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언제나 경제를 충실히 쫓아가는 것이다”라는 경제주의자들과 21세기 신종 경제주의자들

[맑스주의 고전읽기] 
레닌 서거 100주기 레닌 저작 집중 읽기3
《무엇을 할 것인가?》

세미나 
일시
2024년 7월 28일 일요일 밤9시
* 시간을 밤 9시로 옮겼습니다.

범위
2장 대중의 자생성과 사회민주주의당의 의식성

이번 장은 레닌의 이 저작 중 지금까지도 가장 논란이 되는 장입니다. 특히 오늘날 유행하는 무정부주의적 조류들은 대중의 자생성, 자발성을 강조하며 레닌의 자발성을 무시하며 의식성을 강조했다고 비난합니다.

무정부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세력들, 실은 유사 무정부주의자들도 레닌이 강조한 “사회주의 의식은 [외부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에 도입된 것이지 그 투쟁으로부터 [자생적으로] 자라 나온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을 근거로 레닌을 비판합니다. 이 구절은 당시는 혁명적 사회주의자였던 카우츠키의 글을 인용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외부로부터의 테제” 입니다. 위너 본펠드는 레닌의 저작과 같은 제목의 책인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이를 이렇게 비판합니다.

“하나의 ‘진정한 계급투쟁’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사이에 계급의식을 창출할 전문가들(당)의 조직이 있어야만 한다. … 무엇을 할 것인가?에 포함된 고찰들은 이 중심적인 논점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 계급의식은 ‘외부로부터’ 노동운동 속으로 온다는 의견뿐만 아니라 ‘진정한’ 계급투쟁은 당에 집중된다는 생각은 객체로부터 주체를 분리시키는, 그리하여 자본을 사물로서 생각하게 되는, 요컨대 계급투쟁에 대한 물화된 관념을 생산하는 이론화에 속한다.”(워너 본펠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러나 레닌은 단 한 번도 대중의 자발성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중의 자발성은 사회주의 의식 형성의 필수적인 조건이기도 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현재의 운동이 갖는 강점은 대중의(주요하게는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의) 각성이고 약점은 지도자인 혁명가들의 창발성과 의식성의 부족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러시아 사회 민주주의 당 안에 존재하는 위기의 주요 원인이 대중의 자생적 고양에 미치지 못하는 지도자들(“이데올로그들”, 혁명가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후진성에 있다고 판단한 우리가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이처럼 레닌이 비판한 것은 대중운동의 자발성이 아닙니다. 당시 레닌은 1800년대 후반 러시아에서 대중들의 타오르는 투쟁에 뒤쳐져 차르(황제) 체제 타도라는 전면적인 정치투쟁의 과제를 외면하고 경제주의에 빠져 있고 심지어 그것을 미덕으로 격상시켜 이론화 하고 당건설을 회피하는 혁명가들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이후 레닌은 당이 무기력한 가운데 1905년 혁명 이후에서 보여준 대중의 역동성을 보고 “대중은 자생적으로 혁명적이다”라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자발성과 역동성에 대한 신뢰를 가진다는 것이 대중이 자발적으로 사회주의 정치의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레닌이 말한 진정한 계급의식(사회주의)이 외부로부터 주어져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노동자들이 구체적인, 게다가 항상 절박한(당면한) 정치적 사건들과 사례들을 통해 다른 사회 계급들의 지적, 도덕적, 정치적 생활이 표출되는 모든 현상에 걸쳐 그것들 각각을 관찰하는 법을 익히지 않는다면, 그리고 모든 계급, 계층, 집단의 생활과 활동의 모든 측면에 대해 유물론적 분석과 유물론적 평가를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노동자계급의 의식은 진정한 정치의식이 될 수 없다.(같은 책)

노동자들이 자생적인 투쟁은 사회주의 의식으로 발전할 풍부한 조건이지만 이것만으로 사회주의 의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회주의 사상은 투쟁을 통해 겪은 풍부한 경험과 자본에 대한 분노,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깊은 이론적 학습과 사색을 바탕으로 의식적으로 추구해야 비로소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직접적인 문제(자신의 생존권적 문제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 역사적 문제, 세계와 자연의 문제까지 계급적 관점으로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천 재인식 더 높은 실천을 할 때 노동자들의 의식은 사회주의 계급의식으로 발전할 수 있고 이럴 때만이 기만적이고 무능한 부르주아와 그 복역자들을 물리치고 이 사회를 개조하고 통치하는 진정한 지배자, 통치자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사회의 분단문제, 제국주의 미국의 문제를 의식하고 국가보안법 반대, 반미반제 투쟁에 전면에 나설 때 이를 진정한 역사의식, 계급의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배계급이 조장한 조선(북)에 대한 반북ㆍ반공주의적 인식과 종북몰이에 맞서 자주적인 인식을 갖춰야 합니다.

계급성이라는 미명 하에 노동자들의 주의, 관심을 협소하게 경제주의적 관점으로 가두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두고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반북의식을 조장하고 분단적 인식을 계급성으로 강조하는 악랄한 반북주의자들은 실은 반공 부르주아, 제국주의자들의 사상적 노예, 국가보안법의 노예에 불과합니다. 반북은 반공입니다. 이 자명한 원리를 부정하는 반북ㆍ반공 진보, 반북ㆍ반공 사회주의자들은 분단에 기생하는 부르주아와 제국주의의 대리자들입니다.

계급성이라는 미명 하에 자주성이라는 관점을 배척하여 특히 국제관계에서 반미자주의 진보성을 부정하고 양비론, 중립주의를 유포하는 것도 위험한 사고이자 경계해야할 인식입니다.

레닌은 또한 맑스의 “경제적 토대 위에 상부구조가 위치한다”는 맑스주의의 사적유물론의 중심 테제를 “정치는 언제나 경제를 충실히 쫓아가는 것이다”, “정치선동은 경제투쟁을 위한 선동의 상부구조여야 하고 이 투쟁의 토양 위에서 자라 나와 그것을 좇아가야 한다”는 경제주의자들의 인식을 경제주의적 유물론자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경제주의적 유물론자들의 신 경향이 출현했는데 이들은 제국주의의 경제적 기초인 독점만으로 고찰하여 독점을 가진 나라는 모두 제국주의라며 (신)식민지성을 부정하고 그럼으로써 민족억압과 지배ㆍ예속을 부정하여 민족해방의 과제, 자주성의 과제를 부정하고, 제국주의의 정치적 본질인 침략성, 야수성, 폭력성, 지배성과 분리하여 제국주의를 왜곡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신흥)제국주의로 간주하여 양비론과 중립주의를 유포하며 미제를 비롯한 서방제국주의자들과의 투쟁을 혼돈, 회피합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의 원인에 대해 역사적으로, 구체적으로 고찰하지 않고 관습적으로, 지적ㆍ정치적 게으름으로 서방 제국주의와 러시아 제국주의와의 시장, 원료, 노동력 쟁탈전 정도로 간주합니다.

경제주의자들이 21세기 형으로 진화, 발전, 실제로는 맑스주의의 속류자, 비속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레닌은 여기서 “노동운동의 이러한 강인한 생명력은 노동자들이 지도자들의 손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탈취하여 마침내 스스로 그것을 움켜쥐게 되는 까닭에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경제주의자들의 인식을 비판하여 이러한 무정부주의적, 비변증법적 인식을 비판합니다.

오늘날 유행하는 무정부주의자들은 지도자와 대중, 지도와 피지도, 자생성과 의식성, 중앙집중과 대중참여, 국유화와 사회화, 일국에서의 혁명과 세계혁명을 형이상학적으로 대립시키는 흐름들이 넘쳐나는데 이는 위의 경제주의자들의 사고방식과 같은 것입니다.

노파심에서 한 마디 덧붙이면, 나날이 지도 받지 않으면서 누구를 지도할 것이며, 신뢰를 주지 않고 어떻게 신뢰 받을 것이며, 인민에게 복무하지 않고 물떠난 물고기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링크
참가 Zoom 회의
https://us06web.zoom.us/j/82786913877?pwd=5znR5SS8wTuMCbU93a4G1zqKVSb9gI.1

회의 ID: 827 8691 3877
암호: 379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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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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