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주의 고전읽기] 《프랑스혁명사 3부작》(맑스) 맑스주의 역사학의 금자탑을 쌓다!
일시: 2022년 8월 9일(화) 19시
* 세미나는 격주 화요일에 합니다.
* 직접 참여하기 어려운 동지들을 위해 영상으로도 세미나를 같이 합니다. 영상으로 참여하실 분들은 안내 전화로 참여 의사를 밝히면 초대하도록 하겠습니다.
* 지속적 참여가 어려운 분들은 부분 참여도 환영합니다.
* 지방에 계신 분들은 2인 이상의 팀을 구성하면 직접 방문해서 세미나를 같이 진행합니다.
참가 문의: 010-3398-0248
《프랑스혁명사 3부작》(소나무)은 실은 맑스가 쓴《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프랑스 내전》을 국내에서 소나무출판사에서 하나로 묶어 놓은 것입니다. 태백 출판사, 비르투출판사, 박종철출판사에는 이 중 일부를 각각 단행본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은 멀리는 그 기원을 1789년 프랑스대혁명까지 소급해 올라갈 수 있는 1849년 2월 혁명을 기점으로 부르주아의 권력장악과 제헌의회, 노동자계급의 6월 봉기, 봉기의 처참한 패배와 피학살, 루이 보나파르트의 집권과 보통선거권의 폐지와 질서당이라는 봉건 분파의 지배가 펼쳐지는 1850년까지의 격동적 시기를 다루고 있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나폴레옹의 조카라고 하는 나폴레옹의 모방자, 루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3세의 1851년 쿠데타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프랑스 내전》은 72일 동안 단명했지만 역사의 최초의 노동자·민중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파리코뮌을 다루고 있다.
《프랑스혁명사 3부작》역자(허교진)가 주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은 계급분석과 계급동맹의 문제를,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국가론의 문제를, 《프랑스 내전》은 파리코뮌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맑스주의자임을 자처하지만 실은 반맑스주의자인 신좌파적 보비오는 《마르크스주의 국가이론은 존재하는가 : 보비오논쟁》라고 물었는데, 맑스는 국가이론을 따로 집필하지는 않았지만,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가장 탁월하고 생생한 국가론 저작이다. 아울러 《프랑스 내전》이 위대한 파리꼬뮌을 직접 목격하고 정립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이라는 맑스주의 국가론이다.
맑스의 《프랑스혁명사 3부작》은 보통의 역사 저술이 그런 것처럼 후대의 역사가가 과거 역사를 평가하여 서술한 책이 아니다.
엥겔스의 유명한 1895년 서문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맑스의 프랑스 혁명의 기록은 동시대 역사 서술입니다. 맑스가 역사 평론가가 아니라 당대의 혁명에 뛰어들어 바로 그 순간을 생생하게 분석하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려고 했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 서술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역사란 지나간 과거의 사건들의 집합 정도로 알고 있는 우리에게 동시대의 역사를 서술했다는 것은 참으로 ‘신박’하게 들린다. 동시대에 역사를 평가하고 예측한다는 게 가능하기라도 한 것이야? 대뜸 이런 질문이 들 것이다.
엥겔스는 동시대 역사 서술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큰 사건들과 일상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소사건들을 판단함에 있어서 곧바로 궁극적인 경제적 원인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누구에게도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더욱이 이러한 요인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들은 일반적으로 오랫동안 은밀하게 작용한 다음에 돌발적으로 강력하게 표면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방법론으로 동시대 역사서술을 했는가?
“특정시기의 경제사에 대한 명확한 개괄은 결코 동시대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한 연구는 오직 자료의 수집 및 면밀한 분석이 이루어진 이후에야 결과적으로 얻어질 수 있다. 여기서 통계는 필수적인 참고자료이며, 통계는 항상 사건발생 이후에나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당대의 역사에서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를 불변의 것으로 취급하는 것, 관련된 시기의 초기에 존재한 경제적 상황을 전체시기에 대해 주어진 것이나 바뀌어질 수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것,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눈 앞에서 확실히 존재하는 사건 자체로부터 발생하며 따라서 마찬가지로 뚜렷이 목격될 수 있는 제변화만을 주목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경우, 유물론적 방법은 정치적 갈등들을, 경제적 발전의 결과로 마주치게 된 제사회 계급 및 제계급에 속하는 각 분파의 각 이해관계 사이의 투쟁에까지 소급 추적하고, 그리고 특정 정당들을 이같은 계급 및 제계급에 속하는 각 분파의 다소 적절한 정치적 표현으로서 제시하는데에 멈추어야 하는 것이다.”
역사적 유물론으로 확고하게 무장했기 때문에 동시대 역사서술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동시에 역사서술에 도전할 수는 없다. 엥겔스는 “당대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제시하기 위한 모든 조건들 속에는 불가피하게 오류의 근원들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오류가 아무도 당대사 서술을 못하도록 막을 수는 없다”며 역사적 유물론으로 무장하고 탁월한 역사가이자 혁명가인 맑스였기 때문에 이 작업을 훌륭하게 완수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맑스는 1869년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제2판에 부치는 저자 서문>에서 역사와 역사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를 빅또르 위고와 프루동의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빅또르 위고는 꾸데따를 주도한 자에 대하여 매섭고 재치있는 독설을 퍼붓는 데에 그치고 있다. 그는 꾸데따에서 오직 한 개인의 폭력적인 행위만을 보았을 뿐이다. 세계사에서 유래(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그러한 독창적인 개인 권력의 출현이 보나빠르뜨에게서 유래(유례)한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위고는 그를 소(小)나뽈레옹이 아니라 대(大)나뽈레옹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프루동은 자신의 입장에서 꾸데따를 선행된 역사발전의 산물로서 묘사하려 하였다. 그러나 꾸데따에 대한 그의 역사적 서술은 꾸데따의 주인공을 위한 역사적 변명이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프루동은 소위 객관적인 역사가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나의 저서는 어떻게 프랑스에게 계급투쟁이 우스꽝스러운 보통 사람으로 하여금 영웅으로 행세할 수 있는 그러한 환경과 제관계를 만들어 내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맑스의 《프랑스혁명사 3부작》은 지금도 식자들이나 역사학자들에게 회자되는 빛나는 어록들을 수없이 남기고 있다.
“헤겔은 어느 부분엔서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되풀이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첨가하는 것을 잊었다. 즉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笑劇)으로 끝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지만, 그들이 바라는 꼭 그대로 역사를 형성시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환경하에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맞닥뜨리게 되거나 그로부터 조건지워지고, 넘겨받은 환경하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 있는 세대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이 공화국의 진정한 형태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길만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의회의 휴회를 영구화시키고 의회의 모토인 “자유·평등·박애”를 “보병·기병·포병”이라는 훨씬 분명한 표현으로 대체시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단순히 기존의 국가조직을 장악하여 이것을 자기의 목적을 위해 행사할 수는 없습니다.”
맑스의 유려한 문체도 문체지만, 역사법칙과 그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장이 가능한 것이다.
맑스는 《프랑스혁명사 3부작》을 통해 부르주아 역사가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맑스주의 역사학의 금자탑(金字塔)을 쌓았다. 이는 진보적 인류 역사학의 금자탑이라고도 할 수 있다.
《프랑스혁명사 3부작》을 이해해야지만, 러시아혁명을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류의 진보적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진보적 발걸음마다 지배계급이 역사의 진보를 깨뜨리기 위해 어떠한 입장을 취했는지, 부르주아 ‘공화제’의 탄생과 본질은 무엇인지, 부르주아는 “국민 전체”의 이름으로 어떻게 자신들의 탐욕과 폭력을 교묘하게 위장해 왔는지도 알 수 있다. 따라서 《프랑스혁명사 3부작》을 이해해야지만 새 세계의 진보적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프랑스혁명사 3부작》은 맑스 생전 당대의 역사 기록과 분석이지만, 과거가 아니라 우리 당대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프랑스혁명사 3부작》을 한 번이라도 보면 맑스주의 철학이 ‘경제결정론’이라는 평가와 비난이 악의적 모략이고 단순한 왜곡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프랑스혁명사 3부작》을 읽고 또 읽자!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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