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는 이치’에 대해
이범주
이 나라 경제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간다. 다른 나라들도 다 그런가. 주로 미국과 친한(실은 미국에 예속된) 나라들이 그렇다.
현재 한국 경제의 직접적인 위기는 바이든이 와서 현대자동자, 삼성전자, SK, 한화, LG 등에 보조금 지급을 미끼로 미국에 현지공장 지을 것 강요하고 (바이든의 요구받은) 윤석열이 가치외교 운운하며 반도체 제품의 중국시장 판매를 제한하고 중국 현지공장에 대한 추가투자를 막으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안다. 윤석열이 러시아에 적대하며 현대자동차로 하여금 무려 1조 가치를 갖는 현지 공장을 단돈 15만원 받고 매각하도록 강요한 것도 당연히 주요한 원인으로 되었다. 요컨대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미국의 요구에 굴종, 추종하면서 중국, 러시아 같은 주요 시장을 자해적으로 포기하면서부터 벌어진 일이라 할 수 있다. 국제수지가 즉시 악화되고 중국과 거래하던 숱한 기업들이 폭망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문재인 때만 해도 한국경제 좋았는데 尹 때문에 이리 됐다며 尹 즉시 몰아내고 정권교체 하자고 주장한(실은 민주당의 이재명에게 정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각해 볼 일이다. 과연 나라운영 잘 했다는 문재인이나 현재 민주당 당대표 자리에 있는 이재명이 지금 윤석열 자리에 있다면 달랐을까? 정녕?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바이든이 와서 이 나라 대기업들로 하여금 미국 현지에 공장 지을 것 강요하고 (가치동맹 운운하며) 반도체 산업의 對中투자를 막았을 때, 이재명 뿐 아니라 어떤 민주당 인사도 이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것 전혀 보지 못했다. 그런 태도를 취했던 이재명이 지금 윤석열의 자리에 있다고 해서 달리 운신할 수 있을까. 그도, 尹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한미동맹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고 종북은 질병이라 비웃으며 북에 적대했던 사람이다. 언론에서도 문제삼지 않았고 일반 국민들도 대부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말하자면 미국이 강요하고 이 나라 정부가 받아들여 진행하는 것이라면, 그게 설령 극히 자해적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사람들은 문제삼거나 비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미국 추종에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몰빵을 한 셈이다. 북 군인들이 러시아에 파병되었다는 뻔한 거짓이 지금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황에 무지한 것, 북을 혐오하고 러시아와 중국에 대해 심정적 적대감 갖는 것도 크게 보면 미국 추종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 사모하(고 때로 두려워하)며 추종해 온 미국은 지금 어떻게 움직이는가.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일관되게 추구했고 지금의 윤석열도 입버릇처럼 말하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그럴 뿐 아니라 곧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트럼프는 (거의 한국을 왕따시키다시피 하며) 북과의 접촉을 준비하고 있다는 풍문이 들린다. 북의 핵을 기정사실로 인정한다는 뜻이겠다. 또한 바이든이 약속했던 현지투자 공장에 대한 보조금 지급 약속은 트럼프 정권 등장하면서 즉시 파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 나라 대표적인 재벌기업들, 큰일 났다.
우리가 그렇게 추종해 온 미국은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가. 그들은 우리를, 필요하면 단물 나올 때까지 씹다가 단물 빠지면 뱉어 버리는 껌 정도로 취급하는 거 아닌가. 맹목으로 추종해 온 우리의 모습이 초라하고 비참하다.
그래도 대부분 사람들에게 미국은 아직도 성역에 속한 존재다. 심지어 한때 진보 물을 먹었다는 이들조차 ‘반미’이야기 나오면 “그건 북이 주장하는 바 아니냐”며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난 개인적으로 현재 한국 경제의 극심한 위기가 이런 일반적 풍토에서 나온 필연적 결과라고 생각한다. 정치, 언론, 학계…거의 아무도 문제제기 하지 않았다. 반대해 봤자 어차피 안 될 거라는 분위기에서 그냥 그렇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말은 진리다. 흥할 때의 칼은 흥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망하는 시점에서의 칼은 자신을 해치게 되었는데도 아는 게 칼밖에 없으니 그 칼로 인해 망한다는 이치다. 동일한 논리가 우리에게는 이렇게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한때 잠깐 미국으로 흥한 적 있었으나 결국 미국으로 망하게 생겼다.”
한때 걸레였더라도 반성과 숙고를 거듭하여 행주로 거듭나고, 한때 절망이었더라도 뼈를 깎는 노력 통해 희망으로 갱생하며, 시효를 상실한 편견은 부단한 학습과 성찰을 통해 제게 씌워진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 비록 태어날 때는 (신)식민지로 출발했어도 그리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간 적잖이 고통을 겪었으면 자주국으로 변신했어야 하는 거다. 그러나, 내가 보건대, 한번 걸레는 영원한 걸레였고, 절망은 스스로 반성한 적이 없으며, 고집과 편견의 껍데기를 깨버린 늙은이는 없었다.
결국 미국으로 (아주 잠깐…그것도 겉으로만) 흥했다가 미국으로 망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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