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붉은 별] 혁명의 기억들

_ 이범주

 

– 혁명. 오랫동안 억압받아온 민초들이 불행한 운명에 거역해 일어나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더불어 투쟁하는 것. 사람의 아름다운 속성이 상상을 훨씬 넘어서는 수준에서 구현되고 대중적 헌신과 희생이 일상처럼 되는 것. 지도자와 그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혼연일체가 되어 움직이는 것. 평상시의 연령 한계를 초월, 14~16세의 소년으로 하여금 1만 킬로 장정에 참여하게 하고 계급적 임무를 선명하게 자각하게 하는 것. 기존의 구태의연한 비합리적 관행들이 순식간에 비웃음 거리로 되는 것…혁명의 기록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이 책은 중국혁명에 대한 기록이다.

– 외세의 침략에 반대하고 오랜 세월 수탈당해 온 농민과 가혹한 착취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옹호하여 민족해방과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했던 홍군이 지주, 대자본가, 외세의 이익을 옹호했던, 압도적 군사력과 경제력 영토를 갖추었던 국민당을 물리치고 마침내 승리해 가는 과정에 대한 내용이다. 결국 인민의 힘에 의거한 세력이 인민 배신한 세력을 이겨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 장개석 군의 인민학살은 잔혹했다. 홍군이 인민들과 워낙 밀착해 있어 인민들과 홍군을 구별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국민당군은 해방구에 있는 인민들을 남녀노소 불문하고 가혹하게 학살했다. 그러나 홍군은 그러지 않았으려니와 심지어 그들이 생포한 적, 국민당 군들마저 통전의 대상으로 여겨 정신교육으로 설득하고 여비 주어 돌려보내기까지 했다. 그래서 국민당 군 병사들이 홍군으로 집단입대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장개석 군 뿐만이 아니라 대량학살을 저지른 것은 대부분 우파들이었다. 프랑스 정부군은 파리코뮨 전사들 수만 명을 학살했고, 만주와 관내에서 일본군이 그러했고,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에서는 미군이, 한국전에서는 국군과 경찰이 자국의 국민들을 전국 도처에서 학살했다. 양민학살은 우파의 특징인가. 그런데도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세력을 폭력 선호하고 인민들 학살한다는 이유로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다.

– 대륙에서 벌어졌던 사건이라 규모의 장대함과 홍군 전사들이 보여주는 헌신과 희생에 압도되어 나는 한 때 윤봉길 의사의 폭탄투척, 임정의 외교노선 등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가 매우 초라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우리 민족 선열들이 만주에서 벌인 무장 독립투쟁도 그 치열함, 드높은 도덕과 헌신의 측면에서 결코 중국혁명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홍군은 그래도 자기 땅에서, 자기 민족 사람들의 우호적 원호를 받으며, 그런대로 안전한 자신의 소비에트 안에서 싸웠다. 그러나 우리의 선열들은 남의 땅에서, 중국 사람들의 의심과 의혹의 눈길을 견뎌내며, 쉴 틈 없이 쫓기고 이동하며 홍군 못지 않는 기간을 투쟁했다. 우리 민족은 홍군의 힘이 미치지 못했던 만주에서의 대일 무장항쟁에 스스로 주된 역량으로 되어 임했으며 만주를 해방하고 더 나아가 관내에 진출, 홍군이 중국 본토 전역을 해방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우리에게도 자랑찬 역사가 있다. 그러나 그 무장항쟁 세력이 주로 북을 건국하는 데 참여하는 바람에 남에서는 그 역사를 대부분 모른다. 분단 탓이다.

– 서로 피 터지고 싸웠으므로 홍군과 국민당군이 불구대천의 적대적 관계인 줄로만 생각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 모두 봉건 잔재와 군벌들에 반대했으므로 한 때 동지적 관계이기도 했다. 군벌 타파와 근대화를 위해 만들어진 황포군관학교 교장이 장개석이었고 홍군 명장 임표는 장개석의 제자였다. 주은래는 그 학교에서 정치위원을 했고 모택동도 강의를 했다. 한 때 홍군과 국민당군의 지도자들은 한 교정에서 달달한 시간을 같이 보낸 학우이기도 했다. 그러나 손문 사후 장개석은 지주, 자본가, 외세의 편을 들었고, 모택동 세력은 농민 노동자의 이익에 대변하면서 서로 적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을 물리쳐야 한다는 민족적 과제를 공유했으므로 전적으로 증오하지도 못하는 애증적(愛憎的 )관계에 있었나 보다.

– 우리 나라의 역사로 치자면 중국의 국민당에 해당되는 세력이 김구의 임시정부일 것이다. 둘 다 부르조아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김구의 한독당은 해방 후 정국에서 미군정을 뒷 배경으로 한 이승만 일파와의 권력다툼에서 패배, 정계에서 사라졌다. 그 이후 한국에서 살아남은 정치세력은 자유당과 민주당인데 그들을 구성하는 주 세력은 만주에서 일본군 휘하에서 무장투쟁하는 조선사람들 때려 잡았던 정일권, 백선엽, 박정희 등의 舊일본 군부세력, 대지주, 친일부역지식인, 매판기업 자본가…들이었다. 한국에서는 중국 대륙의 국민당 정도의 세력도 정치의 주류로 편입되지 못했던 것이다. 왜 그러한가. 일본에 이어 이 나라를 지배한 미군정이 분단을 거부했던 그들을 파트너로 인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나라에서는 사회주의 세력, 분단반대 통일지향의 민족주의 세력이 멸종됐다.

– 중국 혁명 성공 이후 7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의 중국을 보면 실망스럽다. 불평등은 극심해지고 한 때 혁명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의 후손들은 관료화되고 부패한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상품경제를 도입하면서 착취-피착취 관계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런 중국을 보면서 혹자는 명실상부한 자본주의 체제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기간산업의 대부분이 전 인민적 소유로 존재(한다고 들었)하고 공산당의 배타적 지배가 엄존하며 공개적으로 ‘사회주의 만세’를 내세우며…무엇보다 위대한 혁명을 전 인민들이 몸으로 경험한 역사의 나라가 그런 경험조차 가져보지 못한 제국주의 국가들과 같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중국은 지금도 혁명의 과정상에 있을지도 모른다. 섬광같은 감동의 시간이 지나면 지루한, 그러나 섬광의 시간만큼 중요한 일상의 시간이 오기 마련이다. 지금 그들은 그런 시간을 감내하는 것이 아닐까.

– 중국과 더불어 한편으로 북을 생각한다. 만주에서 무장으로 싸웠던 세력도 북에서 사회주의 국가를 창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중국과 달리 그들은 개혁, 개방 즉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도입을 거부하고 지금까지 자주, 자립, 자위의 길을 선택, 고난의 행군 시기를 지나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고립을 택했다…고립을 택한 이유는 개방하면 망한다는 걸 그들이 알기 때문이다….그들이 사회주의 국가라고? 삼대세습의 봉건국가일 뿐이다….통일되면 북의 인민들이 남에서 살겠다고 떼지어 내려올 것이므로 흡수통일 해도 문제가 된다….평양만 잘 살고 지방은 어렵다…보이는 산마다 민둥산으로 되어 마음이 아프다….등등 온갖 비난과 걱정이 거의 유일하게 사회주의적 소유관계를 고집하는 그들에게 쏟아지고 있다.

– 나는 그들이 그들의 사회주의 국가로 성공하기를 바란다. 세상을 비웃듯이 온 산을 아름드리 나무로 가꾸고…궁벽진 시골마다 그림같이 아름답고 쾌적한 집들을 빠짐없이 짓고…강에 일급수의 물이 찰랑거리며 흐르게 하여 그 맑은 물에 아름다운 토종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치도록 하고….공장은 자동화되어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들판에 알곡들 풍성하게 자라 온 인민들이 배불리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사회주의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란다. 그리 하여..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망하고, 중국과 베트남도 자본주의를 도입한 덕분에 잘 살게 되었다고들 하며…아직 사회주의에 대한 기대 놓지 않는 사람들을 구닥다리, 걸어 다니는 화석이라고 비웃는 사람들 대가리 좀 깨 주기 바란다. “자 보라, 이것이 진짜 사회주의다.”

– 혁명이 실종된 시대. 혁명이 그냥 추억으로만 기억되는 시대. 신자유주의는 말한다.

“웃어라 세상이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혼자 웃을 것이다.”

어디든 웃는 사람과 우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누구의 도움과 위로도 없이 혼자 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마침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자 울어야 하는 세상이라면, 그 유일한 대안은 결국 ‘혁명’ 아닌가. 혁명을 상상하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세상을 탓해야 할 사람들이 혼자 울다가 갈 길을 찾지 못해 결국 자신을 죽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세상을 이자성어(二字成語)로 ‘지옥’이라 부른다.

요즘 세상…안 그런가? 태평성대인가? 그렇다면 마지막 문단은 취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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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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