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계급5-최종편] 조선(북)의 체제 특성과 변혁의 특수성

의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국가보안법은 그저 사상일반, 표현의 자유일반, 학문일반, 양심일반, 진실일반, 교류일반을 억압, 탄압하는 법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은 특히 북과 관련된 사상, 북과 관련된 표현, 북과 관련된 학문, 북과 관련된 양심, 북과 관련된 진실, 북과 관련된 교류를 억압, 탄압하는 법이다. 국가보안법은 이로써 북과의 관련성을 통해 사상과 양심, 학문,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 일반을 탄압, 억압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최근 일련의 국가보안법 탄압 사건을 보더라도 국가보안법은 북과 관련되었다는 회합통신, 북으로부터 받았다는 지령, 북을 고무찬양했다고 하는 저술활동, 북의 지도자의 회고록 출판에 대한 탄압처럼 모두 북이라는 존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반공주의 체제 하에서, 게다가 ‘민주정권’, 심지어 ‘촛불혁명정부’라 자처하는 정권 하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과 국가보안법 탄압이 가중되는 상황 속에서 맑스레닌주의 관점으로 민족문제와 북의 사상과 체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의 검열을 뚫고 심지어 국가보안법의 정치적 탄압을 감수, 각오해야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치적 검열과 탄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여전히 북에 대해 온전하게 인식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점, 북의 사상과 체제를 몇 번의 글로 온전하게 다룰 수 없다는 점 등 다양한 이유 때문에 이 글은 완결적인 글이 될 수 없다. 진리와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도정에 있는 글로 이해했으면 한다.

앞에서 주체사상이 인간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특별하게 강조한 것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이해하지 않은 채 이론적 논란만 벌이면 사변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고 왜곡하게 된다고 했다.

조선에서는 교조주의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이 벌이는 좌경모험주의와 우경투항주의적 책동과 싸우면서 반일 통일전선을 효과적으로 펼치며 인민대중 속에서 반일무장항쟁을 전개하면서 자신들의 독창적인 사상과 전략 및 전술의 기초를 세우고 여기에 기반을 두고 주체사상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주체사상은 북의 사회체제를 만든 철학체계이다. 주체사상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라는 원리는 사상에서 ‘주체’,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라는 사회 전 영역을 지배하는 원칙이 되었다.

사상에서 ‘주체’의 강조는 정치와 경제, 국방, 대외관계 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북의 특수한 조건에 맞는 독특한 혁명이론을 만들어내게 하였다. 정치에서 ‘자주’는 제국주의 체제로부터의 자주성을 절대적인 원칙으로 강조하게 하였고, 심지어 사회주의권 내에서도 대국주의를 비판하며 호혜와 평등의 자주적인 사회주의 건설을 표방하게 하였다.

경제에서 ‘자립’은 북에서 내세우는 자력갱생의 원칙이다. 후르시초프 시절에 사회주의권 경제통합체인 코메콘(COMECON)을 추진하면서 북에 사회주의 분업체계에 편입을 요구했다. 그러나 북은 독자적인 공업화가 없이는 사회주의 내에서도 자주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며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자립적인 사회주의 경제건설 원칙을 고수하였다. 그러자 쏘련에서는 조선에 대한 원조를 전후 복구 기간 때 보다 절반이나 삭감하며 압력을 가중하기도 하였다. 사회주의 자립경제 원칙은 동유럽과 쏘련사회주의가 연이어 해체되는 시점에서도 북이 생존하게 하였고, 제국주의의 경제봉쇄와 포위말살 공세에서 북이 살아남도록 하는 원천이 되었다. 스탈린 시절에도 쏘련에서 일국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가능성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는데, 제국주의 체제 속에서 자력갱생은 사회주의 혁명을 보전하고 발전시키는 필수적인 원칙이 되었다. 또한 “개혁개방”으로 ‘사회주의’ 내에 시장-화폐관계가 발흥하여 사회주의가 약화되는 것을 볼 때도 자력갱생 원칙은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원칙이 되게 하였다.

국방에서 ‘자위’는 오늘날 핵무력을 완성하여 미제국주의의 군사적 압살 책동에 맞서도록 했다. 오늘날 <노동자연대> 같은 트로츠키주의자들 사이에서 북의 핵무력 완성을 비난하며 “국제주의 정신”을 강조하는데, 이는 제국주의 무력 앞에 무장해제를 호소하고 사회주의를 제국주의의 손아귀 아래 던져 넣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1990년을 전후로 동유럽과 쏘련 사회주의가 연이어 해체되었다. 사회주의권의 해체 이후에 북에서는 가중되는 고립과 제국주의의 제재와 말살책동과 함께 자연재해까지 겹쳐 1990년대 중반에 수년에 걸쳐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다. 미제국주의를 위시로 하는 제국주의 체제는 북의 붕괴를 예상하면서 압박을 가중시켜왔다. 그러나 북은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면서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74년 동안 존재했던 쏘련 사회주의 해체 이후 북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회주의 국가로 남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철학의 사명에 비춰볼 때 북의 사상은 북의 체제를 유지, 발전시켜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북에서 후르시초프 시절 이후인 1950년대 중반부터는 제20차 쏘련공산당 대회를 기점으로 강화되어온 수정주의에 맞서 대대적으로 투쟁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북에서는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동유럽과 쏘련의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로 대변되는 사회주의 내 수정주의가 사회주의를 해체시킨 주범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동유럽과 쏘련 사회주의 해체 직후인 1992년 4월 20일 북에서는 “사회주의 위업을 옹호하고 전진시키자”라는 제목의 ‘평양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는 발표 당시에는 70개의 국제 공산당 및 노동자당이 서명했는데, 지금은 300개 이상의 당들이 지지 서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선언문 초안이 나왔을 때, 당시 평양을 방문 중이었던 전연맹볼셰비키공산당 서기장 니바 안드레예바, 러시아공산주의노동자당 지도자 빅토르 튤킨, 벨기에노동당 의장 루도 마르텐스, 콜롬비아공산당 서기장 알베르 마르케스 등 저명한 국제공산주의 지도자들도 전적으로 이 선언 초안에 찬성하고 지지를 보냈다. 평양선언은 사회주의권 해체 이후 좌절을 겪으면서 혼란에 빠진 국제공산주의 운동을 결속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고 자본주의가 복귀된 것은 사회주의위업실현에서 큰 손실로 되지만 그것이 결코 사회주의의 우월성과 자본주의의 반동성을 부정하는 것으로는 될 수 없다.

사회주의는 오래전부터 인류가 그려온 리상이며 인류의 미래를 대표하는 사회이다.

사회주의는 본질에 있어서 인민대중이 모든 것의 주인으로 되고 모든 것이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진정한 인민의 사회이다.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자본주의사회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지배하고 극소수 착취계급이 주인행세를 하는 《부익부》, 《빈익빈》의 불공평한 사회이며 정치적 무권리와 실업과 빈궁, 마약과 범죄, 인간의 존엄을 유린하는 온갖 사회악을 필연코 동반한다.

오직 사회주의만이 온갖 형태의 지배와 예속, 사회적 불평등을 없애고 인민들에게 실질적으로 자유와 평등, 참다운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장해줄 수 있다…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 건설이 잘되지 않은 것은 그 나라들에서 인민대중의 근본요구에 맞게 사회구조를 수립하지 못하고 과학적 사회주의 리론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를 건설하지 못한데 그 원인의 하나가 있다…사회주의 위업을 옹호하고 전진시키기 위하여서는 매개 당들이 자주성을 확고히 견지하고 자체의 역량을 튼튼히 꾸려야 한다…매개 당은 자기 나라의 실정과 자기 인민의 요구에 맞는 로선과 정책을 세우고 그것을 인민대중에 의거하여 관철해나가야 한다.

매개 당은 언제 어떤 환경속에서도 혁명적 원칙을 버리지 말아야 하며 사회주의 기치를 높이들고 나가야 한다.

사회주의위업은 민족적 위업인 동시에 인류공동의 위업이다.

모든 당들은 자주성, 평등의 원칙에서 동지적 단결과 협조, 련대성의 류대를 강화하여야 한다.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국제적단결은 필수적이다…

종국적 승리는 사회주의를 위하여 단결하여 투쟁하는 인민들에게 있다.

사회주의 위업은 필승불패이다.

이처럼 평양선언에는 북의 사회주의 건설 경험과 사회주의권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를 견결하게 유지하고 있는지 교훈, 북의 자주성 및 인민대중 중심주의 사상, 자주성에 기초한 국제주의 정신이 총화되어 있다.

북의 체제의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령론, 선군정치(사상), 천리마 운동과 대안의 사업체계 등 경제지도 원리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수령론과 선군정치

 

북에 대해서 ‘3대 세습’이라는 비판이 부르주아 언론에서나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제기 되고 있는데, 이는 ‘수령론’을 모르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문제다.

맑스와 엥겔스도 엘리트주의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역사에서 지도자가 차지하는 특별한 역할에 대해서 부정하지는 않았다. 《공산당선언》에서는 전위를 강조하면서 대중에 대한 지도의 역할을 언급하기도 했다. 레닌도 《무엇을 할 것인가?》와 《좌익공산주의소아병》에서 지도자와 대중을 대립시키는 경향에 대해 수차례 지적하면서 이는 무정부주의의 일환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맑스와 엥겔스도 그렇고 레닌과 스탈린도 혁명의 계승문제를 주요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탈린 사후 쏘련공산당 20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개인숭배’를 근거로 선대 지도자를 전면 부정하며 탄핵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중소분쟁이 일어나면서 사회주의의 국제주의도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쏘련 후르시초프는 중공업 우선 정책과 ‘개인숭배’를 비판하면서 북에 대해서도 이를 척결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이를 계기로 북 내부에서 1956년 이른바 종파 사건이 일어났다. 종파사건 이후에 북에서는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기존 ‘중공업 우선 정책’을 다시 분명히 하고, “수령을 중심으로 하는 당의 통일과 단결”을 한층 더 강화하게 되었다.

“혁명운동, 공산주의 운동에서 지도문제는 다름아닌 인민대중에 대한 당과 수령의 영도문제입니다.”

수령은 근로인민대중의 최고뇌수이고 통일단결의 중심이다…인민대중에 대한 수령의 영도는 노동계급의 당을 통해 실현된다…노동계급의 혁명위업은 수령에 의해서 개척되고 승리적으로 전진하며 완성되는 수령의 혁명위업이다. 이러한 노동계급의 혁명위업은 하루이틀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가면서 수행해야 할 장기성을 띠는 위업이기 때문에 이 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자면 반드시 혁명전통을 빛나게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말하자면 이 위업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 사회주의·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대를 이어가면서 수행해야 완전히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위업을 완성하려면 혁명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북한의 사상 -주체의 사상·이론·방법》, 태백)

북에서의 계승되어야할 ‘혁명전통’은 “항일무장투쟁에서 이룩된 빛나는 혁명전통과 혁명경험”(같은 책)을 말하는 것이다. 북에서는 수령은 뇌수, 당은 심장, 인민은 신체기관으로 비유한다. 이 세 개의 유기체가 일사불란하게 작동될 때 사회라는 유기체가 온전하게 작동할 수 있고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의 수령론의 핵심은 지도자와 대중의 관계문제이며, 혁명의 계승의 문제다. 대중들은 절대적으로 수령의 지도를 따르고, 수령은 모든 것을 인민대중에 의거하여,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령에 대한 절대적 충실성의 조건은 인민대중에 대한 절대적 충실성이다. 이는 이민위천(以民爲天)과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사회의 구호로 나타났다.

맑스와 엥겔스 사후 베른슈타인 등 수정주의자들에 의한 맑스주의에 대한 부정과 수정주의 사상의 유포도 있었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특히 스탈린 사후 ‘개인숭배’ 비판을 이유로 선대 지도자를 전면 부정하고 혁명적 원칙을 폐기하는 것을 보면서 혁명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승되어야 한다는 수령론의 원칙이 나왔다.

이러한 수령론은 북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렇게 봤을 때 자본주의에서 부와 자본의 세습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 만들어져서 대중과의 결합과 혁명의 계승문제가 본질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북에서 지도자가 인민에 의거하여 인민에 복무하고 올바른 지도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이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알 수 없다. 또한 이는 우리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북의 인민들이 판단하고 선택할 문제다. 그렇지 않고 이를 근거로 북을 비난하는 것은 자칫 제국주의와 부르주아 체제의 사회주의 중상비방에 부화뇌동하여 반공주의에 빠져버리게 될 수 있다.

그러나 북의 수령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인식한다는 것과 ‘수령’론을 우리의 정치적 원칙으로 삼는 문제는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다. 사회주의 혁명은커녕 제대로 된 전투정당도 건설하지 못한 우리의 처지에서 혁명의 계승을 운운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우리는 우리대로의 지도자를 만들고 지도자상을 개척하고 대중과의 단결을 모색해야 한다.

선군정치(先軍政治), 선군사상 역시 북사회주의의 특수한 사상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군을 앞세우는 것, 군수산업을 우선시하는 것만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김일성이 사망하고 ‘고난의 행군’ 강행군이 시작된 이후 김정일은 자신의 시간과 정열의 대부분을 군에 대한 현지지도에 투자하였다. 김정일이 군을 현지지도 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군을 챙기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두 차례에 걸친 7개년 계획의 실패로 경제에서 시장의 영역을 확대하는 정책들이 도입되고 그것이 지속되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다시 ‘사상’과 ‘정치’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었으며, 소련이 몰락하고 사회주의경제권의 붕괴로 인하여 ‘개혁과 개방’의 압박이 가중되고 당조직마저 사상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일은 군을 통해 다시 ‘사상’과 ‘정치’를 앞세우려고 하였던 것이며 이것이 바로 ‘선군정치’의 핵심이다…

군부대에서는 김정일의 지시대로 콩 농사, 염소 키우기, 텃밭 이용하여 야채와 채소 키우기 등 식량을 스스로 공급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하고 그 모범을 창출하여 공장과 기업소 그리고 협동농장 등 사회단체들이 따라 배우도록 하였다. 또한 군부대들은 나라 곳곳에 파견되어 발전소와 도로 그리고 토지정리 등 방대한 공사와 건설에서 양어장과 오리공장, 돼지공장 그리고 유원지 등 인민생활에 직절(결)되어 있는 공사와 건설까지도 도맡아 하였다. 이들이 거둔 성과는 곧 김정일의 자력갱생노선이 옳다는 증표가 되었으며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치는 ‘혁명적 군인정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이들의 행적과 행보는 외부에서 압박하여 오는 소위 ‘제국주의의 도전’을 막아내는 방패이며 내부에서 자라고 있는 물질적 이기주의의 싹을 자를 수 있는 칼로 자리 매김을 하였던 것이다.(박후건, 《DPRK에서의 경제건설과 경제관리체제의 진화》, 도서출판 선인, 2019년 11월 8일)

이처럼 선군정치는 북이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시기에 형성되었던 ‘혁명적 군인정신’이고, 이 정신은 쏘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가 해체된 뒤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같은 시련의 시기에 다시금 부각되었다. 원래 ‘고난의 행군’은 1938년 말-1939년 초 항일유격대가 혹한과 굶주림을 겪으며 일본군 토벌대의 대대적인 추격을 당하며 100여 일 동안 극한적인 투쟁을 전개하던 시기로 항일무장 투쟁사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 만큼 북의 전 국가 차원에서 ‘고난의 행군’은 극단적 시련기였고 이 시기에 군대가 항일유격대 정신으로 무장하여 고난을 극복하는 ‘돌격대’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 것이다.

 

천리마 운동과 대안의 사업체계

 

사회주의 사회는 자본주의의 무정부성, 무계획성에 대비하여 계획생산 체제라고도 불리는데, 북에서는 사회주의 건설을 하면서 계획과 시장, 사상적 자극과 물질적 자극의 문제, 중앙집중계획과 대중참여의 문제, 중앙집중계획에서의 관료주의의 위험성과 지방이나 단위 중심에서의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계획의 일원화와 세부화 등 생산을 둘러싸고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 논란들이 있었다.

‘천리마운동’과 ‘대안의 사업체계’는 북의 사회주의 생산의 주요 사례이다. 천리마운동은 앞서 언급했던 쏘련의 코메콘 참여 압력에 따르는 대폭적 원조 삭감과 중공업 중시 정책의 폐기 압력으로 가중된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펼쳐진 사회주의 생산운동으로 북의 자력갱생 정신을 대표한다.

외국 그 어디에서도 중공업육성에 필요한 투자자금을 차관의 형태로도 공급받거나 끌어낼 수 없었던 김일성은 투자의 원천을 조선 국내에서 찾았다. 근로대중에게 나라의 어려운 사정을 직접 이야기하고 이들이 생산을 더 하도록 독려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이때 김일성이 직접 방문한 곳이 바로 강선제강소이며, 이곳 근로자들은 김일성의 호소에 호응하여 6만 톤의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강선제강소에서 12만 톤의 철강재를 생산해 내는 기적에 가까운 성과를 내었다.

이것을 계기로 김일성은 근로대중에게 직접 증산을 호소하는 현지지도를 전국적인 단위에서 벌이게 되며 이것이 조선의 경제건설의 상징이라고 하는 ‘천리마운동’으로 발전한다. ‘천리마운동’으로 조선은 5개년계획기간(1957-1961년) 동안 연평균 36.6% 성장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내었다. ‘천리마운동’은 단순한 증산운동이 아니었다. 천리마운동은 처음에는 집단으로 참여하여 증산운동을 벌이는, 즉 근로자 모두가 참여하지만 각각의 근로자가 다른 근로자들의 협동과 협조를 전제하지 않고 개인적 차원의 증산운동을 벌이는 것이었으나, 증산운동을 집단적 차원에서 벌이는 ‘천리마작업반운동’으로 바뀐다…생산과 증산이 집단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여 각 근로자가 집단의 이익을 자기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집단주의(공산주의)형 인간으로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김일성은 이렇게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공산주의)형 인간은 교육과 교육을 통해 만들어질(개조될) 수 있다고 믿었다…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이들을 교양하고 이끄는 사람이 바로 당원(黨員) 또는 당일군들이며 이들의 임무와 역할인 것이다.(박후건, 같은 책)

레닌 당시도 공산주의적 토요노동과 공산주의적 경쟁을 강조하는 운동이 있었고 스탈린 당시에도 스타하노프 운동이라는 공산주의적 생산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북에서의 천리마운동은 단순한 증산운동만이 아니라 “근로자 개인을 집단주의(공산주의)형 인간으로 만드는 인간개조사업이며 정치사업이”(같은 책)다.

특히 강선제강소는 천리마 운동의 상징적인 사업장이다. 북의 유명한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 〈로동계급편〉에서는 강선노동자 계급의 삶과 노동과 투쟁을 감동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강선노동자계급과 그 중심에 있는 ‘쇠물집’ 가족을 통해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공산주의 집산주의 원리가 어떻게 생활과 노동에서 실현되는지, 공산주의에서 새로운 가족 형태, 공산주의에서 당원의 자세, 공산주의적 생산과 노동, 공산주의적 단결과 관료주의, 종파주의와의 투쟁, 남쪽 출신 인사, 인텔리, 부르주아가 어떻게 ‘쇠물’처럼 노동계급 속으로 녹아드는지 같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탄핵 이후 제기된 ‘종파주의자’들의 중공업 우선 정책(중공업을 우선시하며 농업과 경공업을 병행하는) 폐기 기도에 대해 한 노동자가 “중공업 발전 없이 경공업, 농민경리가 발전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는 대화가 나온다.

천리마 운동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이 운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알려면 이 영화를 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 《민족과 운명》영화 전체는 북에서 강조하는 ‘자주성’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한다.

참고로 북한영화를 분석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종자’인데, “문학예술에서 종자란 작품의 핵으로서 작가가 말하려는 기본문제가 있고 형상의 요소들이 뿌리내릴 바탕이 있는 생활의 사상적 알맹이이다.” (김정일,『영화예술론』)라고 설명된다. 여기서 <민족과 운명>의 종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잡아준 것이라고 한다.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의 종자는 민족의 운명이자 개인의 운명(밑줄 필자)이라는 것입니다. 민족의 운명문제는 본질에 있어서 민족의 자주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자주성을 가지는가 못 가지는가, 그것을 어떻게 옹호하고 실현해나가는가 하는데 따라 민족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자주성은 민족의 존재와 번영을 담보하는 민족의 생명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의 종자는 민족의 자주성에 관한 문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민족의 자주성문제를 주체의 인간학에 기초하여 예술적 화폭으로 깊이 있게 그리고 있다는데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의 중요한 특성이 있습니다..” (김정일, 「다부작예술영화≪민족과 운명≫의 창작성과에 토대하여 문학예술건설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에 대하여 <유영호의 북한영화 바로보기> 연구자들의 왜곡 (16), 유영호, 통일뉴스, 2009.04.24.)

북에서는 3대 혁명 사업은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으로 이는 공산주의사회가 완전히 수립될 때까지 계속혁명의 과제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사상혁명은 사람을 개조하는 혁명, 기술혁명은 자연을 개조하는 혁명, 문화혁명은 사회를 개조하는 혁명의 일환이기 때문에 이는 “사회주의 건설의 전략적 과업-3대 개조 사업”, 즉 인간개조, 사상개조, 제도개조 사업과 일치한다. 특히 북에서는 “사람들을 사회주의 사상으로 철저히 무장시키는” 인간개조 사업은 공산주의 건설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자들의 “반동적 사상문화책동과 심리모략전”에 맞서기 위해서도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생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생산의 주인은 생산자대중이며 생산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것도 생산자대중입니다. 그러므로 생산을 발전시키며 생산활동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담보는 당원들과 근로자들 속에서 정치사업을 잘하여 그들의 사상의식수준을 높이고 열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모든 사업에 정치사업을 앞세워 광범한 근로대중이 혁명과업수행에 자각적으로 발동되여 온갖 지혜와 재능을 다 바치도록 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비한 사회주의의 결정적우월성이며 사회주의 경제제도의 본질로부터 흘러나오는 요구입니다.(박후건, 같은 책, 주에서 재인용)

낮은 수준의 공산주의, 즉 사회주의에서는 자본주의적 분배원칙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게 된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만큼 분배”받는 사회주의에서 무조건적 균등성의 원칙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원칙에 맞지 않는다. 생산에 기여한 만큼 물질적 보상을 주는 것은 사회주의 생산을 강화할 수 있는 한 방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점차로 없애 나가야할 자본주의적 분배원칙이기도 하다.

이처럼 생산에서 역시 사상사업과 정치사업을 최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북의 정치적 특성이기도 하다. 정치도덕적 자극을 우선하면서 물질적 자극을 결합시키는 ‘천리마운동’은 이후 ‘대안의 사업체계’로 발전하였다.

대안의 사업체계와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은 당의 혁명적 군중로선을 구현하고 있는 경제관리체계이며 대중령도 방법입니다. 지도일군들은 대안의 사업체계와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의 요구대로 관료주의와 형식주의를 철저히 없애고 현실에 깊이 들어가 아래 일군들을 도와주고 걸린 문제를 풀어주며 언제나 정치사업을 앞세우고 대중을 조직동원하여 경제과업을 수행하여야 합니다. 또한 지도일군들은 생산지도와 기업관리운영 사업을 개인의 소총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반드시 당조직과 군중에 의거하여 진행하는 사업작풍을 가져야 합니다.(박후건, 같은 책 인용문)

 

조국은 하나다

 

사실에 바탕을 두어 진리를 탐구한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태도는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뿐만 아니라 현실 사회주의를 이해, 인식하는데 있어서도 반드시 필요한 태도이다. 사실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에 편견과 독단, 왜곡에 빠지고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극단적인 비방을 하고 적개심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이는 부르주아의 반공주의에 부화뇌동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위시로 한 일단의 ‘사회주의파’, ‘진보파’들은 쏘련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관료주의 체제라고 비판을 하고는 하는데, 이러한 허다한 비판의 대다수는 실사구시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쏘련이나 북에서 작동되었던 사회주의의 구체적 현실에 대해 무지하면서도 그 무지를 무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지는 확대재생산된다. ‘진보적 신념’으로 가득 차 내면화된 반공주의는 확신에 차 있기 때문에 독단과 편견, 왜곡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주지하듯, 국가보안법에서 명시한 이적단체, 반국가단체는 직접적으로 북이다. 이렇듯 국가보안법은 반북을 내세워 국내 진보적 운동을 탄압하고 노동자 민중을 국내외 지배계급의 통치 하에 노예적으로 굴종시키고 해방된 사회를 향한 정치적 전망을 봉쇄하려 한다. 반공주의는 곧 반쏘비에트주의이며 직접적으로는 반북주의이다.

이 자명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사회의 일단의 ‘진보파’, 심지어 ‘급진파’들 내에는 국가보안법을 반대하고 반공주의를 비판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쏘련 사회주의와 북사회주의에 대해 진실을 알려는 노력을 회피하고 심지어 중상하고 적대감을 표현함으로써 ‘제국주의의 진보적 벗들’로 전락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왜 북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반공주의 체제가 만든 진리의 억압이라는 철벽을 뚫고 자유롭게 인식하여 진실을 알기 위해서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북의 사회주의 건설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어 우리가 나아갈 정치적 방향을 찾기 위해서이다. 북에 대한 대중적 편견과 왜곡이 존재하는 한, 자본주의 사회가 아무리 문제가 많다 하더라도 대중들이 사회주의를 자신들의 미래와 희망으로 삼을 수는 없다.

우리 운동 내부는 크게 좌파와 자주파로 분열되어 있는데 이는 북에 대한 태도와도 관련이 많다. 북을 내재적으로 이해하여 진실을 안다는 것은 분열된 우리 운동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좌파는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외치지만 정작 현실 사회주의를 전면 부정하거나 적대시하고 있다. 반면 자주파는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연일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자본주의 체제 내의 모순을 척결하는 사회주의 사상이 결여되어 있다.

앞에서 북에서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전제로 하여 주체사상을 발전시켰다고 하는데, 사실 무엇인가를 전제로 한다는 것은 적극적인 학습과 풍부하고 전면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그 확고한 전제 속에서 자신들의 풍토 속에서 사상을 창조적으로 적용,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 그런데 맑스주의는 독일고전철학과 영국의 정치경제학,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를 3대 요소로 하여 총체적인 맑스주의 사상을 세웠다. 맑스주의는 또한 혁명적 방법론이자 진보적 세계관이기도 하기 때문에 혁명운동의 풍부한 경험과 발전, 인식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점점 더 발전하는 열려 있는 사상체계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맑스의 《자본론》은 그 자체로 논리학의 보고이고, 자본주의의 착취와 작동원리에 대한 가장 과학적인 분석이자 비판이다. 엥겔스의 《반듀링론》은 사회주의 이론에 대한 총체적 인식의 보고이며,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현대제국주의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고 하며, 《국가와 혁명》은 자본주의 국가의 억압적 본질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맑스주의를 학습하지 않고 그 후대에 나온 사상과 체제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그 깊이 있는 뿌리를 알지 못하고 총체적 인식을 할 수는 없다. 반대로 맑스주의를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 속에서 적용하지 못하고 새로운 사회에 창조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면 그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정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레닌은 이행의 특수한 경로를 찾지 못하면 평생을 가도 혁명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북과의 통일은 180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과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남과 북의 통일은 분단된 민족의 통일이면서 동시에 북이라는 사회주의 체제와의 통일의 문제라는 특수성을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통일은 민족적 단결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변혁의 문제이기도 하다.

북과의 민족적 통일이라는 과제를 전면에 두고 사고하고 실천하지 못하면서 변혁은 있을 수 없다. 반대로 변혁적 목표 없이 통일을 추구한다면 부르주아적 흡수통일론에 경도되거나 정치적 독자성과 자주성을 상실하고 부르주아 정치세력에 끊임없이 경도될 수 있다.

반공주의와 싸우고 민족문제의 고유한 특성을 인식해야 한다. 민족문제와 계급문제는 씨줄과 날줄처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민족문제와 계급문제를 통일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민족문제와 계급문제를 통일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계급문제 일반으로 고유한 문제를 환원시키는 것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반대로 민족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을 상실하고 계급협조주의로 나타나는 것을 배격해야 한다.

반공주의와 싸우며 민족문제와 계급문제를 온전하게 통일시키는 우리사회의 진보적 지적 전통, 실천 전통이기도 하다.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은 반공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매카시즘에 관한 설명을 새삼스럽게 할 필요는 없겠다. 요컨대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신앙의(종교적 신앙뿐이 아니라 누구든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신념을 가질 수 있는)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들이 반공(反共)이라는 단 한 가지의 가치 때문에 부정된 사상통제의 선풍이다. 매카시즘과 매카시즘적 사고방식은 미국 정부와 사회 전반에 걸쳐서 사실을 사실대로 진실을 진실대로 보고, 말하고, 주장할 수 있는 지적 정신을 뿌리부터 뽑아버렸다…매카시즘의 지적 풍토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목적으로 하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되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사실 아닌 환상의 최면술을 걸어버린다는 것이다…우리들의 인식론적 기능은 냉전 사상과 체제 속에서 조건반사(條件反射)의 토끼가 되어버린 감이 있다. 예로 ‘중공’이라는 용어는 즉각적으로 ‘기아’ ‘괴뢰’ ‘피골상접’ ‘야만’ ‘무과학’ ‘반란’ ‘정권타도’ ‘침략’ ‘호전(好戰)’… 등 냉전용어와 그것이 담고 있는 그와같은 관념을 우리에게 일으켜왔다. 우리는 강요된 조건반사의 토끼가 되어 있다. 예로 든 중공이 그런지 안 그런지는 알 길이 없다…문제는 어떤 객관적 사실이 교육되고 선전되고 세뇌된 대로인지 아닌지의 여부가 아니다. 진실로 문제인 것은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믿어야 했고, 어떤 사상(思想)에는 어떤 용어를 사용해야 하고, 그 용어를 사용하면 반드시 일정한 스테레오타이프적 관념을 머리 속에 형성하게끔 우리들이 냉전용어의 조건반사 법칙에 충실한 토끼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다.(<韓半島 1971년 9월호>(李泳禧評論集, 조건반사의 토끼, 轉換時代의 論理, 창작과 비평사, 초판1쇄 발행/1974년 6월 5일 초판 28쇄 발행/2005년 2월 25일, 163-166쪽)

‘매카시즘’은 반공으로, 최근의 용어에 의하면 종북으로 바꿔 쓰고, ‘중공’을 조선으로 바꿔 쓰면, 리영희 선생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오십년 전에 대결했던 장벽들이 아직까지도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철폐되지 않았고 국가보안법이 우리의 사상과 양심을 짓누르고 있고, 우리의 지적정신을 송두리째 파괴하며 무지를 확대시키고 있다. 21세기에도 냉전은 계속되고 있다. 실낱같은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에 대한 기대는 송두리째 무너지고 다시 남과 북의 대결이 고조되고 있다.

리영희 선생이 대결했던 반공주의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우리사회의 민주적 변화와 근본변혁을 위해서는 국가보안법 체제와 맞서 싸워야 하고 우리 내부의 맹목적인 반공주의와도 싸워야 한다. 김남주 시인은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에 충실하면서도 미제에 분노하고 분단과 통일이라는 민족문제 해결에 몰두했다. 최근 고인이 된 백기완 선생 역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노동자투쟁에 결합하면서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라는 직함에서 보듯 분단과 통일의 문제 해결을 위해 정진했다. 민족적 형식에 계급적 내용을 담아내고 민족문제 해결에서 해방의 전망을 발견하며, 민족문제와 계급문제를 통일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종파주의를 넘어 우리사회의 진보적 지적전통, 혁명적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다.

김남주 시인의 시에 <민족과 계급>에서 하고자 했던 말이 다 담겨 있고, 차마 하지 못한 말도 다 담겨 있다.

 

조국은 하나다

김남주(金南柱)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모르게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권력의 눈앞에서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나는 이제 쓰리라

사람들이 오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오르막길 위에도 내리막길 위에도 쓰리라

사나운 파도의 뱃길 위에도 쓰고

바위도 험한 산길 위에도 쓰리라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나는 이제 쓰리라

인간의 눈이 닿는 모든 사물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눈을 뜨면 아침에 맨 처음 보게 되는 천장 위에 쓰리라

만인의 입으로 들어오는 밥 위에 쓰리라

쌀밥 위에도 보리밥 위에도 쓰리라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이 쓰는 모든 말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탄생의 말 응아 위에 쓰리라 갓난아이가

어머니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말 위에 쓰리라

저주의 말 위선의 말 공갈협박의 말…

신과 부자들의 말 위에도 쓰리라

악마가 남긴 최후의 유언장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이 세워 놓은 모든 벽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남인지 북인지 분간 못하는 바보의 벽 위에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좌충우돌하다가 내빼는 망명의 벽 위에

자기기만이고 자기환상일 뿐

있지도 않은 제3의 벽 위에

체념의 벽 의문의 벽 거부의 벽 위에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순사들이 순라를 돌고

도둑이 넘다 떨어져 죽은 부자들의 담 위에도 쓰리라

실바람만 불어도 넘어지는 가난의 벽 위에도 쓰리라

가난의 벽과 부의 벽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갈보질도 좀 하고 뚜장이질도 좀 하고

그래 돈도 좀 벌고 그래 이름 좀 팔리는 중도좌파의 벽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라고

나는 또한 쓰리라

노동과 투쟁의 손이 미치는 모든 연장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목을 베기에 안성맞춤인 ㄱ자형의 낫 위에 쓰리라

등을 찍어 내리기에 안성맞춤인 곡팽이 위에 쓰리라

배를 쑤시기에 안성맞춤인 죽창 위에 쓰리라

마빡을 까기에 안성맞춤인 도끼 위에 쓰리라

아메리카 카우보이와 자본가의 국경인 삼팔선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대문짝만하게 손바닥만한 종이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오색종이 위에도 쓰리라 축복처럼

만인의 머리 위에 내리는 눈송이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바다에 가서도 쓰리라 모래 위에

파도가 와서 지워버리면 나는

산에 가서 쓰리라 바위 위에

세월이 와서 긁어 버리면 나는

수를 놓으리라 가슴에 내 가슴에

아무리 사나운 자연의 폭력도

아무리 사나운 인간의 폭력도

지워 버릴 수 없게 긁어 버릴 수 없게

가슴에 내 가슴에 수를 놓으리라

누이의 붉은 마음의 실로

조국은 하나다라고

그리고 나는 내걸리라

마침내 지상에 깃대를 세워 하늘에 내걸리라

나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키가 장대 같다는 양키들의 손가락 끝도

언제고 끝내는 부자들의 편이었다는 신의 입김도

감히 범접을 못하는 하늘 높이에

최후의 깃발처럼 내걸리라

자유를 사랑하고 민족의 해방을 꿈꾸는

식민지 모든 인민이 우러러 볼 수 있도록

겨레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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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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