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 1842년에 한국의 국가보안법을 격렬하게 비난하다

오늘 집회 및 선전전에는 국가보안법 구속자 이정훈 선생의 부인인 구선옥 님과 석권호 동지의 아드님께서 나오셨다.

이정훈 선생과 함께 청년 시절에 광주학살의 배후 미국을 규탄해 미문화원을 점거했던 어제의 동지들은 전부 변절하거나 신념이 약해지고 누구는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누구는 지금 대한민국 총리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정훈은 청년 시절의 양심과 도덕, 신념을 60이 넘은 지금까지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의 침탈을 받고 1심에서 5년 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혀 있다. 구선옥 님은 몇번이나 국가보안법으로 갇힌 남편을 대신해 석방투쟁을 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9년 6월의 선고를 받은 석권호 동지의 가족사는 3대에 걸쳐 계속되고 있다.

석권호의 아버지 석달윤 선생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중앙정보부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하고 이른바 조작된 진도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18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석달윤 선생은 이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러나 고통은 대를 이어 계속된다.

아버지의 구명 활동을 하면서 활동을 시작한 석권호는 노동운동가가 되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이 땅의 분단을 척결하고 통일을 위해 활동하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다. 이제 아버지 구명을 위해 활동하던 아들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고 그 아들의 아들, 손자가 아버지의 구명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러한 비극과 고통을 안기고 있는 것인가? 과연 무고한 개인들의 양심과 신념을 짓밟고 가족들의 고통과 절망 위에서 국가의 보안, 안보가 지켜진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국가보안법은 과연 누구를 이롭게 하는 것인가?

“도당의 불량한 양심”이 공공의 안녕을 내세워 “보복의 법률을 고안해 낸다”

1842년 맑스는 라인신문에서 ‘최근의 프로이센 검열 훈령에 대한 논평’이라는 제목으로 프로이센 당국의 검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맑스는 생각을 처벌하는 검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내가 나를 표현하는 한에서만, 즉 현실의 영역에 들어서는 한에서만 나는 입법자의 영역에 들어선다. 나의 행동으로서가 아니고서는 나는 법률에 대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나는 법률의 어떠한 대상도 아니다. 나의 행동은 법률이 나를 구속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행동은 그것 때문에 내가 존재의 법, 즉 현실의 법을 요구하는 유일한 것이며, 따라서 그것에 의해 내가 현실적인 법에도 귀속하게 되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향단속법은 내가 행한 것만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 이외에 내가 생각한 것도 처벌한다. 따라서 그 법률은 공민의 명예에 대한 모욕이며 나의 존재를 고통스럽게 하는 법률이다…

나의 존재는 혐의 대상이고, 나의 가장 내적인 본질, 즉 나의 개체성은  나쁜 개체성으로 간주되며, 나는 이러한 생각 때문에 처벌된다. 그 법률은 내가 행하는 불법 때문에 나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하지 않은 불법 때문에 나를 처벌한다. 나는 실제로 나의 행위가 위법적이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처벌 받는다. 왜냐하면 나의 행위가 위법적이지 않음으로써만 나는 온화하고 신의를 가진 재판관으로 하여금, 백일 하에 드러나지 않게 감춰질 정도로 영리한 나의 나쁜 신념을 평가하도록 강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념단속법은 결코 공민을 위한 국가의 법률이 아니며, 다른 당파에 대항하는 한 당파의 법률이다. 경향단속법은 법률 앞에서 공민의 평등함을 폐기한다. 경향단속법은 합일의 법률이 아니라 분리의 법률이며, 분리의 법률이란 죄다 반동적이다. 그것은 결코 법률이 아니라 하나의 특권이다…

인륜적 국가는 비록 그 성원들이 비록 한 국가기관에 대한 또는 정부에 대한 반대에 돌입한다고 해도   그들 속에 국가의 신념이 존재한다고  상정한다. 그러나 하나의 기관이 자신을 국가이성과 국가인륜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소유자라고 생각하는 사회, 민중과 원리적으로 대립하는 입장에 서고 따라서 자신의 반국가적인 신념을 일반적인 신념, 정상적인 신념으로 간주하는 정부가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도당의 불량한 양심이 경향단속법, 즉 보복의 법률을 고안해 낸다. 그러나 그 법률이 겨냥하는 신념은 오직 정부성원 자신들 속에서만 자리잡고 있는 신념이다. 신념단속법은 무신념에 기초하고 있으며, 국가에 대한 비인륜적이고 물질주의적 견해에 기초하고 있다. 신념단속법은  나쁜 양심의 무분별한 울부짖음이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법률은 어떻게  시행될 수 있는가? 법률 자체보다 더 괘씸한 수단, 즉 스파이를 통해서, 또는 모든 문필상의 성향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는 이전의 약정을 통해서이다. 물론 후자의 경우 개인이 어떤 성향에 속하는지 계속 탐색된다. 경향단속법에서 법률적 형식이 내용에 모순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현재 존재하고 있는 정부가 그것 자체인 것, 즉 반국가적인 신념을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는 개개영역에 있어서도 그 법률에 대하여 말하자면 전도된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왜냐하면 정부는 이중의 척도로 측정하기 때문이다. 한 측면을 따르면 불법적인 것이 다른 측면을 따르면 법적인 것으로 된다. 이미 정부의 법률은 정부가 법률로 만든 것과 정반대의 것으로 된다…

검열에 대한 근본치료는 검열을 폐지하는 것일 것이다.(1842년 2월 초부터 2월 10일 사이에 씀)

맑스가 1842년 비판한 ‘프로이센 검열 훈령’을 2026년 한국의 국가보안법으로 바꾸면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공안당국은 공공의 안녕을 단속명분으로 표방하고 있지만 실은

반민중적 “도당의 불량한 양심”이 독단적ㆍ배타적으로 악법을 제정하여 폭력을 집행하는 것이다.

검열 훈령과 마찬가지로 국가보안법은 “내가 행한 것만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 이외에 내가 생각한 것도 처벌한다. 따라서 그 법률은 공민의 명예에 대한 모욕이며 나의 존재를 고통스럽게 하는 법률이다.”

공안당국도 차마 말과 글을 행동이라고 우기지는 못할텐데, 국가보안법은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은 사고의 표현, 즉 글과 말을 처벌한다.

특히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ㆍ고무등)는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은 말과 글을 처벌한다. 표현의 자유의 억압은 바로 생각을 처벌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은 신념의 표현을 처벌한다.

그렇다면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의 말과 글이 아닌 행동에 대해 검토해보자.

국가보안법은 4조에서 “교통ㆍ통신, 국가 또는 공공단체가 사용하는 건조물 기타 중요시설을 파괴하거나 사람을 약취ㆍ유인하거나 함선ㆍ항공기ㆍ자동차ㆍ무기 기타 물건을 이동ㆍ취거한 때에는 사형ㆍ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피해자들 중 누가 과연 이런 중대한 폭력테러 행위를 저질렀는가?

아무도 군용시설이나 교통ㆍ통신을 파괴하거나 사람을 납치ㆍ유인, 함선이나 비행기를 탈취하려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아무도 다중의 힘으로 폭행, 협박 또는 손괴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 폭발물을 사용하여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을 해하거나 그 밖에 공공의 안전을 문란하게 한 사람도 아무도 없다. 구금된 자를 도주하게 한 사람도 아무도 없다. 더욱이 사람을 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가보안법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이 근거를 들고 있는 형법의 수십 개 조항을 봐도 이들을 행동으로 처벌할 근거는 없다.

반대로 이들이 설사 정부 당국에게는 비판적이고 더 나아가 저항했다 할지라도 이들의 행동은 하나 같이 평화애호적이었으며 민중친화적이었으며 사회진보의 방향과 일치했다. 이들은 분단을 척결하고 통일을 염원했으며 독재를 거부하고 민주를 열망했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다.

국가보안법은 결국 맑스가 말한 행동이 아닌 사고를 처벌하는 “경향단속법”이다. 공안당국이 원하지 않는 방식의 양심과 신념을 소유했다는 것이 이들이 처벌 받은 이유다.

북을 찬양ㆍ고무했다는 국가보안법 위반도 그것이 진리인지 허위인지 판단 기준이 되지 않는다. 단지 북에 이로운지 이롭지 않은지 주관적, 자의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북에 대해 아무리 날조를 하고 중상을 해도 그것이 북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면 위반이 아니게 된다. 국가보안법은 북에 대한 긍정적 판단이나 우호적 평가는 찬양ㆍ고무로 위반 대상인데 반대 날조와 중상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은 북에 우호적ㆍ긍정적인 감정과 평가로 남북 간 평화를 조장하고 통일을 앞당긴다 하더라도 북을 고무ㆍ찬양한 것이기에 위반 대상인 반면에 심지어 악의적 중상과 날조로 남북 간 적대감을 고취하여 전쟁위기를 조장한다 하더라도 법위반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보안법은 이를 조장한다. 결국 국가보안법은 대북적대, 전쟁조장법인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국정원과 공안검ㆍ경찰, 이들의 시녀인 법복입은 강도들이 합작하여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폭력을 행하는 국가테러법이다.

국가보안법은 사상과 양심을 일방적인 폭력의 잣대로, 북에 대한 적대감만을 법의 잣대로 행사하는 악랄한 법이다.

맑스가 신랄하게 비판한 프로이센의 검열훈령은 국가보안법과 같다고 했다. 그런데 1842년 봉건 프로이센 검열 훈령과 2026년 국가보안법 어느 게 더 야만적인가?

맑스는 1842년 프로이센 당국을 향해 비열하고 폭력적인 검열을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프로이센의 통치자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였다. 맑스는 봉건 당국을 향해 표현과 양심의 자유를 요구했다. 당시 봉건 황제정부는 악랄하게도 맑스가 편집장으로 있었던 라인신문을 폐간했다. 나아가 맑스가 반정부 활동을 계속하자 해외로 추방했다.

그런데 추방된 맑스는 1848년 유럽 전역에 민주혁명의 기운이 돌자 프로이센으로 돌아와 《신라인 신문》을 창간하여 혁명 활동을 주도했다.

프로이센 검열훈령과 비교되는 국가보안법 적용은 그보다 더 악랄하게 수많은 진보적 ㆍ양심적 인간들을 살해하고 테러하고 고문하고 가둔 법이었다.

대한민국은 봉건국가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황제가 아닌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민주공화국에서, 그것도 2026년의 민주공화국에서 국가보안법은 봉건 치하의 검열 훈령보다 악랄하고 폭압적으로 인간을 적대하고 탄압하는 국가보안법이 민주공화국을 실제로는 야만공화국으로 만들고 있다.

생각은 죄가 아니다.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진보적 ㆍ양심적 행동도 죄가 아니다.

양심수를 석방하라.

국가보안법 수사를 중단하라.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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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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