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조에 대한 중상비방에 반대하며
삼성노조가 다음 달 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언론의 악선전이 극에 달하고 있다. 심지어 평소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조차도 삼성노조의 파업을 비난하는데 동참하고 있다.
“이 가뭄에 웬 파업”, “월드컵에 웬 파업” 같이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언론의 그야말로 창의적이기조차한 악의적 비난이 쏟아지지 않은 적이 없지만 이번에도 새로운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언론에서는 삼성전자지부장이 파업을 앞두고 동남아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삼성노조와 파업을 비난하고 있다.
노조간부가 범죄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파업을 앞두고 가족여행을 하는 걸 비난하는 건 사생활 침해고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파업을 앞둔 노조간부의 해외여행을 비난하는 언론이 단 한 번만이라도 공장에서 한달씩 먹고 자고 농성을 하면서 열성적으로 파업을 조직하는 대개의 노조간부들을 칭찬한 적이 있었는가? 노조간부의 도덕성을 가지고 비난할라치면 후자의 활동가들의 헌신성을 찬양하고 상을 줘야 하지 않겠나.
언론과 여기에 동조하는 이들은 삼성노조가 이기적으로 성과분배를 가지고 파업을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언론과 그 동조자들이 단 한 번만이라도 노동자들이 자신의 직접적인 경제적 요구를 넘어 정치투쟁을 하는 것에 대해 칭찬을 한 적이 있는가?
칭찬은 고사하고 이때에도 정치파업, 정치투쟁은 불법이라고 악을 쓰며 비난하지 않았던가?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상 파업은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며 정치적 목적의 파업은 불법으로 간주하지 않는가?
삼성노조의 성과분배 요구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적 요구 투쟁이다. 정치투쟁을 그토록 비난하던 자들이 합법적인 투쟁을 하는 노조에 대해 비난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는가.
진보적이라 자처하는 이들 중 삼성노조의 파업을 비난하는 이들은 삼성노동자들이 자신의 이기적인 요구에만 매달린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은 단선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보통은 자신의 직접적인 이해에서 출발하여 투쟁을 통해 더 높은 정치의식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맑스주의 변증법적 인식론에서는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을 통일적으로 보라고 이야기한다. 실천을 통해 더 높은 인식으로 나아간다고 이야기한다. 감성적 인식에 비해 이성적 인식이 더 높은 수준의 인식이라 하더라도 낮은 수준의 감성적 인식을 부정하지 않는다. 낮은 수준의 감성적 인식은 생생하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것을 통해 얻어지는 인식으로 높은 수준의 이성적 인식으로 나아가는 가교다.
그런데 언론에서 삼성노동자들이 투쟁 결의대회에서 이재용 사진을 짓밟고 지나가는 것을 가지고도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은 노동자 의식의 발전적 면모를 보여준다.
이 장면은 노동자들이 애사주의, 충성심 같이 자본이 유포한 노예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삼성 재벌 총수 이재용 덕분에 먹고 산다가 아니라 자본가가 자신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대상임을 인식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착취사회에 대한 인식으로까지 올라간 것은 아니나 삼성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삼성노동자들은 이번 파업투쟁을 해나가면서 이 사회 언론이 얼마나 편향되게 자본을 옹호하는지, 정권이 누구 편인지, 누가 자신들을 옹호하는 속속 알게 되면서 정치의식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삼성노동자들이 자신의 직접적인 요구를 넘어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를 내걸고 사회적ㆍ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사업장 밖, 심지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란침략전쟁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높은 수준의 국제주의적 인식을 요구한다고 해서 직접적인 요구투쟁을 부정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기본적인 경제적 요구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면서 더 높은 인식과 실천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삼성노동자들에 대한 비난은 자본과 언론의 노조에 대한 비난에 동조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삼성노조의 파업에 대한 언론과 그 동조자들의 비난은 모두 그 이유가 무엇이든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비롯한 노동3권을 부정하는 행위다.
삼성노조 파업으로 예상되는 손실이 얼마며, 반도체 산업 타격이 얼마며 하는 따위의 비난은 역으로 삼성노동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생산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 반증하는 것이다.
삼성노동자들이 성과분배 액수가 얼마인지, 그 배분 요구 수준이 높다든지 하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모두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자본의 이해에 봉사하는 것이다.
삼성노동자들의 성과배분 투쟁은 현대차나 기아차 등에서 보듯, 하청노동자들을 일깨울 것이며 이들을 투쟁으로 나서게 한다. 이로써 삼성노동자들의 성과분배가 늘어난다면 자본의 이윤은 줄어들겠지만 사회 전체의 분배가 늘어나는 효과를 가져온다.
오늘날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이 강요되고 있지만 사회전체적으로 삶과 생활조건이 개선된 것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니었다면 주5일 노동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선파업 후교섭의 전투적인 투쟁과 정권과의 격렬한 정치투쟁은 20%대 임금인상을 쟁취하게 하고 이것이 사회전반의 성과로 나타나면서 저임금 체제를 깨는 데 공헌하였다. 현대, 기아, 대우의 대기업노조 투쟁은 자본에 대한 사회 전체의 분배 몫을 높였고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를 높였다. 무노조 삼성에서는 무노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대기업 노동자들의 성과를 부분 자사에도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노동자들의 투쟁 결실에 대해 삼성자본은 하청노동자들에게 이를 일시적 전가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투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보편적 혜택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삼성전자에서 노동자들이 무권리 상태에서 백혈병으로 60여 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피해를 입기조차 했다. 이는 무노조 삼성을 고집하며 노동자들의 작업조건은 무시하며 이윤에 혈안이 된 삼성자본가들의 사회적 타살행위의 결과였다.
삼성 노동자들이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자본의 사회적 타살을 방치하지 말고 싸워나가길 바란다.
삼성 노동자들이 앞으로 자신의 직접적인 요구뿐만 아니라 사업장 밖의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까지 관심을 가지고 싸우길 바란다.
삼성노동자들의 파업 승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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