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국주의론’은 어떤 인식상의 오류이며 실천상의 해악을 가져오는가?
‘제국주의 피라미드론’에 의하면 독점을 형성한 자본주의 나라는 모두 제국주의 국가이다. 제국주의 피라미드론에 입각한 현실인식이 인식의 심각한 오류를 넘어 실천상으로 심각하게 해를 끼치고 있다.
이현숙(노사과연 전 소장 필명)은 한국의 막대한 자본수출 비중을 예로 들어 한국이 제국주의 국가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독점자본주의 나라는 모두 제국주의라는 게 그리스공산당을 필두로 한 제국주의 피라미드론자들의 입장인데 한국의 자본수출 비중이 높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제국주의의 민족억압은 이제 사라졌는가?
한국이 제국주의 국가 중에서도 최상층 바로 아래의 상층 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음 함으로써 민족자결과 자주성을 쟁취하는 반미반제투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려 하는 것 아닌가? 그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인식은 현실에서는 바로 제국주의의 약소민족과 약소국에 대한 침략과 착취, 억압을 부정하고 민족해방과 자주성 쟁취과제를 부정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현지자본과 현지권력이 이제는 미국에 상응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는 필적하는 제국주의 국가의 일원이 되었기에 민족자결과 민족자주의 과제는 오로지 제국주의 현지 자본과 현지권력을 돕는 투쟁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 주장에 따르면, 중국은 제국주의 2위의 제국주의 수괴국으로 욱일승천하며 제국주의 수괴로 떠오른 신흥 제국주의 수괴 중국에 맞서는 투쟁이 진보진영의 정치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최근 수년 간, 특히 러우전이 발발한 이후 정치소사가 미제국주의의 침략적, 반동적 모습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중ㆍ러 제국주의론으로 적대감을 표출한 것으로 일관함으로써 이들의 현학적인 이론이 누구의 이해에 복무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현숙이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얼마나 교묘하게 왜곡하는지, 그리하여 현실을 어떻게 호도하는지 그 현란한 솜씨를 보자.
“자본수출로 발생하는 거대한 수익(이자·배당금 혹은 이윤), “이것이 곧 세계의 대다수 나라와 민족에 대한 제국주의적 억압과 착취의 토대”이다. 즉 독점자본주의에서의 제국주의란 자본 수출을 통한 외국 근로대중의 착취(경제적 토대)가 그 본질이다. 억압은 이를 위한 도구(정치적 상부구조)이다. 착취에 저항하는 근로인민들을 억누르기 위해서, 구식민지 시대에는 제국주의가 직접 통치했다. 신식민지시대인 최근에는 억압을 현지 권력이 대행해준다.”(제국주의 대한민국2, 이현숙, 노동자신문, 2025년 3월 16일)
레닌은 자본수출이 “세계의 대다수 나라와 민족에 대한 제국주의적 억압과 착취의 토대”라고 있다. 그런데 이현숙은 부정직하게도 솜씨를 발휘하여, ‘즉’, 레닌과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면서 “외국 근로대중의 착취(경제적 토대)가 그 본질이다”라고 교묘하게 레닌의 입장을 호도하고 있다.
레닌에게 자본수출은 한 줌도 안 되는 제국주의 국가의 “세계의 대다수 나라와 민족에 대한 제국주의적 억압과 착취의 토대”인데 반해, 이현숙에게 이는 제국주의 국가들끼리 공동으로 “외국 근로대중의 착취”를 하는 것으로 둔갑해 있다.
이현숙의 제국주의 피라미드론에 의하면 독점을 형성한 모든 나라는 다 제국주의 국가들이다. 이들에게는 위계질서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들 나라가 다 제국주의 국가이기에 전 세계의 근로인민을 공동착취해 그 이윤을 나눠가지는 공생의 관계가 된다.
“세계의 대다수 나라와 민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주체는 당연 그 대다수 나라를 제외한 극소수 제국주의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레닌은 한 줌도 안 되는 열강들이 수백 개 나머지 나라, 민족들, 수십억 식민지ㆍ반식민지를 억압하고 지배하며 금융적으로 교살하는 체제를 제국주의 체제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피라미드론자들은 이러한 정식이 레닌 시대에는 맞았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대다수 나라들이 독점을 형성했기 때문에 낡은 정식이라고 주장한다. 한 줌도 안 되는 제국주의 열강이라는 레닌의 정식은 지금은 맞지 않고 대다수 나라가 제국주의이며 이들 나라들이 제국주의 위상을 가지고 위계질서에 따라 제국주의 피라미드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 줌도 안 되는 제국주의 열강들을 부정하며 동시에 이들 나라들이 전 세계 다른 나라, 민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규정도 반대한다.
한 줌도 안 되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약소국, 식민지ㆍ반식민지 나라와 민족에 대한 지배와 착취 대신에 이들은 독점을 형성한 전 세계 제국주의 나라들의 전 세계 인민에 대한 공동착취가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 자본가들이 전 세계 인민을 공동착취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는 식민지의 지주들도 식민지 근로인민을 착취하는 공동착취자였다는 것을 볼 때, 식민지 약소국 지배와 민족억압이라는 현실을 빼고 이를 논하는 것은 제국주의 지배의 가장 중대한 현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레닌은 제국주의 시대에 제국주의의 병합과 강권에 의해 민족자주와 자결이 침해당한다고 제국주의 현실을 고발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민족억압과 민족자주의 침해가 빠져 있다.
지배하고 억압하는 제국주의 국가는 있지만 지배 당하고 억압 당하는 (신)식민지 국가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 제국주의는 (신)식민지배가 사라지고 제국주의와 현지권력의 전 세계 인민에 대한 공동착취로 변하였는가?
이현숙은 “구식민지 시대에는 제국주의가 직접 통치했다. 신식민지시대인 최근에는 억압을 현지 권력이 대행해준다.”라고 주장한다.
구 식민지 시대에는 제국주의가 총독부 같은 기관을 두고 식민지배를 했다. 그러나 신식민지 시대에는 현지권력이 제국주의 지배를 대행해주는 것이 신식민지론의 핵심이다. 그런데 여기서 신식민지 현지권력은 독립적인 국가의 현지권력이 해외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리해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제국주의가 현지 권력을 내세워서 형식적으로는 독립적 권력으로 행세하지만 실제로 현지권력의 제국주의 지배를 대행하는 신식민지 괴뢰 정부를 의미하는 것이다. 식민지 지배의 시대에도 지주나 괴뢰 정치인, 반민족적 지식인들을 내세워 제국주의 식민통치를 효과적으로 하려 했다.
이러한 현대 제국주의의 신식민주의란 무엇인가?
신식민주의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주의가 이른바 전반적 위기의 제3세계에 있어서 식민지체제의 붕괴 위기에 즈음하여 반식민지를 중심으로 식민지체제를 재편성하고 식민지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식민지 지배체제의 총체이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써 사용되는 식민지지배 및 착취의 새로운 방법이 신식민주의 정책 또는 정책 형태로서의 신식민주의이다. 그런데 그것은 구식민주의 정책과 절대적으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며 후자도 지배체제로서의 신식민주의에 들어간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정의로부터 신식민주의는 제국주의 전체의 약화의 표현이며, 사멸해가는 식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신식민지도 식민지배의 한 형태다. 보다 고도화 되고 세련된 식민통치다. 오늘날 미국이 주도하는 신식민지배는 미국 일극 패권의 약화와 다극시대의 등장으로 그 사멸해가는 식민주의로서의 성격이 보다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신식민 지배체제는 어떻게 하여 형성되었는가?
사회주의세계체제가 확립, 발전하고 국제적 힘관계가 사회주의에 유리하게 된 것을 배경으로 하여 전후 특히 1950년대 후반에 급속히 발전한 민족해방운동이 아시아ㆍ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3대륙 전역에 걸쳐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붕괴시켜가자, 제국주의가 이제 무력으로는 이를 제압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정세가 그것이다…
사회주의의 확립과 발전, 간단히 말하면 민족해방운동에 의한 신민지 체제의 위기, 제국주의의 강화 및 모순의 격화라는 국제적 관계가 신식민주의를 필연화시켰던 것이다.(신식민주의론, 콜린 레이스 외 지음, 신식민주의에 관한 이론적 문제, 하부 하리호에土生張穗, 도서출판 한겨레)
여기에 식민시대에서 신식민지배로의 이동은 영국 등 기존 식민지배국이 주도하는 시대에서 미국 수괴가 주도한 신식민지배 교체기에 나타났다. 미국은 기존 식민지배 제국주의 권력의 패권을 무너뜨리고 신식민 지배로 자신의 패권을 완성시켰다.
“한국과 같은 정치적으로는 약소국이 미국, 인도 같은 강대국에 투자하여, 근로인민을 착취한다. 즉 그들 국가의 인민에 대해 제국주의가 된다.”(이현숙, 같은 글)
한국이 인도에 자본수출을 했으니 제국주의라는 게 이현숙의 논리인데 그렇게 되면 한국이 미국과 인도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가 된다. 그러면 미국과 인도는 한국 제국주의 모국에 의해 지배당하고 예속당하는 신식민 국가가 된다. 제국주의의 약소국과 민족에 대한 억압과 지배가 제국주의의 본질적 성격이다. 그러나 제국주의를 경제적 기초인 독점의 형성 여부로만 경제주의적으로 규정하여 지구상 대다수 나라가 제국주의고 각 나라들은 제국주의로 서로 관계를 맺는다고 보니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민족과 나라 규정이 빠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현숙은 “지배와 종속”을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계 총노동을 세계 총자본이 착취하는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 미국, 중국, 독일, 일본 등 제국주의 강대국이 최상층을 차지하고 지배한다. 국가별로 조직된 독점자본가집단들 사이의 지배질서(지배와 종속), 그리고 미제의 폭력이 제국주의 세계질서, 결합된 세계 총자본의 운동을 유지하는 결정적 힘이다, 당연히 가장 커다란 부가 상층부에 돌아간다. 이러한 “제국주의 사슬”, 혹은 “제국주의 피라미드”에서, 한국 등등의 작은 제국주의 강도(한국의 독점자본가집단)는 거대 제국주의 강도(미국의 독점자본가집단)에게 상납하며 생존하게 된다.
이처럼 이현숙이 “지배와 종속”을 말한다 하더라도 이들은 제국주의 대 (신)식민지로서의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레닌에게 이는 제국주의 각국이 식민지ㆍ반식민지에서 나온 초과이윤을 두고 힘에 따라 공동 전리품을 나눠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제국주의 강도들이 전리품을 나눠가지는 것을 지배ㆍ종속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는 자신의 터무니없는 논리를 정당화 하기 위한 언어유희에 불과하다.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압도적 다수의 나라, 민족에 대한 지배와 억압이 빠진 제국주의론은 제국주의론이 아니다. 모두가 제국주의라는 논리는 누구도 제국주의가 아니라는 말과 같다.
이현숙은 한국이 미국과 인도에 자본수출 했으니 한국이 이들 나라들에 대해 제국주의라고 해야 하는데 그것이 말이 안 되니 그들 나라의 인민에 대해 제국주의고 그들 나라는 한국의 착취를 돕는 현지권력은 공동착취자라고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다.
이로써 이현숙에게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지배를 돕는 (신)식민지 현지협력자(현지권력)가 공동으로 세계 인민을 공동착취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이현숙은 사실상 제국주의의 지배 대상인 식민지를 인정하지 않고 제국주의 상호 간의 관계로 보고 있으니 이현숙에게 현대 제국주의 체제는 제국주의 국가들 서로가 협력자로 전 세계 인민을 공동착취하는 체제다. 마치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을 연상시키는 비제국주의론이다.
제국주의 침략성, 반동성을 은폐하여 어떻게 제국주의에 봉사하는가?
독점은 제국주의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아니다. 독점이 제국주의의 경제적 기초지만 독점만으로 제국주의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독점을 기초로 다른 나라, 민족을 침략, 지배, 경제적으로 약탈하는 총체적 성격을 봐야 한다. 왜냐하면 제국주의는 독점을 경제적 기초로 하지만 그것을 기초로 형성된 상부구조로서의 국가의 성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는 식민지 혹은 신식민지라는 대외 지배관계의 총체로써 성립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바로 미국을 수괴로 한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현대 제국주의 지배체제라는 현실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과학적 개념이기도 하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경제주의자들을 비난하면서 이들이 “경제적 토대 위에 상부구조가 위치한다”는 맑스주의의 사적유물론의 중심 테제를 “정치는 언제나 경제를 충실히 쫓아가는 것이다”라고 왜곡했는데 제국주의 경제주의자들의 인식체계도 러시아의 경제주의자들의 인식을 충실히 쫓아가고 있다.
이현숙은 “자본주의적 착취는 ‘경제외적 강제’가 없다. 경제적 방식 자체에 의해서, 외국의 근로인민을 착취하는 것(제국주의의 본질)이 가능하다. 국가는 ‘재생산의 일반적 조건(사유재산 보호)’을 지켜준다. 따라서 이 부분을 현지 권력과 결탁하여, 이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현숙의 말대로 과연 자본주의적 착취는 경제외적 강제가 없이 이루어지는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법률적으로 상호평등한 관계에서 자유계약으로 노동력 계약이 이뤄지고 생산이 이뤄지지만 이미 여기에도 노동자들은 노동력을 판매하지 않으면 굶주릴 수밖에 없기에 외형적인 계약도 실은 강제적 요인을 담고 있다. 더욱이 자본주의 창출 과정에서 자본과 권력이 농민을 토지로부터 축출할 때나 아프리카 노예 노동력을 확보할 때나 해외에서 원료를 수탈하고 값싼 식민지 노동력을 확보할 때나 어마어마한 폭력과 학살이 수반되었다. 자본이 피와 오물을 온 몸에 뒤집어 쓰고 등장하였다는 맑스의 말은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 국가권력은 폭력적으로 노동악법을 도입하고 노동자 파업을 분쇄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동원하고 정보기관을 동원한 감시나 협박으로, 민사상의 손배ㆍ가압류나 투옥 등으로, 언론과 협력하여 악랄하고 교활한 이데올로기 선전 등으로 자본의 원활한 경제적 착취를 보완하는 폭력의 집행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제국주의가 자행하는 침략과 학살, 전쟁은 극단적으로 파괴적ㆍ폭력적이고 야만적이다.
“자본주의적 착취는 ‘경제외적 강제’가 없다.”는 이현숙의 논리는 미제를 수괴로 한 현대제국주의 체제의 침략성, 약탈성, 반동성을 은폐ㆍ미화하는 세련되고 악랄한 제국주의 변호론이다.
과연 미제가 약소 국가와 민족에 대한 침략과 학살, 다른 나라의 자결권에 대한 난폭한 침해 없이 경제적 방식으로만 착취하는가?
미국의 이스라엘 시오니스트 학살자들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지원과 팔레스타인 지원 국가들인 레바논, 예멘, 이란에 대한 공세, 심지어 미국의 악랄한 프로파간다까지 동원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두고도 경제적 방식으로만 제국주의 지배가 이뤄진다고 할 수 있는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야만적 민족억압과 대량학살이 단순하게 경제적 착취로 이뤄진다고 말할 수 있는가?
21세기에는 다른 나라, 민족에 대한 학살만행과 침략이 없이 경제적 착취만으로 제국주의 지배가 이뤄지는 게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과연 제국주의 “국가는 ‘재생산의 일반적 조건(사유재산 보호)’을 지켜”주는 야경국가로서 남아 있는가?
미제국주의가 대리인들을 내세워 반러 침략 전쟁을 일으키고 평화협정을 가로막고 장기간 전쟁으로 무고한 우크라이나 인민들에게 참혹한 고통을 가져온 현실은 무언가?
미국이 베네수엘라 내정에 개입하여 레짐체인지(정권교체)를 시도한 현실을 두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미국이 이라크, 리비아에 가한 폭격과 야만적 제재, 그리고 최근에는 시리아 아싸드 정권을 타도하여 시리아에서 1천여 명에 가까운 시리아인들이 무참하게 학살 당하는 현실을 두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미제가 일제를 군국주의로 부활시키고 한국 윤석열 정권을 꼬붕삼아 대북 제재와 침략책동을 가하고 아시아판 나토로 동북아에서 반중ㆍ반러ㆍ반북의 전쟁책동을 자행하는 모습을 보고도 그리 말할 수 있는가?
미국이 사회주의 쿠바를 교살하기 위해 악랄한 제재를 보고도 그리 말할 수 있는가?
미국과 나토, 재무장한 일제가 전 세계에서 자행하는 침략과 제재, 금융교살, 심지어 전 세계 곳곳에 NED(미국민주주의 진흥재단)나 USAID(국제개발처) 등으로 문화냉전을 조장하고 정권교체를 기도하는 여기 지면에 다 말할 수 없는 무수한 악행들을 보고도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가?
중ㆍ러 제국주의 양비론으로 미제를 위시한 서방제국주의의 침략성, 약탈성, 반동성을 은폐하던 이들이 이번에는 한국 제국주의론을 들고 나와 이 땅에서 미제를 축출하는 정치적 과제를 혼돈ㆍ혼란케 하고 있다.
1960년 4월 서아프리카 가니 공화국에서 열린 제2차 아시아ㆍ아프리카 인민연대회의(코나클리 회의) 자료를 보면 신식민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5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그 민족이 전적으로 독립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1) 법령이 국민의 완전한 동의를 얻지 않았는데도 국민의 이름으로 제정되었을 때.
(2) 외국군대가 독립국으로 일컬어지는 나라의 영토에 주둔하거나 혹은 군사기지를 두고 있을 때.
(3) 어떤 나라가 식민주의 국가가 주도하는 공동체의 일워이거나 혹은 제국주의 국가와의 군사동맹에 참가하고 있을 때.
(4) 어떤 국민이 정치ㆍ군사ㆍ경제사회의 모든 계획을 실행함에 있어서 민족주권에 구비된 모든 기능을 스스로의 재량으로 완전히 행사하지 못할 때.
(5) 세계인권선언에서 정한 개인의 기본적 자유가 존중되고 있지 않을 때.(같은 책)
방대한 주한미군 주둔, 일방적인 주둔비 인상과 사드배치, 소파 같은 불평등한 협정, 군사주권의 결여, 미국이 설정한 규칙 기반 질서에 입각한 한미동맹과 대북전쟁 책동, 조중러에 대항하는 한미일 군사동맹, 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의 존재…
마치 위 선언이 한국을 염두에 두고 이 기준을 정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한국의 상황에 정확하게 일치한다.
점령군으로 이 땅에 들어와 민중의 해방 열망을 짓밟고 분단을 야기ㆍ 고착화하고 대북적대 정책으로 일관하며 전쟁책동을 하는 현실은 변치 않고 남아 있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정치적ㆍ경제적ㆍ군사적ㆍ문화적ㆍ정신적 지배와 노예화 상태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수다한 외형적 변화와 고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현실이다.
윤석열의 우크라이나 무기 및 재정지원과 파병 기도는 한국의 제국주의 면모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니다. 반대로 철두철미 미국에 겁박당해 있는 정치적 현실을 보여준다. 이른바 ‘동맹국’ 권력 심부를 도청하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강박하려 하고 미국도 도청 사실을 인정하였는데도 한사코 도청 사실을 부인하고 도청 범죄자들을 두둔하는 장면을 보노라면, 이 나라 권력자들이 얼마나 미제를 경배하며 가스라이팅 당해 노예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바이든의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산업 육성법에 이어 트럼프 정권의 관세 폭탄 협박과 미군 주둔비 대폭 인상 압박 예고는 깡패에 사로잡혀 겁먹은 약탈ㆍ패권 ‘동맹’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포천 민간인 지역 폭격 사건은 ‘자유의 방패’가 자유도 방어도 아닌 국민의 안녕과 생명을 위협하고 대북 적대ㆍ침략책동으로 공격적이고 침략적인지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제국주의 피라미드론은 여전히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동유럽과 아시아와 남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서 미제와 나토 제국주의, 군국주의 일본의 재무장화에 맞서 민족자주를 위해 투쟁하는 나라들과 사회주의의 자주적 발전을 막기 위해 투쟁하는 나라들의 투쟁을 무시한다. 심지어 이들 대다수 나라들이 제국주의 국가들로 자국과 전 세계 노동자 인민에 대한 공동착취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들 나라들, 민족들의 투쟁이 그저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다극화된 제국주의에 불과하다고 중상모략하고 있기조차 하다.
이들의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과 점입가경의 한국 제국주의론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왜곡하고 미제를 수괴로 한 제국주의 지배체제의 현실을 호도하는 인식상의 심각한 오류일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는 해방 이후 점령군으로 이 땅에 들어와 있는 미국을 축출하는 반미과제를 회피하게 만든다.
오늘날 협소한 경제주의와 본위주의를 딛고 일어나 반미투쟁으로 떨쳐 일어나 이 땅에서 전쟁의 참화를 막고 미제국주의를 축출해야 하는 막중한 정치적 과제를 가로막는다.
한국 자본이 해외에 나가서 현지 노동자들을 악랄하게 착취하고 국내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억압하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막는 전자본주의적 착취와 저임금ㆍ무권리로 자본주의적으로 이중ㆍ삼중의 중첩된 탄압을 가하는 것을 노동자 국제주의 정신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한 국제주의와 외세 제국주의를 축출하고 분단모순을 척결하며 그것을 근거로 국가보안법을 온존케하는 이 사회의 민족ㆍ민주적 과제를 해결하는 정치적 과제와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대립되기는커녕 이 땅의 질곡과 모순을 뚫고 이 사회를 진보적으로 발전시키고 변혁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견지해야할 노동자들의 정신이고 민중의 정신이다.
사진 출처: 뉴스Q
이 기사를 총 71번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