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혁명적 주장은 어떻게 회수를 건너며 제국주의에 부역하는 탱자 논리로 변질됐는가?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명제의 원래 배경

독일 혁명가인 칼 리프크네히트가 외친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명제를 이란에도 적용하여 지금 이란 정권과의 계급투쟁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비단 개인의 주장만이 아니라 이란 내에서 투쟁이 격화되면서 여러 단위에서 제출되는 입장이다. 그러나 특정한 상황에서 제출됐던 명제를 다른 사안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건 심각하게 과오를 범할 수 있다. 리프크네히트는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이 전쟁을 독일의 혁명 기회로 삼기 위해 이 명제를 내세웠다.

당시 독일 사민당을 비롯해 제2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자들은 전쟁 전 바젤선언에서의 반전결의를 부정하고 막상 전쟁이 터지자 자국을 방어하자며 애국주의, 배외주의에 빠져버렸다. 독일 사민당은 전쟁공채 발행에 동의하고 이에 맞서 리푸크네히트는 독일 의회 내에서 전쟁공채를 반대하고 평화를 위해 싸웠다.

당시 독일은 동아프리카(현재 탄자니아 등)과 남서아프리카(현재 나미비아), 카메룬, 토고 등과 뉴기니 북부, 사모아 일부 섬, 미크로네시아 지역을 식민지배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1차 세계대전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을 한 편으로 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동맹으로   갈라져 펼쳐진 제국주의 간 전쟁이었다. 

실제 독일이 이 전쟁에서 패배한 뒤 1918년 11월, 킬 군항 수병 반란을 시작으로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명제는 진리로 입증되었다.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명제는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구호로 러시아에서 무장봉기로 혁명을 하고 전쟁을 끝낸 레닌과 볼셰비키의 구호로 나타나기도 했다.

러시아 짜르체제는 현재의 러시아 연방 영토를 포함하여 발트해 연안,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코카서스 지역, 중앙아시아, 핀란드, 폴란드 일부 지역까지 포함해 유라시아 대륙의 약 40%, 지구 표면 육지의 1/6을 차지하는 초거대 국가였다. 당시 러시아 짜르체제는 유럽 반동의  보루였다. 레닌은 짜르 제정 러시아의 민족억압 정책에 대해 “민족들의 감옥”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러시아는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하고 봉건전제 국가였던 러시아에 대해 레닌은 “군사적 제국주의”라고 규정했다. 레닌은 이에 따라 제국주의 간 전쟁에서 러시아의 패배를 주창했고 이 패배를 혁명으로 전환시키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레닌은 반대로 식민지 피억압 국가, 민족에 대해서는 민족의 자결권과 식민지 해방을 강력하게 옹호했다.

이것이 바로 “주적은 국내에 있다”와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구호가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귤이 해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 이 혁명적 주장이 무분별하게 적용되면서 제국주의에 부역하는 논리로 타락하였다.

“주적은 내부에 있다”는 논리가 리비아, 시리아에서 어떻게 적용됐는가?

자, 그렇다면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명제를 이란에 적용하려면 어떤 전제가 있어야 하는가? 우선 이란이 제국주의여야 한다. 이란과 이스라엘 및 미국 간의 분쟁과 전쟁이 제국주의 간 전쟁이라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란 통치세력이 제국주의에 굴종하거나 영합하여 제국주의 지배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한 번 촉발됐던 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이란핵시설 폭격이라는 명분과 함께 팔레스타인 침략 전쟁과 인종학살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침략과 학살을 자행하는 전범 국가들이었다. 반면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 중동 내 친미 국가들에 맞서는 저항의 축 중심 국가였다. 이란이 지원하는 저항의 축은 레바논 헤즈볼라와 예멘의 후티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포함되어 있다.

미국은 중동에서 석유와 패권 장악을 위한 중동 교두보로 이스라엘과 이란을 지원했다. 이란의 팔라비 왕조는 친미 정책으로 미국에 석유 이권을 넘기고 반민중적 탄압을 자행했다. 1979년 이란 민중은 이란혁명으로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석유산업 국유화를 단행했다. 

흔히 ‘호메이니 혁명’으로 알려진 1979년의 이란 이슬람 혁명은 인류 혁명사에서 프랑스혁명(1879년), 볼세비키혁명(1918년)과 더불어 나라 안팎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란 샤 왕조의 마지막 왕인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1919-1980)를 권좌에서 물러나도록 만든 이슬람 혁명은 이란을 안팎으로 급격하게 바꾸었다.  

이란은 1979년2월 이란 시아파 성직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를 지도자로 한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킴으로써 세계의 눈길을 끌었다(‘아야톨라’는 이슬람 시아파 최고성직자를 뜻함). 이 혁명으로 이란 민중들은 팔레비 왕으로 대표되는 친미 독재집단인 샤(Shah) 왕조를 무너뜨리고 그때껏 이란 석유를 거저 가져가다시피 하던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이란에서의 석유이권을 되찾았다.

호메이니 혁명(공식 명칭은 ‘이슬람 혁명’)의 성공은 1953년 민족주의자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가 미 CIA가 개입한 친위쿠데타로 실각한 뒤 무려 26년 동안 미국 40%, 영국 40%, 팔레비 왕조 20%로 나뉘어졌던 석유이권이 이란 민중의 손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했다. 혁명의 성공으로 석유이권을 빼앗긴 미국은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끊고 지난 30년 동안 경제제재를 가하는 등 적대적인 관계를 이어왔다.

아자디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슬람 혁명이 외세의 사슬과 그 외세에 빌붙어 비밀경찰(사바크)의 힘으로 민중을 탄압하던 독재왕조의 탄압에서 벗어나 이름 그대로의 독립국가 이란을 이룬 것을 자랑스러워했다.(김재명/<프레시안> 기획위원, 국제분쟁전문기자, [강연문] 호메이니 혁명 30주년, 이란을 가다호메이니 혁명 30년 맞은 이란, “반미 이슬람 자존심 지닌 강대국으로 거듭났다”, 성공회대겸임교수 정치학박사, 2009-03-13)

이란혁명은 아직도 이란 민중의 가슴 속에 아로새겨져 외세 침략과 개입에 맞서고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이란의 정신이 되고 있다.

이란에 반미 자주를 지향하는 정권이 들어선 이후부터 미국의 이란에 대한 적대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축출된 이란 팔레비 왕조의 샤 이란 국왕의 아들인 레자 팔레비를 보호하고 있다.

레자 팔레비는 “가능한 한 빨리 이란으로 돌아갈 준비가 돼 있다. 이미 그 준비를 하고 있다”며 미국의 침략으로 정권교체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은 이라크의 침략으로 촉발되어 무려 1980-1988까지 8년이나 진행된 전쟁에서 반미 이슬람 정권이었던 이란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에 대한 대대적 지원을 했다.(그러나 미국은 이후 2003년 3월 20일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조작을 하여 이라크를 침공하여 사담 후세인 정권 마저 무너뜨렸다.)

2025년 이스라엘을 앞세워 이란을 폭격하도록 한 미국은 2026년 이란에서 일어난 시위를 이용해 이란을 붕괴시키려 했다. 트럼프는 1월 13일 “이란의 애국자들이여 계속 시위하라. 도움의 손길이 가고 있다”며 이란 시위를 부추겼다. 

트럼프는 더 나아가 이란의 최고 지도자인 하메이니가 “병든 사람”이며 “이란은 형편없는 리더십 때문에 세계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가장 살기 힘든 국가다. 이제는 이란에서 새로운 지도자를 찾을 때”라며 대놓고 정권교체와 이란 침략 기도를 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현지시간 18일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에 대한 공격은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이란 국민들의 삶에 고난과 궁핍이 존재한다면, 주된 원인은 미국 정부와 그 동맹들이 가한 오랜 적대감과 비인도적 제재에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미국의 이란에 대한 제재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첫 번째로 단행되었다. 미국은 80~88년까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대이란 금융제재 및 무역제재를 가하였다. 조지 부시에 이어 오바마 미 대통령 들어와서는 더욱 강도 높은 ‘포괄적 이란제재법(CISADA;H.R.2194)’으로 대이란 에너지 개발에 참여하거나 정유제품 및 정제기술을 공급하는 기업 등에 대한 미국시장 참여를 제한한다는 내용으로 이란과 교류하는 해외기업을 제재하여 제재 강도를 높혔다.

2026년 1월 트럼프의 미국 제재는 이란과 거래하는 모든 국가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며 내용으로 한층 더 강화되고 구체화 되었다.

결국 이란에 대한 경제전쟁을 포함해 이스라엘을 앞세운 직접적인 침략 전쟁과 위협으로 인해 발생한 생존권 위기에 항의하는 이란 내 시위를 정권교체 기회로 삼으려는 게 이번 이란 사태의 본질이다.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명제는 이란 내부에서 발생한 시위를 가지고 이란 내부의 계급투쟁을 강조하지만 실제 사태의 본질은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권교체 기도다. 처음 이란 내에서 시위가 벌어진 이후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와 미국 정보기관이 개입하면서 인명 살상과 모스크사원과 건물, 소방차ㆍ구급차 방화라는 극단적 양상으로 변질되었다. 그러자 이란 시위는 수그러지고 대신 1월 12일에는 약 20만 명이 테헤란과 엔겔라브 광장에 결집하여 외세 개입에 반대하는 친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명제는 이란 당국이 미국과 이스라엘과 싸우며 팔레스타인 민족억압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란 정권과의 내부 계급투쟁을 부추기면서 정권교체를 기도하는 제국주의의 이해에 복무하는 논리다. 

이란 내부의 생필품 부족과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한 이란의 경제위기는 주로 제국주의의 제재로 인해 벌어진 문제다. 한 사회의 어느 경제가 전면적인 경제봉쇄 앞에서 정상적인 대외무역을 하고 안정적인 경제를 운영해갈 수 있는가? 이란에 대한 제국주의 제재는 과거 중동에서 리비아, 시리아, 이라크에 자행되었으며 국제적으로는 쿠바와 베네수엘라, 조선과 러시아, 중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단행되고 있다.

이란에 대한 제국주의 개입은 중동에서 리비아, 시리아 정권교체에 이어 저항의 중심에 있던 이란을 붕과시켜 중동 패권전쟁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주적은 국내에 있다”며 이란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이들은 이러한 제국주의 개입에 대해 “우리는 사물의 원인을 외인에서 찾지 않고 바로 내인에서 찾아야”(문국진)한다며 맑스주의 변증법을 갖다 부친다. 이는 변증법을 희한하게 속류적으로 타락시키는 것이다. 제국주의가 침략하거나 지배하면 제국주의라는 외부적 요인이 국내로 깊게 침투하여 외부요인과 내부요인은 상호침투하거나 내부요인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일제강점기를 외부의 침략이 아니라 조선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근대화에 실패하여 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제에 의해 식민지가 되었다는 ‘내인(내부 요인)’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정당화 하여 제국주의에 봉사한다.  

이란에 대한 제국주의의 정변 기도와 침략 위협 앞에서 “주적은 국내에 있다”며 이란 내부의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세력들은 제국주의 개입에 눈감고 제국주의 침략 앞에서 내부 계급투쟁을 격화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제국주의에 봉사한다.

이들은 “반제민족해방투쟁에서 ‘민족 전체, 정부도 포함’된 ‘견결’한 ‘민족 전체의 단결’이란 아마도 현실 속에서는 빗나간 허상”이라며 “지금은 식민지반식민지 시대가 아니”기에 “만일 지금의 현대자본주의체제 하에서 ‘반제’=주적의 논리를 일반화한다면 시대착오적 오류가 되고 말 것입니다. 제국주의의 침탈 앞에서 전체 민족–정부 당국도 포함하여–이 총체적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민족지상주의적 주장”에 빠지게 된다고 주장한다.(문국진)

이러한 주장은 현대자본주의 체제가 변화 했기에 반제국주의 투쟁의 중요성을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논리다. 

현대제국주의는 식민지 제국주의에서 신식민지 지배로 변화하였다. 이는 제국주의의 민족억압과 침략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가 형식적으로는 그 나라의 자주적 권리를 인정하는 체하면서 더 교활하고 세련된 지배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에도 제국주의의 침략적이고 약탈적 성격은 변치 않고 계속된다.

팔레스타인 침략과 학살, 우크라이나에서 대리전 자행, 베네수엘라 침략, 정권교체 기도,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내건 제국주의 횡포 등 현대제국주의는 미제를 우두머리로 한 제국주의 지배체제의 폭력성, 침략성, 약탈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현대자본주의 체제가 변모했다는 이유로 제국주의 주적, 반제투쟁을 경시하거나 부정하는 논리는 제국주의의 이해에 봉사하게 된다. 

현대 제국주의의 민족억압과 민족해방투쟁에서는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족 전체의 단결이 중요하다.

“제국주의의 침탈 앞에서 전체 민족–정부 당국도 포함하여–이 총체적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논리가 “민족지상주의적”이라는 주장은 민족억압과 민족해방을 반대하는 논리로 계급성과 민족성을 대립시킨다. 

“정부 당국”이 제국주의에 반대하며 싸우는데 이 정부를 제외하고 제국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논리는 반제투쟁을 극단적으로 협소화 시키고 분열시켜서 반제투쟁을 패배로 몰아간다.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 같은 “정부 당국”은 반제투쟁에서 함께할 대상이 아닌가?

베네수엘라에서 마두로 정부역시 반제투쟁에서 배제할 대상인가? 반대로 “정부 당국”이 제국주의에 반대해 싸우면 그것이 가진 물리력이나 통치력으로 인해 반제투쟁의 구심이 될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 니제르나 코트니부아르, 부르키나파소에서도 그렇다. 조선도 마찬가지다. 제국주의에 맞서 민족적  단결의 여부는 제국주의와의 투쟁에서 승패를 좌우한다. 미국의 침략과 마두로 대통령 납치 이후에 베네수엘라가 그 기로에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외형적 변화를 이유로 “‘반제’=주적의 논리를 일반화”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야말로 “시대착오적 오류”고 필시 제국주의에 승리를 안겨준다.

진보의 이름을 내걸고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부역자들

이란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과 제재는 과거 중동에서 리비아, 시리아에서 실현되었다.

미국과 나토는 2011년 3월 반미국가였던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인권을 말살하는 독재정권이고 카다피가 리비아 내전에서 자국민을 무차별 학살한다고 조작하고는 민간인 보호와 인도주의적 ‘보호책임’ 운운하며 무차별 공습을 자행하였다. 그러나 카다피 정권 하의 리비아는 중동에서 가장 복지가 좋고 자유로운 나라였다. 결국 나토 공습으로 리비아는 잿더미가 되고 2011년 10월 20일 도망치던 카다피는 나토군 무인기의 공습을 받고 하수도에 피신했다가 반군에게 잡혀 살해당했다. 

당시 2011년 3월 1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리비아 민간인 보호를 명목으로 비행금지구역 설정하고 군사조치를 승인하는 결의 1973호를 채택했다.

정의당은 이에 대해 유엔 결의를 지지하며 “국제사회가 학살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의당은 그 “국제사회”가 바로 침략자 제국주의 세력임을 망각하고 제국주의 침략을 응원하는 제국주의 첨병이 되었다.

정의당은 이번 이란 사태도 리비아 사태와 본질이 전혀 다르지 않음에도 서방 언론의 선전을 그대로 따르면서 이란을 규탄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노동자연대는 리비아 반란 세력들의 폭동을 “민중혁명”이라고 찬사를 보내고 카다피 정권의 붕괴에 대해 “카다피의 몰락은 축하할 일이다”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소련해체에 대해 “소련 해체는 사회주의 해체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의 해체에 불과하다”며 반혁명을 환영한다고 했던 노동자연대는 제국주의에 의한 시리아의 정권교체에 대해서도 같은 주장을 했다.

2011년 혁명에 리비아 카다피의 42년 독재가 최후의 순간에 직면했다.

반란군은 수도 트리폴리로 행진하면서 카다피 정권을 상징하는 깃발을 내렸다. 언론 보도를 보면, 수도의 시민들은 반란군 대열을 환영했다.

카다피의 몰락은 축하할 일이다. 그는 올들어 세 번째 무너진 아랍 독재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 리비아 반정부 투쟁의 성격은 이 투쟁에 영감을 준 튀니지나 이집트 혁명과 비교해 상당히 다르다. 그것은 서구 열강들이 리비아 투쟁을 이용했기 때문이다.(주디스 오어, “카다피 몰락을 환영하자. 그러나 서방을 믿지는 말자”, 번역 김용욱, 레프트21 63호, 2011-08-23)

이들은 시리아에서 제국주의 지원을 받는 내란세력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 리비아는 극심한 정치적 분열과 무장 세력 난립으로 혼란을 겪고 있으며, UN이 인정한 트리폴리 중앙정부와 동부 군벌 정부로 나뉘어 내전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이슬람국가(IS) 등 극단 테러리스트들이 발호하게 되었다.

이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를 초래하여 치안 악화, 경제난과 빈곤 심화로 대규모 난민을 발생시키고 있다. 

“서구 열강들이 리비아 투쟁을 이용”해 정권교체를 기도했다고 하면서도 “카다피의 몰락”을 축하한다는 것은 이들이 주관적 의도와 달리 객관적으로는 제국주의의 편으로 넘어갔음을 보여준다.

노동자연대는 시리아에서도 제국주의자들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 즉자적이고 필사적인 무장 봉기의 모든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다. 반란세력들이 자신들의 투쟁을 이렇게 빨리 군사화한 것이 정치적으로 현명한 것이었는지를 두고 우리가 논쟁을 벌일 수도 있다.

이집트 혁명에서 그토록 중요했던 독립적인 노동자계급 행동이 없는 것에 대해 우리가 아쉬움을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리아에서의 저항이 이토록 빨리 내전으로 발전했다는 것이 시리아 저항의 뿌리가 대중 반란이라는 사실을 바꾸지는 않는다 …

시리아 혁명에 반대하며 천박한 “반제국주의”를 들먹이는 서방 좌파들 역시 자신들의 정치적 파산을 고백하고 있을 뿐이다.(알렉스 캘리니코스, “시리아 혁명은 민중에 뿌리박고 있다”, 레프트21 86호, 2012-08-02)

 <노동자연대>는 시리아 ‘반란군’들을 “시리아 혁명”으로 간주하며 “중동의 민중 반란의 일부”(차승일, “시리아 혁명에 대한 올바른 입장은 무엇인가”, 레프트21 90호, 2012-10-06)로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연대는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것”을 ‘진영논리’라며 규탄하기도 했다.

노동자연대는 1월 16일 이란 사태에 대해서도 민중시위를 지지하며 이란 당국이 이를 탄압하고 있다며 이란 한국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개최하기도 했다.

노동자연대의 이날 규탄 집회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이 있었다.

우리 아랍과 이슬람 세계의 독재 정권들은 늘 팔레스타인을 수호한다고 떠들어 대지만, 진실은 그들이 바로 팔레스타인에 가장 큰 위협이라는 것이다.

아주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팔레스타인을 실제 군사적으로까지 실질적으로 지지ㆍ엄호한 건 이란과 예멘, 헤즈볼라 등이다. 예멘, 헤즈볼라도 다 이란과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란이 팔레스타인에 그냥 위협도 아닌 “가장 큰 위협”이라고..

미제와 이스라엘이 가장 큰 위협이 아니란 말인가?

이란이 침략에 대항해 이스라엘로 로켓을 날릴 때 팔레스타인은 물론이고 아랍 민중은 시아파 순니파 가리지 않고 이란이 쏘는 미사일을 유성처럼 여기며 환호했다.

노동자연대는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이란에서 손 떼라”는 구호를 내걸고는 자신들이 제국주의 개입반대고 외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왜 이 구호를 침략자 미국이 아니라 이란 대사관 앞에서 외치는가? 

중동에서 제국주의 목표는 리비아, 시리아 등 반미국가들을 붕괴시키고 여세를 몰아 저항의 축 중심 국가인 이란정권을 붕괴시키고 친미종속 국가를 만들어 석유 이권과 군사적ㆍ정치적 패권을 차지하는 것이다. 리비아, 시리아에서 미국은 제재로 내부 불만을 키우고 내부 반란세력들을 육성해 내전을 유도하고 이 혼란을 틈타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다. 

과연 시리아에 대한 제국주의 개입에  반대하며 “반제국주의”를 내거는 것이 천박하고 “정치적 파산을 고백하”는 것인지 진리를 이야기 하는 것인지 살펴보자.

일본을 포함한 서방 언론은 이 정권 붕괴를 “50년에 걸친 독재 체제의 타도”와 “민주주의의 승리”로 환영하며, 연일 아사드 정권을 비난하는 부정적인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완전히 다르다. 이 사태는 명백한 반혁명의 승리이며, 중동에서의 반제국주의 투쟁의 가장 중요한 거점 중 하나를 제국주의 세력에게 빼앗긴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시리아 국민은 물론, 팔레스타인의 저항 세력을 비롯해 서아시아에서 북·서아프리카의 반제국주의 투쟁에 심각한 타격과 후퇴를 가져올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타도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오랜 숙원이었다.

시리아에 대해서도 이슬람국가(ISIL)이나 누스라 전선을 비롯한 다양한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 조직을 양성하고 지원하며 “내전” 상태를 강요했고, 영토는 분할되었다.

이 전투로 시리아에서는 5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600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 이제 서방 언론은 이 비극을 모두 아사드 정권의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이를 초래한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의 간섭 정책이다.(이나가키 히로시(稲垣博, 사상운동 편집부), 아사드 정권 전복은 제국주의의 반혁명 책동, 일본 활동가집단 ‘사상운동’ 1108호, 2025년 1월 1일호)

서방의 시리아 개입에 대해 팔레스타인 저항세력들도 격렬하게 반발했다.

아사드 정권이 전복된 후 시리아에서는 끔찍한 재앙이 벌어졌다. 지난 2015년 3월 6일부터 며칠 간 시리아 정부군이 친 아사드 민병대의 공격을 막는 과정에서 알라위트 소수민족 공동체의 해안 중심부에서 살인과 즉결 처형 등으로 여성과 노아, 아이들이 포함된 민간인 973명을 살해하는 만행이 자행되었다.

그런데 리비아, 시리아 정권 전복이라는 재앙을 겪고도 일부 정치세력들은 진보진영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이 심각한 과오를 답습하고 있다. 이는 전술적 판단 실수가 아니라 타락한 정치노선의 근본 오류로부터 기인한다. 

우리는 이들을 “제국주의의 ‘진보적’ 벗들”이라고 규정하였다. 제국주의의 이해에 봉사하는 세력들은 “진보세력”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있지만 진보진영을 교란, 혼란, 분열시키고 민중의 정치의식을 타락시키는 오열이다.

베네수엘라 침략과 납치극 이후 전 세계적으로 규탄 받던 미국과 트럼프 대신에 이제 이란이 공적이 되었다. 미제의 선전이 먹힌 것이다. 일부 진보세력도 여기에 부화뇌동하고 있다.

진보진영 내부에 배반자들을 두고 전열을 정비하지 않고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와 맞서 싸워 승리할 수 없다. 어쩌면 이 점에서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명제가 일측면 진리일 수도 있다.

이 기사를 총 2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