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레닌주의자인 우리는 왜 자주사상을 공부하는가?(《철학의 정립》세미나 안내)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철학의 정립》세미나 안내

2023년 11월 5일(일요일)
오늘 저녁 7시

범위
제3부

4. 추상적 인간설에 대해
5. 초월적 존재론에 대해
6. 인간의 자주적 요구
7. 사람은 자연에 적응하는 존재가 아니다.
8. 운명개척에서 하는 인간의 결정적 역할

참여 링크
https://us06web.zoom.us/j/87921586848?pwd=fewmXxoUzmkLG1gSapT7pJSP4lPelg.1

회의 ID: 879 2158 6848
암호: 871841

오늘 우리가 공부할 부분은 주로 1980년대 이른바 “맑스레닌주의자들”에 의한 자주사상 비판과 이에 대한 자주사상의 반비판이다.
특히 이 당시 자주사상 비판은 자주사상의 “철학의 근본문제의 전환”이라는 문제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본질적 성격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라는 자주사상의 ‘인간관’에 대한 전면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과연 자주사상에서 말하는 ‘인간관’은 계급성을 가지지 않고, 현실의, 역사적 인간관이 아니라 “추상적 인간관”이고 객관법칙을 떠나 인간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초월적 존재론”인가?
자주사상에 말하는 인간의 개조자적 특성은 맑스레닌주의 인간론에는 없던 내용인가?
오늘도 역시 치열한 토론이 필요한 부분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우리들 앞에는 어떠한 편견과 독단, 외부로부터의 억압과 개입이 없어야 할 것이다.

참고 자료
[민족과 계급5]
조선(북)의 체제 특성과 변혁의 특수성

우리는 왜 북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반공주의 체제가 만든 진리의 억압이라는 철벽을 뚫고 자유롭게 인식하여 진실을 알기 위해서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북의 사회주의 건설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어 우리가 나아갈 정치적 방향을 찾기 위해서이다. 북에 대한 대중적 편견과 왜곡이 존재하는 한, 자본주의 사회가 아무리 문제가 많다 하더라도 대중들이 사회주의를 자신들의 미래와 희망으로 삼을 수는 없다.

맑스주의를 학습하지 않고 그 후대에 나온 사상과 체제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그 깊이 있는 뿌리를 알지 못하고 총체적 인식을 할 수는 없다. 반대로 맑스주의를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 속에서 적용하지 못하고 새로운 사회에 창조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면 그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정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레닌은 이행의 특수한 경로를 찾지 못하면 평생을 가도 혁명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북과의 통일은 180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과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남과 북의 통일은 분단된 민족의 통일이면서 동시에 북이라는 사회주의 체제와의 통일의 문제라는 특수성을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통일은 민족적 단결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변혁의 문제이기도 하다.
북과의 민족적 통일이라는 과제를 전면에 두고 사고하고 실천하지 못하면서 변혁은 있을 수 없다. 반대로 변혁적 목표 없이 통일을 추구한다면 부르주아적 흡수통일론에 경도되거나 정치적 독자성과 자주성을 상실하고 부르주아 정치세력에 끊임없이 경도될 수 있다.

반공주의와 싸우고 민족문제의 고유한 특성을 인식해야 한다. 민족문제와 계급문제는 씨줄과 날줄처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민족문제와 계급문제를 통일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민족문제와 계급문제를 통일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계급문제 일반으로 고유한 문제를 환원시키는 것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반대로 민족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을 상실하고 계급협조주의로 나타나는 것을 배격해야 한다.(《민족과 계급5》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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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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