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정은 정의당이 만든 정의당의 인격화된 형상이다
중도를 표방한, 실제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의 어디쯤엔가 정치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신당 ‘새로운선택’ 창당에 앞장서고 있는 정의당 의원 류호정의 ‘경우’는 류호정 개인의 타락, 변절, 일탈 행위라 할 수도 있고 잠재된 정치노선, 기회주의적 처세술, 공명심, 출세욕 등이 발현되는 경우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만 보면 어디서든 개인적 타락이나 변절, 일탈행위는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로부터 사태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고 정치적 교훈을 남길 수 없다.
또 하나는 류호정의 최근 행보가 변절과 타락의 일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과거의 정치노선과 행보와는 판이하게 달리 신념이 급격하게 변화한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사태의 진실을 일면적으로 인식하거나 왜곡할 수 있다.
류호정의 행보에 대해 정의당 전국위원회는 만장일치로 류호정의 사퇴와 탈당을 요구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징계를 내리겠다고 하고 있다. 류호정은 자진 탈당을 하면 의원직이 박탈될 것이기에 정의당 탈당을 거부하고 당 내에서 신당 탈당자를 규합하고 있다. 곡절들이 많았지만, ‘진보정당’ 운동사에서 가장 비열하고 뻔뻔하고 안하무인의 작태가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류호정의 행위로부터 정의당은 자유로운가? 오늘날 류호정은 어느 날 갑자기 류호정이 되었는가? 점진적으로 오늘날 류호정이 되었는가? 누가 류호정을 저렇게 추악하게 만들었는가?
무명의 청년 류호정으로부터 오늘날 류호정은 정의당의 정치적 토양 속에서 발굴되고 키워지고 집중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으면서 관심과 비난과 찬사(특히 부르주아 언론의)를 한 몸에 받으면서 실제로는 과장되고 허상이지만 무슨 중요한 인물인 냥 취급 받게 되었다.
류호정의 선택은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는 정의당의 개인주의적 사고와 자유주의, 다원주의 사상노선이 직접적으로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먼저 류호정을 비례 국회의원 1위로 선택한 것은 정의당 자신이다. 특히 심상정 전대표가 직접 류호정을 발탁하여 류호정의 일련의 말과 행보에 정치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정의당은 자신들이 키운 류호정을 통해 지지를 확장하고 류호정의 지지자들을 당의 기반으로 삼았다.
류호정은 경력이 풍부한 것도 진보운동 내에서 업적을 쌓은 것도 계급성이 투철한 것도 아니었다. 류호정이 청년여성층을 대변하는 비례대표라면 20대, 30대, 40대 청년층에서 류호정 보다 훨씬 더 투철한 계급성과 투쟁경력을 가지고, 진보적 업적을 쌓은 이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정의당은 모든 면에서 진보적 비례성이 약하고 정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류호정을 비례대표 1순위에 배치했다.
류호정은 정의당의 인격화된 화신이었다. 류호정은 자신을 비례 1순위로 배치한 정의당의 요구, 노선대로 움직였다. 정의당은 류호정의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소비하고 그 일련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며 지지를 확장해왔다.
그런데 류호정이 국회의원이 된 것은 개인의 역량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민주노총을 비롯한 기층 진보진영의 지지 덕분이다. 그러나 류호정은 기층 진보세력들의 바람, 요구는 안중에도 없이 제멋대로 개인주의적 활동을 하였다. 심지어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진보정당의 의원이면서도 중앙일보 등에 기고하여 반노동자적 발언을 일삼기도 했다.
과거 정운영 선생은 맑스주의 이론가로서 평생 노동계급의 당파적 입장을 대변했다. 그러나 정운영 선생은 말년에 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한 것만으로 변절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중앙일보가 ‘진보진영’ 인사에게 칼럼을 맡기는 것은 이들을 통해 자기들의 본질을 은폐하고 철두철미 자본의 이해, 이데올로기를 관철하기 위함이다. 류호정은 중앙일보를 자신이 이용했다고 하지만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반동적인 거대언론이자 정교한 언론 장치를 가지고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광범위하게 유포하고 있는 기구를 자신이 이용한다고 하는 것은 과대망상이거나 의도적 거짓말이다.
류호정은 결국 자본의 언론에다가 민주노총과 노동자에게 훈계하고 호통치고 가르치는 역할을 자임하며 중앙일보가 원하는 기조대로 ‘저격대원’이 되었다.
중앙일보는 “[나는 저격한다] 중앙일보가 2030과 함께 ‘저격’을 시작합니다”에서 이 칼럼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미래를 이끌어갈 2030세대가 권력을 쥐고 있는 586세대를 비롯해 지금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성세대를 향해 도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저격’ 칼럼을 8월 23일부터 시작합니다. ‘저격’은 구세대가 생물학적 나이를 내세워 2030의 간판만 소비하는 뻔한 글쓰기가 아닙니다. 대신 2030 눈높이에 맞지 않는 비상식적 정책, 또는 구태·구습을 옹호하는 구세대 기득권층을 정면으로 저격하며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낼 예정입니다…
23일(오늘)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의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저격을 시작으로 매주 월~금요일 매일 한 명씩 저격합니다.([나는 저격한다] 중앙일보가 2030과 함께 ‘저격’을 시작합니다, 중앙일보, 2021.08.23)
조선일보는 MZ세대 기획을 통해 계급모순을 은폐하고 피지배계급 내 세대 간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면서 청년층을 반동적인 조선일보 이데올로기로 포섭했다. 조선일보에 포섭된 청년에게 주적은 빈곤과 실업을 조장하는 자본주의도 아니고 자본 뒤의 권력도 아니고 제국주의도 아니라 오로지 투쟁하는 노조였다. 이 조선일보와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MZ노조’가 실제 만들어지기도 했다.
중앙일보 역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인 세대론을 들어 피지배계급를 내부를 세대로 분열시키고 있다. 중앙일보에게 “비상식적 정책, 또는 구태·구습을 옹호하는 구세대 기득권층”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었다. 류호정은 “구세대 기득권층”을 저격하는 신세대 정치인을 자임하며 중앙일보가 바라는 역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손석춘은 중앙일보를 “조중동 신방복합체”라며 규정지으며 중앙일보에 기고하는 류호정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더구나 그는 정의당 국회의원이다. 중앙일보에 글을 써서 민주노총에 그 말을 할 만큼 소통권이 약하지 않다. 자신부터 “우리의 이야기를 알리는 방식”에 성찰을 촉구한다…
기실 중앙일보의 민주노총 죽이기는 집요하다. 조선일보와 달리 세련되고 간교할 뿐이다. 이를테면 김대환을 즐겨 소개한다. 엊그제에도 “정부, 민노총에 끌려 다니니 국가 경영 제대로 되겠나” 제목으로 인터뷰를 실었다. 그를 소개하거나 인용할 때마다 “노무현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라고 쓴다. 민주노총 죽이기 전략에 정의당 국회의원을 동원하는 간교함과 같다. 다만 김대환은 현직 시절 이미 노동계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그가 상임대표를 맡은 일자리연대가 주최한 토론회도 중앙일보는 대서특필했다. 기사에 따르면 그 토론회에선 “노사 갈등을 형벌로 해결하려는 것 자체가 난센스로, 경찰국가나 야경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구태의연한 발상”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과 사용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처벌 등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기사 제목은 “박물관 가야할 노동법/ MZ 반하는 꼰대문화, 정부가 조장”이다.
이쯤이면 젊은 세대와 민주노총을 이간질하려는 “꼰대”들을 누가 즐겨 불러오는지 짚어볼 일이다.
그 신문에 글을 쓰며 민주노총 위원장을 콕 집어 들먹이는 정의당 국회의원의 ‘정치활동’은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정의당 ‘얼굴’ 심상정이 대선 출마에만 몰두할 때가 아니다.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중앙의 민주노총 ‘저격’에 동참한 류호정은 정당한가”, 미디어오늘, 2021-08-23)
손석춘은 “정의당 국회의원의 ‘정치활동’은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정의당 ‘얼굴’ 심상정이 대선 출마에만 몰두할 때가 아니다.”라며 류호정의 반노동 행보가 정의당과 심상정의 책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류호정이 버젓이 민주노총과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저격하며 “조중동 신방복합체”에 복무하는 동안 정의당은 별다른 제지도 하지 않았다. 진보정당 국회의원으로서 제명당할 일을 벌이고 있는데 정의당은 중앙의 스피커를 통해 당을 선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의당 의원들이 조선일보 창립기념일에 가서 축사를 하고 그 태생부터 반북이데올기로 조중동의 찬사를 받고 성장해 왔음을 볼 때 류호정의 행위는 정의당의 입장에서 볼 때 반당행위가 아니라 정당한 당적 행위였다.
이 칼럼으로 모욕감을 느낀 것은 정의당이 아니라 정의당을 진보정당이라고 지지한 민주노총을 비롯한 기층 진보대중조직과 그 구성원들이었다.
결국 류호정은 신당 창당을 선언하면서 ‘주휴수당 폐지’와 ‘직무급제 도입’을 내건 노동 정책을 발표하면서 신당 ‘새로운 선택’이 ‘제3지대’가 아니라 반노동을 공동기치로 하는 기존 양당체제의 부속물이라는 점을 노골화 하고 있다.
제3의 길은 없다. 류호정과 신당 ‘새로운 선택’이 출발부터 그 동안 일부 청년들이 제기한 극우적 주장을 되풀이 하고 ‘주휴수당 폐지’와 ‘직무급제 도입’ 같은 반노동자적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볼 때, 안철수의 ‘중도노선’이 그러하듯, ‘제3지대’가 어디로 나아갈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더욱이 “사회적 대화” 계급협조 노선을 앞장서 주창했던 민주노총 대변인 출신 정호희와 사회진보연대 출신으로서 조선일보에 기고를 했던 한지원, “이른바 진보의 금기를 깨는 새로운 주체세력이 되겠다”며 “산업전환, 연금개혁,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같은 선배세대의 결단 없이는 이뤄낼 수 없는 변화에 동반자가 되어달라”는 조성주와 같은 변절자들, 류호정들이 집결하는 제3지대는 기회주의 회색지대다.
‘노회한’ ‘청년’ 정치인, 형용모순이지만 이 보다 더 류호정의 실제 모습을 표현해 주는 말이 없다. 류호정은 그 동안 자신을 지지 지원해준 당원들의 빗발치는 항의에 대해 ‘타격감 1도 없다’는 뻔뻔함과 담대함을 가지고 있다.
정의당은 그 동안 기층 대중조직의 지지, 지원을 받으면서도 자본의 지원과 부추김을 받고 반북 사민주의 정당으로서의 알량한 지지에 도취되어 기층 진보대중조직이나 노동자·민중 보다는 무정형의 청년, 프롤레타리아 여성 보다는 몰계급적 여성일반에 호소하며 지지를 확장해나가려 했다. 정의당이 기층 노동자·민중의 계급적 기반을 버리고 지지의 외연을 밖으로 확장하는데 있어서 부르주아 언론의 관심과 주목을 끄는 류호정의 행보는 필수적이었다.
철저한 개인주의와 공명심, 엘리트주의로 가득한 기생충 류호정에게는 민중에 의거해 민중에 무한 헌신하기 보다는 기층 조직의 지지가 외연 확장에 걸림돌로 사고하고 다원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정의당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정치적 숙주였다. 규율과 헌신, 집단주의, 조직, 의원에 대한 당적 통제, 민주집중제 등의 가치를 ‘스탈린주의’의 산물로 사고하는 자유주의 정의당에게 류호정의 무규율과 독단과 독선은 미덕이었다.
류호정 사례는 민중과 계급을 버리고 민족을 부정하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거대담론이라고 부정하는 정의당의 자유주의 소부르주아 다원주의 사상이 낳은 극단적 결과물이다. 이러한 소부르주아 노선과 기풍을 가지고 있는 당 속에서 류호정의 출현은 필연이었다.
청년의 역사의 주인이다. 그러나 모든 청년이 진보적 역사의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식과 계급의식을 가지고 인민에 복무하고 역사발전에 헌신하는 순수한 청년만이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정의당은 ‘노회한’ 청년 정치인들을 내세워 진보정치와 역사의 퇴행을 낳았을 뿐이다.
정의당은 “자신이 불러낸 명부(冥府) 세계를 더 이상 제어하지 못하게 된 마법사”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정의당은 그리고 비단 정의당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변화, 변혁시킬 사명을 가지고 있는 진보정당이라면 류호정, 류호정들의 사례를 깊이 있게 통찰하고 이로써 뼈아픈 정치적 교훈을 얻어야 한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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