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재민(主權在民)은 어디로 가고 주권재미(主權在美)만 남았나?
<주권자의 외침> 은 결여된 주권을 찾기 위한 투쟁입니다. 주권자들의 권리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고 합니다. 주권재민은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에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당위적이고 명목적인 원리를 규정한 것일뿐 현실에서 주권재민의 원리는 전혀 구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독일의 위대한 혁명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바이마르 헌법의 세 개의 조항”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그런데 (그 권력은) 나와서 어디로 가는 거지?
그래, 대체 (그 권력은) 어디로 가는 거지
결국 어디론가 가긴 가겠지!
경찰이 그 집에서 나온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지?
그래,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결국 어디론가 가긴 가겠지!
국가권력이 갑자기 멈춘다.
저기에 뭔가 (무리지어) 서 있는 것을 본다.
– 대체 무엇이 거기에 (무리지어) 서 있는 거지?
저기에 뭔가 (무리지어) 서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국가권력은 호령한다
호령한다 : 즉각 해산하라!
왜 해산하라는 거지?
호령한다 : 즉각 해산하라!
국가권력은 발포한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쓰러진다.
대체 무엇이 쓰러진거야?
대체 왜 바로 쓰러진거야?
국가권력이 바라본다 : 저기 무언가가 진창 속에 널부러져 있다.
그 무언가가 진창 속에 널부러져 있다!
대체 저기에 무엇이 널부러져 있는 거야?
저기 무언가가 완전히 죽어 널부러져 있다.
그런데 그게 보니 국민이야!
대체 그게 정말 국민이야?
그래, 그게 정말 국민이야.
역자: 이명희
브레히트의 유명한 이 시는 주권재민에 대한 요란한 선언과 달리 자본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통치자에게 있으며 그 권력의 행사는 경찰의 물리력으로 국민을 억압하고 압살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봉건제를 무너뜨리고 프랑스대명으로 인권선언이 발표되고 “자유ㆍ평등ㆍ박애” 국민주권의 상징이 되었던 프랑스는 지금 어떻습니까?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상징이었던 프랑스에서 경찰의 난폭한 폭력으로 “완전히 죽어 널부러져 있”는 것은 국민입니다. 학습권 보장이라는 지극히 소박한 요구를 내걸고 궐기한 16, 17, 18세의 청소년들이 무장한 경찰들의 폭력에 의해 “완전히 죽어 널부러져 있”습니다. 경찰은 청소년들에게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와 최루탄을 무차별 쏘아대고 방패로 찍고 곤봉을 무자비하게 휘둘러대고 있습니다. 경찰이 쏜 잔압용 수류탄을 집어 들었다가 15세 학생이 진압용 수류탄을 집어 들었다가 폭발해 손목이 잘려 나가고 16살 학생이 경찰 고무탄에 맞아 실명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시위로 6천여 명이 연행되고 이 중 대다수가 고등학생입니다. 이러한 경찰 폭력 사태는 벨기에,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맑스는 《루이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자유ㆍ평등ㆍ박애”의 고상한 이념이 “보병·기병·포병”으로 변했다고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도 “자유ㆍ평등ㆍ박애”의 고상한 이념이 “보병·기병·포병”으로 변한 것입니다.
주권재민 원리는 주권재미 현실을 가리는 면사포
이재명 정부는 국민주권정부라고 합니다. 그런데 분단은 미국의 분단도, 중국의 분단도 아닌 남과북의 분단입니다. 그렇다면 분단문제 해결의 주도자는 남과 북입니다. 그러나 문재인의 운전자론에 이어 이재명 정부의 남북문제 방법은 페이스메이커입니다. 주전선수, 즉 미국 주전선수 옆에서 주전선수를 돕는 보조선수라는 것입니다.
지난 판문점선언의 파탄에 대해 전 통일부장관들은 공동명의로 “한미 양국은 대북정책에 관해 긴밀히 협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과거 한미 워킹그룹 방식으로 이를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과거 한미 워킹그룹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산적인 협의가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제재의 문턱을 높이는 부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통일부장관으로 있을 당시 미국의 일방적인 조치를 막지 못했던 장관들이 뒤늦은 평가이기는 하지만 이것만 보더라도 주권이 없는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주도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통일부장관들은 여전히 “한미 양국은 대북정책에 관해 긴밀히 협의해야.”한다며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대북정책에 관한 긴밀한 협의가 워킹그룹을 만들었는데 다시 그 파탄을 직면하고도 긴밀한 협의 운운하고 있습니다.
조미관계 개선을 쳐다볼뿐 주권이 없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재명 정부 내에 이른바 ‘동맹파’와 ‘자주파’의 대립 구도도 사실 허상입니다. 양자가 한 정부 내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 대립구도가 허상임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세미나에 참석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동맹파들이 너무 많다. 대통령이 앞으로 나갈 수 없도록 붙드는 세력”이며 “미국이 싫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통령 주변에 있다. 이러면 ‘문재인 정부 시즌2’가 된다”(최익재 국제선임기자,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 중앙일보, 2025.10.25.)고 주장했습니다.
너무 많은 ‘동맹파’를 임명한 것도 이재명이며, “대통령이 앞으로 나갈 수 없도록 붙드는 세력”을 스스로 임명한 것도 이재명 자신입니다.
자주파로 분류되는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평화적 두 국가론을 주장하면서도 그 평화관계로 가는 상대에 대한 적대감과 흡수통일을 공공연하게 핵심적 법률인 영토조항에 대해서조차 “영토 조항을 건드리기는 쉽지 않다. 헌법 체제 내에서의 평화적 두 국가론”(같은 기사)이라며 개헌 필요성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주파가 국정원장으로 있는 정권 하에서 국가보안법은 사라졌습니까?
국가보안법 사건은 왜 이토록 빈번한 것입니까?
수박파와 비수박파, ‘문조털래유’와 ‘한강새똥돼주길’, ‘동맹파’와 ‘자주파’의 대립과 갈등은 민주당 내부의 갈등이지만, 이들의 조족지혈 같은 차이를 부각시키면서 민주당 자체의 반통일적, 반민중적 노선이 은폐되고 이들 문제들이 해결되면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의 근본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과 기대를 부여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군사주권 문제도 전작권 전환 문제로 부각되고 있지만, 희망고문이 되고 있습니다. 한미는 2012년 전작권 전환에 합의한 것이 벌써 2007년입니다.
사령관의 국적만 바뀌고 한국 정부의 판단이 실제 작전과 위기 대응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책임만 먼저 떠안는 환수가 된다.
환수를 명분으로 한국의 비용 부담과 군사적 역할만 늘어나는 일도 막아야 한다.
지난해 11월 한미 공동 팩트시트는 ‘동맹 현대화’ 항목에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3.5% 수준으로 늘리는 계획, 2030년까지 25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무기를 구매하겠다는 약속, 주한미군에 대한 330억 달러 규모의 포괄적 지원 계획을 전작권 전환 협력과 함께 담았다. 무기 구매를 전작권의 교환조건으로 명시한 것은 아니다. 비용 부담은 구체적인 규모까지 제시하면서 환수 시한은 밝히지 않았다. (김동엽(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언젠가 준비되면’은 없다”, 오마이뉴스, 2026.10.12.)
“환수를 명분으로 한국의 비용 부담과 군사적 역할만 늘어나는 일도 막아야 한다.”고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이미 벌어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전작권 전환이라는 담론은 한반도를 미 제국주의의 거대한 지정학적 전진기지로 묶어두려는 면사포”라는 날카로운 폭로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브런슨 사령관이 대담 내내 집요할 정도로 반복하고 강조한 핵심 명제는 바로 ‘조건에 기반한 전작권 전환(Condition-based OPCON transfer)’이었다…
한국군 대장이 연합사령관 직책을 맡는 외형적 간판 교체극이 주권 회복의 이정표로 둔갑하는 동안, 미 제국주의는 철저히 자신들의 군사적 가늠자와 조건표에 따라 한국의 군사 주권을 예속시키고 있다…
미 군부가 진지하게 고수하는 ‘조건’이라는 이름의 함정은 한국군을 미국의 손바닥 안에서 길들이는 정교한 통제 장치이자, 전형적인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기만극이다. 브런슨 사령관은 제45차, 제46차, 제47차 한미군사위원회(MCM) 및 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선언문(Communique)을 구체적 근거로 제시하며, 전작권 전환이 철저히 미 군부가 그어놓은 조건에 부속된 절차임을 분명히 했다…
한반도를 넘어 미 제국주의의 범지구적 패권 전선인 인도-태평양 전장으로 주한미군과 한국군을 내보내는 데 있다…
미국은 아시아 대륙의 유일한 전방 배치 지상군 거점인 한반도를 고정된 항공모함으로 삼아 자국의 패권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다.
한국군에게 대조선 재래식 억제와 한반도 지상전의 무거운 짐을 전적으로 떠맡기는 진짜 이유는 주한미군과 연합 전력을 한반도라는 국지적 전장에 묶어두지 않고 동북아를 넘어 인도-태평양 전역의 대중국·대러시아 봉쇄망에 자유롭게 투입하기 위함이다…
한반도의 군사 주권을 미 제국주의의 글로벌 봉쇄 전략에 복무시키려는 주제에, 이를 마치 자주국방의 결실로 포장하는 이재명의 전략적 기만성은 결국 한국군과 산업 기반 전체를 미제의 패권 전쟁에 내모는 위험천만한 사대주의적 굴종이다.(서도영, CSIS 브런슨 대담에서 드러난 전작권 전환의 환상과 ‘조삼모사’의 지정학)
군사주권 회복의 핵심 과제인 전시작전권 전환문제가 자주적 권리가 아닌 미국의 시혜가 되면서 한국에게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인도-태평양 전역과 대중국·대러시아 봉쇄망의 책임을 부과하는 비극의 새로운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불평등한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진행되는 전시작전권 환수는 그 대가로 군사비적 부담을 일방 떠안는 동시에 미군철수와 한미동맹 해체를 회피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트럼프는 지난 10월 14일 “한국이 투자하는 이 500억달러(약 67조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는 나와 맺은 무역·투자 합의의 일환”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아직 합의된 바가 없다고 했지만, 케이티 재커리아 신임 백악관 대변인은 투자규모가 540억 달러(약 72조원)라는 구체적인 액수까지 밝혔습니다. 트럼프는 더 나아가 “한국이 원하지 않는다면 더 많이 청구하면 되고, 곧바로 합의하지 않으면 청구금을 두 배로 올릴 것”이라며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이 합의에 대해 한국정부는 부정하지만 논의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게다가 트럼프의 일방적 발표지만, 이는 지난해 미국에 2천억 달러 투자와 조선협력 분야 1천500억달러로 큰 틀의 합의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투자자가 전전긍긍하고 피투자자가 온갖 횡포를 다 부리는 전대미문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호르무즈 파병에 굴종하는 것도 이 정권이 국민주권 정부인지 무주권정부인지 의심하게 합니다.
결국 주권재민의 당위는 주권재미의 현실 앞에 굴종하고 있습니다. 주권재민은 주권재미를 은폐하는 포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당위 앞에서 실제로는 어디서 나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주권상실의 현실 앞에서 쓰러지고 죽어 널부러져 있는 것은 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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