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정립》읽기 맑스레닌주의와 자주사상의 연속과 구별에 대해
세미나 안내
일시: 2023년 10월 9일(월) 저녁 7시
범위: 《철학의 정립》1권
제 2부 마르크스와 레닌주의와의 관계
6. 모택동의 계속혁명론과의 관계
7. 인간과 물질
8. 자주적 인간과 노동하는 인간
9.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역사와 계급투쟁의 역사
10. 자주시대와 제국주의 시대
11.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참가 Zoom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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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ID: 848 0987 5711
암호: 315472
오늘《철학의 정립》은 범위 소개에서 보듯, 맑스레닌주의와 자주사상의 연속성, 구별성에 대한 중요한 논쟁점들을 담고 있습니다.
[맑스주의 고전읽기] 세미나에서 이미 다뤘듯이, 계속혁명론, 연속혁명론, 영구혁명론, 부단혁명론, 중단 없는 혁명론 등 다양하게 불리는 혁명의 지속성과 발전의 문제를 다룹니다. 여기서는 마오쩌둥의 계속혁명론과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살펴보고 있지만, 이는 봉건제에 맞서 투쟁을 하던 맑스시기로부터 짜리즘에 맞서 민주주의 혁명의 단계부터 사회주의 혁명을 목표로 투쟁하던 레닌의 시기, 트로츠키의 대표 모토가 된 비레닌주의 연속혁명론에 맞서 투쟁하던 스탈린 시기, 이후 반제 반봉건 신민주주의 혁명을 하던 마오의 시대, 인민민주주의 혁명과 대를 이은 계속혁명을 주장하는 북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문제입니다. 이는 제2부 11장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도 다루는 것처럼, 과도기를 소과도기로 볼 것인지, 대과도기로 볼 것인지 과도기의 기간, 범위의 문제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내용, 기간괴 관련, 과도기와 공산주의 낮은 단계까지를 프롤레타리아 독재기로 볼 것인지, 혹은 높은 단계 진입까지 볼 것인지 이후로까지 볼 것인지, 후르시초프처럼 과도기를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 진입기까지로만 한정하고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전 인민의 국가로 대체할 것인지 등 일국적, 국제적 공산주의 운동의 존망과도 연결이 되는 아주 중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더 깊게 살펴볼 지점은 계급소멸과 국가의 문제입니다. 맑스주의에서는 높은 수준의 공산주의에서는 계급과 국가가 소멸될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자주사상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이번 세미나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세미나에서는 자주사상이 인간과 물질일반을 대비함으로써 철학상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인간과 물질일반이 아니라 인간과 물질적 ‘존재’와 비교하여 인간을 가장 발전한 존재라고 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실제 자주사상은 인간을 “생명을 가진 다른 모든 물질은 객관세계에 종속되고 순응함으로써 자기의 생존을 유지하”는데 반해, “사람은 세계를 인식하고 변혁하여 자기에게 복무하게 만듦으로써 생존하며 발전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명을 가진 물질적 존재 중에서 “가장 발전된 물질적 존재이며 물질세계 발전의 특출한 산물”이라고 주장하여 인간과 물질일반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물질 존재와 비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맑스주의에서 노동하는 인간은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인류의 존속에 필수불가결할 뿐만 아니라 노동을 통해 인식과 지혜가 늘어나고 상호 협력하고 우애하게 되었습니다.(물론 계급사회에서 노동은 천대 받고 노동자들은 착취 당하는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이러한 노동과 자주성은 대비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주성은 더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고 수탈하는 지배계급의 억압에 맞서 계급투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급투쟁은 문자로 기록된 이래, 즉 지배자와 피지배자, 억압자와 피억압자로 인류가 대립된 결과 이 상호 간에 생겨난 투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계급투쟁은 자주성과 구별되지 않습니다만 자주성은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철학의 정립》에서는 설명합니다.
※ 《철학의 정립》을 같이 학습하고자 하는 분은 아래 연락처로 연락주기 바랍니다.
010 3398 0248
* 이 세미나는 격주 일요일 저녁7시에 하나 이번에는 사정상 오늘(월요일)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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