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투쟁을 강조하고 혁명을 실현해가는 권력의 상을 창조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두 가지 전술》은 큰 의의가 있다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 당의 두 가지 전술》
[맑스주의 고전읽기] 레닌 서거 100주기 레닌 저작 집중 읽기2

일시
2024년 5월 12일(일) 오전 9시
* 오전 9시로 시간 변경

범위
6. 일관성 없는 부르주아지와의 투쟁에서 손이 묶인 처지가 될 위험성은 어떤 쪽에서 프롤레타리아를 위협하는가?

7. “정부에서 보수주의자들을 제거하는” 전술

8. 해방주의와 신불꽃주의

9. 혁명기에 극단적 반대파의 당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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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ID: 871 5804 7476
암호: 226973

당시에 진보세력 내에서 러시아 혁명의 당면 목표가 황제 체제, 즉 봉건 짜르체제를 타파(타도 보다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하는 것이라는 것은 일치했다.

당시 레닌과 볼셰비키도 러시아혁명이 부르주아적 성격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레닌은 1917년 2월 혁명 이후에 부르주아적 임시정부가 빵과 토지와 평화라는 인민의 열망을 외면하자 “모든 권력을 쏘비에트로”라는 구호를 내세울때도 “사회주의를 즉각 도입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볼셰비키가 주도해서 쏘비에트가 권력을 잡는다면 핵심 산업 국유화, 은행 국유화, 짜르와 러시아정교회가 가진 토지를 몰수하는 사회주의 조치를 일부 도입한다 하더라도 경자유전처럼 여전히 사적소유를 보전하는 농민의 토지 분배를 당면 목표로 설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당시 러시아에서 부르주아 혁명은 “그 자체로는 자본주의의 훼손, 부르주아지의 훼손을 의미하지 않을 뿐더러, 반대로 그런 개혁이 자본주의의 폭넓고 급속한 발전, 아시아적 발전이 아닌 유럽적 발전의 기반을 처음으로 진정하게 닦을 것이며 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처음으로 가능하게 만들 것임을 의미한다”고 레닌은 주장했다.

멘셰비키는 짜리즘을 타도하는 문제 앞에서도 불철저하고 타협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혁명의 객관적 성격으로부터 이 혁명은 부르주아가 권력을 잡는 혁명이고 프롤레타리아당은 철저한 야당으로 머물러서 자본주의 수립과 발전으로 계급투쟁이 벌어지고 자본주의가 성숙해지면 미래 어느 날에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에 입각해 1917년 2월 혁명 이후에 혁명적 조치의 실현 보다는 부르주아와 연립정권 유지에 집착하고 심지어 10월 혁명을 조산혁명이라면서 반대하고 반혁명 세력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레닌은 “그 자체로는” 자본주의 상품 생산 발전을 표현하고  부르주아 지배를 훼손하지 않는다 해도 객관주의자, 진화론자가 아니었다. “그 자체”만이 아닌 혁명적 노선과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토지분배는 당시 절대 다수 인구를 차지하는 농민의 사적소유를 보존하는 조치였지만 부르주아는 그 부르주아적 요구조차 외면했을 뿐만 아니라 혁명의 발전과 심화, 빈농의 요구와 열망 등으로 인해 집산화로 나아가는 교두보가 되었디.

레닌은 멘셰비키가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범주의 의미와 그 의의를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들의 논법에는 부르주아 혁명은 마치 부르주아지에게 유리한 것만을 제공할 수 있는 그런 혁명일 것이라는 생각이 항상 엿보인다”라고 비판했다.

레닌은 부르주아 혁명을 단호하고 철저하고 일관되게 수행한다면 군주제의 잔재, 농노제의 잔재 등 봉건적 억압과 예속이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며 노동자의 처지가 개선되고 민주주의가 광범위하게 보장되며 이를 통해 “사회주의를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투쟁이 한층 더 보장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점에서 “부르주아 혁명이 어떤 의미에서는 부르주아지보다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더 유리하다는 명제 또한 이 결론에서 도출된다”고 주장했다.

짜리즘을 타도하고 이 혁명적 과제를 실현해 나가려면 거기에 맞는 권력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이다.

레닌이 이 혁명의 급진적, 인민적 성격을 강조하고, 러시아혁명 이후에 열린 국제공산당(코민테른) 회합에서 이러한 혁명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제기가 나오고 이후 다른 나라에서 실제 혁명적 권력이 나오고 혁명이 실현되기도 하면서 이 혁명은 반제 민주주의 혁명, 신민주주의 혁명, 인민혁명, 민족민주혁명, 민족해방혁명, 진보적 민주주의, 인민전선 등 각 나라만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에 따라 다양하게 불렸다.

1905년 러시아 1차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레닌이 제시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라는 권력의 상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이후 역사적으로는 다양한 형태로 실현됐다.

우경 기회주의와의 투쟁을 부각시켰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혁명 실현의 현실적 조건, 거기에 맞는 권력의 성격을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두 가지 전술》은 역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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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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