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대작들의 “시기적절하게 벌이는 쇼쇼쇼”(김남주) 광주항쟁 46주년과 국가보안법

어제는 광주항쟁 46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다. 광주항쟁 46주년은 광주학살 46주년이기도 합니다.

이번 광주항쟁 기념식은 5·18 최후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을 복원하여 국가기념식을 치렀습니다.

이 날 행사는 ‘오월, 다시 광장을 품다’를 주제로 열렸습니다.

이 행사에서는 김남주 시인의 시 학살과 바람 지는 풀잎으로 오월 노래 말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등 시 일부가 낭독되기도 했습니다.

권력자들이 폭동으로 불리던 광주를 합법화를 넘어 헌법에 5.18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하고 국가기념식에서 혁명시인 김남주의 시가 울려퍼지고…

이제 확연하게 만개된 민주주의를 만끽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까?

그런데 이 활짝핀 민주주의의 시대 뒤의 실제 현실을 보면 ‘오월, 다시 광장을 품다’는 기념식 제목은 ‘오월, 위선과 기만을 품다’로 제목을 다시 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

46주년 광주 국가기념식에서 김남주 시 일부가 불려졌지만, 분단과 통일, 혁명을 노래한 김남주 시의 진짜 내용은 함구하였습니다. 김남주 시가 불려졌던 시대의 아픔과 고통, 모순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이러한 문제들은 철저하게 감춰지고 있습니다. 시인의 표현대로 하면 고관대작들의 “시기적절하게 벌이는 쇼쇼쇼”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김남주 시인은 ‘학살1’에서 신군부의 잔인한 학살을 다음과 같이 고발했습니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대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둔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김남주 시인은 학살 직전에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함으로써 신군부 학살 배후가 미국이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학살2’에서는 “바다 건너 저편 아메리카에서는 학살의 원격 조정자들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며 보다 직설적으로 미국의 개입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전두환 신군부가 자행한 광주학살은 46주년이 되는 지금도 우리를 분노에 휩싸이고 공포에 빠지게 합니다.

광주학살 국가폭력은 간첩단 조작 사건으로 예고되고 있었습니다. 광주학살 4개월 전인 1980년 1월 19일, 중앙정보부는 진도간첩단 사건을 조작하여 발표하였습니다. 중앙정보부는 이 사건 조작을 위해 사건 연루자들을 잔인하게 고문했습니다. 광주학살을 전후한 이러한 간첩단 조작 사건으로 이러한 광주항쟁에 대해 “용공세력의 폭동”이라는 터무니없는 악선전이 가능해졌고 오늘날까지 5.18 “북한개입설”이 유포되게 되었습니다.

광주항쟁은 국가폭력에 맞서는 민중의 저항입니다. 광주항쟁이 국가기념식이 되고 이 기념식에서 김남주 시가 울려퍼지고 헌법정신에 담자고 하는 상황에서 국가폭력의 대표 상징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남아 국가폭력을 자행하는 흉기가 되고 있습니다. 광주정신을 헌법에 담고 국가가 김남주를 공식 호명하는 상황에서도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들이 감옥에서, 법원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김남주 시인은 첫 1973년 박정희 유신 정권을 폭록한 ‘함성’ 사건으로 8개월 간 옥살이를 한데 이어 1979년에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 받고 9년 3개월 형을 살고 석방되었습니다.

김남주 시인의 시 중에는 국가보안법을 다룬 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일부를 낭독해 보겠습니다.

법 좋아하네

김남주

즈그들에게 이로우면
반국가단체도 민족공동체가 되고
우리들에게 이로우면
민족공동체도 반국가단체가 되고
즈그들은 갔다 와서
쥐도 새도 모르게 갔다 와서
들통이라도 나면
통치권의 행사가 되고
우리들이 갔다 와서
떳떳하게 갔다 와서
하늘 아래 밝히면
잠입에다 탈출죄가 되고
즈그들은 무슨 꿍꿍이속이 있어서
그를 주석이라 부르고 그것이 말썽이 나면
외교상의 관례가 되고
우리들이 아무 속셈도 없이
그를 주석이라 부르면
고무에다 찬양에다 동조죄가 되고
이게 법이지요
목에 걸면 그것은
부자들에게는 목걸이가 되고
가난뱅이들에게는 밧줄이 되지요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김남주

당신이 걷다 넘어지고 마는
미팔군 병사의 군화에도 있고
당신이 가다 부닥치고야 마는
입산금지의 붉은 팻말에도 있다
가까이는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짖어대는
네 이웃집 강아지의 주둥이에도 있고
멀리는
그 입에 물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죄 안 짓고 혼줄 나는 억울한 넋들에도 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낮게는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졸라 맨 허리에도 있고
제 노동을 팔아
한 몫의 인간이고자 고개 쳐들면
결정적으로 꺾이고 마는 노동자의
휘여진 등에도 있다
높게는
그 허리 위에 거재(巨財)를 쌓아올려
도적도 얼씬 못하게 가시철망을 두른
부자들의 담벼락에도 있고
그들과 한패가 되어 심심찮게
시기적절하게 벌이는 쇼쇼쇼
고관대작들의 평화통일 제의의 축제에도 있다
뿐이랴 삼팔선은
나라 밖에도 있다 바다 건너
원격조종의 나라 아메리카에도 있고
그들이 보낸 구호물자 속의 사탕에도 밀가루에도
달라의 이면에도 있고 자유를
혼란으로 바꿔치기 하고 동포여 동포여
소리치며 질서의 이름으로
한강을 도강(渡江)하는 미국산 탱크에도 있다
나라가 온통
피묻은 자유로 몸부림치는 창살
삼팔선은 감옥의 담에도 있고 침묵의 벽
그대 가슴에도 있다

악몽

김남주

밤에 누가 문을 두드리면
내 가슴은 덜컥 내려앉고
내 머리는 순간적으로
체포
감금
고문
재판
투옥의 단어를 기계적으로 떠올린다
아 언제 나는 자유를 노래하고
감시의 눈을 의식함 없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을까
아 언제 나는 노동자를 두둔하고
자본의 보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아 언제 나는 또 하나의 조국을 사랑하고
감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 언제 나는
체포
구금
고문
재판
투옥의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고
시를 쓰고 집회장에 갈 수 있을까
아 언제 나는 언제 나는
집에 돌아와
문 두드리는 소리에 겁을 먹지 않고
밤의 잠자리에서 편히 쉴 수 있을까

국가보안법 제정 78주년이 되는 2026년에도 국가보안법은 우리에게 악몽이 되고 있습니다. 석권호는 9년 3월을 복역한 김남주와 비슷하게 9년 6월 형을 선고 받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수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자본을 대변하는 폭력의 집행위원회가 되어 박정희가 만든 파업파괴법, 긴급조정권으로 협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구속자를 감옥에 두고 김남주를 입에 담는 “시기적절하게 벌이는 쇼쇼쇼”를 중단하라

국가보안법을 존속시키며 헌법에 광주정신 담는다는 “시기적절하게 벌이는 쇼쇼쇼”를 중단하라

이 기사를 총 7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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