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어떤 논리로 주권자의 외침을 막는가?
오는 10월 17일(토)에는 주권찾기의 날 <들어라 주권자의 외침> 집회와 행진이 열린다. 주권자의 외침은 주권의 상실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현실인식이자 주권을 침해하는 미국을 규탄하고 신식민지주의의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력한 실천투쟁이다. 더 크게, 더 자주, 더 강력하게 주권자의 외침이 들려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 주권자의 외침을 가로막고 있다.
“연북(聯北)의식만으로 평화가 오는가?” [기고] 김광수 박사의 대북·대미 인식과 다른 생각(서상문, 통일뉴스, 2026.09.09.)에서 서상문 씨는 주권자의 외침을 막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논리를 구사하고 있다.
레닌이 분석한 20세기 초의 식민지 영토분할 체제와 오늘날 미국의 국제적 패권은 동일하지 않다. 미국이 한국·일본·독일 등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고 해서 이 나라들을 미국의 식민지로 편입해 직접 통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역시 미국의 영토나 식민지가 아니라 독자적인 헌법과 정부, 군대와 외교권을 가진 주권국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왜곡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레닌은 식민지 영토 분할로만 제국주의 지배를 한정하지 않았다.
영토분할 대신 “국가적 종속의 과도적 형태”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바탕이 된 《제국주의론 노트》에서는 금융적ㆍ정치적으로 자립한 나라의 1그룹을 “다른 모든 그룹에 대한 억압민족이다.”라고 하고 있다. 레닌은 이 1그룹에 의해 피억압을 당하고 있는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2. 금융적으로는 독립되어 있지 않지만 정치적으로는 독립한 나라
3. 반식민지
4. 식민지 내지 정치적 종속국
레닌은 “국가적 종속의 과도적 형태”를 예로 들면서 “이 시대에서 전형적인 것은, 식민지를 영유한 국가와 식민지라는 두 개의 그룹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형식상 독립국이지만 실제로는 금융 및 외교상의 종속이라는 그물로 꽁꽁묶인 종속국의 여러 가지 형태들도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레닌이 《제국주의론》을 집필할 당시는 1916년(출판 1917년)이었다. 레닌은 당시에 제국주의와 직접적인 식민지가 전형적인 형태였지만 그것만으로 제국주의 지배를 규정하지 않았다. 레닌이 “정치적으로는 형식상 독립국이지만 실제로는 금융 및 외교상의 종속이라는 그물로 꽁꽁묶인 종속국의 여러 가지 형태들”은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오늘날은 전형적인 형태가 되었다.
레닌이 《제국주의론》을 집필할 당시는 식민지 분할과 재분할을 둘러싼 제국주의 간 전쟁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레닌은 자본가들의 힘에 의한 세계분할과 관련하여 “이들 변화가 ‘순전히’ 경제적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경제외적(이를테면 군사적)”인 것인가 하는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 자본주의 최근 시대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에 조금도 영향을 줄 수 없다. 자본가단체들 간의 투쟁과 협정의 본질 문제를 투쟁과 협정의 형태문제(오늘은 평화, 내일은 전쟁, 모레는 다시 전쟁 하는 식으로)로 대체하는 것은 곧 궤변가의 역할로 빠져드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레닌은 “제국주의는 금융자본과 독점의 시대로서, 어디에서나 자유가 아닌 지배의 열망을 가져온다. 정치체제가 어떠하든간에 이들 경향의 결과는 어디에서나 반동이며 … 특히 민족적 억압과 병합의 열망, 즉 민족자주의 침해는 더욱 심화된다.(병합은 바로 민족자결의 침해에 다름아닌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레닌의 이러한 규정은 제국주의가 어떠한 형태를 취하든, 겉으로 어떠한 변화상이 있든, 제국주의의 본질적 성격을 말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형식상 독립국이지만 실제로는 금융 및 외교상의 종속이라는 그물로 꽁꽁묶인 종속국의 여러 가지 형태들”은 오늘날 한국이 처한 현실을 잘드러내고 있다.
왜 미국의 제국주의성을 한사코 반대하는가?
서상문 씨는 “나는 미국의 대외정책을 무조건 옹호할 생각이 없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의 국가이익을 위해 여러 지역에 군사적으로 개입해왔고, 베트남전쟁이나 이라크전쟁처럼 비판받아 마땅한 정책도 적지 않았다. 패권국가가 자국의 힘을 과도하게 행사한다면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 “오늘날 미국에는 레닌이 지적한 금융자본, 독점, 자본수출, 세계적 영향력 등의 일부 특징을 현대적 형태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이 막강한 군사력과 금융력, 달러체제, 경제제재와 동맹망을 이용해서 다른 나라에 압력을 가하거나 군사적으로 개입해온 사실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오늘의 미국을 비판할 때에는 ‘패권주의(hegemonism)’, 군사적 개입, 경제적 강압, 동맹국에 대한 과도한 영향력 행사 등 구체적인 행위와 정책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훨씬 분석적으로 정확하다.”고 하면서도 “21세기 국제정치에서 미국을 언제나 ‘제국주의’라는 하나의 틀로 규정하고”, “미국을 ‘제국주의’라는 한 단어 속에 가둔 채 국제정치를 해석하”는 것에 한사코 반대하고 있다.
서상문 씨가 미국의 제국주의성을 극렬 반대하면서 예외적으로 든 “미국의 대외정책”, “군사적으로 개입”, “패권국가가 자국의 힘을 과도하게 행사”, “독점, 자본수출, 세계적 영향력 등의 일부 특징을 현대적 형태”, “미국이 막강한 군사력과 금융력, 달러체제, 경제제재와 동맹망을 이용해서 다른 나라에 압력을 가하거나 군사적으로 개입”, “‘패권주의(hegemonism)’, 군사적 개입, 경제적 강압, 동맹국에 대한 과도한 영향력 행사 등 구체적인 행위와 정책”이 바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미국의 패권적이고 침략적이고 반동적인 “구체적인 행위와 정책”을 사회성격이라는 과학적 분석으로 제국주의가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규정해야 하는가?
서상문 씨는 미국 ‘제국주의’라는 “하나의 틀로 규정하”는 것을 한사코 부정하는데 그것을 열강이라고 하든, 패권주의라고 하든, 침략주의라고 하든, 팽창주의라고 하든 그 본질적 성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서상문 씨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트남전쟁이나 이라크전쟁” 등 미국의 패권정책을 언급하지만 오늘날까지 자행되고 있는 미국의 침략적, 폭력적 행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스라엘 시오니스트을 지원하여 팔레스타인 주권을 난폭하게 침해하고 십수만 명의 팔레스타인들을 학살, 부상케하는 제국주의 행태는 오늘날 자행되고 있는 미국의 범죄이다. 베네수엘라를 불시에 침략하여 대통령 부부를 납치하고 베네수엘라 주권을 제약하여 석유이권을 독점하는 행태, 쿠바에 대한 제재를 지속하며 고사시키는 행태, 이란을 침략하여 초등학생 수백 명을 살해하고 이란국민 수천 명을 살해하는 미국의 행태들을 제국주의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묘사한다 해서 달라질 것이 있는가?
“미국의 대외정책을 무조건 옹호할 생각이 없”으며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는 서상문은 왜 미국에 대해서는 실제로는 규탄하기를 외면하면서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규정하고 침략적ㆍ억압적 대외정책을 비판하는 이들을 “얼마든지 비판할 비판할 수 있다”며 집중포화를 하고 있는가?
서상문 씨는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를 곧바로 ‘제국주의적 지배’나 ‘예속’으로 규정한다면,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이 자국의 안보와 국가이익을 판단하여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주권적 선택은 어디로 사라지는가? 동맹관계에서 힘의 비대칭성과 미국의 과도한 영향력은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지만, 그것과 주권의 상실은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주권적 선택”의 결여는 현 상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이 제국주의고 한국 예속국이라고 규정해서 “주권적 선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미국의 제국주의성을 폭로하고 한국의 예속적 성격을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으로부터 “주권적 선택”이 생겨날 수 있다.
노예가 노예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그 노예적 예속을 자각하고 그 예속성을 극복하기 위해 싸울 때이다.
서상문 씨는 “우리는 노예적 처지에 있다”는 인식이 노예상태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자신의 노예적 처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주인이다”고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노예적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노예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중ㆍ러제국주의성은 물타기 전략
서상문 씨는 “미국의 힘의 행사는 ‘제국주의’이고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적 행동은 별개의 문제라고 한다면 그것은 제국주의라는 개념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국가를 비판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서상문 씨는 이것이 지식인의 공평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힘의 행사”와 러시아와 중국에 같은 등가성을 대입할 수 있는가?
서상문 씨의 주장은 서방 제국주의 진영에서도 유포하는 논리이고 그리스공산당에서도 똑같이 주장하는 논리이다. 국내의 진보단체에서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러우전의 발발 원인을 소상하게 밝힐 수 없지만, 러시아의 침략성을 말하자면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략성에 의해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아니었다. 우크라이나가 피하려고 했다면 이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가 있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향해 동진하려는 나토 서방국들과 손잡지 않고 외교상의 중립성을 취했더라면, 러시아와 체결한 돈바스 협정을 준수했다면, 돈바스에 대한 자치권을 존중하고 학살하지 않았다면, 러시아에 대한 파쇼적 적대감을 표출하지 않았다면, 심지어 전쟁 발발 직후인 2022년 3월에 트르키예 중재로 타결 직전까지 갔던 이스탄불 협정을 파기하지 않고 체결했다면 이 전쟁은 나지 않거나 전쟁 직후 종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나토국들이 배후에서 조장한 전쟁의 대리전을 치르며 오늘날까지 비극을 겪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제국주의성에 대해서는 뭐라고 해야 하나? 중국이 다른 나라에 대한 침략전을 벌이고 있는가? 중국이 미국처럼 전 세계 80여 개 국가 및 지역에 약 750개 ~ 800여 개의 해외 다른기지를 가지고 있는가? 다른 나라에 대한 레짐체인지(정권교체) 기도를 하고 있는가? 중국이 다른 나라의 주권을 파괴하고 있는가?
중국의 일대일로가 신제국주의성을 보여주는 것인가?
반동적인 이코노미스트조차도 부채 함정 혐의가 “대체로 불공평하다”고 인정하며, 투자자와 다른 나라들이 종종 그렇게 하기를 꺼려했을 때, 중국이 “도로, 항만, 철도 및 기타 필요한 기반 시설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지적했습니다.
IMF가 부과하는 긴축 조건 없이 중국 금리는 일반적으로 서구 은행의 절반 정도에 그칩니다. 자선단체 부채 정의(Debt Justice)의 팀 존스(Tim Jones)는 이 모든 부채 함정 이야기가 서구 국가들이 주의를 돌리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국 은행, 자산 관리자, 석유 거래자들이 훨씬 더 책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대출 중 40%는 발전, 30%는 운송에 사용되어 아프리카의 인프라 격차를 해소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대출을 받아 사는 이들은 동의합니다. 캄보디아 부총리는 작년에 부채 함정에 대한 비난에 대해 “일대일로 구상은 부채 함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회 및 경제 발전을 위한 생명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앙골라 에너지수자원부 장관은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프로젝트도 강요한 적이 없으며, 각 프로젝트는 우리가 선정한 것입니다… 중국 외에는 아무도 우리에게 지원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고 차베스가 말했듯이, “중국은 대국이지만 제국은 아닙니다.”중국은 누구도 짓밟지 않고, 누구도 침략하지 않았으며, 누구에게도 폭탄을 투하하지 않습니다.(카를로스 마르티네스(Carlos Martinez), “중국은 제국주의가 아니다 여기 증거가 있다”)
과연 이래도 서상문 씨가 최소한의 분별력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서상문 씨가 미국의 제국주의성을 반대하기 때문에 러시아, 중국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미국의 제국주의성을 회피하고 미국의 침략성과 약탈성에 대한 비판을 물타기 하기 것이다.
서상문 씨는 “미국의 힘은 제국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왜 같은 강도로 비판하지 않는가?”라며 등가성을 주장한다. 그런데 불평등한 한미관계와 자주성을 정치체제의 생명으로 간주하고 있는 조선의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동일시할 수 있는가? 서상문 씨는 여기서도 미국을 비호하기 위해 조선과 조선에 대한 태도를 비난하고 있다.
한국의 주권 결여의 현실: 신식민지성
미국의 제국주의성과 한국의 (신)식민지성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미국이 일제시대처럼 영토병합을 하고 총독부를 두고 조선을 지배하지 않는 데 한국에 대한 제국주의 지배를 하는 것인가?
가나의 국부로 평가받는 콰메 은크루마(Kwame Nkrumah)는 저서 《신식민주의:제국주의의 마지막 단계(Neo-Colonialism:The Last Stage of Imperialism)》에서 다음과 같이 신식민지주의를 규정한다.
신식민주의의 본질은 거기에 종속되어 있는 국가가 이론상으로 독립적이며 국제상의 주권국으로서의 모든 외적 장식물들을 지니고 있지만, 실상은 그 경제 체제, 따라서 그 정치적인 정책은 외부의 지시를 받고 있다.
경제학자 리중진(Li Zhongjin)과 데이비드 코츠(David Kotz)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제국주의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지배계급에 의해 경제적·정치적으로 지배되는 것으로, 그 지배계급을 위한 경제적 이익을 추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카를로스 마르티네즈, 같은 글)
제국주의와 신식민주의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정치적으로는 형식상 독립국이지만 실제로는 금융 및 외교상의 종속이라는 그물로 꽁꽁묶인 종속국의 여러 가지 형태들”이라는 레닌의 제국주의 규정과 일치한다. 이는 오늘날의 제국주의 지배의 현실과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한국은 “이론상으로 독립적이”고 “정치적으로는 형식상 독립국이지만” 군사, 외교, 정치, 경제상의 중요한 결정들은 자주적이지 못하고 미국의 압력이나 그것이 아니면 자발적으로 미국의 의중에 맞춰 정책이 이뤄지고 있다.
사드 도입은 과연 한국의 자주적인 결정에 의해 이뤄졌는가? 누구에 의해 판문점선언 같은 남북관계의 합의가 파탄이 났는가?
3500억 달러(약 467조)의 투자 결정은 한국 투자자본의 자발적 이해에 의해 이뤄졌는가?
트럼프가 최근 한국정부가 부인하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에 500억달러(약 67조원)를 투자하기로 확약했다고 거듭 발표하는 것은 주권상의 중대한 침해가 아닌가?
한국정부의 평화적 남북관계 복원에 대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대북적대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한미연합 훈련은 누구에 의해 이뤄지는가? 그리고 누구의 말 한 마디에 따라 일방 축소되는가?
호르무즈 파병 압력은 누구에 의해 이뤄지는가?
이러한 한국이 처한 현실은 미제국주의라는 관념의 규정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처한 신식민주의라는 현실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우리가 처한 구체적 현실이 있고 관념이 있는 것이다.
서상문 씨는 “무엇보다 북한과의 평화를 원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에게만 ‘연북의식’을 요구하지 말고 북한에도 대한민국을 존중하고 가까이하려는 ‘연남의식’을 요구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판문점 선언 같은 선대선의 남북관계가 파탄이 나고 적대화된 두 국가관계는 누구에 의해 초래됐는가? 조선의 적대관계 선언에 의해 이뤄졌는가? 미국의 대북적대 정책과 자주성을 상실하고 거기에 부응하는 한국 정부에 의해 초래됐는가?
서상문 씨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격에 대해 회피할 뿐만 아니라 남북의 적대관계로의 악화의 원인에 대해 외면하고 책임을 돌리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조선에 대해 왜곡하고 적대시 하며 평화와 자주를 말하는 이들을 탄압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북적대가 아니라 “연북의식”을 가지라는 주장이 그토록 비난받을 일인가? 국가보안법의 악법에 따라, 국가보안법이 조장한 반북의식에 따라 대북적대를 조장하고 조선에 대해 적대적 감정을 표출하고 할 말은 하는 것이 자주성의 발로란 말인가?
서상문 씨가 이 땅의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혹세무민하지 말고 현실의 억압을 진실하게 이야기하고 실천하기 바란다.
이 기사를 총 72번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