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주의 고전읽기]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경제사관의 발전구조)(리오 휴버먼)
– 경제이론으로 역사를 설명하고, 역사로써 경제이론을 설명하다
일시: 2021년 4월 5일(월) 19시 30분
장소: 노정협 사무실(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93-45 4층
문의: 010-3398-0248
교재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장상환 역, 책벌레, 2000)
《경제사관의 발전구조》(장찬영 역, 청하, 1982, 1992)
《독일이데올로기》(맑스·엥겔스)는 역사적 유물론으로 미로에 빠진 역사에 최초로 길을 밝힌 위대한 저작입니다. 《독일이데올로기》에 이어 우리는 리오 휴버먼(Leo Huberman)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 2000년)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독일이데올로기》에서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에 대해 서술하고 있지만 압축적으로 서술돼 있어서 그 이행과정을 풍부하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휴버먼의 이 책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 다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 과정, 이 과정에서 나왔던 수많은 이론 및 사상들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들어가며 쉽고 풍부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휴버먼의 이 책은 맑스와 엥겔스, 레닌의 저작은 아니지만 맑스주의 고전적 저작으로 분류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책이며 대중적으로도 제법 알려진 흥미 있는 책입니다.
《자본주의 발전이론》의 저자 폴 스위지와 함께 미국 진보잡지 <먼슬리리뷰>의 공동창립자이기도 한 휴버먼은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국내적으로도 저명한 맑스주의 저술가, 교육자, 노동운동가입니다. 휴버먼의 저작은 이밖에도 《사회주의란 무엇인가》(김창수 역, 동녘, 1987)가 있는데, 최근에는 《휴버먼의 자본론 과연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는가》(김영배 옮김, 어바웃어북, 2011년)라는 제목으로 다시 번역 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역시 일찍이 《경제사관의 발전구조》(장찬영 역, 청하, 19821년 1쇄, 1992년 7쇄 발행)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원제목은 ‘Man’s Worldly Goods – The Story of the Wealth of Nations'(인간의 세속의 부-국부 이야기)입니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이명박 정권 시절 아고라에서 유명한 논객으로 활동하다 구속까지 된 필명 미네르바가 소개해서 다시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번역된 휴버먼의 이 책은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보다는 《경제사관의 발전구조》라는 제목이 좀 딱딱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 이행과정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안들과 경제이론들에 대해 서술함으로써 자본주의 탄생사에 대해 바로 알게 해줄 뿐만 아니라, 착취와 억압, 저항으로 점철된 자본주의 발전사,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들어선 쏘련에서의 사회주의의 사례까지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책 머리말에 아주 인상적인 휴버먼의 저술목적이 나오는데 그것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이 책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경제 이론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역사로써 경제 이론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결합은 중요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 역사의 교육은, 경제적 측면에 대한 주의가 지나치게 결여되어 있을 때 손상된다. 또한 경제 이론은,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분리될 때는 지루할 뿐이다. <우울한> 과학은 그것이 역사적 진공 속에서 연구되고 가르쳐지는 한 우울한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리카도의 지대(地代)의 법칙 자체는 어렵고 따분하다. 그러나 그것을 역사적 배경 속에 놓고, 19세기 초기의 영국의 지주와 실업자본가 사이에 벌어진 투쟁 가운데 하나로 보라. 그러면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의미심장한 것이 될 것이다.”(《경제사관의 발전구조》)
휴버먼의 이러한 의도는 이 저작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중상주의 시대에 왕과 상인과 금융업자들의 결탁, 주식회사의 탄생 등에 대해 설명하면서 국왕의 배후에 있는 진짜 실력자들의 ‘협박’편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카를로스 5세와 프랑스의 프랑시스 Ⅰ세 중에 누가 신성 로마 제국의 왕관을 쓰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작달막한 독일 은행가 야콥 푸거, 즉 푸거 가(家)의 대 금융 회사의 우두머리에 의해 결정되었다.
카를로스는 그 왕관을 쓰기 위해 85만 프롤린의 비용을 지출했으며, 그 중에 54만 3천 플로린은 푸거가에게 대부해주었다. 카를로스가 짊어진 빚의 상환이 늦어졌을 때, 푸거가 카를로스에게 쓴 편지의 어조를 통하여 우리는 무대 뒤의 인간, 야콥 푸거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단지 야콥 푸거의 돈이 그에게 그토록 거대한 권력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에, 그는 그러한 편지를 쓸 만한 배짱이 있었다. 「…우리는 폐하에게 거액의 돈을 선대(先貸)했읍니다만, 우리는 그 중의 대부분을 우리의 친구들을 통하여 조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의 원조가 없었더라면, 황제 폐하가 로마 제국의 왕관을 쓸 수 없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일이며, 나는 페하의 대리인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써 보낸 편지로써 그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 일에 관해 나는 나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믿지 않겠지만!> 왜냐하면 내가 오스트리아 왕가와 손을 끊고 프랑스를 도우려고 했었더라면, 나는 당시에 나에게 제공된 것과 같은 많은 돈과 재산을 획득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 폐하와 오스트리아 왕가에 얼마 만큼 중대한 불이익이 초래되었을 것인지를 황제 폐하께서는 잘 아실 것입니다.」”
휴버먼은 제19장 “가능하다면 혹성도 합병할텐데”에서 자본주의의 독점자본주의로의 발전과 제국주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휴버먼은 영국의 악명 높은 제국주의자로 대영제국령 케이프 식민지(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총독이기도 했던 세실 존 로즈(Cecil John Rhodes)가 자기 친구에게 한 말을 소개하면서 제국주의의 탐욕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거의 모두 분배되었고, 그 중에 남아 있는 것은 분할되고, 정복되고, 식민지화하고 있네. 자네가 밤에 머리 위로 바라보는 저 별들, 우리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저 광대한 세계를 생각하면, 나는 참을 수가 없다네. 내가 만약 혹성을 합병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텐데. 나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네. 그토록 또렷한데도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 그 별들을 바라 볼 때면, 나는 슬픔에 잠긴다네.”
휴버먼은 동인도제도 원숭이의 사례를 들어 탐욕에 빠져 있는 자본주의가 자기자신의 모순에 의해 파멸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동인도제도 사람들이 원숭이를 잡는 방법에 관한 아아더 모르간의 이야기 속에는 자본가들을 위한 교훈이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은 코코야자 열매를 나무에 매단다. 원숭이는 코코야자 열매에 손을 밀어 넣고, 설탕을 잡고는 주먹을 빼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구멍이 작기 때문에 원숭이의 꽉 쥔 주먹은 나올 수 없고, 그래서 탐욕은 원숭이가 파멸하는 원인이 되는데, 그 이유는 원숭이가 목표물을 결코 단념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휴버먼의 자본론》이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나 상업적이든, 정치적 이유로든 쏘련 사회주의에 대해 다루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누락하고 있습니다. 쏘련 사회주의가 해체됐고, 특히 대중적 편견과 왜곡으로 가득 차 있는 스탈린시대의 쏘련 사회주의에 대해 저자가 자본주의에 대한 인류의 진보적 대안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휴버먼은 열렬한 맑스주의자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자이면서도 쏘련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모순을 척결한 사회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휴버먼의 자본론》은 원래 제목이 《사회주의에 대한 진실(The Truth About Socialism)》이니 1980년대 출간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가 더 저자의 원저작에 충실한 제목일 것입니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에서 번역자 장상환은 ‘옮긴이의 말’ 뒷부분에서 “원본의 총 22장 가운데 집필 당시인 1930년대 소련과 관련된 21장은 오늘날에 비추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번역에서 제외했다”고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번역자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고의적으로 누락한 제21장인 ‘계획의 원리’는 바로 쏘련 사회주의 운영원리와 사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휴버먼은 오직 사회주의만이 공황과 전쟁, 폭력과 억압, 파시즘이 판치는 야만의 자본주의에 맞서는 대안이라고 하면서 30년대 소련사회주의가 작동되는 구체적 현실과 운영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휴버먼의 마지막 22장 “그들은 설탕을 포기할 것인가?” 역시 사회주의에 빗대서 탐욕과 모순에 빠진 자본주의 비판과 극복의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휴버먼의 2편의 제목은 “자본주의에서 어디로?(FROM CAPITALISM TO?”인데, 이것만 보더라도 저자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존재했던 쏘련 사회주의를 말하려 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쏘련 사회주의에 대한 판단은 각자 다를지라도, 휴버먼의 저작을 학습하려는 우리들은 저자의 저술의도가 무엇인지, 원저작에서 누락된 부분이 어떤 내용인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과거 절판됐던 책들이 다시 번역돼서 나온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게다가 80년대 출판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는 군데군데 오역들이 있기 때문에 새로 나온 책들과 비교하며 읽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경제사관의 발전구조》는 오역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가령 위에서 인용했던 ‘실업자본가’도 차지농업가로 번역하는 게 나을 것이기 때문에 새로 번역된 책들과 비교하며 읽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휴버먼의 저작은 자본주의는 어디에서, 어떻게 와서 어디로 가는지? 갈 수밖에 없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서입니다. 그 동안 원전 학습이 어려워서 주저하고 있었던 분들도 적극 참여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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