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8일 호세 마르티 탄생 173주년 기념 행사 주한쿠바대사 인사말씀>
지난 1월 28일(수) 주한쿠바대사관 초청으로 “호세 마르티 탄생 173주년 및 피델 카스트로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 외민동 차원으로 참석했다. 한국쿠바친선협회 안내로 초대 받은 것으로 안다.
당일 Monzón 쿠바대사의 인사말 원고를 부탁했는데 감사하게도 며칠이 지나 정리해서 보내오셨다. 년초 미국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대통령 납치 사태 등 최근 중남미 사태에 대한 당사자의 입장을 직접 참고할 수 있어 옮겨 본다.(이중원)
친애하는 조갑동 전 대사님!
친애하는 주한 공관 동료 여러분! 친애하는 내빈 여러분!
마르티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하는 저희의 초대에 응해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쿠바에 친숙하신 분들이라면, 마르티라는 인물이 우리 국민에게 얼마나 상징적인 존재인지 의심의 여지 없이 잘 이해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 짧은 인사말 자리에서 그의 비범한 행적과 업적을 감히 다 열거하지는 않겠습니다. 마르티는 철학자이자 에세이스트, 언론인, 문학가, 외교관, 정치인, 군인, 그리고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분야에서 쿠바와 라틴아메리카의 후대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유산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서거 후 1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놀라울 정도로 시사하는 바가 큰 정치적 사상과 문학적 사상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쿠바의 독립과 정의롭고 인본주의적인 국가 프로젝트 사이의 상관관계입니다.
식민 지배와 노예제가 존재하던 19세기 쿠바에서,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느낄 줄 알았던 깊은 윤리적 가치관의 소유자였던 마르티는 독립 투쟁과 오늘날 우리가 인권이라 부르는 가치를 위한 투쟁이 필연적으로 연결되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말해, 식민주의라는 본질 자체가 그 어떤 인본주의적 사회 프로젝트와도 절대 양립할 수 없었기에,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독립이 필수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둘째는 그의 깊은 반제국주의 사상입니다.
마르티의 독립 활동은 단순히 스페인에 맞선 전쟁을 장려하고 조직하며 이끄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국이 쿠바와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국가들의 독립에 끼칠 위험성에 대해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경고하는 작업을 병행했습니다.
마르티가 미국에서 보낸 약 15년의 세월은, 워싱턴이 우리 지역의 나머지 국가들에 대해 품고 있던 팽창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야욕을 아주 일찍부터 간파하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괴물 안에서 살았기에 그 내장을 잘 알고 있다”라는 그의 말은 우리 쿠바인들이 잘 기억하고 있는 문구입니다.
마르티는 벤저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존 퀸시 애덤스 등이 미국의 쿠바 점령이 타당하다고 언급했던 내용들을 의심할 여지 없이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스페인으로부터 쿠바 섬을 사들이려 했던 다른 미국 대통령들의 시도와 ‘먼로 독립 선언(Monroe Doctrine)’에 대해서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전사하기 바로 전날 남긴 마지막 글이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는 점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나는 이제 매일같이 조국을 위해, 그리고 나의 의무를 위해 목숨을 바칠 위험 속에 있다. 내가 이해하고 수행할 용기를 가진 그 의무란, 바로 쿠바의 독립을 통해 미국이 안틸레스 제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그 힘을 더해 우리 아메리카 대륙을 덮치는 것을 제때에 막아내는 것이다.”
마르티는 스페인 본국에 맞선 전쟁의 결말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전쟁 끝에 탄생한 공화국이 독립적이지도 정의롭지도 못하며, 오히려 마르티 본인이 박멸하려 싸웠던 사회적 악습들을 그대로 간직한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을 보았더라도 그는 그리 놀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독립의 꿈은 미국의 군사 개입으로 인해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신식민지 시대’ 쿠바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을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1901년 쿠바 주둔 미 군정총독 레너드 우드(Leonard Wood)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물론 쿠바에는 독립이 거의 혹은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 이제 유일한 방책은 병합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조만간 (쿠바에 대한) 통제권은 소유권으로 바뀔 것이며, 머지않아 우리는 세계 설탕 무역을 장악하게 될 것입니다. 섬은 점진적으로 미국화될 것이며, 때가 되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탐나는 소유물 중 하나를 갖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쿠바 혁명이 상징적으로 마르티 탄생 100주년이 되던 날, 즉 73년 전 오늘과 같은 날에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날, 피델 카스트로를 포함한 수백 명의 쿠바 학생들은 바티스타 독재 정권에 항거하며 행진했습니다. 그들은 아바나 대학교 계단에서 시작하여, 과거 마르티가 고작 16세의 나이에 쿠바의 자유를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정치범이 되어 수감되었던 장소까지 행진했습니다.
피델 카스트로가 마르티를 가리켜 무장 혁명 투쟁의 도약대가 된 ‘몬카다 병영 습격 사건’의 ‘사상적 지주’라고 칭한 것 또한 우연이 아닙니다.
쿠바 혁명의 목표는 바로 마르티가 시작했던 과업을 완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진정한 독립을 쟁취하고, ‘모든 이와 함께, 모든 이의 복지를 위한’ 포용적이고 정의로운 사회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상시라면 저의 인사말을 여기서 마쳤겠지만, 바로 이 순간 우리 조국의 주권과 평화가 북쪽의 이웃 나라에 의해 다시 한번 위협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최근의 사건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26년 1월 3일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한 사건은 불법적인 무력 침공의 결과로 한 국가의 대통령이 납치된 사건입니다.
이는 단순히 쿠바나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깊이 우려해야 할 범죄입니다. 국제법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안에 대해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위험한 일입니다.
이제 쿠바는 군사 행동과 해상 봉쇄 같은 부수적인 전쟁 행위의 위협 아래 놓여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조차 쿠바 경제를 해치기 위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며, 이미 손에 닿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기에 이제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침공뿐이라고 냉소적으로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트럼프의 발언은 우리가 지난 수십 년간 고발해온 내용을 명백히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은 쿠바가 실제로 67년 넘게 경제 전쟁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미국의 봉쇄가 오직 경제적 고통과 민중의 절망을 야기해 체제 전복을 유도하려는 목적뿐이었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그들의 진짜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 또한 아이러니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쿠바에 대한 미국의 적대 행위는 인권이나 민주주의, 혹은 그들이 내세우는 그 어떤 핑계와도 무관하며, 오직 ‘먼로 주의 지정학과 제국주의 논리’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을 때, 누군가에게는 우리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 세기 전의 죽은 문서를 다시 파헤치는 것처럼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이제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먼로 독주를 옹호하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를 자신의 ‘뒷마당’이라 부르고 이 지역의 자원들을
‘자신들의 자원’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르티 시대부터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리의 역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저 특수한 사례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미국 해안에서 불과 90마일 떨어진 곳에서 사회주의 독립 혁명을 일으켜 그들에게 도전했기에, 미국의 어두운 면과 맞서 싸워야 하는 처지였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전 세계를 향해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주권도, 국제법도 존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경제적·군사적 패권을 가졌기에 그들에게는 ‘약육강식의 법칙(La ley de la selva)’이 훨씬 더 이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쿠바는 주권을 양보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이와 유사한 위협에 직면했으나 모두 극복해 냈습니다. 미국의 해상봉쇄에 저항하는 일도 군사 공격을 물리치는 것도 처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마르티의 가르침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 국제사회가 존립의 기로에 서 있다고 믿습니다. 이 황당하고 충격적이며 위험한 상황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국제법에 기초한 세계를 수호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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