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죄송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애달픈 회고와 김명희 선생의 한 생의 기억
김명희 선생의 자서전인 “아버지 죄송합니다”를 보고 있다. 좌익활동가셨던 아버지 김수현 선생은 김명희 선생이 어머니 뱃속에 있던 1950년 스물여섯에 집을 나가 지금까지도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지금 살아계시면 100세라고 한다. 김명희 선생은 “전쟁둥이”로 어머니가 피난길에 낳았다.
이 책에서는 “전쟁 중 총소리를 태교로 삼았던” 선생의 삶, 아버지 생사도 알 수 없이 어머니가 자식 둘을 키우며 겪었던 고난의 삶, “빨갱이 자식”으로 손가락질 받을 수밖에 없었던 선생과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의 삶을 회고하고 있다. 이 삶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기도 하다.
이제 75살이 된 김명희 선생은 얼굴도 알 수 없고, 좌익활동을 했다는 사실과 어머니한테 들은 단편적 이야기들로 아버지 삶을 되돌아보고 그리워하면서도 진보적 삶의 태도와 저항정신을 가지고 실천하며 살아 왔던 삶을 회고한다.
특히 1988년 서울지하철노조 2대 위원장 시절과 이후 민주노조 위원장 경험과 1994년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전지협), 철도 민주노조건설 활동 지원과 연대 활동 그리고 무엇 보다 분단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모습에서 얼굴도 알 수 없는 아버지의 삶과 투쟁을 계승하며 한 생을 살아온 선생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명희선생은 노조운동 출신이면서도 (민주)노조에 당신의 인식을 가두지 않고 혁명적 인식으로 정진했다.
선생은 “대한민국에서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세력을 나는 87년 이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진보로 매도되는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지금까지 시행된 국가의 반민주적 정책과 집행을 비판하는 수준이었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혁명적 목표를 갖고 사회근본을 변혁하자는 세력은 보지 못했다.”라고 엄중하게 비판한다.
“아버지 죄송합니다”는 아버지에 대한 애달픈 회고이자 “아버지께 죽음을 불사한 활동으로 뒤를 잇지 못한 불효가 가장 큰 죄”라며 아버지가 추구했던 저항과 혁명적 삶을 살아온 김명희선생의 감명 깊은 한 생의 회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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