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냐 야만”인가? “식민지 억압이냐 해방”인가? – 하마스가 야만이고 시오니스트와 미제가 문명이라면 우리는 그 ‘문명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모든 전장에서 민간인들의 피해는 안타깝고 처참한 일이다. 러우전에서 신나치 파시스트들을 예외로 한다면, 대다수 강제징집당하고 돈바스 인근 전장에서 러시아 군대가 설치한 ‘고기분쇄기’에 무참하게 쓸려 나간 수많은 무고한 우크라이나 인민들의 참상도 눈물겨운 일이다. 뻔히 죽을 수밖에 없는 전장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억지로 떠나보내고 이들의 사망이나 부상을 확인하고 억장이 무너져 내렸을 면서 무고한 우크라이나 인민들의 참상을 생각하면 먼 유러시아에서 벌어지는 문제라 할지라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동정심과 연민이 있다면 같이 눈물 흘리고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래서 어찌해야 하는가?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이 전쟁을 야기하고 전쟁을 도발한 젤렌스키와 미제와 나토제국주의를 준열하게 비판하고 타격하는 것이다. 전쟁의 야기자,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 전쟁을 멈출 수 없고 평화를 찾아올 수 없다. 두 차례나 평화협정을 어긴 것도 서방과 우크라이나 반러주의자들이었고, 러우전 발발 초기 전쟁을 조기에 종식할 수 있었던 기회를 ‘부차학살’ 조작으로 날려 버리고 장기화한 것도 서방과 젤렌스키 도당이었다. 전쟁을 멈추고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끝장내기 위해서라도 젤렌스키와 서방 제국주의가 하루 빨리 패배해야 한다.
이제는 유라시아에 이어 중동에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간의 분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제는 분쟁수준이 아니라 아예 전쟁수준으로 사안이 격화되고 있다. 이 전쟁에도 서방세계 전체와 아랍세계를 비롯한 비서방세계 전체가 이 사안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거나 첨예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뻔뻔하고 파렴치한 전쟁도발자 젤렌스키는 이번에는 9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의에서 영상 연설을 통해 하마스의 공격과 러시아의 침공은 “똑같은 악”이라면서 “유일한 차이는 그곳에는 이스라엘을 공격한 테러 단체가 있고, 이곳에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테러 국가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이 연설로 ‘피해자’를 가장하는 자들이 실은 역사적 원인을 살펴보면 무참한 ‘가해자’이며, 신나치 수장 젤렌스키와 이스라엘 시오니스티 파시스트 학살자들과 같은 편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압도적이고 일방적인 학살과 전쟁 앞에서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지는 못하고 대신에 팔레스타인인들의 참상을 짐짓 외면하거나 본질을 은폐했던 서방 언론 전체가 이번에는 모두 하마스를 ‘악마’, ‘테러리스트’로 몰아가고 있다. 러우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서방언론의 하마스 악마화에 경도되거나 압도된 일단의 ‘진보’언론, 진보지식인들은 이 첨예한 사태 앞에서 양비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도 나쁘지만 무고한 민간인들을 납치하고 살해한 하마스도 나쁘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규탄한다고 하더라도 “하마스도 나쁘다”라는 전제를 붙여야지만 그 균형감각을 내세울 수 있고 평화의 기원자라고 과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는 팔-이 분쟁의 역사적 원인, 본질을 은폐하고, 더욱이 지금 서방의 철저한 위선과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야만성, 앞으로 홀로코스트 수준으로 가자지구에 자행될 무차별 공격 앞에 사안의 본질을 흐리고 호도하게 된다. 더욱이 이번 사태를 해결하고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을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논리이다.
지금 서방세계 전체에 의해 ‘악마’, ‘테러리스트’로 일방적으로 규탄대상이 되고 있는 하마스에 대해 팔레스타인인들의 입장에 서서 이들을 인식해 보자.
누가 목숨 내던져 하마스에 가입하여 반이스라엘 항쟁을 이어가겠는가?
자기가 살던 나라와 땅을 강탈당하고 사랑하는 부모와 벗들이 학살당하고 모욕당하고 제재로 서서히 죽어가는 참상을 수없이 목도한 팔레스타인 청년들, 어린이들이 가입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조직에 목숨을 내던지고 가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압도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고 있다.
문명이 파괴된 터전 위에서 태어나 자라나고, 생명과 인간 존엄, 생존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부정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테러일반’을 부정하는 도덕적, 윤리적 설교는 위선이자 어쩌면 그 동안 일방적으로 희생당하고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또 다른 폭력이자 ‘정신적 테러’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야만성’이 있다면 그건 시오니스트들과 미제와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학살이 조장하고 배양한 것이다. 이들의 ‘숭고한’ 저항 과정에서 ‘야만성’이 발휘되었다면, 그 전적인 책임 역시 이스라엘 시오니스트들과 이를 언제나 지지하고 지원하는 미제를 비롯한 서방 제국주의자들에게 있다.
하마스가 야만이라면, 이 야만행위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 배의 압도적인 ‘야만’으로 대응‘야만’을 낳은 이스라엘 시오니스들과 서방제국주의자들의 ‘야만’행위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또한 하마스를 야만적이라며 규탄하며 이 사태의 역사적 원인을 은폐하고 왜곡, 과장 보도를 서슴지 않으며 이스라엘과 서방의 이해에 봉사하는 가증스러운 언론의 영업행위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학살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더라도 이들의 논리에 영합하고 학살에 동조하고 심지어 팔레스타인인들의 참상을 목도하고 박수를 치는 상당수 이스라엘인들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스라엘의 점령지에서, 팔레스타인인 학살과 공격이 당시에도 벌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축제와 댄스파티를 즐기던 청년들이 무지와 무감각의 문제는 있을지언정 죄가 있다고까지는 차마 하지 못하겠다. 더욱이 그것으로 인해 이들이 죽어 마땅할 만큼 죄를 지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이들이 무고한 희생자라면 그 책임 역시 전적으로 시오니스트들과 미제와 서방 제국주의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하마스에게 인질로 잡힌 이들의 목숨을 보전하는 길은 팔-이 분쟁이 당장 종식되지는 않더라도, 감옥에서 학살당하고 고문당하며 감금되어 있는 팔레스타인들 수천 명을 석방하고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을 당장 멈추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화력과 최첨단 무기와 학살 앞에서 언제까지 맨 주먹으로 규탄하고 눈물짓고 원시적 수준의 저항인 짱돌과 더 나아가 화염병으로 맞서야 하겠는가? 일방적인 수난을 당하고 순교를 할 때에만 팔레스타인인들은 국제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가? 이 또한 오리엔탈리즘처럼 서방과 서방세계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인식이 아니겠는가?
그러지 않아도 서방의 위선과 이중잣대가 극에 달하고, 이것이 단순하게 사태의 원인을 호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초토화하려는 급박한 시점에서 양비론은 서방의 이해에 복무하는 논리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과 침략에 눈감고 이를 지지, 지원하던 미국이 이제는 하마스의 야만 운운하며 이스라엘 근해에 항공모함과 군대를 보내 이스라엘과 손잡고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대량학살을 획책하고 하고 있다.
학살과 침략과 파괴로 점철되어 피학살자들의 피를 온몸에 뒤집어 쓰고 있는 학살‘문명’세계가 ‘야만’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모조리 죽여서 이 참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종결시키려고 군대와 무기를 보내려고 한다. 서방세계가 한 마음이 되어 이스라엘 침략자들을 일방적으로 지지, 지원하고 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9일 “하마스와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자국민을 위해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야만에 맞서는 모든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며, 이스라엘이 승리할 때, 문명 세계 전체가 승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인들과의 전투라고 하지 않고 “하마스와의 전투”라고 하고 있다. 비좁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침략자들은 무고한 팔레스타인인들과 ‘테러리스트’ 하마스를 정교하게 분리하여 테러리스트 하마스만을 박멸한다고 하는 것인가? 가자지구를 절대적 고립무원으로 만들어 굶겨 죽이고 목 졸라 죽이는 봉쇄는 하마스만을 대상으로 선택적으로 자행될 것인가?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이 국제적인 수준에서 “야만에 맞서는 모든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는 정의의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위의 젤렌스키의 연설에서도 나타나는 바이며, 이 전쟁이 서방 대 반서방의 전쟁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네타냐후는 반중, 반러 가치동맹을 지상의 가치라고 선전하고 국제적인 분쟁을 야기하고 침략전쟁을 조장하는 미제국주의와 나토 제국주의과 공동의 이해관계 속에서 “문명세계 전체”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국제적인 양상도 이스라엘의 편을 드느냐 팔레스타인의 편을 두느냐에 따라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그런데 ‘서방’제국주의자들의 침략상과 팔레스타인인 혐오와 말살책동이 ‘문명’이라면 우리는 이 잔혹한 ‘문명’파괴를 위해 능히 반달리즘이라도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팔레스타인인들의 참상과 비극을 끝장내기 위해 저항하는 팔레스타인들을 전적으로 지지, 지원하고 문명을 내건 서방의 ‘야만’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전쟁의 성격은 “문명이냐 야만이냐”가 아니다. “식민지 억압이냐 해방이냐”다. 문명을 내걸고 야만세계를 개화한다는 논리는 언제나 야수와 같은 제국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논리였다. 식민지 침략과 지배와 학살을 정당화 하는 논리였다. 이스라엘 침략자들과 이를 일방적으로 지지, 지원하는 서방 제국주의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은 민족해방전쟁이고 이는 정의의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패배는 미국의 패배이고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패배이다. 이는 부정의의 패배이자 정의의 승리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완전한 승리를!
시오니스트들과 미제와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처절한 패배를! 노/정/협

* 사진은 점령된 서안 지구의 이스라엘 벽에 그려진 팔레스타인 낙서 (사진: Northern Lights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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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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