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전환”운동의 공통 합의는 없는가? ㅡ 계급, 착취, 민족, 민주주의, 해방을 전면에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운동들마다 자신의 의제가 있고, 그에 따라 마주하고 있는 모순과 체제의 성격이 다르다. 가령 청소년운동은 나이주의나 능력주의, 승자독식의 경쟁교육 체제에 맞서 행동한다.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운동은 가부장제와 성차별, 혐오에 맞서 싸운다. 도시빈민들의 주거권 운동은 소유권 중심의 사회, 부동산 투기 체제의 모순에 도전한다. 기후정의운동은 끊임없이 채굴하고 폐기하는 탄소자본주의에 저항한다. 노동운동은 장시간 노동과 불안정 노동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 노동체제에 맞서 투쟁한다. 이처럼 여러 사회운동은 제각각 명명된 모순에 맞서 싸우지만, 이 모순들은 사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체제의 일부이거나 그것이 낳은 일종의 표현이다. 우리는 그것을 단순하게 자본주의 체제라고 부르기도 하고, 가부장제적 자본주의 혹은 자본세(Capitalocene)2)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체제는 기후위기와 불평등, 돌봄 위기, 민주주의 붕괴 등을 야기하면서 끊임없이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초과해 이윤을 추구한다
이 체제에 대한 여러 운동들의 비판은 사적 소유에 기반한 ‘자본에 의한 노동 착취’ 문제의 중요성을 수긍하면서도 비단 이것에 국한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이것으로만 다양한 사회 문제의 원인을 설명할 때 초래될 수 있는 일면적이고 환원주의적으로 접근하게 되는 위험을 경계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경제 영역만이 아니라, 사회의 재생산과 생태 등 비경제적인 영역까지 포괄하기 때문에 ‘제도화 된 사회질서’를 통해 구현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고자 하는 여러 사회운동들은 과거의 자본주의 비판으로는 오늘날의 운동이 형성한 맥락과 문제의식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고 여길 수 있다. ‘자본주의’라는 이름 앞에 이런저런 수식어들이 붙는 것은 이 때문이다.([동향2] 체제전환운동포럼은 무엇을 위해 기획됐고 어디로 향하고 있나, 홍명교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조직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2024-03-01)

“‘체제전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체계적이고 합의된 설명은 부재하다.”고 하지만 몇 가지 (암묵적인) 합의는 분명하다.

혁명이라는 목표와 수단을 한사코 배제한다는 모종의 합의다.

레닌은 “혁명의 근본문제는 국가권력의 문제다”라고 했다.

이는 사적소유라는 자본주의 착취체제를 분쇄하고 그 체제를 폭력으로 비호하는 국가권력을 타도하고 노동자ㆍ인민의 집단적 소유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혁명의 보편적인 문제를 “일면적이고 환원주의적” 접근이라면서 한사코 부정하거나 짐짓 외면하고 각 의제들을 나열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체제전환”운동이다.

이 운동은 또한 특수하게는 이 사회의 역사적 모순, 분단과 미제국주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공통의 합의지점이 있다.

민주주의를 말하되, 국가보안법 철폐, 이 사회의 지배적, 폭력적 인식인 반공주의, 종북몰이에 맞서는 투쟁을 전면화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착취체제, 식민지해방 투쟁을 통해 노동자ㆍ인민의 권력을 세우고 중앙집중 계획을 세우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쏘련과 동유럽의 현실 사회주의, 조선과 쿠바 같은 현존사회주의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부정적이다.

이 체제전환 운동은 인민대중에 의거하여, 인민대중에 복무하고 인민대중을 이끌어가는 당운동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 운동은 인민대중과 긴밀하게 결합해 있으면서도 인민대중의 구심적 역할을 하는 지도자라는 존재, 지도자의 역할과 임무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 운동은 계급투쟁, 이 투쟁을 이끌고 새 사회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중심성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 운동은 통일전선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 운동은 거대담론, 사회와 역사에 대한 총체적 인식에 대해 부정적이다.

“68혁명은 바로 이런 차이들을 대상으로 한 포스트-근대적인 혁명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력을 장악해 평등자유를 선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보다는 비정치적으로 간주되곤 했던 일상적인 차원의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새롭게 폭로하고 드러내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1970년대에 미국 쪽에서 형성된 페미니즘의 유명한 구호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였다. 일상의 정치화를 주장한 이 구호는 프랑스의 페미니즘, 더 나아가 68혁명 자체가 공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드골의 복귀로 종결된 ‘표면적 실패’ 뒤에도 68혁명이 다양한 사회운동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사회 전체의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내게 된 것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최원 철학자, 글로벌이슈 | 프랑스 68혁명 50년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표면적 실패’ 뒤에도 혁명은 계속됐다, 신동아, 2018-06-13)

이처럼 “체제 전환 운동”과 “정치권력을 장악해 평등자유를 선포하는 방식”을 부정내지 외면하고 “비정치적으로 간주되곤 했던 일상적인 차원의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새롭게 폭로하고 드러내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신좌파 다원주의 운동은 유사한 인식, 방식,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운동은 서구에서는 프랑스 68’혁명’ 이후 1970년대부터, 한국에서는 1990년대 초 쏘비에트권 해체와 조선의 고난의 행군 이후 정치적 전망을 상실하면서 전격 대두되고 지금 만연한 신좌파 다원주의 운동의 일종이다.

이른바 “옛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았”(홍명교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조직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다는 주장처럼, 반자본주의적이나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권력을 지향하지 않는다.

체제전환 운동이 아니라 혁명운동이어야 한다.
(범)무정부주의 운동이 아니라 정치혁명, 계급투쟁, 민족해방 투쟁, 급진적 민주주의 투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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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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