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투쟁을 완수해야 하는가?(끝나지 않은 투쟁! 내란 반대 투쟁 중간 평가와 전망 토론 발표문1)
조윤재(회원)
토론의 배경
12월 3일 초헌적인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이후 급속도로 탄핵안이 상정, 204표로 가결 처리 되었다. 민주당이 탄핵안을 강력하게 추동하던 초기 정국에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 격차가 20~25%p에 가까워지는 등 민심이 압도적으로 탄핵에 찬성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론조사가 보수 과표집이라는 말이 있다 하더라도 보수 세력의 결집이 촉진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최근의 여론조사 추세는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비해 약소하게 앞서있으며 부정선거론 역시 40% 가까이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추세에 대해 유수 학자들이 보수 과표집론을 주장하고 있으나 초기에 비해 극우 파쇼 세력이 강력한 힘을 얻으며 결집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극우 파쇼 세력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결집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사회과학적으로 엄밀한 토론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주되게 지적되는 요인은 탄핵 추동 세력의 형해화이다. 길거리에서 투쟁을 이어나가는 비상행동 측이 정치적으로 일관되지 못하고, 다원화된 요구만을 내세우며 각 계층의 항의를 국민적인 수준의 공감대를 얻는데에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의 공감대를 많이 얻지는 못하더라도 과감하게 진보적인 요구들을 내세워야 함에도 이런 것도 하지 못하면서 진보적이지도, 대중적이지도 않은 투쟁만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길거리에서의 항쟁이 어느덧 2달에 이르고 있는 현 시점에서, 비상행동과 시민 사회의 지지부진한 투쟁 방법론에 대해 성찰하고 어떠한 방향으로 투쟁을 전개해야하는지 고민해야하는 이유이다.
토론 쟁점과 논제
토론 목적은 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각 계층의 항의를 어떻게 수렴하여 통일된 요구로 제시할 것인지에 대해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자 함이다. 이에 대해 쟁점은 몇가지로 제시될 수 있다.
저항성이 탈각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바람직한가?
전통적으로 사회운동이라고 하면 강력한 투쟁성을 띄며, 국가권력과 충돌하는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다. 과거 쌍용차 투쟁, 세종호텔 투쟁 등은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번 촛불 시위에서는 그러한 저항성을 찾기 어렵다. 민중 가요보다는 대중 가요가 더 많이 불리우고 시위의 자발성이 강조되며 저항으로서의 시위가 아닌 축제로서의 시위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들려온다.
박근혜 퇴진 때와 비슷한 양상인데, 박근혜 퇴진 이후 급격하게 저항성이 사그라들고 민주당이 미지근한 개혁을 추진했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저항성의 탈각은 장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면, 이번 시위는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대중적으로 나아가 최대한 많은 각 계층이 시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야한다는 일각에서의 주장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저항성을 탈각시키고, 대중성을 얻고자 하는 이러한 시위의 방향성은 옳은가? 만약 둘다 그르다면, 우리는 어떻게 저항성과 대중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가?
어떻게 각 계층의 개별적인 요구들을 국민적 생활의 측면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가?
변혁의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각 계층의 개별적인 요구에 접근하는 것이다. 변혁성은 좌파의 방법론처럼 단순히 “사회주의”나 “좌파” 등의 용어를 남발하는 것만으로는 견지될 수 없으며, 레닌도 이러한 과격한 혁명주의를 비판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나 좌파를 공공연히 선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어떻게 이를 각 부문에서의 운동과 결합, 각 계층의 개별적 요구들을 해소할 수 있는지에 관함이다.
헤겔이 말했듯, 진리는 전체이고 이는 사회 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개별적인 요구는 개별적인 것에 머물면 의미가 없고 전체적인 것도 전체적인 것에만 머물면 의미가 없다.
개별자가 전체 하에서 의미를 얻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여성운동을 여성해방론으로, 통일운동을 민족해방론으로, 경제투쟁을 노동해방론 등으로 격상시킬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것은 자율성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전위당이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점은 한국에는 이러한 각 계층의 요구를 수렴시켜 국민적인 의지로 발현시킬만한 정치정당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진보당이 존재하지만, 인지도와 지지도 모두 미약하며 변혁적인 사회주의 정당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각 계층의 개별적 요구들을 국민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 그것에 맥락을 부여할 수 있을까?
어떻게 광장에서의 변혁성을 제도권의 정치로 편입시킬 수 있는가?
좌파와 정의당 측 일각에서는 독자적인 진보 운동만으로 변혁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정의당과 노동당의 지지율은 집계되지도 않으며 특히 노동당의 경우 0.09%에 불과한 처참한 득표율을 지난 총선에 기록하며 대중추수 능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음을 드러냈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될 것은 매우 확실해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인 통일전선의 전술로 돌아가 민주당과 연합하며, 차기 정권을 연합정권의 형태로 끌고가 제도권 자체를 변혁성에 묶어둘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어찌되었든 현실적으로 다음 5년의 민주 혁명 과정은 민주당에 의해 주도될 것이며, 이를 감안하면 민주당과의 계급동맹은 필수적인 것처럼 보인다. 반면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지속된 우경화를 지적한다.
이재명의 기본소득 폐지, 지역화폐 폐지, 한일동맹 긍정 등은 이재명이 광장과의 연대가 아닌 지배계급에 아부함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변혁 세력은 물론 노급 세력 자체가 세력이 크게 작아졌다. 진보당의 지지세는 여전히 미약하며 민주노총도 국민회의와 타 정파의 갈등으로 내부적으로 완전히 와해된 상태다. 그렇기에 성급하게 계급동맹과 공동정권을 탄생시킬 시, 이재명의 우경화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가능성도 높다. 만약 그렇다면, 변혁성을 제도권에 결합시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주한미군 축소, 국보법 폐지 등의 자주적 의제들은 어떻게 대두되어야하는가?
자주성은 민족의 생명이다. 자유 사상을 억압하는 국보법을 폐지하고 내란을 사실상 방조한 미국까지 타도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투쟁의 일부가 되어야한다. 그러나 국민 여론을 의식할 수 밖에 없다.
2024년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52%의 국민이 미국이 친구라고 답했으며, 51%는 자유롭다고 답했다. 반면 적이라는 여론은 3%, 억압적이라는 여론은 19%에 그쳐 대중이 전혀 반미 자주 운동을 지지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무작정 대중추수주의만 하고 반미운동을 포기할 수도 없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동맹이 아니다. 오히려 트럼프가 수년간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했음을 감안하면 트럼프가 대중포위망을 위해서든 자신의 음모론을 위해서든 윤석열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친미주의에 매몰된 한국은 엄청난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즉, 객관 정세는 미국이 민주주의의 적임을 가리키나, 대중적인 인식은 그 정 반대인 모순적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 상황에서 반미 자주 운동을 어떻게 전면화하며, 어떻게 대중에게 이를 설득할 수 있는가?
결론 및 토론의 방향성
이번 토론은 단순한 자주파의 방법론 대 좌파의 방법론을 비교하며 자주파 방법론과 맑스레닌주의 통전의 우월함을 선전하는 데에만 목적이 있지 않다. 좌파의 방법론은 모험적이고 전투적 조합주의에 기대고 있지만 한편으로 자주파 역시 대중의 자발성에 과한 기대를 하고 있으며 반미 자주 의제를 전면화시키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지배 계급에 아부하는 민주당의 한계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점들을 객관적으로 조명하며,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자발적인 시위를 조직적인 시위로, 대중적인 시위를 변혁적인 시위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 그것을 매개하는 중간적인 요소들은 무엇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방향성을 갖고 토론해보고자 한다.
* 사진 출처: [노동과세계] 사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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