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용 선생의 <노동자 국제주의> 발표문에 대한 단상적 평가

순서가 바뀌어 한 강좌를 남겨두고 있지만 <노동자국제주의>를 주제로 열렸던 연속강좌들이 거의 끝났습니다.

이 강좌를 주최했던 대구 현대사상연구소 홍승용 선생이 마무리 격으로 기존 발표된 내용을 총화하는 발표를 했습니다.


이 발제문에 대해 약평을 해보면, 위 글은 지극히 원리론적 글이라 여겨집니다. 원리론적 글이기에 맑스주의 국가론의 원칙ㆍ원리에 대해 인식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 글에서는 우리사회 변혁의 과제를 노동자국가로 표현해 서술하고 있는데 이 부분조차도 원리론적입니다.

원리론이 원리ㆍ원칙을 바탕으로 하기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지만 원리론은 바로 그 때문에 근본적 한계를 가집니다.

구체성이 떨어지고 그리하여 실천적 과제가 모호해집니다.
왜 이 입장은 원칙적이지만 그렇게 돼버렸을까요?

홍선생은 위 발제문에서 “현실 사회주의가 해체됐다, 실패했다”는 표현을 자주 쓰고 이 전제 위에서 실패했지만 자본독재를 뚫고 노동자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위 평가는 반만 진실이고 반은 진실이 아닙니다. 쏘련을 비롯 동유럽 사회주의가 해체, 실패했다는 점에서는 진실이지만 해체되지 않고 힘든 시기를 뚫고 전진ㆍ발전하고 있는 사회주의 나라들에 대해 다루지 않거나 이들 나라들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과제들을 다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홍선생은 발제 뒷부분에 중국사회에 대해 다룹니다.
그러나 중국이 자본주의인지 사회주의인지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모호한 입장을 취합니다. 그러나 모호한 태도가 대개 그렇듯이 불분명한 입장으로 귀결됩니다.

중국이 다극화 현실에서 자본주의면 제국주의로 발전이 될 것이고 조화사회 등 사회주의를 발전시켜 승리하면 인류의 진보에 비약적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마치 카우츠키가 독점은 초독점을 낳고 이는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무정부성을 극복하게 된다고 했는데 논리를 극단으로 밀고나가 현실을 흐리는 논리극단주의와 비슷하게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사회성격을 자신의 중국사회 성격론에 따라 극단적 양방향으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실사구시로 접근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중국이 과연 미제나 나토제국주의, 일제 같은 나라들처럼 그동안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있습니까?
중국이 과연 제국주의처럼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개입한 적이 있습니까?

원리적으로 사회주의 국제주의의 이상적 원칙에 서서 보면 못마땅한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중국이 과거와 현재 보이는 모습에서 제국주의 면모는 어디에도 없고 대체로 평화애호적이고 진보적입니다.

게다가 팔레스타인 기구들을 단결시키고 이란과 이라크를 화해시키는 등 제국주의가 자행해온 끔찍한 분열과 분쟁을 조정하고 국제적 안정을 찾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제국주의성 운운하는 이들은 미제와 나토, 일제의 침략성, 야만성에 비춰볼 때 과학성은 고사하고 분별력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중국이 미래에는 제국주의가 되고 그러면 다극화는 영제에서 미제로의 제국주의 다극화로의 변화와 다를 바없다는 노사과연과 특히 채만수 소장의 태도는 현실을 실사구시로 보지 않고 카우츠키처럼 논리를 극단으로 몰아가 현실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제국주의의 두드러진 특성이 침략과 내정간섭임을 비춰볼 때 중국의 과거와 현재는 이러한 태도와 정반대입니다.

다극화는 미제와 서방제국주의 패권을 약화시키고 있는 주지의 현실입니다.

다극화에는 조선, 쿠바 같은 사회주의 나라들의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다극화에는 아프리카에서 보듯 식민지해방을 열망하는 나라들의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비롯 중동에서 미제에 맞서 싸운 나라들, 인민들의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남미의 나라들, 인민들, 아시아의 대다수 나라들, 인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글로벌사우스의 이해관계가 달려 있는 다극화와 과연 영제에서 미제로의 신식민패권으로의 전환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다극화에 대한 지나친 환상과 기대는 버려야 하겠지만 사회주의로 변혁에 다극화가 해가 되겠습니까?

대한민국의 노동자 인민들에게 다극화가 해가 되겠습니까? 다극화가 조러정상회담에서 보듯 미제가 추구하는 전쟁을 억지하는데 해가 되겠습니까?

중국의 제국주의 발전 가능성, 다극화의 신제국주의론은 따라서 카우츠키식 논리가 나은 초제국주의론 가상과 다를 바 없습니다.

위 발제문은 또 중국은 차치하고 조선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현실 사회주의를 해체, 패배했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분단사회에서 살고 이 사회에서 진보와 사회변혁을 추구하면서 북을 유령으로 취급하면 구체적인 전망이 나올 수 있습니까?

사회주의권 해체에도 살아남아 제국주의 포위 속에 생존, 발전하고 있는 북, 게다가 분단사회에서 같은 민족인 북에 대해 살펴보고 그리고 민족관계가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전환된 현실을 극복하지 않고, 그 걸림돌인 미제를 내버려두고서 남의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노동자국가를 열어갈 수 있겠습니까?

원리적인 사회주의관으로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도 없고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 기사를 총 30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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