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혐오의 정치적 기원2> 중국 혐오는 (신)식민지 담론이다
‘짱깨주의의’ 탄생, 인종주의와 (신)식민지담론
“양키 고홈” 구호에서의 “양키”는 인종주의, 배외주의적 표현이 아니라, 신군부 쿠데타와 광주학살 이후에 그 배후였던 미제국주의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진보적인 ‘언어’였다. 반면 ‘짱깨’, ‘짱깨집’은 우리사회에서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인종주의적인 중국 혐오의 표현이다. 김희교 교수(광운대 중국학과)는 이를 ‘짱깨주의’라고 표현하고 있다.
과연 ‘짱깨주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짱개주의의 탄생》(보리)의 저자 김희교 교수는 “짱깨라는 개념은 서구의 인종주의가 지니는 혐오를 그대로 품고 있다”며 한국 내 반중 정서의 뿌리를 검토하고 있다.
1894년 청일전쟁 이전까지 조선에서 중국인들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었다. 인식이 달라진 건 청일전쟁으로 중국이 패하고 일본이 조선을 장악하기 시작하고부터다. 일본은 중국인을 열등하고 미개한 국민으로 설정했고 조선인도 일본의 식민 담론에 포섭돼 중국인을 비하하기 시작했다.
이후 1992년 한중수교로 중국 혐오가 누그러졌지만, 중국의 급속한 성장과 가속화되는 미·중 충돌 속에 한국 사회에서 ‘짱깨주의’는 다시 퍼지기 시작했다.(신재우기자, “한국에서 중국은 왜 ‘짱깨’가 되었을까?”, 뉴시스, 2022. 04. 29.)
위 책의 부제는 “누구나 함부로 말하는 중국, 아무도 말하지 않는 중국”이다. 이는 마치 북에 대한 적대시 감정과 마찬가지다. 누구나 북에 대해 적대적으로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 누구도 북에 대해 제대로 알고 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종북몰이의 일종이다. 더욱이 ‘짱깨’라는 중국혐오주의는 서구인종주의의 발로이다. 서구는 미제와 나토 등 서방제국주의를 말한다. 중국혐오주의는 제국주의 프로파간다의 일종인 동양비하, 오리엔탈리즘과 닮아 있다. 이는 제국주의 식민지배 이론의 일종이다.
위의 글에서 알 수 있듯, 우리사회에서 직접적인 중국혐오주의의 발생은 청일전쟁 이후부터 전면화 되기 시작한 일제의 조선식민지 지배다. 일제가 조선식민 지배를 위해서 반중(당시는 반청) 혐오를 퍼트렸다. 당시 조선에 만연한 중국 사대주의 대신에 중국이 열등하고 미개한 나라라는 인식을 퍼트리면서 중국 혐오를 부추겼다. 그런데 사대주의의 반대는 자주적 인식인데, 일제는 중국이 열등하고 미개한 나라인데 반해, 일본은 부강하고 개화한 나라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친일 이데올로기를 이른바 여론 주도층인 지배계급, 지식인들한테 먼저 유포시킴으로써 조선인들 전반으로 유포시켰다.
“1992년 한중수교로 중국 혐오가 누그러졌”다는 말은 한중 수교 이전에 중국혐오가 팽배했다는 말인데, 이 때의 중국혐오는 중공(중국 공산당)에 대한 혐오, 즉 반공주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그런데, 잠시 누그러졌던 중국혐오가 고조된 것은 “중국의 급속한 성장과 가속화되는 미·중 충돌 속에” 기원이 있다.
근자의 중국혐오는 미제의 중국에 대한 포위말살, 고립화, 반중프로파간다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미제국주의는 신장위구르, 홍콩 등에서의 중국의 분리주의에 대한 반대와 통합정책을 “인권과 인도주의”를 내걸어 중국혐오의 근간으로 삼았다.
신장 인권 탄압은 사실인가, 송환법 반대 홍콩의 반중 시위는 민주화운동이라고 볼 수 있는가 같은 민감한 질문도 던지며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홍콩이 처한 억압의 구조는 다층적이다. 민주와 반민주가 단순하게 나뉘지 않으며, 중국과 홍콩 간의 문제만도 아니다. 미국의 중국봉쇄 정책이 개입돼 있다. 그래서 “홍콩이 미국과 연합하여 독립하려 할 때 중국은 ‘일국양제’를 지키던 기존의 태도를 버리고 일국을 지키려는 물리적 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김남중기자, “한국 사회의 ‘중국 혐오’를 파헤치다”, 국민일보, 2022. 04. 28.)
앞에서 잠깐 말했듯, 조선(북한)에 대해서도 그렇듯, 미제가 내거는 “인권과 인도주의” 기치는 인류 전체의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미제의 야만성, 폭력성을 은폐하고 미제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따라서 중국에서의 인권탄압이라는 것도 심각하게 과장, 왜곡돼 있거나, 과거 쏘비에트 연방에 대해 그러했던 것처럼, 이 공세를 통해 궁극적으로 다민족 통일국가 중국을 분리독립운동으로 해체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이와 같이 과거 청나라에 대한 혐오가 높아질수록, 일제의 식민지배 이데올로기가 만연됐던 것처럼, 현대에 와서 중국혐오주의가 높아질수록 친미감정은 높아져가고 있다. 반중혐오는 식민지배 이데올로기의 일환으로 조장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높아지면 질수록 이면에서는 친미숭배감정이 고조되고 있다.
게다가 반중혐오는 진보진영 내에까지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짱깨주의’는 이른바 ‘보수’나 ‘극우’를 지향하는 세력 사이에만 퍼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진보 진영에서도 유통된다는 것이 저자 판단이다.
그 근거로 진보 진영 사이에도 민주주의를 단일한 가치로 보는 ‘자유주의적 보편가치 우선주의’가 자리 잡았고, 중국이 완벽한 사회주의 국가로 나아가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이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박상현 기자, “중국을 혐오만 하면 과거 머물 뿐..있는 그대로 보자”, 연합뉴스, 2022. 04. 29.)
먼저 진보진영 내에도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보편적 가치로 알고 제국주의 프로파간다를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서방 제국주의의 잣대를 가지고 중국과 조선에 대해서도 그대로 들이댄다. 특히 후자는 국가보안법이 큰 역할을 했다. 정의당의 반북감정, 반북사상은 조선일보와 같은 정도의 수준이다. 주지하듯 정의당은 “헌법 내 진보” 운운하며 국가보안법을 적극 수용해 왔으며, 반공부르주아 진영과 언론들을 등에 업고 ‘종북몰이’에 앞장서며 ‘진보정당’ 운동을 분열시켜 왔다.
정의당은 북이 핵시험이나 미사일 발사 시험 등 미국과의 대결이 고조되고, 북의 인권에 대한 비난이 거세질 때마다, “국제사회” 운운하며 국제 제국주의자들의 편에 서 왔다. 정의당 심상정은 2019년 이른바 ‘홍콩사태’에서도 중국이 “홍콩 시민 자치 존중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식민지배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홍콩인들을 다시 제국주의 지배 속으로 밀어 넣으며 제국주의 이해에 봉사하는 것이다. 이는 정의당이 제국주의의 국제강도와 같은 이념과 배외주의적 가치들, ‘자유민주주의’라는 부르주아 폭력적 정치질서를 ‘민주주의와 자유’ 일반의 가치로 적극 수용해 왔기 때문에 생기는 인식이다.
“중국이 완벽한 사회주의 국가로 나아가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은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인식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왔다. 중국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극우진영으로부터 진보진영, 더욱이 맑스주의, 심지어 맑스레닌주의를 자처하는 단체, 사람들에게까지 퍼져 있다.
먼저 중국혁명 시기부터 이 혁명은 진정한 노동자 혁명이 아니었고, 스탈린주의 관료주의이며 중국은 ‘국가자본주의’에 불과했다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이러한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두 번째는 쏘련은 후르시초프 시절부터 중국은 마오쩌둥 사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으로부터 중국이 자본주의로 변모되었으며 국제적으로는 ‘사회제국주의’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세력들도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세 번째로 두 번째와 인식이 비슷한데, 중국이 덩샤오핑 시절부터 수정주의를 도입하여 자본주의가 되었으며 심지어 중국은 독점자본주의 사회로 그 상부구조는 제국주의라고 주장하는 세력들도 마찬가지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의 ‘국가자본주의론’은 머릿속으로 전 세계가 공산주의가 된 “완벽한 사회주의” 상을 그려놓고 그 조건에 맞지 않는 모든 사회는 모두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한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일국혁명 대 국제혁명론의 허구적 도식을 만들어 놓고 일국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문제를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현실 사회주의와 그 지도자들을 전면 부정하는 것도 이로부터 출발했다. 그런데 이들 트로츠키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러시아 혁명부터 레닌 사망 전까지 몇 년이 사회주의였다가, 1920년대 중반부터 쏘련이 변질되다가 마침내 1920년대 중반 스탈린 관료주의의 반혁명으로 ‘국가’자본주의로 타락했다고 주장한다. 중국을 사회제국주의로 보는 세력들이나 독점자본주의를 토대로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는 세력들도 그 시기만 다르지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의 인식방법과 유사하다.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이 그 인식의 실천적 결론으로 쏘미 간 냉전에서 취했던 것처럼, 이들도 미중 간 대결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양비론적 입장을 취하는 점도 유사하다.
이러한 흐름들은 근원적으로 “중국이 완벽한 사회주의 국가로 나아가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에서 출발하여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만 사로잡혀서 중국과 중국 문제(홍콩, 대만, 신장위구르 등)를 역사적인 관점으로, 균형적으로,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중국에 대한 일방적인 프로파간다에 포섭되면서 대중들에게 맹목적으로 자리 잡은 반중 적대감에 동참하게 된다. 제국주의와 부르주아 반공주의자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반중 적대감은 반북 적대감의 연장선상에 있는데, 이 반공주의 프로파간다의 연결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게 된다.
탈식민주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미일 제국주의에 의해 역사적으로 조성된 중국에 대한 적대감은 중국과 조선에 대한 군사적, 정치적 고립말살책, 경제제재, 미일한 전쟁 동맹에 의한 아시아와 한반도(조선반도)에서 제국주의 지배질서의 공고화와 침략책동, 전쟁위기 고조로 나타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실은 미제를 위시로 한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를 내세워 러시아와 대리전이듯이, 대만문제 역시 미제와 일제를 배후에 둔 대만과 중국과의 대립, 대결이다.
대만(타이완)의 ‘정체성 정치’는 친미 숭배와 그 이면으로 타인, 즉 중국혐오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공산당과의 내전에 패배하여 ‘무능·부패’로 낙인찍혀 미국의 지지를 잃어버린 장제스는 1949년에 타이완으로 도주하여 계엄령을 선포했다. 6.25전쟁의 발발로 미국의 지지가 회복되어 ‘기사회생’한 장제스는 타이완의 통치기반을 굳히기 위해 반대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1950년대식 백색테러)을 벌이고, 계엄을 무기한 연장하여 국민당 회의 정당금지(黨禁), 언론통제(報禁)를 실시했다… 장제스의 사망(1975년)과 그 아들의 사망(1988)으로 관료 출신의 본성인(本省人) 리덩후이(李登輝)가 총통으로 취임하게 되었으며, 38년 간 계속되어온 계엄이 해제되어 민진당이 결성됨으로써 민주화의 열망은 누를 수가 없게 되었다. 국민당이 몰락한 후 2000-2008년 집권한 민진당은 2016년에도 재집권하여 타이완 정치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
그동안 본성인은 국민당 독재에 반감과 증오를 쌓아왔는데, 그 감정이 반(反)중국·친일·친미의 타이완 정체성의 특색을 만들었다. 민진당은 ‘하나의 중국론’을 부정하고 타이완의 독립을 주장하게 되어 2006년에는 타이완의 이름으로 유엔 가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중국 사람과 타이완 사람으로 나누어 그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지지자를 결속시키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에 공들여 중국혐오를 부추겼다. 이른바 ‘타이완 정체성’ 만들기이다.(서승, <타이완 ‘정체성 정치’의 함정>, 《동아시아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한다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경향신문, 2019년 12월 초판 1쇄, 2020년 4월 초판 2쇄)
대만은 미제의 반중, 반공산주의 기지로서, 중국 본토에서 축출당한 국민당의 친미 반중 적대 국내 백색테러 정치로 출발했다. 대만에서 만연한 중국혐오는 제국주의에 의해 강요된 분단 문제를 배경으로 냉전 프로파간다의 일환으로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내의 반중 혐오와 유사하다.
오늘날 부각되는 ‘신냉전 체제’는 조중러 동맹 대 미일한 동맹의 대립, 대결로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처럼 직접적인 무력충돌, 즉 열전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신냉전 체제는 동북아와 한반도에서는 반중, 반러, 반북 전쟁동맹으로 나타나며 전쟁책동을 고조시키며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가장 극렬한 형태로의 연장으로 집권한 윤석열 정권에 의한 대북 ‘선제타격’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에서는 미제가 부추기고 있는 일본의 평화협정 파괴와 군국주의 책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제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에게 그런 것처럼, 중국을 포위하면서 대만을 거점으로 사용하여 대결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로써 신냉전은 중국 대 미국(대만), 러시아와 미국(우크라이나), 조선과 미국(한국) 사이에 강대강의 위기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중국을 서구에 기운 잣대로 평가하고 멸시하는 ‘짱깨주의’는 한국이 여전히 ‘전후 체제’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이어 중국을 배제한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중국을 세계경제 체제에 편입한 ‘키신저 시스템’으로 구축된 전후 체제를 벗어나 ‘평화 체제’로 나아가야 새로운 중국 담론을 만들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미국과 중국 가운데 한쪽에 서라는 식민주의 프레임에서 탈피해 “중국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주문한다. 그래야 미국 중심 신냉전 체제와 작별하고 다자주의에 대응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박상현 기자, “중국을 혐오만 하면 과거 머물 뿐..있는 그대로 보자”, 연합뉴스, 2022. 04. 29.)
일본 패전 이후 한국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제질서를 결정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은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체결된 일본과 연합국 사이의 평화조약이다. 이 조약 체결의 장소가 미국인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정치적 입김이 주로 반영되어 있다.
여기서 샌프란시스코 체제란 태평양전쟁과 일제식민지전쟁을 종결시킨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동시에 1951년 9월 같은 날 샌프란시스코 오페라하우스 라는 같은 장소에서 체결된 주일미군의 법적 근거인 ‘미일안보조약’, 상기 두 조약을 모두 합쳐서 지칭한다. 전자에서는 응징의 차원에서 전범국 일본에게 단호한 징벌을 하는 대신에 상당한 특혜와 면책을 부여하였다. 또 후자에서는 일본을 패전국에서 해방시켜 동등한 조약당사국으로 인정, 국제사회로 복귀시켜 미국과 동등하게 군사적 방위에 참여할 수 있게 약속한 것이다. 1951년 당시 동아시아 냉전을 의식한 미국은 전범국가 일본을 단호하게 응징하지 못하고 오히려 면죄부를 준 모순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탄생시켰다.(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 “샌프란시스코 체제 넘어 새로운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하자” 통일뉴스, 2015.11.24.)
이 조약에 대해 소련과 중국이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일본의 식민지 범죄에 면죄부를 준다는 점, 미국이 일본 내에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반쏘 반중을 명목으로 일본의 재무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중국이 배제되면서 대만을 비롯해서 중국의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점, 조선에 대한 전쟁 배상 문제 등이 누락했다는 점 등이다.
냉전 체제의 적대적 동맹인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경제·통상의 단일 시장을 지향하는 키신저 체제는 균열의 단층대 위에 공존했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선택한 ‘정치·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프레임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미국 단일 지배체제가 흔들리고 미-중 대결이 본격화하면서, 한반도 남쪽의 짱깨주의도 더 거칠어진 모양새다.(조일준 선임기자, “미국은 ‘국가전략’, 중국은 ‘도덕’ 잣대 ‘혐중’의 실태와 역사적 배경을 짚은 김희교의 <짱깨주의의 탄생>”, 한겨레21 제1411호)
중국 혐오 “그 밑바닥에는 20세기 전후(戰後) 체제의 위기와 미국의 신냉전 회귀의 기획이 숨어 있다.”(한겨레21, 같은 기사)
2차 대전 이후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미제가 영국제국주의를 대신해 반공을 기치로 세계 제국주의의 패권국가가 되고 ‘키신저 체제’로 중국을 포섭하여 쏘련을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냉전 전략으로 형성되었는데 반해, 신냉전 체제는 그 체제의 균열과 위기로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미국 중심의 서방 제국주의 단일체제가 약화되는 시점에 신냉전이 개시되고 있다.
신냉전 시기 미국은 중국과의 군사적, 정치적 경쟁에서 밀려날 운명에 처해져있으며, 미국의 힘의 표현인 달러체제는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조선에 대한 말살공세는 핵무력 완성과 자력갱생의 성공으로 근저에서 흔들리고 있다. 반러 제국주의 동맹은 나토 제국주의 내부의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인해 균열이 생기고 있다. 반면에 중국과 러시아의 동맹은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서방 제국주의의 제재가 강화될수록, 한때 미국 눈치를 보며 이 제재에 부분 동참해 왔던 중국과 러시아는 자신들과 조선에 대한 제재를 더욱 강력하게 반대하게 되었다. 조선과 러시아의 동맹이 강화되는 한편, 전통적인 조중혈맹은 최근 양국의 당이 “하나의 참모부”라고 선언할 정도로 강력해지고 있다.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동요하면서 냉전 시기 비동맹 체제처럼 다극화 체제가 강화되고 있다. 시리아에서 미국과 나토 제국주의의 공세는 약화되면서 그 다음 목표인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에 이어 제국주의자들의 공격 목표였던 이란에 대한 공세는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 20년 침략전쟁에서는 미제가 야반도주하듯 쫓겨났다. 남미에서는 ‘반미좌파’ 정권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를 고사시키려던 미국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하고 국제적인 제재는 오히려 미국의 패권 추락을 상기하고 오히려 러시아에 의해 역보복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미국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점차 격차를 좁히고 있는 중국의 추격으로 미중대결은 그 공수가 뒤바뀔 때가 머지않았다.
문재인 정권은 이러한 신냉전 시기에 ‘정치·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즉 미국에 기대어 중국의 눈치를 보는 줄타기를 계속해 왔다. 미국의 요구에 따라 사드발사대를 추가도입하면서도 중국의 경제보복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은 결국 중국의 경제 보복 조치에서 보듯 동요하고 불안정한 상황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정권은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운전자론”을 주장하며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했으나 결국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따라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가며 운전대에 앉지도 못하고 빈손으로 차에서 내려야 했다.
이에 반해 윤석열 정권은 선제타격론 운운하며 보다 더 노골적인 대북 적대시 정책과 비핵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번 바이든과의 회담을 통해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기치 하에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면서 반중, 반러를 내건 미국 중심의 체제에 더 확고하게 편입하려고 한다. 이에 따라 ‘정치·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구도를 깨고 정치·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영역에서도 반중, 반러 기치에 동참하려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의 요구에 적극 부응하여 우크라이나 전쟁에 ‘우회적’ 무기지원 결정을 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전쟁과 민중의 희생을 지속시키는 군국주의 책동에 동참하려고 한다. 이러한 행보는 중국과 러시아의 노골적인 반발과 보복을 부를 것이며, 한국을 경제적 불안 상태뿐만 아니라 정치적, 안보적 불안 상태로까지 내몰게 될 것이다.
미국의 쇠퇴와 다극화 시대의 개화, 북의 핵전략 국가로서의 위상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국은 몰락해 가는 패권에 줄을 서고 있”(이범주)는 것이다. 썩은 동아줄에 기댄 결과는 처참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밖에 없다. 바이든과의 정상 회담 직후 북이 미사일발사 시험을 하자 윤석열 정권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위협발언을 했지만, 이는 비루한 문재인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겁먹은 개가 짖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미국의 패권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그 패권을 저지하기 위한 단발마적 발악으로 제국주의 체제의 반동성, 폭력성은 당분간 극에 달하게 될 것이다. 윤석열 정권 역시 “몰락해 가는 패권에 줄을 서고 있”지만, 그럼으로써 더욱 안간힘을 쓰고 대북 적대 정책을 악랄하게 펼칠 것이며, 대내적으로 반노동자적이고 반민중적 파쇼조치를 강화하게 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몰락해 가는 패권에 줄을” 선 대가는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적 위기, 평화의 위기로 나타나게 되면서 가혹한 시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어둠이 깊어도 정세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있고 그 변화상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여기에 대처해나간다면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고 동요하지 않으며 낙관하며 승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미제국주의와 윤석열 정권이 친미·반북 반중·반러 프로파간다를 강화해 간다하더라도 그 실질적 물질적 기반이 무너진다면 그 이데올로기도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국내외적 강대강의 격렬한 대립을 거치면서 미국 패권은 쇠퇴하고, 거기에 줄을 선 윤석열 정권은 절대 다수 노동자 민중으로부터 외면당하고 고립될 것이기 때문에 이 국면을 정면돌파 한다면 노동자의 권리도 신장되고, 다시 평화협정과 미군철수가 전면화 되는 국면이 도둑처럼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국면을 기다리지 말고 예비하자.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노/정/협
《민족과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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