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무죄로 하리라” 정신승리와 지금 가해지는 국가폭력을 정당화 하는 수단이 되는가?

국가보안법은 국가폭력의 흉기

최근 국가보안법 사건 재심 판결에서 잇따라 무죄판결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2025년 12월 22일 미군정 통치 시기에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주모자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한국전쟁 중 처형된 독립운동가 고 이관술 선생이 재심에서 79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지난 1월 19일 ‘통일혁명당(통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1976년 사형이 집행된 고(故) 강을성씨가 50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지난 1월 22일에는 일본 유학 후 귀국하자마자 전두환 정권 공안 당국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았던 문영석 씨의 재심 재판에서 40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1958년 조봉암 진보당 당수, 조용수 민족일보사건,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을 비롯해 1969년 동백림 사건, 1973년 간첩누명을 쓰고 조사중 의문사한 최종길 서울대 교수 사건,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77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2020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등

국가보안법 제정 80년이 된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조작 사건은 100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 사건들은 대부분 고문과 증거조작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한 편으론 뒤늦게나마 과거의 국가보안법 조작 사건들이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조작사건에 직간접으로 가담했던 경찰, 검찰, 국가정보원 직원, 판사, 언론 등 누구도 단죄 받고 처벌당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파쇼에 대해 그러듯, 국가폭력은 그 가담자, 비호자 누구에게도 시효가 없이 엄중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희생자들의 고귀한 목숨은 어떤 판결과 보상으로도 되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가족들의 피눈물나는 고통도 배상금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폭력 사건이 사적 폭력 사건 보다도 가장 야만적인 폭력인 것은 아무런 저항 능력없는 피해자들에 대해 고도로 조직된 절대권력을 가진 국가기관이 법의 이름을 빌어 개인들을 합법적으로 살해하고 수년, 수십년 동안 인신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개인들에 간첩죄가 뒤집어 씌어지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과 친척들에까지도 그 낙인이 평생 동안 지워지지 않고 고통을 가한다는 것입니다.

통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무죄 선고 이후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부장 강민호) 재판부는 “비록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았다고는 하나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했다. 과거 사법부가 북한과의 극심한 이념적 대결에 대한 시대 상황이나 국가의 안위라는 명분만을 앞세워 한 개인의 존엄과 인권을 지키는 일에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재판부의 통렬한 자기반성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인정했듯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는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야 돌이킬 수 없지만 현재는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통해 이러한 일들의 재발을 막아야 합니다.

이러한 조작사건들은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 되었는데, 그 법은 바로 국가보안법입니다. 국가보안법의 이름으로 야만의 국가폭력이 합법화ㆍ정당화 되고 이것이 재심사건에서 연이어 무죄가 선고됐다면 국가폭력을 집행하게 한 국가보안법은 사라져야 합니다. 국가보안법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지난 80년 동안 그러했듯 국가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과거의 사건은 재심으로 무죄가 되지만 여전히 현재에는 국가보안법으로 간첩조작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980년 아버지 석달윤 선생이 전두환 신군부의 간첩조작 사건으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 18년 동안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이 사건은 2009년 1월 28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피해 사건은 아버지의 구속을 보고 양심수후원회를 쫓아다니며 구명활동을 했던 석권호가 노동운동가가 되고 아버지의 비극을 낳은 분단을 깨기 위해 활동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이 붙은 사건으로 구속되어 9년 6월의 중형을 선고 받음으로써 비극적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의 일상 활동은 북의 지령을 받은 일로 둔갑해 버렸고 미군기지 감시 활동은 첩보활동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지사 등의 전국적 조직체를 가진 간첩단은 허구로 드러났습니다. 다시 과거의 조작 사건이 재현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아버지의 아들의 아들은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구명하기 위해 애썻던 활동을 다시 하고 있습니다.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학살과 그 배후였던 미국의 책임을 묻고자 1985년 미문화원 점거농성을 했던 이정훈은 40대 초반인 2006년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6.15 이후 최대 간첩단 사건”이러는 ‘일심회’ 사건에 연루되어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민주노동당을 분열시킨 ‘주범’라는 낙인이 찍힌 채 3년의 옥고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리고 5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또다시 ‘촛불혁명정부’라는 문재인 정권 하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아 “회합·통신”하고 “친북 저작”을 쓴 ‘종북인사’로 낙인찍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윤영수 판사는 2025년 12월 12일 국가보안법 위반(회합·통신 등) 등 혐의로 기소된 이정훈에게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역시 증거 조작과 유령인물 고니시를 공작원으로 한니한 사건입니다.

“과거 사법부가 북한과의 극심한 이념적 대결에 대한 시대 상황이나 국가의 안위라는 명분만을 앞세워 한 개인의 존엄과 인권을 지키는 일에 너무 무심”함으로써 국가보안법이 자행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는 이처럼 비단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현재 진행형입니다. 수십년 지난 과거의 일은 반성하고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지금 과거와 같은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과의 극심한 이념적 대결에 대한 시대 상황이나 국가의 안위라는 명분만을 앞세워 한 개인의 존엄과 인권을 지키는 일에 너무 무심”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가하는 국가폭력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입니다.

이정훈은 “가난 대물림보다 더 괴로운 건 분단 고통을 대물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분단과 분단이 낳은 괴물 국가보안법으로 고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역사가 무죄로 하리라”?

“역사가 무죄로 하리라”

쿠바의 혁명 지도자 카스트로가 법정 에서 외쳤던 말입니다. 이 외침은 지금도 역사의 진보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난관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낙관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구호는 현재 저질러지고 있는 국가폭력과 악을 물리치고 승리할 계획과 전망이 없다면 자칫 정신승리로 끝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국가폭력 중단하라!

양심수를 석방하고 명예회복하라!

국가폭력 책임자, 집행자를 단죄하라!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

* <국가보안법 구속자 석권호 석방대책위>는 매주 화요일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집회와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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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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