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연합정당: ‘느닷없는’ 통일전선 논란, 몇 가지 생각〉

민중당 광산갑지역위원회 이용주

사회주의 혁명운동의 대선배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보통선거는 아군이 얼마나 지지받고 있는지와, 계급의식이 얼마나 성숙했는지에 대한 정도를 재는 척도이다.”

엥겔스의 이러한 명제는 ‘현실’논리에 묻혀 완전히 망각되고 있다. 선거라는 공간을 자본주의를 폭로하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단결을 도모하는 기회로 삼아야 되는 것을 국회의원 의석 하나라도 늘리기 위해 노동자 민중의 원칙을 무시하고 심지어는 권력을 잡은 자본의 집행자들과 정략적으로 연합하려는 작태로 서슴없이 대체해 버리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2020년 한국에서도 이 작태가 재연되고 있다. 미래통합당으로 또 간판을 바꾼 ‘수구적폐’ 세력이 연동형비례제를 퇴색시키고 어떻게든 의석 늘리기 위해 꼼수로 괴뢰정당, 가짜 정당을 만들었으니, ‘진보개혁’세력의 입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비례용 정당을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더 ‘웃픈’ 것은, 진보진영 일각에서 비례연합정당을 두고 느닷없이 통일전선(인민전선)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대로 그 통일전선(인민전선)의 뜻을 정의하자면, “노동자계급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우익 개량주의자와 일시적으로 협력하여 자본가 계급에 대항하는 전술 형태”이다. 우리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를 원하지만, 이 뜻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평상시에 매우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발현형태로 연합정치를 고민하는 것 자체는 매우 당연하지만, 지금의 비례연합정당을 두고도 그래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첫째, ‘노동자계급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하여’란 문맥을 가지고 짚고자 한다. 우선 현재 1노총으로 급부상한 한국 노동자계급의 대표성을 띠고 있는 민주노총이 비례연합정당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현재의 민주노총은 그 지도부의 성격이 대단히‘온건’하여 사실상 친민주당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으며, ‘사회적 대화’(코포라티즘)에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즉 경사노위에 참여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그런 지도부를 두고 있는 조직임에도 비례연합정당에 대해 비판 입장을 냈다는 것은 조합원들의, 노동자계급 상당수의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이 대단히 비판적이라는 얘기로도 된다. 그런데, 그런 정서를 무시하고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세력을 강화하기는커녕, 운동 내부의 자중지란을 키우는 원인으로밖에 더 되겠는가?

둘째, ‘우익 개량주의자와 일시적으로 협력하는 전술’이란 문맥을 가지고 짚고자 한다. 말 그대로, 통일전선(인민전선)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일시적이어야 하며,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하고, 우익 개량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늘 견지하고 노동자 계급 속에서 그 입장을 계속 알려야 하며, 전략이 아니라 전술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과거 이명박 정권 및 박근혜 정권 하에서의 각종 야권연대나 통합진보당 모델이 그런 입장을 채택했는가? 야권연대 과정에서 심지어 한미FTA에 대한 입장이 후퇴했던 사례도 있고, 통합진보당 성립 후 지도부 회의에서 현재의 한국사회 문제점의 원인을 두고 “제대로 된 주주자본주의가 실현되지 않아서”란 말이 나온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주주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다른 표현이다. 자본주의의 유형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신자유주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아서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노동자·농민 등 기층 민중이 살기 어려워졌다는 말인가?

이렇듯, 정치적인 독립성이 대단히 흐릿해진 조건의 이른바 연합정치는 그 한계를 뚜렷이 노정했던 것이고, 비록 참여당계에 의해 주로 저질러졌다고는 하나, 선거에서의 이익 배분 정도의 하찮은 구도가 펼쳐졌던 것이고, 이게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가는 상당수의 명분거리가 된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역사적으로 검증된 바, 통일전선(인민전선)은 그 성립이 정당화되는 정세가 매우 제한적이다. 조선의 김일성부대니, 중국의 국공합작이니, 스페인전쟁이니 하는 사안들을 둘러싼 정세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현재의 정세에 비해 극도로 노동자계급 및 최소한의 부르조아 민주주의의 존립에도 위협이 되는 정세들에서 성립이 이루어졌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사례에서 확립된 통일전선은 한결같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기초로 해서 그 단결의 범위를 인민으로 확대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에 비교한다면, 한국에서의 연합정치 논의는 툭하면,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것이었다. 저들이 유리하면 노동자 민중을 공격하고 삶의 조건을 후퇴시키는데 앞장서면서도, 조금이라도 불리하면 그제서야 연대하자는 민주당(및 그 아류)의 꼴이 얼마나 같잖은가? 여기에 매우 비판적이고 독립적이어야 마땅할 진보세력의 처신은 그렇지 못했고, 저들 민주당이 고양이 발톱을 굳이 숨기고 있지 않던 시기(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조차도 저들 2중대같이 행동하던 경우도 매우 많았다.

더더군다나, 노무현 정권 당시 기억을 소환하자면, 한나라당 주도의 탄핵 놀음과 그에 반대하는 투쟁에 힘입어 열린우리당이 압도적 1당이 되었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들은 비정규직을 확산하고, 기업도시 및 경제자유구역 등 공공부문 민영화(사유화) 책동을 멈추지 않았고, 어청수(이명박 초기 경찰청장)의 명박산성이 2005년 당시 아펙반대투쟁이 벌어진 부산에서 등장했다.

솔직히, 그런 사례들로 해서 이명박 정권 당시 야권연대 및 통합진보당 모델이 꼭 필요했느냐는 의문이 든다. 물론 이명박 정권에서의 파쇼적 탄압이 노무현 정권 때보다 양적으로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노동조합의 활동이나 파업 및 시위를 사실상 거의 못할 정도로까지 탄압했던 것도 아니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들을 노골적으로 탄압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차라리, 박근혜 정권 당시의 조건에서 야권연대 논의가 등장했다면, 진보정당이 그 틀 안에서 민주당에 대해 자주적이고,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면, 그런 모델 속에서 성립하는 통일전선은 지지할 만하고 적극 참여해야 마땅하지만 말이다.

현재는, 물론 적폐세력인 자유한국당이 의회 내 상당수를 점유하고 있고, 현 정부의 발목을 계속 물고 늘어지고 있어서 진보적 대중들의 마음이 정말 답답한 것은 사실이나, 정권은 엄연히 노무현 정권을 계승하는 문재인 정권이 아닌가? 그 정권이 친노동자적이기는커녕 그 시늉만 하다가 최저임금을 슬쩍, 교묘히 개악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무기계약직화를 추진하고 있고, 의료민영화에 있어서도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제주 녹지병원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묵인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통일부문에 있어서도 남북정상회담 개최 및 계속적으로 그에 대한 의지를 표방하는 것은 인정할 만하지만, 북 붕괴를 가상한 군사훈련 자체를 중단 및 대폭 축소한 것도 아니고, 유엔의 제재대상도 아닌 개성공단 및 금강산 문제 하나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고, 더욱이나 이 문제에 적극적이었던 이석기 의원도 석방할 생각이 없지 않은가?

이렇듯, 정세도 전혀 그렇지 않고, 시기적으로도 전혀 그렇지 않고, 노동자계급의 세력 강화에 도움이 안 될 것이 명백할뿐더러, 민주당 스스로가 민중당 참여를 보장하는 입장이 있는 것도 아닌 지금의 비례연합정당을 통일전선인 양 추켜세워야 할 이유가 무엇이며, 굳이 민중당이 저들 바짓가랑이를 붙드는 듯하는 모양새를 보일 이유가 있을까? 이렇게 제기하면, 혹자는 이렇게 반문한다.

“그럼,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고 의석이 있어야 투쟁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이지, 참여 안 하고 독야청청하면 존재감 없는 사회단체처럼 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되묻고 싶다. 그럼, 1996-1997 총파업은 진보정당 및 그 국회의원이 있어서 이끌었는가? 1998년부터 본격화된 반신자유주의 투쟁 당시가 진보정당 국회의원이 있는 조건이었는가? 효순미선 촛불투쟁, 2003년 열사정국 투쟁, 그 당시 진보정당 국회의원이 있었는가? 없었거나, 소위 존재감이 드물었지만 진정성과 헌신성으로 함께했고, 그게 2004년 탄핵 반대 촛불이라는 호조건을 만나 국회 진출에 성공했다.

베네주엘라 차베스 대통령도, 카라카소 항쟁으로 인해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이 좌경화한 덕에 그 집권과 변혁적 정책집행 및 반제국주의 입장의 표명이 가능했다. 반대로, 국회의원이 있던 시절에 오히려 진정성이 후퇴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 않은가? 투쟁을 진심으로 지지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본과 노동 사이의 어정쩡한 중재자 놀음으로 욕먹은 사례들이 꽤 된다.

이번 비례연합정당과 관련, 민주당이 말하는 ‘함께하는 조건’ 을 곱씹어 보라. 그건 정확히 다음과 같은 요구다.

“우리와 함께하려면 변혁적 주장, 노동자 투쟁에의, 반제투쟁에의 헌신성 및 진정성을 내버리거나 축소시켜라.” 

그런 거세당한, 저들이 허용하는 범위 내의 선거투쟁을 할 거면, 그런 선거투쟁은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답이다. 물론, 비례연합정당에 민중당 및 여타 진보정당들이 참여하면 그 정당의 성공에 따라(성공할지도 잘 모르겠지만) 마치 떡고물처럼 하나 또는 몇 개 의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은 명백하다. 그런 선거투쟁은 권력과 자본의 본질을 대중에게 폭로하지 못하고, 그저 의석늘리기에 혈안이 된, 그저 평범한 부르조아 선거투쟁의 영역에 갇히는 선거투정이며, 적폐청산을 내걸었지만 오히려 집권 3년간 ‘신적폐’로 된 민주당 문재인 정권을 비호하는 행위로, 대중의 자신감 고취 및 노동자계급의 성장과 단결에 오히려 해가 될 것임이, 그 정권의 반노동자적반민중적반통일적 정책을 전혀 폭로비판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왜? 비례연합정당과 정치적 운명공동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 또 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참여해 보고, 굳이 안 맞으면 나중에 나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순진한 생각 마시라. 그 비례연합정당은 과거의 통합진보당처럼 ‘셀프제명’시켜 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례순번을 가지고 찌질한 배분다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으며, 그 후과는 누가 책임지겠는가?

진보 의석은 단 1석이라도, 투쟁의 확성기가 되어야 한다. 0석이라도, 투쟁하는 노동자 계급이, 진보적 대중들이 굳이 잃을 것은 없다.
비례연합정당 지지론자들이여! 그런 정치적 신기루에 속지 말고, 얼른 거기서 헤어나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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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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