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항쟁의 기원과 서방의 위선

김근성(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4)

 

1.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온갖 기사들이 마치 경기라도 관전하듯이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이 사태를 상세하게 고찰하고 고민하는 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왜 팔레스타인에서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우선 우리는 먼저 유대인이 겪은 고난의 역사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드레퓌스 사건(프랑스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을 드레퓌스가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범인으로 몰린 사건)과 홀로코스트(독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들 수 있다. 그러면서 유대인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는데, 이를 시오니즘(Zionism)이라고 한다. 시오니즘을 신봉하는 자들을 시오니스트(Zionist)라고 하는데, 이들은 옛날 자기 조상들이 살았던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국가를 세우기를 희망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동맹국 편을 들던 오스만 제국이 패전하면서,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됐다. 헌데 문제는 영국이 유대인(밸푸어 선언, 1917)과 팔레스타인인(후세인-맥마흔 서한, 1915-1916) 양측에게 독립을 약속하는 협상을 맺었다는 데 있었다. 서로 모순되는 약속을 맺었는 만큼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은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 상황에서 유대인들이 속속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시오니스트들도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사이의 갈등도 점점 고조되었다. 한편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아랍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유대인의 이주를 제한하며 시오니스트들의 행동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자 시오니스트들은 무장단체를 조직하여 영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1946년 7월 22일 유대인 무장단체 이르군(Irgun)에 의한 킹 데이비드 호텔 폭파 사건이 있다. 이 일로 영국 총독부가 있던 호텔 건물이 무너졌으며 91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꼬여만 가던 상황에 골치를 썩던 영국이 1947년 2월 팔레스타인을 포기함으로써 이 문제는 UN에 넘겨진다. UN은 유엔팔레스타인특별위원회(UNSCOP)을 조직해 팔레스타인에 파견했는데, 그 위원회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무지했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가 발생했던 터라 유대인에게 매우 동정적이었다. UNSCOP의 권고안을 바탕으로 1947년 11월 UN은 팔레스타인 분할을 다룬 결의안 181호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는 절대적으로 유대인에게 유리한 조건이었다. 전체 인구의 3분의 1, 전체 면적의 7%만 소유하던 유대인이 전체 면적의 56%, 올리브 농장과 곡창 지대 80%, 아랍인 공장의 40%를 차지했던 것이다. 토지 역시도 비옥한 지역이 유대인에게 주로 할당됐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크게 반발했지만, 유대인은 결의안을 근거로 1948년 3월부터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았다. 그 방식은 전혀 평화적이지 않았다. 플랜 달렛(Plan Dalet)이라는 이름 아래 유대인 무장단체들은 대대적 인종 청소를 자행했다. 팔레스타인 마을을 공격해 살인, 방화, 약탈, 강간을 벌였으며, 쫓겨난 사람들이 못 돌아오게 지뢰를 곳곳에 설치했다. 이렇게 1947년부터 1949년까지 530개의 마을이 파괴되고, 1만 5천여 명이 학살됐다. 그중 데이르야신(Dayr Yāsīn)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이 가장 악명 높다. 1948년 4월 9일, 시오니스트들은 이 마을을 습격하여 110명 이상의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결국 최소 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추방당했으며,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의 78%를 점령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한다. 이를 팔레스타인에서는 대재앙, 즉 ‘나크바(النكبة)’라고 한다. 참고로 매년 5월 15일은 나크바의 날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매년 기념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인종 청소를 다룬 기사 :
https://m.segye.com/view/20170908002445
http://www.ngo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34094)

이스라엘은 시오니즘 사상 아래서 자신이 원하는 ‘독립’을 이뤄냈지만, 그것은 원래 자리에서 거주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독립’을 깔아뭉개면서 가능했다. 그리고 거기에 맞서면 잔혹한 학살과 탄압으로 응답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의 독립투쟁 역시 그에 대응하며 점차 과격해지고 폭력적으로 되어 갔다. 즉 이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이자, 그 이스라엘이 지향하고 있는 시오니즘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던 가보 마테(Gabor Mate, 1944~)도 묻고 있다. “우리 유대인이 2천 년이 지난 뒤에 해방과 자유를 추구할 수 있다면, 왜 팔레스타인은 그리하지 못합니까?”
(가보 마테의 증언 : https://www.youtube.com/watch?v=fNHhV6_tz-A&t=673s)

2.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도 지적해야 한다. 이번 봉기에 대해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우리는 인간을 닮은 동물(human animal)과 싸우고 있다”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렇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인간’으로 보고 있지 않다. 사실 이런 태도는 이스라엘이 세워질 때부터 일관적이었다.

정부의 태도가 이런 만큼, 이스라엘 사회 역시도 인종차별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이스라엘인은 팔레스타인 사람을 죽여도 죗값을 받지 않는다. 2006년 등교 중이던 13살 팔레스타인 소녀를 사살한 이스라엘 장교는 그 장면이 촬영되어 TV에 방영까지 됐는데도 불구하고, 무죄판결을 받았으며 정부로부터 배상금까지 받아냈다. 2020년에는 이스라엘 경찰이 자폐를 앓던 팔레스타인인 학생을 사살했는데도 무죄를 받았다. 이 두 사례는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인에게 행하는 수많은 만행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또한 2009년 CBS는 이스라엘 병사들이 입는 티셔츠를 보도하였다. 그 티셔츠에는 임신한 무슬림 여성을 총으로 겨냥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한방에 두놈 처치(1 shot 2 Kill)’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티셔츠에는 어린이를 총으로 겨냥하는 장면에 ‘작을수록 죽이기 어렵다(The Smaller they are, the harder it is)’라고 적혀 있었다. 서안 지구로 들어오는 유대인 불법 점령촌 거주민들의 태도도 문제가 많다. 이들은 유대교를 맹목적으로 믿고 있어서 모세5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민족을 잔인하게 정복했던 것처럼, 팔레스타인인들도 그렇게 대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스라엘 군경의 무죄 판결 기사 :
https://m.khan.co.kr/world/mideast-africa/article/200603281818061#c2b
https://www.yna.co.kr/view/AKR20230707107600009)
(이스라엘군의 티셔츠를 다룬 기사 : https://www.cbsnews.com/news/israeli-t-shirts-joke-about-killing-arabs/)

더 충격적인 사례도 있다. 가자 지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스데로트(Sderot)라는 유대인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는 언덕이 하나 있는데, 가자 지구에 폭격이 있을 때마다 주민들은 이 언덕에 올라 구경을 한다. 폭탄이 건물에 맞아 폭발과 굉음이 울릴 때마다, 주민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경쟁이 일기도 한단다. 이를 두고 ‘스데로트 시네마(Sderot Cinema)’라는 단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도저히 믿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 광경을 찍은 사진에서 한 사람이 윙크를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걸 보고 할 말을 잃었다. 학살로도 모자라 그걸 구경하고 즐거워한다? 이것이 홀로코스트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실제 보도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gvUfgP31FAc)

3.
한편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위선과 이중 잣대도 지적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일들로 러시아를 악마화하던 저들의 논리는 팔레스타인에 오자마자 말끔하게 사라졌다. 대신 그 논리는 교묘하게 이스라엘이 아닌 팔레스타인을 겨냥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사실 이런 행태는 예전부터 있어 왔다. 매일 이스라엘에 의해 죽어나가는 팔레스타인의 참상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던 주류 언론들은 팔레스타인이 저항이라도 하는 날에는 급속도로 관심을 갖는다. 물론 거기서 발생한 이스라엘인 사망자에 초점을 맞추며, 팔레스타인이 벌이는 ‘테러’를 규탄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번 저항이 있기 전에도 팔레스타인은 거의 매일 이스라엘의 탄압에 시달렸다. 경찰과 군인이 팔레스타인인을 체포, 폭행, 살해하는 건 예사이다. 공권력의 비호를 받는 유대인들이 서안 지구 내에 불법으로 들어와 점령촌을 건설하였다. 유대인 점령촌 거주민들은 팔레스타인 마을의 우물을 콘크리트로 메워버리기까지 했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취재하는 기자들과 팔레스타인인을 위해 투쟁하는 외국인 활동가마저 살해했다. 그런데 이런 참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애초에 보도도 잘 되지 않을 뿐더러, 충돌만 발생하면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보도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YTN에서는 2021년 팔레스타인 관련 보도에서 이스라엘에 일방적으로 우호적인 내용을 보도한다는 비판을 받고 그 보도를 삭제한 적도 있다.
(관련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CpyeigYQ1BY)

팔레스타인을 겨냥한 가짜뉴스도 횡행하고 있다. 얼마 전 SNS를 하다가 나는 충격적인 동영상 하나를 봤다. 무장단체 하마스(Hamas)가 이번 봉기에서 이스라엘 아이의 목을 잘랐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영상은 지난 2016년 시리아 내전 당시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수니파 반군이 알레포 인근에서 벌인 만행을 녹화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 사건의 희생자는 미성년자로서 팔레스타인인이라고 한다. 팔레스타인인 피해자가 이스라엘인 피해자로 뒤바뀐 것이다. 곧 진상이 드러날 거짓말이 버젓히 유포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을 ‘테러리스트’로 몰기 위해서 말이다. 이러한 왜곡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옛날에도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만행을 팔레스타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위한 조작을 지속적으로 시도하였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알자리라 기자 쉬린 아부 아클레에 대해 이스라엘은 처음엔 그녀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총격 때문에 죽었다고 변명하였다.
(알자지라 기자 사망 관련 기사 :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1057673.html)

또한 언론은 또 하나의 중요한 무기를 갖고 있다. 바로 ‘반유대주의(Anti-Semitism)’이라는 용어다. 이스라엘을 비판만 해도 ‘반유대주의’로 몰아서 그 주장의 공신력을 떨어뜨리려는 목적이다. 이는 실제로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가고 있다. 지난 2019년 영국 노동당 당수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 1949~)만 하더라도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과 레바논과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반유대주의’라는 꼬리표를 얻었다. 그는 끝내 당원권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빨갱이’ 혹은 ‘종북’ 몰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나 역시 그런 범주라면 ‘반유대주의자’이리라. 하지만 나는 유대인을 미워하지 않으며, 홀로코스트 역시도 준열하게 규탄한다. 다만 지금 이스라엘이 하고 있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홀로코스트와 다르지 않기에, 그것 역시 통렬하게 규탄할 뿐이다.

4.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 가장 큰 논란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팔레스타인 독립운동가들의 무장투쟁노선일 것이다. 수십 년 동안의 투쟁 동안 ‘테러(Terror)’로 여겨지거나 그렇게 여겨질 수 있는 사건들도 있었다. 한때 이스라엘을 뒤흔들었던 자살 폭탄 공격 역시도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문제는 상당히 어려운 주제이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그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도덕의 문제까지 겹치게 되면 더욱 복잡해진다. 물론 나라고 투쟁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조리 정당화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왜 그런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는가 대해서는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바로 그것이 이 그들의 투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들은 왜 투쟁하는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팔레스타인의 독립이다. 앞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자행했던 만행들을 짧게나마 소개하였다. 그렇기에 팔레스타인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궐기하였다. 헌데 왜 하필 무장투쟁이라는 ‘폭력’인가? 오직 그 방법밖에는 없는가? 그것이 효과적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그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학살과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을 차지한 이스라엘에는 평화적인 방법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해외에서나마 PLO 같은 조직들이 조직되었고, 무장투쟁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1987년 1차 인티파다를 기점으로 돌멩이와 화염병을 던지는 초보적인 방식으로 투쟁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잔혹한 진압을 가하면서 점차 그 투쟁 역시도 더욱 폭력적이고 급진적으로 바뀌어갔다.

이스라엘의 진압은 어떠했길래 그랬을까?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1982년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PLO을 없애고자 기독교계 민병대를 동원하여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습격해 대량의 난민들을 학살하였다. (사브라-샤틸라 학살) 2006년에는 반(反)이스라엘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없애기 위해 레바논을 침공하면서 백린탄과 집속탄을 사용했다. 두 무기 모두 인간에게 사용이 금지된 무기였다. 같은 해 가자 지구의 선거에서 하마스가 압승을 거두자, 하마스를 없애기 위해 2008년 가자 지구에 대대적인 공습을 가했다. 이때에는 백린탄, 열화우라늄탄, 고밀도금속폭탄, GBU39 폭탄 등 온갖 폭탄들이 동원되어 가자 지구가 ‘신무기 실험실’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또한 이스라엘군을 투입하여 민간인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포하고 재산을 파괴하였다. 그 결과 1400여 명이 사망했고, 그중 460여 명은 어린이였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감히 ‘평화적인’ 투쟁을 외칠 수 있겠는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조차도 분노로 치가 떨리는데, 그 현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이스라엘군의 폭탄 : https://m.khan.co.kr/world/mideast-africa/article/200901131805245#c2b)
(이스라엘군의 고백 : https://m.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345187.html)

자살 폭탄 공격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자살 폭탄 공격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94년이다. 1993년 오슬로 협정이 체결됨으로써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평화를 예상했지만, 그 협정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출범했다는 의의만 있었을 뿐, 오슬로 협정은 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 사안(국경, 난민, 점령촌 등)을 외면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봉쇄는 더욱 심해졌으며, 점령촌 건설 역시 여전히 이어졌다. 빈곤과 차별 역시도 팔레스타인인의 자존심과 생존을 짓밟았다. 또한 두 차례의 인티파다 동안 압도적인 이스라엘의 군사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몸뚱이밖에 없었던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살 폭탄 공격을 택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물론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점에서 자살 폭탄 공격은 윤리적인 면에서 당연히 규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가 그들에게 자살 폭탄을 두를 수밖에 없도록 했는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폭압이 없었더라면 자살 폭탄 공격자도, 그 공격에 의한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인이 자살 폭탄 공격을 하는 이유 :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41767)

참고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기자 알리 아부니마(Ali Abunimah)는 이번 봉기를 맞아 자신의 SNS에 다음과 같이 썼다. “지난 경험 속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잘 행동하더라도, 피해자로서 아무리 ‘선한’ 모습을 보여도 적 침략자의 야만적인 손아귀에 버려진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이 뭐라고 말하는지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과 그들의 저항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출처 : https://twitter.com/AliAbunimah/status/1710938576924357087?t=W1uCbEMHBCTmLg145KW2ww&s=19)

5.
이번에 발생한 팔레스타인의 봉기는 어떻게 흘러갈까? 긴박하게 흘러가는 정세 속에서 함부로 말을 얹기엔 어렵다. 팔레스타인 독립운동 세력은 이번 봉기를 꽤나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아이언돔은 하마스가 쏜 미사일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고, 각종 초소들과 군사 기지 그리고 마을들은 팔레스타인의 수중으로 넘어 갔다. 이번 봉기에 참여한 세력도 다양하다. 물론 하마스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지만, 하마스 외에도 좌파 성향의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도 지지를 표하면서 참여했으며 청년들 중심의 초정파적 무장단체도 동참한 상황이다. 즉 이번 봉기는 꽤나 대대적이고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범죄를 끝장내겠다”라는 포부도 밝혔다.

그렇다고 해서 이 봉기의 성공을 섣불리 점칠 수는 없다. 이스라엘은 매우 강경하고 날선 반응을 보이고 있다.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는 “본 적 없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발언했고, 가자 지구의 완전한 봉쇄를 추진하고 있다. 여당 리쿠드당 소속 국회의원 아리엘 캘너(Ariel Kallner)는 나크바를 무려 7번이나 언급하는 트윗을 자신의 SNS에 올리기까지 했다. 일각에서는 지상군의 가자 지구 투입까지 점치고 있다. 다만 가자 지구에서의 지상전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대학살은 물론이고 이스라엘인 인질들의 목숨마저 위협하는 행위이기에 섣불리 결정될 사안은 아니다. 이외에도 서방의 태도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공공연하게 지지하며 항공모함을 파견했다. 영국과 독일 등도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팔레스타인은 지금도 싸우고 있다는 점이다. 수십 년 동안의 학살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팔레스타인은 투쟁해왔다. 수많은 희생을 치뤘음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은 여전히 굴복하지 않고 있다. 이 생명력이야말로 긴 세월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투쟁의 원천이 아닐까 한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연대가 있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는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서 엄청난 인파가 몰렸으며, 스코틀랜드의 셀틱FC 팬들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시오니즘을 종결할 것을 요구하며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었다. 국내에서도 팔레스타인평화연대라는 조직이 있어 팔레스타인 해방의 대의를 함께 공유하고 있다. 그런 만큼 팔레스타인의 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끝내 그들이 승리할 것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 역시도 팔레스타인의 해방투쟁을 지지한다.
(예멘 사나의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 보도 : https://www.youtube.com/watch?v=Iqp6ofgiwYI)
(셀틱FC 팬들의 팔레스타인 지지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HlvEros0ML4)

마지막으로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의 지도자이자 소설 <뜨거운 태양 아래서>의 저자였던 가산 카나파니(Ghassan Kanafani, 1936~1972)의 인터뷰 한 장면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식민 지배와 인종 청소의 역사 속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평화’라는 단어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그 안의 삶이라는 건 언제라도 이스라엘에 의해 산산조각 날 수 있는 불안 그 자체다. 그렇기에 카나파니의 말처럼 투쟁만이 그 삶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투쟁만이 그들의 삶을 지키고 궁극적으로는 ‘평화’마저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 : 당신들은 도대체 왜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는 거죠?
카나파니 : 평화 협상이 아니라, 왜 조건부 항복이나 굴복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인 거죠?
기자 : 그냥 대화를 좀 나누면 안 되나요?
카나파니 : 누구와?
기자 : 이스라엘 지도자들하고요.
카나파니 : 한 쪽은 칼을 들고, 한 쪽은 그 칼에 목을 대고 하는 대화를 말씀하시는 거죠?
기자 : 칼이랑 총이 없는 방 안에서 대화를 나누면 되지 않을까요?
카나파니 : 아니요. 저는 단 한 번도 식민자와 민족해방운동 간의 대화를 본 적이 없습니다.
기자 : 이런 것들을 차치하고라도, 그냥 대화 좀 하면 안 됩니까?
카나파니 : 무엇에 관한 대화를 하라는 말입니까?
기자 : 싸우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요.
카나파니 : 왜 싸우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까?
기자 : 무엇을 위해서건 싸움 자체를 그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카나파니 : 사람들은 이유가 있어서 싸우고, 이유가 있어서 싸움을 중단합니다. 당신은 우리가 무엇에 대해, 왜 이야기를 나눠야하는 지도 답하지 못하는군요. 우리가 왜 싸움을 멈추고 대화를 해야 합니까?
기자 : 더 이상의 죽음과 불행, 파괴와 고통을 막기 위해 싸움을 멈춰야 하는 것이죠.
카나파니 : 누구의 불행과 파괴와 고통과 죽음을 말하는 겁니까?
기자 : 팔레스타인인들, 이스라엘인들, 아랍인들이죠.
카나파니 : 아. 삶이 송두리째 뽑힌, 난민촌으로 보내진, 배고픔에 굶주린 채 20년 넘게 죽임을 당하고 ‘팔레스타인인’라는 단어도 사용할 수 없는 그 팔레스타인인들 말하는 겁니까?
기자 :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카나파니 : 그건 당신 생각이고, 우리는 안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나라를 해방시키고, 우리의 존엄성과 존중을 되찾고, 일말의 인권이나마 보장 받는 것이 삶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fwCJP2vohSg)

추신 :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들은 다음의 책을 꼭 필독하시길 바랍니다.
가산 카나파니, 윤희환 역, 『뜨거운 태양 아래』, 열림원, 2002.
조 사코, 함규진 역, 『팔레스타인』, 글논그림밭, 2002.
송경숙 , 『갓산 카나파니의 삶과 문학』,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 2005.
아리 폴먼·데이비드 폴론스키, 김한청 역, 『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하여』, 다른 2009.
조 사코, 정수란 역,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글논그림밭, 2012.
무리드 바르구티, 구정은 역,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 후마니타스, 2014.
일란 파페, 유강은 역, 『팔레스타인 비극사 : 1948, 이스라엘의 탄생과 종족청소』, 열린책들, 2017.
라시드 할리디, 유강은 역,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열린책들, 2021.
원혜진,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감수, 『아! 팔레스타인 : 만화로 보는 팔레스타인 역』 1-2, 바이북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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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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