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 서거 15주년: 미국 제국주의를 폭로한 역사학자 하워드 진을 추모하며

김남기( <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 역사의 진실>) 저자

미국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Howard Zinn)이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지났다. 하워드 진은 생전에 미국의 식민주의 및 제국주의적 행보를 폭로하고, 또 그러한 억압 체제에 맞서 저항을 했던 학자로 유명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언어학자인 노엄 촘스키(Noam Chomsky)하고도 친구 사이이며, 흑인인권운동과 베트남 전쟁 반전운동을 전개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하워드 진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저항을 멈추지 않았고, 또 미국 제국주의를 학술적으로 폭로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인물이다.

1. 하워드 진의 저서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와 <미국 민중사>

내가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Howard Zinn)을 알게 된 것은 아마 2018년 초였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우연히 하워드 진이 쓴 저서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A People’s History of American Empire)>를 선물로 받게 됐고, 그 책을 완독했다.

사실 그 이전부터 미국이 제국주의적 행보를 보였다는 사실에 대해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 책을 읽으며 미국의 실체를 보다 자세히 알게 됐다.

책은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시작한 이라크 침공을 비판하기 위해 강단에 오른 하워드 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했다. 그러면서 19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까지를 다룬다.

하워드 진의 책을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어떠한 행위를 했는지 아주 상세히 나온다.

예를 들어, 1991년 걸프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이라크군을 궤멸시키고, 이후 사담 후세인 정부에게 제재를 가하여 최소 100만 명 이상의 이라크인을 아사하게 만들었다. 이 중 50만 명이 어린이와 유아였는데, 그 당시 국무장관이던 매들린 울부라이트(Madeleine Albright)는 방송에 나와 “50만 명 이상의 어린이와 유아가 죽은 것은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1980년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미사일 몇기만 팔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란-콘트라 사건 당시 2,000기 이상 팔았으며 팔지 않았다고 했던 발언이 거짓말이었다. 즉, 진의 만화 미국사 책은 이러한 사실들을 폭로한다.

이 책은 이후 2022년 봄에 개정판을 다시 읽었으며, 관련 서평은 노동자정치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다. 관련 서평이 궁금하면 아래의 링크를 통해 접속하면 된다.

https://mlkorea.org/v3/?p=11618

또한, 나는 하워드 진의 대표적인 저서인 <미국 민중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읽은 적이 있다. 2008년에 출간된 이 책은 국내에서 2권에 걸쳐 출판됐고, 두 권을 합치면 총 1,200페이지라는 적잖은 분량을 자랑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수백 년의 미국 역사를 매우 비판적인 시각에서 총괄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신대륙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사실은 현지 원주민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않았다. 침략했다!

그 외에도 내가 긍정적으로 알고 있던 미국의 독립전쟁이나 남북전쟁을 또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소위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알려진 조지 워싱턴이나 토마스 제퍼슨 등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진의 진단은 매우 신선하기까지 했다. 그 외에도 미국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시위를 총기로 진압한 러들로 학살이나 한국에서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으로 미화되는 더글라스 맥아더가 보너스 군대 진압으로 자국 참전용사 및 민간인 수십 명을 죽이고 부상시켰다는 얘기도 절대 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나에게 “역사라는 학문은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줬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나 미국을 비판적으로 보고 분석할 수 있게 사실상의 근간을 잡아 준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내 SNS 계정에 미국 역사를 정리해서 연재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글을 바탕으로 책을 한권 노정협에서 출간했다. 비록 부끄럽지만 내가 쓴 책 <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 역사의 진실>을 쓰는데 큰 동기부여가 된 책이 <미국 민중사>였다.

물론 그렇다 해서 하워드 진의 모든 관점을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워드 진은 분명 훌륭한 미국의 저항적인 역사학자고, 그가 출간한 책은 진보적 학자나 운동가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소련이나 동유럽 관련 관점들은 다소 무정부주의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인 시각들도 적잖이 있다. 예를 들어, 하워드 진은 미국이나 영국 그리고 소련 등을 똑같은 패권 국가 혹은 제국주의 국가로 잘못 규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반파시즘 항전에서 세운 공로에 대해 다소 언급하지 않거나 외면한다. 그리고 냉전에서의 동유럽 국가에 대한 분석도 다소 자유주의 내지는 무정부주의적 시각으로 소련이나 동유럽에 대해 부정적으로 접근한다.

차라리 이 부분은 하워드 진이 서거하고 난 이후 나온 올리버 스톤(Oliver Stone)과 피터 커즈닉(Peter Kuznick)의 책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The Untold History of the United States)>의 관점이 더 낫다.

다큐멘터리도 있으니 보고 싶은 사람은 구글에 검색해서 찾아서 보면 된다.​

2. 하워드 진의 생애

하워드 진의 생애를 간략히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의 삶을 통해 분명 배울 점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하워드 진은 1922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둘 다 이민자였으며, 아들을 공부시키고자 뉴욕 포스트에 돈을 보내 찰스 디킨스 전집 스무 권을 진에게 주었을 정도로 교육에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청년기 시절 하워드 진은 항구 노동자로 근무하며 좌파성향의 친구들과 관계를 가졌고, 마르크스 서적들을 접했다. 1941년 진주만 기습 공격 이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하워드 진은 1943년부터 미군에서 폭격수로 근무했다. 이 시기부터 하워드 진은 진보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하워드 진 본인의 폭로에 따르면, 영국으로 가는 배에서 장교로서 병사들의 식사시간 동안 질서를 유지하고, 감독하는 일을 맡았는데, 어느날은 흑인과 백인의 식사시간표가 잘못되어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고, 어느 백인 병사가 그에게 흑인을 내보내게 해달라고 요구하자, 이 말에 분노하여 흑인을 쫓아줄 것을 요구한 병사에게 먼저 나가라고 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 있으며 B-17 폭격기 선미사격수를 만나 다소 소련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워드 진은 이후 저서에서 “소련이 준 환멸이 미국이 준 환멸보다는 크지 않았다.”고 썼다. 1945년 당시 하워드 진은 B-17 폭격기를 타고 프랑스 라로셸을 폭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는데, 자신이 참가한 이 폭격 작전이 사실은 프랑스 민간인들을 학살한 것이라는 것에 큰 죄책감을 느꼈다. 그 당시 유럽에서 최초로 네이팜 폭탄이 사용되었는데, 진이 수행한 폭격 작전으로 최소 1,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그로 인해 하워드 진은 그로 인한 죄책감에 평생 시달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하워드 진은 미국으로 돌아와 대학에서 역사학 연구를 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6년 스펠만 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했으며, 1959년 하워드 진은 스펠만 대학교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사회적 변화에 관련된 몇 개의 실제적 프로젝트를 실시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마틴 루터 킹 등이 주도하는 흑인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이 때문에 하워드 진은 학교 당국에 의해 1963년 해고 당했다. 그 당시 하워드 진은 그 학교의 종신 교수직을 맏고 있었다. 그렇게 교수직을 박탈당했음에도 하워드 진은 사회운동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을 실천에 옮기며 민권운동을 전개했다.

1960년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자 하워드 진은 베트남 전쟁 반전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64년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베트남을 침략했을 때부터 하워드 진은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다.

일본에서 미국의 베트남 침략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 중인 하워드 진

1967년 당시에는 미국이 왜 베트남에서 철수해야하는 지를 논리적으로 쓴 저서 <베트남 철군의 논리(Vietnam: The Logic of Withdrawal)>를 집필했으며, 1968년 구정 대공세 이후에는 다니엘 베리건 같은 평화활동가와 함께 북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방문하여 북베트남 정부측과 협상하기도 했다. 북베트남 정부의 팜반동 총리와도 이때 만나 협상했다고 한다.

또한, 진은 대니얼 엘스버그의 펜타곤 페이퍼 출간을 도왔다. 1971년 봄에 전쟁에 반대하는 참전 용사들과 수십만의 시위자들이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몰려들었을 당시, 놈 촘스키와 대니얼 엘스버그 그리고 마릴린 영과 더불어 베트남 전쟁 반전시위에 적극 참가했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았고 체포되기도 했었다.

이후에도 하워드 진은 여러 진보운동에 참여했으며, 1980년대 앞서 언급한 <미국 민중사>를 집필했다.

이 책은 20년 동안 100만 부가 팔릴 정도로 베스트 셀러가 됐다. 심지어 미국의 시사 만화인 심슨 가족들에도 이 책이 나온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다.

냉전이 끝난 이후에도 하워드 진은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진보적으로 글을 쓰는 것을 절대 내려놓지 않았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거짓 명분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에 대해 하워드 진은 항상 비판적이었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반전운동에도 참여했다. 또한, 2008년 미국 최초로 당선된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진은 오바마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그러던 2010년 1월 27일 8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고 그의 묘비는 보스턴 근처의 뉴턴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3. 하워드 진을 추모하며

2018년 말 나는 군 전역 이후 미국 여행을 하며 하워드 진의 묘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전역 몇 개월 전부터 하워드 진의 묘를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방문하는 길은 다소 어려웠다. 위치를 찾는게 쉽지 않았다. 보스턴 중심부에서 차를 타고 가면 한 30분 정도 걸린다. 버스로는 한 5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묘비를 방문한 나는 그 자리에서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며 그를 기렸다. 비록 아무도 없었지만,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나의 첫 미국여행에서 그의 묘비를 방문한 것은 크나큰 영광이었다.

아래 링크

(https://www.facebook.com/100001070470657/videos/1938619752850355)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pfbid02sG6ndPXBChcqnboPDG2oCJbGEDmHX4Bxz6UoDDpR6yR7jt5bKChJe3MvQWJkajD7l&id=100001070470657)

첫 번째 미국여행을 갔다오고 나서 수 개월이 지난 2019년 여름부터 미국 역사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SNS에 연재했다. 그리고 나서 2021년 아프가니스탄이 패망할 즈음에 이 책을 노정협의 도움을 받아 출간했다. 지난 202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미국 내의 평화운동과의 연대를 위해 미국을 다시 방문했지만, 들릴 기회는 없었다. 만약 다시 들린다면, 이곳을 방문하여 내가 2021년에 출간한 <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 역사의 진실>과 이후 쓰게 될(만약 완성하게 된다면) 또 다른 미국역사 책을 하워드 진에게 바치고 싶다.

하워드 진이 서거한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202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의도적으로 부추겼다. 그리고 2023년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부추겨, 학살 국가 이스라엘을 지원했다. 또한, 예맨의 후티를 소탕한다며 중동에서 또 다른 전쟁을 수행했다. 2024년 대선에서 미국인들은 전쟁을 부추긴 민주당 대신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를 투표했다.

물론 트럼프는 북한과의 대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즉각 종전을 얘기했다. 그러나 아직도 갈길이 멀며, 미제국의 몰락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나는 간혹 작금의 현실을 보며 “하워드 진이라면 이런 국제정세 속에서 어떤 얘기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거기다 현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는 2020년 당시 하워드 진의 역사관을 비난하는 연설을 한 적이 있다. 여전히 진보세력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워드 진은 자신의 삶을 투쟁으로 보냈다. 그런 점에서 한국 민주화 운동가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리영희 선생과도 다소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하워드 진이 가진 미국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풍부한 시각에 바탕을 둔 역사관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각성을 줄 것이다. 하워드 진을 추모하며 미국에 대한 그의 비판정신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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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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