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위기는 한반도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_ 통일시대연구원 강태영

 

* 이 글은 [전국노동자정치협회] “현대제국주의와 국내외 정세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실천 전망 마련을 위하여” 토론회에 제출된 토론문입니다.

 

지난 2월 24일, 이른바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의 표현에 따르면 ‘특별군사작전’ 시행 직전에 진보정당의 한 대선후보는 이 상황에 대한 논평을 내놓았다. 논평의 주요 내용은 우크라이나 사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며 한반도에서도 언제든지 같은 구도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고, 그렇기에 우리는 자주와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양비론적 관점이 없지 않아 있었고 반제 자주적 관점에서 여러모로 아쉬운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 온 근본적 원인인 미 제국주의에 대한 규탄보다는 러시아의 가시적인 공격에만 초점이 매몰된 이후 주요 노조의 논평 등에 비하면 그나마 자주통일을 추구하는 대중정당과 대중조직의 그것은 대중적 고립을 방지하기 위하면서도 관점을 내세운, 그럭저럭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눈을 돌리면 한국 사회에서는 진보와 보수, 좌우할 것 없이 러시아를 규탄하고 우크라이나로 프로필을 바꾸기에 여념이 없다. 양비론적 관점에서 이른바 ‘혁명적 패배’가 옳다고 주장하는 건 차라리 양반이다. 진보를 참칭하는 언론사를 보라. 하도 화가 나서 일부러 찾아보지 않을 지경이다. TV야 그 전부터도 잘 안 봤지만 3월 10일 이후로는 아예 리모컨에 손길도 대지 않았다.
한편 반제자주적 관점의 정론을 추구하는 통일시대연구원에서는 서방의 선전에만 일방적으로 매몰되지 말자는 취지로 중국, 러시아 등 반제 진영의 보도와 논평도 게재하고 있다. 물론 그 모든 내용이 옳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어떤 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과장했을 수도 있다. 어떤 건 자국의 입장이 좀 더 편파적으로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어떤 건 아직 교차검증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혹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지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다 좋다. 하지만 교차검증의 기본은 서로 상충하는 주장을 동시에 병렬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에, 될 수 있으면 중립적 입장에서 보도하고 정론을 내는 제3세계, 이를테면 인도 등의 시각도 참고할 수 있으면 더욱 좋으리라. 그리고 사실관계를 위해서는 자료의 기반, 이를테면 사학과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사료라던가, 그 진위여부를 검증해야 한다. 바로 사료 비판이다. 이 모든 건 문과라면 기본적으로 훈련받아야 하는 소양이다.
안타깝고 분노하는 건 지금 한국 언론에서는 학부생의 기본 소양조차 거치지 않고 서구의 일방적 선전을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각종 외신이 지부를 기존의 홍콩이나 도쿄가 아닌 서울로 옮겨오고 있다. 이른바 ‘홍콩 사태’를 계기로, 그리고 일본의 우경화로 인해 언론의 자유가 하락하는 한편, 한국은 ‘촛불항쟁’으로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가 회복되었다면서 서울로 거점을 옮긴다는 게 주요 사유라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물론 우리의 ‘국격’이 올라갔다고 대중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 걸 전면 부인할 생각까지는 아니다. 그러나 외신 이전의 본질은 한국 언론의 외신 종속성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자칭 진보언론조차 극우 유사 언론과 한목소리를 내는 괴상한 상황의 원인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관점이 없고 외신을 베껴 쓰기만 하기에 극우 유사 언론이나 자칭 진보(참칭)언론이나 국제 관점이 대동소이한 것이다. 그 관점이 뭐냐. 루소포비아, 반러이고, 반중이고, 결국 반북이며 친미, 친제국주의다. 요즘 말로 ‘순한 맛’이냐, ‘매운 맛’이냐, 이런 미미한 차이가 존재할 뿐. 가히 반공 일변도 네오콘과 선택적 인권을 논하는 자유주의의 합작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때문에 평화를 추구한다는 ‘진보 진영’에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종교계에서는 기도회를 개최하고,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규탄 시위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자주를 위해 투쟁하다가 최근에야 돌아온 분의 말을 빌자면) 번지수가 틀렸다. 표면적으로 러시아가 군사적 수단을 사용했다고 해서 도매금으로 러시아를 비난하는 것은 제국주의 진영의 의도에 놀아나는 것이다.
이 전쟁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2월 24일의 개전이 ‘맨땅에서 급조’된 것이 아니라 최소 8년 전부터 미 제국주의의 ‘레짐 체인지’로 인해 발생했다는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알고, 그렇다면 극우와 자유주의가 촛불 이래 처음으로 한목소리를 내는 ‘골 때리는’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관점의 중심과 대중성을 모두 놓치지 않을 것인가, 이런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노조도 그렇고 진보 진영 대부분에 그런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근본 원인과 전쟁의 기원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한국전쟁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브루스 커밍스도 그렇고, <한국의 민중봉기>와 <아시아의 민중봉기>를 쓴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한국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간명하게 정의했다. 북에서 조국해방전쟁이라고 하듯이. 그것이 북의 주장을 맹종하는 건가? 결코 아니다. 전쟁의 기원은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민족자결권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이 다른 모든 수단이 실패하면서 결국 전쟁이라는 수단으로 격화되었다고 봐야 한다는 공통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른바 우크라이나 전쟁 또한 그렇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쓴 소리 하자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진보 진영 상당수가 보여주는 반제 관점의 결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영국 식민지가 근본 원인인 홍콩, NED(미국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원조기금)가 레짐 체인지를 기도하는 미얀마 등지에서의 제국주의적 개입이 발생했을 때 진보 진영은 인권이라는 미명으로 색깔 혁명을 옹호하거나 기껏해야 양비론에 그치는 태도를 보여줬다. 자주를 추구하는 진보정당에서 정책위원회의 논평을 인권위원회가 반박하는 자중지란이 발생하기까지 했을 만큼.
우크라이나 사태 당시 한국은 대선 기간이었다. 사실 사태가 본격화되었을 때 대선에서 이재명이 신승을 거둘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누가 봐도 윤석열은 무능하고 이런 전대미문의 위기에 대한 대처 능력이 전혀 없으니 ‘콘크리트’가 아닌 부동층이 미치지 않고서야 찍겠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되면 보나 마나 파병하겠다고 먼저 총대를 멜 건데 그걸 곱게 두고 보겠냐는 생각에서 나온 예측이었다. 물론 당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발이 정권교체의 가능성으로 이어질 만큼 상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중은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고 했던 것이지, 극우가 물고 늘어지는 부정부패 문제에는 냉랭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윤석열이 신승을 거두었다. 왜 그렇게 된 걸까. 부동산 문제에서 결정적으로 발목이 잡혔다는 분석이 압도적이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수많은 분석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한국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이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여기는 식민지다.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라고 하면 대중은 대뜸 반발부터 한다. 그들이 인식하는 식민지는 주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처럼 주권이 아예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한미동맹이라는 허울로 군사 주권이 미국에 있고 그로 인해 전국 각지의 미군기지가 주권을 버젓이 부정하고 있다는 식으로 찬찬히 설명하면 납득하는 경우도 봤다. 즉 반공의 색안경을 어떻게 벗겨낼 것인가, 이걸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나 수구 정당이나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맞다. 그들은 계급적 이익에 있어서는 한편이다. 노동법 개악, 정치 개악 등 일일이 나열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럼에도 굳이 차이를 찾는다면 ‘눈 감고 귀 막는’ 완전 반동이냐, 듣는 척이라도 하려는 개량이냐, 이런 건 존재한다. 이를테면 민주당의 외교 정책도 수구 정당과 마찬가지로 친미다. 다만, 한미관계가 한중관계를 침해하면 안 된다는 나름대로 경제적 현실을 반영한 공간이 존재하는 점이 있긴 하다. 남북관계에서도 전쟁보다는 평화가 낫다는 일면 진전된 면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분단의 근본 문제인 미국에 대해서는 ‘금기’이고, 통일보다는 분단된 상태의 평화이며, 가능하면 북의 개혁개방을 유도하여 자본주의 체제로의 궁극적인 흡수를 사실상 추구하는 것이 그들의 태생적이면서 명백한 한계다.
그렇다면 윤석열의 당선은 이런 틈새조차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수위와 내각의 면면을 보면 이명박근혜의 귀환이니 노골적인 종미, 부일 정권의 등장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 의미는 단순히 윤석열 정부의 의지인가? 절대 그렇게 보면 안 된다. 그것은 미국의 의지이다. 더 이상 한국이 한중관계를 통해 무언가를 취하는 그나마 있던 독자적 공간조차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이다. 그것이 한국 대선에 반영됨으로서 정권교체로 이어졌고 윤석열이 거기에 화답하듯 대미 굴종적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하는 게 윤석열 당선 분석에서 다들 놓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한국에게 확실히 자기편에 숙이고 들어오라는 지시를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적으로는 미 제국주의의 일극 체제에 반발하는 중국 등 반제 진영의 부상이 있을 것이다. 미국은 특히 중국을 굴복시키고자 쿼드를 비롯한 대중 포위망을 가동하고 한국에는 주일미군 기지와 지소미아로 연계될 사드를 배치했다.
러시아에게도 마찬가지다. 브레진스키의 구상에서 드러나듯 궁극적으로는 러시아연방조차 해체하여 미국의 먹잇감으로 삼을 요량으로 나토를 앞세워 동진 확장정책을 펼쳤다. 그러면서 극우 민족주의를 조장하여 인종청소, 즉 제노사이드를 유도했고 민족자결과 생존권을 부정했다. 여기에 반발한 것이 바로 돈바스 전쟁이고 이를 민스크 협정으로 무마하려고 했지만, 제국주의 진영은 협정을 조금도 준수하지 않았고 결국 다른 모든 대안을 제국주의가 차단함에 따라 발생한 것이 이른바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이 모든 배경을 차 떼고 포 떼고 러시아의 침공이라고 도매금으로 인식한다? 저열한 인식 수준뿐만 아니라 그런 인식을 의도한 제국주의의 의도를 우리는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윤석열의 국정과제에는 북 비핵화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도 아닌 북 비핵화이고, 자유민주주의로 통일하겠다고 한다. 적대하겠다는 것이다. 적대는 반발을 부른다. 미국에 더욱 종속될수록 일본까지 미일한 군사동맹의 가능성이 현실화가 될 것이다. 북이 가만히 있을까? 절대 아니다. 전략 국가를 완성한 북은 진작부터 중국, 러시아와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미일한 동맹에 조중러 연대가 대항하게 될 것이다. 그때도 진보 진영, 특히 자주통일을 기치로 내거는 진영에서 세계 각지의 제국주의적 개입 당시 보여준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이제라도 진보 진영의 반제 자주적 관점을 되짚어 보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기사를 총 387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