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파병이나 이란파병이나 왜 ‘파병 거절해도 받아들여지는 시대’는 오지 않는가?
“이라크 파병은 옳지 않은 선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서 파병을 한 것이다. 때로는 뻔히 알면서도 오류의 기록을 역사에 남겨야 하는 대통령의 자리 참으로 어렵고 무거웠다. 차근차근 변화를 이루어 나가면 언젠가는 옳지 않은 전쟁에 대한 파병 요청을 거절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 글은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에 이라크 파병 관련해서 나오는 얘기입니다. 이 글은 미국의 이란 침략전쟁 관련해서 파병 압력에 직면한 지금 다시 회자되는 내용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 당시 ‘국익’과 ‘정의’ 사이에서 번민했습니다…노 전 대통령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의 무게가 저절로 느껴지는 대목입니다.”(이충재, 노무현의 ‘회한’, 이재명의 ‘고뇌’, 오마이뉴스, 2026.09.08.)라는 기사처럼, 이 말은 파병의 현실과 명분 사이에서 갈등하는 대통령 노무현의 인간적 고뇌를 보여주는 근거로 사용하고들 있습니다.
2003년 3월 이라크전 파병 결정이 나고 그로부터 23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옳지 않은 전쟁에 대한 파병 요청을 거절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는 오지 않고 있습니다. 노무현의 이 주장은 인간적 고뇌가 아니라 자주성을 상실한 나라의 대통령의 비겁함과 무책임함, 위선에 다름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지금의 이란 침략전에 비해 당시는 다국적군 형태의 참전이었고, 지금보다 더 상대적으로 명분이 있는 전쟁이라고 했지만 이 전쟁은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이라크에 대량살상 무기가 있다는 이유로 자행되었습니다.
베트남전 참전 명분인 통킹만 사건*이 조작이었듯이, 대량살상 무기**도 미국이 비열한 전쟁을 정당화 하기 위한 조작으로 드러났습니다.
* 1964년 8월 미국은 베트남 동쪽 통킹만에서 미 구축함 터너조이호가 공산당 진영의 북베트남군으로부터 공격받았다고 발표했지만, 1971년 뉴욕타임스(NYT)는 ‘펜타곤 페이퍼’(미 국방부 기밀문서)를 입수해 미국 정부가 베트남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사건을 꾸며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주)
**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 조지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핵무기 등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하였으나 전쟁 후 투입된 이라크서베이그룹(ISG) 등의 수색 결과, 현존하는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최종 확인되었다.(주)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이라크인 11만 명이 숨지고 이 가운데 민간인이 6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군이 고용한 사설 경호업체가 이라크 민간인 수백 명을 살상하고 수용소에서 고문 살해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이 보다 더 끔찍한 건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이어진 유엔의 대이라크 경제 제재로 영양실조와 의료 품목 부족 등으로 인해 사망한 5세 미만 어린이 수는 수십만 명에서 최대 100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입니다.
이란전에서도 미국은 전쟁개시부터 이란 초등학교를 폭격하여 168명의 어린아이들을 그 자리에서 무참하게 살해했습니다.
이란 보건부에 따르면 개전 후 40일 동안 최소 3468명이 숨졌으며, 희생자 중에는 생후 8개월 영아를 포함한 아동 376명과 여성 496명이 있었고, 부상자는 2만 6천 명을 넘는다.(“호르무즈 파병할 때 하더라도 전쟁 끝난 이후에, 다른 나라와 같이 해야”, 프레시안, 평화재단, 2026-09-13.)
당시 이라크전이나 지금 이란전이나 모두 미국이 주도하는 사악한 침략전쟁입니다.
“차근차근 변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으로는 부당한 침략전쟁을 거절하는 시대는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노무현이 참으로 비겁한 것은 지금 당장 자신이 처한 부당한 현실과 싸우지 않으면서, 그리고 그것을 옳지는 않지만 불가피한 현실로 포장하면서 파병을 간접적으로 옹호한다는 것입니다.
“차근차근 변화를 이루어 나가면” “언젠가는 옳지 않은 전쟁에 대한 파병 요청을 거절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는 왜 아직도 오지 않는 것입니까? 23년이 지난 2026년 한국사회는 여전히 ‘동맹’이라는 명목 하에 경제적으로는 일방적인 수탈에 가까운 통상압력에 굴복하고 그것도 모자라 미국의 침략전쟁에 동참하라고 일방적인 압력을 받고 있는 것입니까?
신식민지주의가 파병 강요, 불평등한 한미동맹의 기초
부당하고 구조적인 역사적 모순을 깨뜨리지 않은 채, 미래의 어느 날에 막연한 기대를 하며 지금 당장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현실에 굴복한다면, “언젠가는 옳지 않은 전쟁에 대한 파병 요청을 거절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찾아오기는커녕 20년이 지나도, 100년이 지나도, 200년이 지나도 새로운 시대는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일제로부터 해방은 어느 날 도둑처럼 행운으로 찾아오고, “차근차근 변화를 이루어 나가”서 온 것이 아니라 수십년 동안의 목숨을 건 항일투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으로부터의 침략전쟁을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는 시대는 미국의 간섭으로부터 자주권을 회복할 수 있을 때 찾아 옵니다.
노무현은 “국민들에게 한반도 평화와 한미동맹이란 현실적 이해로 파병한다는 점을 솔직하게 밝히라고 지시했다”지만, 당시 북핵위협이라는 명목 하에 미국이 조선에 대해 폭격 위협을 가했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가 위협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북핵은 미국의 대북 침략 위협, 대북 적대시 정책의 산물로 조선의 자위권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통일부 주최 ‘2023 한반도국제포럼’ 온라인 기조강연에서 존 미어샤이머 교수가 주장했던 것처럼, “북한의 핵 보유가 오히려 광범위한 관점에서 한반도 안정을 가져 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무현은 “한미동맹이란 현실적 이해로 파병한다”고 파병을 정당화 하지만 이는 일본제국주의 지배의 현실 때문에 친일을 했다는 친일파의 ‘현실론’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불평등한 한미동맹을 ‘현실론’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스스로 명분 없는 전쟁이라 규정했던 이라크전에 파병하고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지금도 조지아주에서 불법 감금을 당하고 경제적으로는 수탈당하고 침략전쟁에 파병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미동맹은 소파 협정(SOFA, 주한 미군 지위 협정)에서 보듯, 불평등한 협정입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4조에 의해 미국 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을 미국의 ‘권리’(right)로 규정하면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도 동일한 취지로 만들어 주한미군에 대한 시설, 구역, 경비를 한국이 부담하게 만들고 있다…
방위비분담협정은 소파 5조(주한미군에 대한 시설과 구역은 한국이 제공하고 주둔 경비는 미국이 부담하는 내용)의 적용과 관련한 예외적 특별 조치를 담았다…
여기에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 사령관이 행사하게 되면서 미국이 한국의 군사주권을 상당 부분 대행하는 구조가 정착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비를 100% 부담하라’고 한 발언도 이 조약과 파생 협정에 비춰 놀랄 일은 아니다. 논란이 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국 배치도 미국이 상호방위조약 4조에 따른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이었고 한국은 ‘허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고 보인다…
이 조약은 21세기 지구촌에서 찾아보기 힘든 불평등 조약으로 주권국가 한국의 국가 위상을 훼손하면서 미국의 무리한 동북아 정책 추진의 빌미가 되고 중국이 한-미 동맹의 약한 고리인 한국에 ‘사드 제재’와 같은 행위를 취하는 근거가 된다는 비판을 자초해 그 시정이 시급하다.이 조약은 21세기 지구촌에서 찾아보기 힘든 불평등 조약으로 주권국가 한국의 국가 위상을 훼손하면서 미국의 무리한 동북아 정책 추진의 빌미가 되고 중국이 한-미 동맹의 약한 고리인 한국에 ‘사드 제재’와 같은 행위를 취하는 근거가 된다는 비판을 자초해 그 시정이 시급하다.(고승우, [왜냐면] “격변의 시대, 불평등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영원한가”, 한겨레신문, 2018-05-23)
“21세기 지구촌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러한 불평등한 한미동맹 하에서 한국은 실상 대한미국이고 미국의 51번째 주이고 실제 극우 세력들은 성조기를 들고 다니며 미국의 종임을 내세우고 정치권은 미국을 숭배하는 현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 당선 전에는 사드 도입을 반대하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손바닥 뒤집듯 사드를 도입하는 상황도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불평등한 군사동맹은 통상 수탈협정에서 보듯 불평등한 경제관계를 만들고, 한국은 미국에 군사적ㆍ정치적ㆍ문화적ㆍ정신적 속국이 되어 있습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일본도 그런 조약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의 불평등 조약은 그 불평등성이 더 심각합니다.
한-미 동맹의 정상화 당위성은 미국과 필리핀의 상호방위협정, 미-일 상호방위조약과 비교해 보면 명백해진다. 필리핀, 일본이 미국과 맺은 동맹의 경우 그 기한이 10년으로 되어 있어 기한 만료를 기해 재협상 등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필리핀, 일본의 경우 미국과 상호방위협정, 조약 이행 등에 대해 수시로 협의할 수 있게 되어 있으나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는 그런 조항이 없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같은 기사)
과거 제국주의 국가였던 일본과 식민지 국가였고 해방 이후 ‘점령군’으로 한국에 들어와 대량학살과 노골적인 내정간섭을 자행한 미한관계는 똑같이 비교할 대상이 아닙니다.
가나의 국부로 평가받는 콰메 은크루마(Kwame Nkrumah)는 저서 《신식민주의:제국주의의 마지막 단계(Neo-Colonialism:The Last Stage of Imperialism)》에서 “신식민주의의 본질은 거기에 종속되어 있는 국가가 이론상으로 독립적이며 국제상의 주권국으로서의 모든 외적 장식물들을 지니고 있지만, 실상은 그 경제 체제, 따라서 그 정치적인 정책은 외부의 지시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미동맹의 불평등성은 한국이 미국의 (신)식민지이기 때문입니다. 영토를 점령하고 총독부를 내세워 직접 통치하는 식민지 시대와는 겉으로는 다르지만 형식적으로는 주권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외국군대를 진주시키고 불평등한 조약을 맺고 내정간섭을 일삼으며 주권을 유린하는 체제가 신식민지 체제입니다.
주권국가로 치장하지만 “정치적인 정책은 외부의 지시를 받고 있”는 현실은 “한국은 미국 승인 없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They do nothing without our approval.)”라는 트럼프의 발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트럼프의 이 발언은 5.24대북제재 해제와 관련해서 한 말인데, 문재인 시절 남북관계를 파탄시킨 주범도 사사건건 남북합의에 개입해 파탄시킨 한미워킹그룹 때문입니다.
운전자론을 주장하며 미국 눈치를 보며 남북합의를 하나도 이행하지 못한 머저리 문재인이나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을 말하면서도 국가보안법을 온존시키고, 헌법개정을 말하면서도 북을 적국으로 삼는 영토조항 개정 의사가 없으며 남북관계 개선에서 에이스 미국의 승인을 기다리는 페이스메이커 이재명이나 어쩌면 하는 짓이 똑같습니까?
이재명은 “전쟁에 관여하거나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고 단언했다고 하지만 “다른 국가들이 하는 것처럼 자국의 상선과 원유 수송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활동은 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하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지금 파병을 하겠다는 다른 나라들이 있습니까? 전쟁이 끝나면 상선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사라지기에 이조차 명분이 없지만 백보를 양보해 유럽 나라들도 전쟁이 끝나면 상선보호를 위해 군대를 파병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비전투병 파병을 말하지만 도대체 무엇으로 전쟁지대에서 상선을 보호하겠단 말입니까? 비전투병과 전투병 파병의 구별은 파병 반대 여론과 투쟁을 현혹하는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전투병이라 하든 비전투병이라 하든 상선개입이든 항행자유이든 이란과 예멘에게는 미국의 침략전쟁에 협조하는 것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 9월 7일 한국어로 된 메시지를 내고, 페르시아만이나 호르무즈 해협에 군사력을 주둔시키거나 군사작전에 참여할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 “참전으로 간주하겠다”고 강력하게 경고한바 있습니다.
단 한 발의 미사일이나 드론 공격으로도 수십, 수백 명의 군인들이 살상당할 수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에서 안전한 항행은 미국이 이란 침략전쟁에서 패배하고 미국의 괴뢰국 사우디가 패배할 때만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빛나는 페르시아 문명의 이란과 불굴의 민족 예멘이 이 전쟁에서 승리할 때만이 항행의 자유가 찾아오고 더 나아가 그 지역에서 평화가 찾아옵니다.
이란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략전이면서도 패배하는 전쟁입니다. 미국은 패전이 유력한 전쟁에서 전쟁을 장기화 해서 승기를 잡아보거나 패전의 부담을 전가하여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참전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파병은 ‘운명’이 아닙니다. 파병이 불가피한 운명이라는 것은 체념이자 노예적 굴종입니다. 불의의 침략전쟁을 반대하고 파병을 전면 중단해야 합니다. 내란세력 국민의힘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 권력에게 이 나라의 운명을 맡겨둘 수는 없습니다.
누구도 이 나라의 자주성을 뒤흔들지 못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불평등한 한미동맹을 혁파하고 자주적이고 호혜적이며 평화애호적인 국가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파병 거부를 넘어 민중의 이해에 충실하고 피억압 민족, 피억압 계급의 해방을 위해 국제적 의무에 헌신을 다하며 다음과 같은 구호를 당당하게 외치는 자주적 민중 권력을 쟁취해야 합니다.
침략전쟁에 단 한 명의 군인도, 단 한 점의 무기도 보낼 수 없다!
피침략국 이란의 승리를 기원한다!
침략국 미국과 이스라엘 패전을!
팔레스타인 해방을!
사진 출처: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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