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사태를 둘러싸고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의 태도에 대하여
“인터:뷰 International Review 일동”의 성명인 <베네수엘라 문제에서 나타난 “일부 국제적 진보 인사들”의 배반과 기회주의>에서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칭하는 버니샌더스에 대해 비판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버니 샌더스에 대해서는 보다 명확하게 언급함으로써 이번 사태를 대하는 미국 내 ‘진보인사’들의 기회주의적 속성과 그 원인을 속속들이 폭로하고 베네수엘라 사태(실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공세)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이 성명에서는 “그가 반공적 분위기의 미국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를 외쳤던 용기를 어디다 버려버린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주장은 보다 엄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반공주의가 사실상의 국교인 미국 사회에서 대중적으로 사회주의를 내걸고 있다는 점에서 버니 샌더스는 반공주의를 극복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실제는 반공주의와 국가주의에 편승하고 있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사회주의자’ 잡지를 발행하는 해방연대에서 미국 내 “사회주의 운동의 고양”이라며 ‘민주적’ 사회주의 확산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그것은 해방연대가 쏘련 및 현실 사회주의를 부정하고 사실상 ‘민주적’ 사회주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민주적’이라는 수사를 붙인 것 자체가 반쏘적이고 반공주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기존 쏘련이나 현실 사회주의를 독재적으로 본다. 부르주아 의회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쏘련과 현실사회주의를 독재정권이라고 비난한다.
유로꼬뮤니즘이 공산주의를 내걸었다고 해서 진짜 공산주의가 아닌 것처럼 버니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이고, 의회주의적 사회주의이다.
샌더스가 미국 사회 내에서 불평등과 빈곤척결을 외치며 사회주의를 외친다는 측면에서 진보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샌더스의 사회주의는 반공주의적 사회주의, 자본주의적 사회주의 한계에 갇혀있다.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해 취하고 있는 샌더스의 태도를 보더라도 그 ‘민주적’ 사회주의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대로 드러난다.
샌더스는 철저하게 양비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샌더스는 자신의 트윗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베네수엘라 정부를 독재정권이라고 비난한다. 마두로 정부가 “베네수엘라 시민사회를 폭력적으로 단속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마두로 정부가 지난 해 의회를 해산하고 국민들을 경제적 재앙과 수백만의 난민으로 내모는 독재정권이라는 것이다.
“베네스엘라 시민사회”?
바로 미제의 후원을 받고 차베스 정부 당시부터 반혁명적, 반인민적 책동을 자행해왔던 세력들 아닌가?
그러면서 동시에 샌더스는 과거 남미에 대한 미국의 내정간섭에 대한 우려를 표명함으로써 우회적으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내정간섭을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첨예한 정치적 상황 앞에서 이러한 양비론적인 태도는 사태의 본질을 왜곡할뿐만 아니라 항상 기회주의적 태도로 나타날 뿐이다.
샌더스는 베네수엘라 정부를 독재정권이라고 비난함으로써 반혁명 책동에 간접적으로 봉사하고 트럼프 미제국주의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내정간섭을 한편으로는 정당화 하고 있는 것이다.
샌더스는 베네수엘라 빈곤의 책임을 마두로 정부에 돌리고 있으나 사실 생필품이나 의약품 부족 사태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자본주의 진영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제재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샌더스 자신의 국가인 미제국주의를 비난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마두로 정부를 비난하는 태도는 극히 위선적인 것이다. ‘독재정권’이라는 비난은 어떠한가?
마두로 정부는 부르주아적 관점에서 독재정권이 아니라 도리어 인민이 자신한테 부여한 권력을 더 단호하게 사용하지 않아서 문제다.
맑스는 파리꼬뮌의 근본한계가 은행을 과단성 있게 접수하지 않고 혁명의 적들에게 단호하지 않았다는 점이라면서 이로부터 프롤레타리아 독재 수립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끌어냈다.
’21세기 사회주의’라는 베네수엘라 혁명 역시 가난한 민중의 의지를 바탕으로 하여 추진되고 있으나 보다 더 단호하게 경제적, 정치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혁명은 20세기 사회주의 혁명의 문제가 제기한 국가권력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21세기 사회주의’는 그 과제 앞에서 동요하고 주춤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도반단한다면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된다.
그럼에도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사태를 반대로 본다.
국내에서는 ‘다른 세상을 향한 연대'(실행위원 전지윤)가 전형적으로 샌더스와 같은 양비론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에 문제가 있는 건 맞다. 100만%의 초인플레, 식량난, 부정부패, 치솟는 범죄율 속에 지난 3년간 300만명이 이민을 갔다고 한다. 마두로가 여기에 책임이 없을 수 없다. 경제적으로는 시장과 자본에 타협하면서 정치적으로 비판의 입을 막는 식의 대응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갈수록 군부에 의존하며 우파야당 인사를 구속, 감금, 출마봉쇄한 것도 부정선거 시비를 자초했다.”
전지윤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경제봉쇄와 군사개입 시도에 반대하기는 한다. 그러나 마두로 정부가 “경제적으로는 시장과 자본에 타협하면서 정치적으로 비판의 입을 막는 식의 대응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는 태도는 자기모순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태도에 불과하다.
마두로 정부가 경제적으로 시장과 자본에 타협한 것이 문제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내외 기업, 금융에 대한 몰수와 국유화 조치를 강화하고 사회주의 계획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제와 내부 반혁명 쿠데타 세력들에 대해 단호한 정치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전지윤은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경도되어 마두로 정부가 정치적 독재를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미제와 유럽 제국주의를 비롯한 자본주의 진영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제재는 범죄이다. 이 자체가 이미 베네수엘라에 대한 침략행위이다.
이는 북에 대한 경제제재도 마찬가지다.
“제재는 전쟁이다”
경제제재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국주의의 침략은 이미 자행되었다.
제재를 즉각 중단하라!
군사침략 기도를 중단하라!
베네수엘라 인민의 적들인 우익 쿠데다 세력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
남미에서의 레짐체인지(정권교체)를 즉각 중단하라!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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