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노조 파업에 대한 극렬한 악선전과 교훈 “파업으로 인한 자본가들의 손실은 착취의 중단에 다름 아니다”

노조의 본래 목적(과거)과 원대한 목표(미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 노동조합(노조)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ㆍ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법의 목적 제1조는 “헌법에 의한 근로자의 단결권ㆍ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여 근로조건의 유지ㆍ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마.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는데서 보듯이, 자주적인 노동운동을 통제ㆍ관리하려고 목적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조의 결성 자체가 국가권력과 자본의 “단결금지법”을 분쇄하고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노조의 임무와 목표는 확장되고 높아졌습니다.

맑스는 노동조합의 임무와 목표를 다음과 같이 설정했습니다.

그 원래의 목적과는 별도로, 이후의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위하여, 노동자계급의 조직화의 중심으로서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노동조합이 이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모든 사회적·정치적 운동을 지지하고, 자신을 모든 계급의 전위적 투사이자 대변자로 간주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조합 외부에 있는 사람들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가장 열악한 임금을 받고 있는 직업, 예를 들어 예외적으로 불리한 사정으로 말미암아 여태껏 저항력을 빼앗긴 채로 있는 농업노동자의 이익에 대해 주의 깊게 대처해야만 한다. 노동조합은 그 목표가 결코 좁디좁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억눌리고 있는 수백만의 사람의 전반적인 해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확신을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새겨주지 않으면 안된다.(맑스, 노동조합 – 그 과거, 현재, 미래)

맑스가 말한 노조의 “원래의 목적”은 “근로조건의 유지ㆍ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의 향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맑스는 노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 제한된 원래의 목적을 넘어 착취와 억압을 철폐하는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위해 맑스는 노조가 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모든 사회적·정치적 운동을 지지”하고, “여태껏 저항력을 빼앗긴 채로 있는 농업노동자의 이익에 대해 주의 깊게 대처해야만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억압 받고 고통 받는 모든 이들, 억압받는 민족들을 위한 “전위적 투사이자 대변자로 간주”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노조는 “예외적으로 불리한 사정으로 말미암아 여태껏 저항력을 빼앗긴 채로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미조직노동자들, 실업자들, 청년 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노조는 이 사회의 민주적, 진보적 발전을 위해 노동악법을 철폐하고 개정하는 투쟁과 함께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이 나라의 주권을 외국군에 넘겨주고 대북적대의 온상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철폐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합니다.

노동자 중심성은 노동자가 특권계급이라는 말인가

우리는 흔히 “노동자 중심성”에 대해 말합니다. 이 말에 대해 노동자를 특권세력이라고 간주한다고 비난하는 주장도 있지만 이 말은 절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중심에 있는 이유는 일단 주민의 상당수가 노동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생산과 서비스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가들의 이윤추구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이 사회 전체의 이해와 대립되고 소생산자들은 자신들의 신분ㆍ계급상승을 위해 싸우지만, 노동자들은 착취ㆍ억압사회가 철폐되어야 자신들이 궁극적으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에 끝까지 이 사회 진보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진보적 계급입니다. 물론 노동자 개개인은 사람에 따라 보수적이거나 이기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의 계급으로서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가장 중요한 계급입니다. 노동자 중심성은 다른 억압받고 탄압 받는 계급이나 개인들, 민족들 전체를 대변하고 이끄는 중심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존중이라는 말은 노동자계급의 숭고하고 원대한 위치와 목표에 비춰 노동자들을 대상화 시키는 말이기에 적절한 말이 아닙니다.

노동자들이 억압 당하는 민족들을 자신들의 아픔이나 고통으로 여기고 싸울 때 노조는 자신의 원대한 임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ㆍ미국 침략자들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학살에 맞서 지난 2025년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전개하고 200만이 거리행진에 나섰습니다. 모든 억압 받는 민족과 계급을 위해 투쟁에 나선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국제주의 정신이야말로 노동자가 왜 이 세상의 중심이자 가장 숭고한 계급인지를 보여준 사례입니다.

그러나 자본가들과 권력자들은 노동자들, 노조들이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자본주의 착취사회를 철폐하고 새로운 사회의 중심계급으로 떠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악선전하고 노조의 투쟁을 막고 노조를 본래의 협소한 목표에만 한정하도록 음모를 꾸밉니다.

삼성노조 비난은 삼성재벌의 무노조 정책의 변형된 연장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의 경영철학은 무노조 정책입니다. 이 무노조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삼성은 노조결성에 앞장선 이들을 끊임없이 회유ㆍ매수ㆍ감시ㆍ납치하는 온갖 악행과 탄압을 자행했습니다. 오늘날 이재용 시대에는 더 이상 무노조 정책이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존 정책이 무너졌다고 하지만 노동자들의 단결을 분쇄하고 통제ㆍ억압하는 정책은 변치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재용은 삼성이 가진 재력, 언론과 정치권에 대한 장악력 등을 통해 노조를 이기주의 조직, 부도덕한 조직, 한국사회를 망치는 조직으로 몰아서 고립ㆍ무력화ㆍ분쇄하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삼성노조의 성과급 투쟁은 높은 액수로 노조의 부도덕성, 이기성을 비난하는 근거가 되고 있지만, 사실 이 투쟁의 본질은 성과급의 제한 철폐와 성과급 지급의 근거와 기준을 마련하라는 투명한 성과급 지급, 경쟁과 분열을 요구하는 성과급 지급 방식에 대한 반발의 성격이 큽니다.

노조가 본래의 목적을 넘어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투쟁에 대해 불법의 낙인을 찍어 그토록 악선전을 하던 자본과 언론에서는 이번에는 성과분배라는 경제투쟁에 대해서도 악의적인 비난을 가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듯 노조의 3권리는 단결권ㆍ단체교섭권ㆍ단체행동권(파업권)입니다. 파업권은 생산과 서비스를 멈추고 타격을 가해 노동자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권리입니다.

그런데 삼성노조의 파업 계획에 대해 반도체 산업이 국가핵심 산업이라고 파업을 반대하더니 급기야는 자본과 언론에서 긴급조정권 발동하라고 공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어떠한 경우에도 파업만은 막아야 한다″며  “산업부 장관으로서 만약 파업이 발생한다면 긴급조정권 발동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긴급조정권 발동은 파업분쇄권으로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원천부정하는 파쇼적 반노동 행위입니다. 소년공 출신임을 내세우고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노동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했던 이재명 정권에서 긴급조정권 발동이 운운되는 것은 이 정권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노동자를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지 잘 알 수 있는 폭거입니다.

삼성노조가 대형노조이고 국가경제에 타격이 크기 때문에 긴급조정권이 발동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독재정권이 노동권을 부정하는 논리로 사용하는 근거입니다.

“파업으로 인한 자본가들의 손실은 파업으로 인한 착취의 중단”을 의미할 뿐입니다.

노동자 파업이 국가경제에 타격을 가한다고 파업을 반대하는 논리는 역으로 이들 노동자들이 얼마나 생산과 서비스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는지, 그리하여 권리를 부여받을 자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해당합니다. 이는 노동을 집단적으로, 일시적으로 멈춤으로써 생산과 서비스를 중단시키는 위력을 발휘함으로써 요구를 관철하는 노동3권 행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반노동자적 논리에 불과합니다.

장관이 “어떠한 경우에도 파업만은 막아야 한는”고 파업권을 원천봉쇄하는 것은 이 정권이 한 편으로는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하여 노동자 권리 부여에 적극 나서는 체하면서 실제로 사회적 파장이 큰 현안에서 얼마나 삼성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지 그 실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언론에서는 삼성노조가 약자가 아니라며 파업을 부정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이들이 과연 그 동안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 단 한 번이라도 지지를 한 적이 있습니까?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세종호텔 고진수 지부장은 왜 또다른 사회적 약자를 지지한 대가로 구속되어 있습니까?

정부가 실질적 사용주인 공공기관에서 교섭에 나오기라도 했습니까?

삼성노조의 파업에 대한 자본과 언론, 정권의 대대적인 악선전은 삼성노조의 단결을 깨고 파업을 분쇄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삼성재벌의 변형된 무노조 정책의 일환입니다. 삼성노조를 자주적인 노조가 아니라 말 잘듣는 협조적인 노조로 변경시키기 위한 의도입니다.

‘진보세력’ 일각에서도 삼성노조가 하청노동자의 문제나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파업을 비난하고 반대하는데 이는 주관적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삼성노조를 고립시키고 파업권을 부정하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경제적 이해에 충실하면서도 정치적 노동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 누구도 귀족일 수는 없습니다. 진짜 현대판 귀족은 온갖 불법ㆍ탈법으로 경영권을 승계 받은 이재용 같은 자본가들입니다. 진짜 귀족은 무위도식하는 기생충 자본가들입니다. 삼성노조 귀족노조라는 비난은 자본가들의 기생적 성격을 은폐하고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여 권리를 봉쇄하고 자본의 무제한적, 영속적 착취를 보장받기 위한 것입니다. 이 비난이 비단 삼성노조에 대해서만 행해졌습니까? 자동차, 중공업, 철강, 철도, 지하철, 교사, 공무원 등 모든 업종의 노동자들에 대해 행해진 비난 아닙니까?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생존의 요구를 “철밥통”이라고 비난한 자들, 언론이 바로 오늘날 삼성노조를 귀족노조라고 비난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노동조합법상으로 볼 때도 일반적 구속력, 지역적 구속력을 보면 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은 비노조원한테도 확장되며 동종업종이나 지역까지도 확장됩니다. 과거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의 폭발적 임금협상의 성과는 사회 전체의 임금과 권리수준을 높혔습니다. 현대차, 현대중공업, 대우자동차 등 대공장의 투쟁은 삼성으로 하여금 무노조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삼성의 임금을 높이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는데 이바지했습니다.

무노조 삼성, 변형된 무노조 탄압 정책을 쓰는 삼성에서 노조의 투쟁은 다른 무노조 재벌 계열사들의 투쟁을 자극할 것이고 삼성 계열사 전체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을 깨우고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하여 싸울 수 있는 자극이 될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인식은 낮은 수준의, 직접적인, 감정적인 인식으로부터 높은 수준의, 대자적인, 이성적인 인식으로 발전합니다. 삼성노조가 애초부터 삼성재벌에 협조하고 어용노조가 되었다면 이것이 비난 받을 것이지 비록 조합원에 한정할지라도 노동자들의 요구를 가지고 파업에 나서겠다는 것이 비난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실천은 인식발전의 가장 중요한 계기이자 수단입니다. 삼성노동자들은 이번 투쟁으로 누가 자신들을 지지하는 세력인지, 누가 악의적으로 비난하는 세력인지를 깨닫고 있을 것입니다. 언론과 언론이 만들어낸 ‘여론’이라는 것이 얼마나 노동자들을 매도하고 고립시키는지 실상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재용과 그 일가와 무리들의 천문학적 부와 성과 독점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도 피땀흘려 노동한 노동자의 성과분배 요구를 마치 날강도짓으로 매도하는 반노동 사회의 실상을 절감했을 것입니다.

소년공 운운하고 노동운동 운운하는 이재명 정권이 실제로는 얼마나 자본의 편인지를 보았을 것입니다. 파업을 깨기 위한 악의적 의도로 제기되었다 하더라도 노조투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하청노동자들의 요구까지 내걸어서 요구를 높이고 사회적 지지와 연대를 확장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했을 것입니다.  

삼성노조에 대한 비판이 절실한 시점이라면 지금 자본과 언론의 악선전에 놀아나는 비난이 아니라, 만약 삼성 계열사 하청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설 때 이를 자신의 기득권을 빼앗는 것이라고 비난할 때가 될 것입니다.

삼성노동자들이 높은 수준의 요구를 내걸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진보연하는 이들은 과연 삼성노조가 이 어마어마한 비난을 뚫고 파업에 들어가는 것이 삼성노동자들의 각성에 도움이 될 것인지 파업이 실패하거나 압력에 굴복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정치와 경제는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삼성노조의 경제투쟁에 대해서조차 정치 전 영역이 개입하고 있지 않습니까? 노동자들이 자신의 고유한 경제적 요구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전 사회적, 정치적 문제로 끊임없이 관심과 요구를 확장시켜야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 삼성노조가 하청노동자들을 외면하고 사회적 연대에 소홀하다고 비난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체적 투쟁으로 많이 좋아졌지만 민주노총의 대기업 사업장에서도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투쟁을 비난하고 고립시키는 반노동자적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많았습니다. 오늘날 노조에서는 조합원들만의 협소한 이해에 사로잡힌 조합주의가 팽패해 있습니다. 삼성노조뿐 아니라 모든 노동조합이 노조의 본래의 목적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가지고 “사회적·정치적 운동을 지지하고, 자신을 모든 계급의 전위”로 사고하는 계급의식적이고 정치적 노조로 발전해야 합니다.

기업의 주인은 생산의 주역인 노동자가 되어야 합니다. 삼성재벌 기생충들이 대를 이어 재벌총수가 되고 노동의 성과를 가로채 사회적 부와 권력을 독차지하는 불평등 착취사회를 분쇄하고 노동자들이 기업과 공장을 집단적으로 운용하는 노동해방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의 성과를 가지고 해당 노동자들과 사회 전체의 정신적ㆍ물질적ㆍ문화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삼성노조 파업을 둘러싼 논란을 보며 모든 노조가, 모든 노동자들이 배워야할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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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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