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좌파 타령’을 비판함
이범주
이른바 ‘종북좌파 반체제 세력’을 응징하겠다는 명분으로 尹이 비상계엄을 선언했다. 그리고 나서는 보다시피 尹 탄핵정국으로 이어져 벌집을 쑤셔 놓은 듯 나라에 난리가 났다.
‘종북 좌파세력’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건, 옳고 그름을 떠나, 국가보안법이 헌법 이상의 권위를 갖고 군림하는 이 대한민국에서 광범하게 강제되어 공유된 가치다. 국힘당 뿐만이 아니다. 다소 완곡한 모양새를 취하긴 하지만 민주당도 그 지침에 충실하고 심지어 합리적 지식인, ‘깨시민’을 자처하는 이들 또한 얼마간 그 정도가 비슷하다. 모두 종북이라면 몸소리를 치는 것이다.
이 나라에 이른 바 ‘종북 좌파세력’에 대한 거부와 혐오는 매우 광범하게 유포되어 있는 걸로 보인다. 그래서 尹도 그걸 명분삼아 비상계엄을 발동한 것이다. 하지만 그 ‘종북 좌파세력’에 대한 거부와 혐오로 인해 이 나라에서 발생되는 문제적 현상들은 실로 엽기적이다. 어떤 기이한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 나라에 대한 미국의 난폭한 내정간섭, 노예적 동맹인 한미동맹, 80년 가까운 미군의 주둔, 상시적인 전쟁상태, 매년 미군에게 현금으로 지불하는 1조 수천억 원 규모의 방위비 분담금, 가파르게 증가하는 국방비 예산, 거액의 미제무기 수입, 러시아에 북한군이 파병되었다는 어불성설의 거짓말, 미국 편에 서서 중국과 러시아에 적대함으로써 이 나라 경제를 자해적으로 파탄시킨 것, 동족인 북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 사상 및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기본적 권리 구현 장애, 노동자들 기본권익의 침해, 이 나라 현대사의 은폐 및 왜곡…..등 열거 곤란한 숱한 병리적 현상들이 이 ‘종북 좌파세력’에 대한 적대와 거부로 합리화되어 왔다. 심지어 최근 들어서는 (한미동맹의 연장선에서의 실질적) 한일군사동맹까지도 ‘북의 위협에 대한 대응’의 명분으로 용인되는 형국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다종다양한 기이한 현상들을 용인하게 만들고, 여기 사는 이들을 부단히 불안하게 하며, 기본적 민주주의마저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그 ‘종북 좌파세력’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종북 좌파세력이 되는가. 종북 좌파세력이라는 이들은 어떤 주장을 해 왔는가.
– 기본적인 민주주의 구현도 불가능하게 하는 국가보안법 철폐하자고 하면 종북좌파세력이 된다.
– 언제까지 이렇게 분단되어 살 수는 없는 것이니 각자 체제의 상이함을 인정한 조건 위에서 남북 사이 적대관계 청산하고 평화롭게 공존, 공영하며 살자고 말하면 종북 좌파세력이 된다.
– 언제까지나 미국의 간섭받으며 살 수는 없다. 이제 좀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여기 사는 민초들 권익 선차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라 운영하자고 하면 역시 종북 좌파세력이 된다.
– 또한 이 나라가 이만큼이라도 성장, 발전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해 온 이 땅의 노동자, 농민들 정치적 권리와 경제적 이익을 우선 보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삼성 같은 재벌들 편 들어서는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면 역시 종북 좌파세력이 된다.
– 이젠 심지어 야당이 제 본분에 맞게 정부의 정책에 이견 제시하며 법으로 규정된 의회권력을 행사해 정부의 당초 예산안을 깎으려 하는 것도 종북 좌파세력으로 규정되게 되었다.
이렇게 하면 종북 좌파세력으로 되는데 이런 내용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과연 이야기해서는 안 될 불온한 것들인가. 오히려 이 나라가 지속적으로 번영, 발전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들은 아닌가.
말하자면 개인, 계급 더 나아가 나라 차원에서의 자주적, 정치적, 경제적 권리를 주장하면 즉시 ‘종북좌파 반체제세력’이라는 딱지가 이마빡에 떡하니 붙여지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권리주장 따위는 하지 말고 조용히, 죽은 듯 살라는 이야기 되겠다.
이리 말하는 나를 보며 애국심으로 격분할 사람 적지 않을 걸로 안다.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종북 좌파 딱지를 면하려면 다음과 같이 하면 된다.
– 아무리 부당하고 억울한 내용이라도 미국이 하라는 대로 복종하면 종북좌파 딱지를 면한다.
– 일터에서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찍소리 안 하고 시키는 대로 따르다가 회사가 해고하면 사람들과 절대 조직 같은 거 만들어 싸우지 않고 그냥 개인적으로 조용히 사라져 주면 종북좌파 딱지를 면한다.
– 정부와 언론이 말하는 것들을 전적으로 믿고 따름으로써 그들이 생각하라는 대로 생각하고, 하라는 대로 하면 종북좌파 딱지를 면한다. 예컨대 우크라이나로 무기 보내고 병력 파병해서 군사 초강대국 러시아와 적으로 되고, 경제적으로 적대관계로 되어 이 나라 기업들 최대 고객인 중국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라도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하면 역시 종북좌파 딱지를 면한다.
– 북에는 사는 자들은 모조리 쓸어 버려야 한다며 동족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고 만약 북과 전쟁이라도 날라치면 즉시 총이라도 들고 나가겠다는 결의를 보이면 종북좌파 딱지를 면한다.
.
.
.
그런데 이게 차마 할 짓이냐. 이 나라는 제 나라 민초들에게 차마 하지 못할 짓을 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만약 이런 따위의 것들이 바람직하고 좋으며 정당하다면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실패했을 리 없다. 그의 무리한 비상계엄 시도가 실패하여 내란혐의까지 뒤집어쓰고 탄핵위기에 처했다는 사실 자체가 ‘동족에 대한 증오’와 ‘미국에 대한 사대’에 기초한 ‘종북좌파 타령’이 정당성을 갖기 힘듦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이 나라 정체성의 핵심은 의연하게 ‘반공반북숭미친일’에 있다. 그 연장선에서 이른 바 종북좌파세력은 이 땅에서 척결해야 할 적으로 된다. 그런데 그 ‘반공반북숭미친일’로 일관했을 때 이 나라에 미래가 있을까. 깝깝한 노릇이다.
이 기사를 총 17번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