊게 만들 따름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상황”이 아니라 “질서가 잘 잡힌 사회”에서는 기술발전이 노동자들과 인류 전체에게 축복이 될 수 있다. 즉 기계발전이 대량실업과 장시간 노동, 불안정 노동의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과 위험하고 단조로운 일로부터 해방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생산력 발전이 노동자들과 인류 전체에게 축복이 될 수 있는 사회는 자본가들의 탐욕적인 이윤추구가 생산과 서비스의 목표인 착취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복리가 목표인 사회주의에서 달성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개개인의 천재적 능력이 아니라 사회가 도달한 지적, 기술적 능력 덕분이다. 노동자의 생산 기여가 한 사회발전에 절대적으로 복무했다. 그러므로 극소수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인을 위한 기술발전이 되어야 한다.
자본의 집적ㆍ집중은 노동자를 거대 공장으로 몰아넣어 집단적 저항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로써 맑스는 자본가들의 무덤을 파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양산하게 했다고 했다. 오늘날 노동자들은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늘어났지만 오히려 하나의 기업, 공장으로 집중되지 못하고 있다.
중층 하도급제도, 외주하청화로 원청은 복잡한 하도급제도나 하청 뒤로 숨어버렸다. 노동자들은 원청 사용자성 쟁취 요구를 하며 자신의 진짜 착취자들을 찾아내야 했다.
더욱이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대거 양산으로 자본가들은 뒤로 숨고 노동자들을 개인 사업자로 돌려벼렸다. 플랫폼노동은 자본은 아예 자취를 감쳐버리게 만들었다.
자본은 집적ㆍ집중으로 나날이 독점이 강화되는데 노동자의 분산은 극에 달하고 있다. 이로써 자본은 최고도의 착취를 하고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을 힘들게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아틀라스 도입으로 닥칠 대량 정리해고 사태를 두고 “결국 방법은 창업”이라고 대응책을 제시했다. 거대자본으로의 집중과 중소규모 자본의 대대적인 파산이 일어나는 판에 개인이 창업으로 대자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인공지능 시대의 재앙에 맞서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세상물정 모르는 한심한 소리다.
노동자들은 노동자계급 자신과 인류의 생존과 복리를 위해 21세기 러다이트 운동을 다시 전개해야 한다. 러다이트의 기계파괴라는 전술을 지금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 자본의 폭력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대응이 폭력적이어서 맞지 않다는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술적으로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기계의 자본주의적 이용으로 대량실업과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자본에 맞서 총파업으로 맞서야 한다. 생산을 중단시키는 것이 생산기계 자체의 파괴 보다 더 위력적이다.
이미 하이패스로 요금 수납원들이 상당부분 줄어든 상황에서 2015년부터 추진된 스마트톨링 사업은 하이패스 장착 여부와 관계없이 요금소의 무인카메라가 통과하는 모든 차량번호를 인식해 이동 거리를 계산한 뒤 요금을 통보하는 방식으로 요금 수납의 무인화 시스템이다. 도로공사의 자회사 전환은 이 일환으로 추진됐다. 2019년 도로공사의 자회사 전환을 반대하여 투쟁한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1500명의 투쟁은 바로 기계의 기술발전의 자본주의적 이용에 맞서는 여성 노동자들의 장엄한 투쟁이었다.
당시에도 정부 관계자는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이 없어지는 직업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나”라며 신기술 도입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와 처지 악화에 맞서는 투쟁을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는 투쟁으로 호도하기도 했다.
기계화와 자동화 등 생산력 발전으로 최소 인력으로 지금의 생산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인류는 5시간 이내의 노동만으로도 생산과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다.
기계의 자본주의적 이용에 맞서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을 대폭 단축하고 노동자들의 고용이 늘어나 일자리를 나눔으로써 실업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과거 야간노동 철폐 투쟁에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임금삭감 없는, 노동강도 강화 없는, 노동조건 후퇴 없는 3무를 내걸고 야간노동 철폐투쟁을 전개한 바가 있다. 일자리를 나누는 조건으로 임금을 삭감하고 복지를 후퇴시키는 자본가적 방식이 아니라 3무를 내건 노동시간 단축투쟁을 힘차게 전개해야 한다.
러다이트운동 노동자들이 역직기에 대한 과세를 제안했던 것처럼, 신기계 도입으로 막대한 이윤을 얻는 자본가들한테 복지세를 물리게 해야 한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대량생산은 점점 더 인간노동이 들어가지 않는 무가치한 생산으로 생산물을 반값 이하 더 나아가 무상으로 공급하는 것이 가능하게 한다.
노동자 생활필수품의 무상공급을 위해 싸워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계파괴 운동에 대해 맑스가 기계의 파괴적인 이용 자체에 대한 투쟁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울 것을 요구했던 것처럼, 노동자들은 기계의 자본주의적 이용에 맞서 싸울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착취체제를 철폐하는 싸움으로 나아가야 한다.
신기술 신기계 도입이 인류 전체가 누리는 축복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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