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정립》의 의의와 ‘민족해방운동’ 관련해 제기한 명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 ‘정립’을 위해
– 과연 맑스레닌주의는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을 사회주의 혁명의 후비군으로만 간주했는가?
《철학의 정립》은 중요한 저작이다. 맑스레닌주의와 북자주사상의 관계에 대해서 풍부하게 해설하고 있다는 점에서 먼저 중요하다. 더욱이 오늘날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자주사상에 대해 부정, 배척 혹은 무관심하거나 혹은 왜곡하는 이남의 지적, 정치적 풍토에서 자주사상의 진면목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더욱이 이 책은 맑스레닌주의와 자주사상의 관계를 비교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지적, 정치 풍토가 수정주의, 청산주의의 만연으로 인해 맑스레닌주의와 자주사상에 대해 전반적으로 무관심하고 심지어 배척, 왜곡하는 와중에, 그리고 설사 관심을 가지더라도 일면적으로 맑스레닌주의에 집중하면서 자주사상을 외면, 배척하거나 반대로 일면적으로 자주사상에 집중하면서 맑스레닌주의를 외면, 배척하는 상황에서 (자주사상의 토대 위에서지만) 이 양자를 균형적으로 살펴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은 자주사상에 대한 다방면의 비판, 왜곡에 대해 논쟁적으로 반박을 하고 있는 점에서 대개의 자주사상 해설서와 다르게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고 흥미 있다.
이 책이 비록 1980년대 말에 나왔지만 지금까지도 맑스레닌주의와 자주사상에 대해 비교 검토하며 다룬 책들이 거의 없으며 일부 있다 해도 대개는 현학적으로 다루거나 내용이 확고하지 못하거나 심각하게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이 점에서 《철학의 정립》은 낡고 오래된 책이 아니라 자본주의 착취와 분단과 제국주의 지배 라는 우리 현실에서, 민족문제와 계급모순을 통일적으로 보기 위해, 분열된 우리 운동의 진정한 통일을 위해, 분단사회에서 우리민족의 반쪽인 북을 이해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다시금 붙잡고 씨름해야 하는 책이다. 《철학의 정립》을 통해 맑스레닌주의와 자주사상의 관계에 대한 통일적 인식으로 사상적 분단, 일면성을 극복하고 이 사회 변혁사상을 정립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이러한 전제를 분명히 하면서, 우리는 실사구시로 진리를 추구하는 심정으로, 맑스레닌주의와 자주사상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기 위해서, 여기서는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 보다 이 책의 일부 주장이 사실에 맞지 않고 맑스레닌주의를 일부 왜곡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다음에 살펴볼 것처럼, 《철학의 정립》에서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일부 사실과 맞지 않는 주장을 함으로써, 여기에 맑스레닌주의의 ‘제한성’을 이유로 변증법과 유물론으로 확고하게 무장하지 않고, 이로써 계급투쟁을 경시하는 흐름이 팽배한 상황에서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반드시 필요하다.
《철학의 정립》에서는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레닌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주장하며 그 한계를 밝히고 있다.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레닌의 견해를 살펴보면 종주국의 노동계급의 혁명투쟁과 결부시켜 설명했으나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을 다만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일어나는 사회주의 혁명의 후비군으로만 간주했다. 이로써 레닌은 식민지 나라들에서의 민족적 해방을 종주국에서의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할 때에만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말하자면 종주국에서의 혁명의 승리가 곧 식민지 나라 민족들의 독립과 해방을 가져오게 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논리대로 한다면 당시 우리나라에서의 민족적 해방과 독립에 관한 문제도 종주국인 일본 내의 혁명의 승리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밖에 없었다.”(《철학의 정립》 1권 , 대동출판사, 18쪽)
이 주장은 사실에 맞지 않고 결론은 비약적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조선의 혁명가들이 조선의 반일 민족항쟁 보다 일본 종주국 혁명을 우선시 하고, 일본의 중국침략 이후 중국에서 (반)식민지해방도 일본 종주국의 혁명 승리에만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레닌과 스탈린 같은 쏘비에트 지도자들이 이 같은 주장을 했다면 일본 종주국 혁명에 지나친 환상을 가졌거나 조선이나 중국해방투쟁을 경시했다는 것인데 당시 정황으로 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종주국에서 혁명 승리가 식민지 나라들의 독립과 해방에 결정적 요인이 된다는 명제는 증명이 필요 없는 자명한 얘기다. 그런데 이로부터 식민지 해방도 종주국 혁명이 가능할 때만이 가능하다며 식민지해방 투쟁의 중대성을 부정하고 심지어 종주국 혁명만 주장한다는 것은 레닌이 주장한 사실과도 맞지 않고 엄청난 비약이다.
물론 일면적으로 보면, 레닌과 당시 국제 공산당이 식민지해방투쟁이 종주국의 후위대라고 오해할만한 결의나 구절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19년 3월 2일 모스크바에서 열렸는데 이틀 뒤인 3월 4일 국제공산주의 회의에서는 동방의 민족들에게 다음 선언문을 발표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식민지 노예들이여! 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승리하면 여러분의 해방도 이루어질 것이다.”(《레닌과 아시아 민족해방운동》, 도서출판 남풍, 66쪽)
식민지 해방투쟁이 세차게 불타오르는 1922년 즈음에 레닌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우리의 논제에 흐르는 두 번째 기본적인 사상은 제국주의 전쟁에 뒤이은 현재의 세계 상황 속에서 인민들과 전체로서의 세계 정치체제 간의 상호적인 관계는 몇 안 되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쏘비에트 러시아에 의해 지도되는 쏘비에트 운동과 쏘비에트 국가들에 대항해 촉발되고 있는 투쟁에 의해 규정된다. 우리가 이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단 하나의 민족문제나 식민지 문제도 그것이 아무리 세계의 변방지역에 관한 것이라 해도 올바르게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문명국에서나 후진국에서나 공히 공산당들은 이러한 근본원리를 출발점으로 삼을 경우에만 정치적 문제들을 올바르게 제기하고 해결할 수 있다.”
1919년대에 “유럽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승리하면”이라는 전제는 당시 독일혁명을 염두에 두고 한 주장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에 유럽 독일에서 혁명이 승리하면 이것이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로 혁명의 세차게 번져갈 것이고, 이처럼 제국주의 심장부가 근본적으로 동요하게 되면 이것이 식민지 해방투쟁의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실제 1945년 쏘비에트 적군이 독일 파시스트를 괴멸시키고 쏘비에트가 승리하고 난 뒤 파죽지세로 일본 관동군을 괴멸시키면서 동유럽이 해방되고 아시아 등 세계의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들이 결정적인 해방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물론 이로부터 식민지 나라들에서 자주적 해방투쟁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절대 아니다)
1922년 경 1차 제국주의 전쟁 이후에 독일을 위시로 제국주의 국가들이 쏘비에트를 붕괴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는 시점에서 쏘비에트를 수호하고 이 쏘비에트의 운명이 변방의 식민지 나라들의 운명과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또한 식민지 나라들, 특히 이 나라의 공산당들이 이 점에서뿐만 아니라 식민지 해방투쟁의 목표로 부르주아 공화국을 세우려는 목적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강조하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로부터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을 다만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일어나는 사회주의 혁명의 후비군으로만 간주했”던 것도 사실이 아니며 “식민지 나라들에서의 민족적 해방을 종주국에서의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할 때에만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는 것은 더더욱 사실이 아니다.
일찍이 1912년 1월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프라하 대회에서 채택된 레닌이 쓴 결의안에는 심지어 더 나아가 아시아의 해방이 유럽 부르주아의 지배를 붕괴시키게 될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대회는…아시아의 해방을 가져오고 유럽 부르조아 지배를 붕괴시킬 중국인민의 혁명투쟁의 전 세계적 중요성을 지적한다. 대회는 중국의 공화주의적 혁명가들을 환영하며, 커다란 공감을 보내는 바이며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는 그러한 환호와 공감을 가지고 중국의 혁명적 인민들의 성공을 추구해 나갈 것이다- 짜르의 팽창정책을 지지해 온 러시아 자유주의를 비난한다.”(같은 책)
“민족이익이라는 말은 근로대중들을 그들의 불구대천의 원수인 제국주의에 봉사하게끔 하려는 기만적 수단으로서만 이용될 뿐이다.”(로자 룩셈부르크, ‘유니우스 팜플렛’, 같은 책)라며 “제국주의에 대항한 민족운동”을 부정한 로자 룩셈부르크를 비판하며 공산주의자들이 민족 자결권을 옹호해야 한다고 주장한 레닌의 입장에서도 잘 나와 있다.
레닌은 식민지 해방과 약소민족들의 반란 없이는 ‘순수한’ 사회혁명을 기대하는 공산주의자들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식민지와 유럽에서 약소민족들의 반란 없이도 사회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쁘띠 부르조아지의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혁명적 분출없이도 사회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지주, 교회, 그리고 군주제에 의한 억압과 민족억압에 반대하는 정치적 의식이 저급한 프롤레타리아트와 반(半)프롤레타리아트의 운동이 없이도 사회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 모두는 사회혁명을 거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그리고 이렇듯 어처구니없는 현학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일랜드혁명을 평가절하하여 이를 ‘일시적인 폭동’이라 불러댈 것이다. ‘순수한’ 사회혁명을 기대하는 사람은 살아서는 결코 그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혁명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말로만 혁명을 떠드는 자이다.”(“민족자결에 관한 토론 총괄”, 같은 책)
레닌과 코민테른은 종주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식민지 해방투쟁에 관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존중할 것을 촉구하고 종주국 혁명과 식민지 해방을 통일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촉구했다.
“동양이 여명에서 깨어나고 있는 지금, 우리가 국내의 비러시아 민족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경솔하게 대하고 불공정하게 대함으로써 그 인민들에 대한 우리의 위신을 손상시키면 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기회주의다.”(레닌, “민족문제와 자치”, 《레닌과 아시아 민족해방운동》)
“동방과 서방의 모든 노동자, 농민의 통일만세! 모든 억압받고 착취 받는 근로인민의 통일만세”(같은 책)
코민테른 내에서 레닌은 당시 로이로 대변되는 인도 공산주의자들이 “인도대중들은 민족정신에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그리고 “수천만 인민들은 절대적으로 부르주아 민족주의 슬로건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주장과 이란의 공산주의자인 슐탄자데의 “식민지 나라들에서 부르조아 민주주의적 민족운동을 지원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테제가 잘못되었다”는 좌익 분파주의적 견해가 식민지해방투쟁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레닌은 “자본주의와의 투쟁에서 유럽과 미국의 노동자들이 바로 그 자본에 의해 억압받고 있는 수억의 ‘식민지’ 인민들과 밀접하고도 철저하게 단결을 이루지 못한다면, 선진국의 혁명적 운동이란 사실상, 하나의 순전한 사기행각에 불과한 것으로 된다.”(같은 책)라고까지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식민지와 유럽에서 약소민족들의 반란 없이는 순수 사회혁명은 가능하지도 않고, 식민지 해방투쟁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종주국 내 혁명운동에 대해 “순전한 사기행각”이라고까지 한 레닌의 주장과 식민지 해방투쟁은 오로지 종주국 혁명의 결과로만 이뤄질 수 있으며 후위대라고 하는 주장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
이로써 레닌의 관점을 총괄해보면, 종주국 혁명이 식민지 해방을 가져올 것이며, 반대로 식민지 해방은 종주국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에 양자가 긴밀하게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식민지 해방, 특히 자결권과 분리의 자유를 위해 싸우지 않는 종주국 공산주의자들은 진짜 공산주의자들이 아니며 종주국 해방투쟁을 엄호하지 않고 식민지 해방투쟁과 분리시키는 식민지 공산주의자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로써 레닌의 식민지 해방운동에 대한 올바른 사상을 바탕으로 진심으로 식민지 해방투쟁을 지지, 지원한 해방된 쏘비에트와 머리에서 발끝까지 무장한 일제 점령지 한 가운데서 반일항쟁을 하며 “무장으로 쏘비에트를 옹호하자!”며 투쟁한 식민지 공산주의자들의 참된 국제주의 정신이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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