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顚倒)된 인식을 하면 매사 대상을 거꾸로 본다
한겨레신문 7월 2일 그림판(권범철 기자)은 한미일 동맹의 현 주소를 포복절도하게, 촌철살인으로 폭로, 풍자하고 있다.
이 그림판은 일본 총리 기시다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바이든을 뒤에서 미는 가운데 “멸콩”이라고 쓰인 티를 입은 윤석열이 “가치외교”라는 글귀가 쓰여 있는 미국 성조기를 들고 “뭘봐”, “비켜”라고 험악하게 소리치며 앞장서서 나아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치매기가 있는 바이든이 앞에 가는 인물이 누구냐고 묻자 기시다는 “상남자”라고 짧게 대답하고 있다.
조중러를 대개 비하하고 매도하기조차 했던 한겨레신문의 평소 기조와는 달랐지만, 7월 2일 이 그림판(권범철 기자)은 하나의 장면에
한미일 동맹의 현 실태를 날카롭게 폭로, 풍자하고 있다.
치매에 걸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바이든의 행색은 81세 나이로 대선후보로 다시 나온 바이든 개인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기력을 잃고 쇠퇴하는 미국을 상징하기도 한다.
미국은 반조선, 반중, 반러 “가치동맹” 기치를 내걸고 미일한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미국은 나토를 끌어내고 우크라이나 젤렌스키를 돌격대장으로 하여 반러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미국은 이 전장을 동아시아로 확장시키기 위해 아시아판 나토를 기도하고 있다.
대만 총통 라이칭미와 윤석열은 동북아시아에서 반중ㆍ반러ㆍ반북 돌격대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 기시다는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면서도 윤석열처럼 노골적인 돌격대 꼬붕을 자처하고 있지는 않다.
전쟁광 윤석열은 실제로는 오야붕 미국의 꼬붕역을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미국을 뒷배삼아 돈키호테처럼 세상물정 모르고 돌진하고 있다.
조중정상회담에 대해 “선을 넘지 마라”며 러시아에 경고를 보내고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수출을 하겠다는 엄포를 놓는 윤석열은 하룻강아지 범무서운 줄 모른다고 철부지 망동짓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약간의 해석이 가미됐지만, 한겨레 만평은 대체로 이러한 국내외 상황을 폭로, 풍자하고 있다.
만평이 폭로하는 국제정세는 미국을 위시로 한 한미일 동맹의 실제 모습과 일치한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제국주의 세계 패권을 차지하면서 이남을 반공 침략 전초기지로 삼고 일본을 군국주의로 부활시켰다. 또한 미일한 동맹으로 반북, 반소, 반중을 기치로 냉전을 조장하고 침략과 제재책동을 일삼아 왔다.
미국이 도발한 이 반공주의 냉전은 동유럽과 소련이 해체됐지만 반러 신냉전으로 지속되고 있다.
이는 진실에 입각한 과학적이고 역사적 인식일뿐만 아니라 진보적 관점을 가지는 이들이 가져야할 당파적 인식이기도 하다.
전도된 인식을 하면 매사 대상을 거꾸로 본다
한 때 [사회진보연대]의 핵심 이론가였고 “진보주의자”를 자처했지만 지금은 조선일보, 중앙일보에 칼럼을 싣기도 하는 한지원은 이와 정반대로 인식하고 있다.
한지원은 7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한겨레 그림판이 “망가진 진보의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혹평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작가에겐 조롱거리일 뿐이(인) 한미일 협력관계는 북중러 독재국의 팽창과 난동을 억지하는 매우 중요한 힘. 바이든, 윤석열, 기시다는 이점에서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음.
아마도 작가는 중국 깃발 아래 실리 외교를 새기고 ‘셰셰’하는 이재명을 북중러 지도자들과 함께 그리진 않을 터. 이거참.
이거참!
한 때 진보를 자처했던 자가 조선일보식 극우파쇼적 망언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내뱉고 있다니!
“망가진 진보의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한겨레 만평이 아니라 한지원 자기 자신이다.
한지원은 “한미일 협력관계는 북중러 독재국의 팽창과 난동을 억지하는 매우 중요한 힘.”이라고 하는데 이는 철저하게 전도된 인식이다.
조중러협력관계야말로 “한미일 독재국의 팽창과 난동을 억지하는 매우 중요한 힘”이다.
거꾸로 사물을 보는 자에게는 바로 선 대상이 거꾸로 보이는 법이다.
전 세계 침략과 지배사를 볼 때 “독재국의 팽창과 난동”의 중심에 미국이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미국 패권에 저항하고 도전하는 나라들에 대해 “인권과 인도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침략하고 쿠데타를 배후조종하거나 내전을 조장하여 정권교체(레짐체인지)를 자행하는 것은 가증스런 미국 식 이중잣대와 위선을 잘보여준다.
미국의 대북적대 정책이 근원적으로 한(조선)반도에서 대결과 전쟁위기 고조의 원인이었다. 그 대북 적대시 정책의 일환으로 미국 내건 핵독점ㆍ핵패권 정책이 “북핵문제”의 진짜 원인이었다. 북핵은 미제의 침략책동에 맞서 자위권의 일환, 침략 억제력의 일환으로 만든 것이었다.
최근 고조되는 남북 간, 조미 간 전쟁위기도 실은 2018년 판문점 선언과 9.19평양공동과 하노이 조미 정상회담의 파탄이 낳은 결과인데 이 파탄의 중심에도 어김없이 미국이 있다. 그리고 사사건건 미국 눈치보며 제 손으로 합의한 선언을 파기한 문재인정권에 중대 책임이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미국을 등에 업고 노골적으로 대북적대, 침략책동에 앞장서는 윤석열 정권이 민족ㆍ동족관계를 적대관계로 전환하게 만든 직접적 주범이다.
미국은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세운 ‘가치동맹’에 따라 조선 적대시 정책에 이어 중국과 러시아를 인권과 인도주의에 반하는 독재권력, 권위주의, 전체주의 국가로 간주하고는 대중국, 대러시아 적대정책을 강화해 왔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미국패권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서방 군사동맹인 나토를 확장하여 러시아연방을 포위, 고립, 해체시키기 위한 동진 위협을 계속하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발발하였다. 급기야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 내정에 개입하여 반러 신나찌 세력들을 동원해 무장폭동을 일으키고 친서방 정권으로 권력교체(레짐체인지)를 성공시키고, 민스크 평화협정 파탄과 주로 러시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돈바스의 자결권을 압살하고 1만 4천여 명이나 살해하는 등으로 러우전을 조장해왔다.
미국이 어김없이 내세우는 “‘자유롭고 개방된’ 질서와 ‘규칙에 기반한’ 질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내세우는 목표이자 가치다.([이용인의 글로벌 안테나] “미국은 규칙을 잘 지키고 있을까”, 한겨레신문, 2022-01-06)
이는 “중국은 국제 규칙을 위반하고 있다.”(같은 기사)는 일방 전제 하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과 우호세력을 규합할 목적으로” 미국의 이해에 철두철미 바탕을 두고, 미국식 가치를 절대적 판단기준으로 삼아, 미국식 패권을 영속화 하기 위해 수립됐다.
프랑스혁명사를 다룬《루이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맑스는 부르주아의 정치적 모토였던 “자유ㆍ평등ㆍ박애의 이념이 기병ㆍ포병ㆍ보병으로 변해버렸다”고 신랄하게 폭로하였는데, 현대제국주의의 우두머리에 있는 미제가 내세우는 “‘자유와 인권과 인도주의”는 자신들의 침략과 학살, 지배를 은폐ㆍ정당화 하고 남한테 전가하는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가치동맹이 윤리ㆍ도덕적으로 인류에게 무가치하고 반가치하다면,“‘자유롭고 개방된’ 질서”는 미국에 유리한 산업부분은 강제개방을, 불리한 산업부분은 보호무역으로 철벽 같이 보호하고 이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국제경찰, 국제깡패 미국제국주의가 총포로 다른 나라를 위협하는 폭력이 난무하는 정글의 무질서였다. 미국은 강자가 지배하는 적자생존의 정글의 법칙을 인간사, 세계사에 그대로 적용하여 야만을 문명이라 포장하였다.
미국이 내세우는 “규칙 기반 질서”는 내로남불의 철저한 이중잣대로 일관하고 있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1982199개국이 가입하고 67개국의 비준을 거쳐 1994년부터 발효됐다. 12해리의 영해, 200해리의 배타적경제수역(EEZ), 국제해협과 군도수역에서의 특수한 통항 제도, 영유권 문제와 국제분쟁 해결 제도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운데 유일하게 UNCLOS에 가입하지 않고 버텼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항행의 자유를 누리는 상황에서, UNCLOS에 명시된 통항 허가 제도 등이 미국의 상선이나 군함의 운항, 잠수함 등의 정찰 활동에 방해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미국이 아직 비준하지 않은 또 다른 대표적인 국제조약으로 CTBT를 꼽을 수 있다. CTBT는 1996년 유엔 총회에서 결의한 핵실험 전면 금지 조약으로 어떠한 형태·규모로도, 어떠한 장소에서도 핵폭발 실험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타와 협약’(Ottawa Treaty)이라고도 불리는 대인지뢰금지협약에도 미국은 가입하지 않았다.(같은 기사)
그런데도 한지원은 미국식 가치를 일방 추종하고 또 그 가치를 일방 추종하는 윤석열을 연쇄적으로 추종하면서 “아마도 작가는 중국 깃발 아래 실리 외교를 새기고 ‘셰셰’하는 이재명을 북중러 지도자들과 함께 그리진 않을 터.”라며 그림판 작가가 한미일 동맹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면서도 중국을 추종하는 이재명과 북중러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 않다고 비난하고 있다.
민주당 집권세력들의 대외관계 원칙을 보면 노무현 정권은 ‘동북아 균형자론’이었고 문재인 정권은 ‘운전자론’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대외관계에서 “일과 중ㆍ러의 대결에 종속변수가 되지 않고 자주적 외교노선을 개척해 나가는 독립변수가 되겠다”(‘동북아 균형자론’ 내용과 의미, 한겨레신문, 2005-03-30)고 하고 있으나 그 균형자 역할은 “한미 동맹을 확고히 견지”해 나가는 것이었으며 “기본적으로 굳건한 한미동맹 관계를 토대”로 하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권이 확고히 토대로 한다는 한미동맹과 자주적 외교노선은 같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은 평택미군 기지 이전, 이라크파병, 한미FTA 체결로 한미동맹 토대가 자주 외교노선 상부구조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문재인 정권의 운전자론 역시 미국을 일방 추종하며 운전대 조수석에나 앉아 있다가 남북관계의 파탄을 초래하고 차에서 쫓겨나듯 내려야 했던 머저리론이었다.
문재인은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실용주의’ 노선을 취했으나 미국 요구로 중국을 감시ㆍ겨냥하고 있는 사드 도입으로 안보와 경제 둘 다 위태롭게 하며 중국과의 관계도 악화시켰다.
대일관계 역시 겉으로는 역사 문제 등으로 대립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한일관계가 악화되면 한미관계도 악화된다는 미국의 엄포로 한미군사정보협정을 연장하는 등 동맹관계를 유지했다.
문재인은 국내외 재벌을 떠받들면서 노동존중을 내걸고 노동적대로 나아갔듯이, 미일한 전쟁동맹을 수호하며 북과 관계를 개선하고 평화를 지킨다는 이율배반으로 파탄을 초래했다.
이처럼 민주당 정권의 대외 정책은 자기모순으로 인해 파멸적으로 되었는데, 그 바탕에는 미국과의 동맹, 실은 미국에 대한 철저한 예속과 일방적 숭배가 있었다.
통일정책 역시 겉으로는 민족의 자주를 내세우면서도 미국의 이해를 우선시하는 반민족정책으로 일관하고, 국가보안법을 유지하고 시대착오적인 간첩조작극을 벌이기도 했다. “체제경쟁은 끝났다”는 허위의 자신감은 햇볕정책을 바탕으로 통해 점진적 교류와 협력으로 부르주아식 흡수통일 정책을 추구하다가 그마저도 북의 적대관계로의 전환 선언으로 파탄났다.
이재명이 추구하는 대외정책이나 남북관계 역시 민주당의 역대 기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더욱이 이재명이나 그 누구의 민주당이 집권한다 하더라도 비록 흡수통일론을 바탕으로 하고 결국은 파기했지만, 과거 민주당 정권이 합의했던 남북 간 선언에 조차도 이를 수 없다.
북의 비핵화 노선을 가지고 주변국들이 참여하는 6자회담은 러와 중이 북핵을 사실상 인정하면서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변화된 상황에서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으며, 민족ㆍ동족관계가 적대적 국가관계로 전환된 상황에서 햇볕정책론과 미국 숭배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남북 간 선언이 다시 합의될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의 일극패권을 바탕으로 한 대중ㆍ대러 대결과 경제재재도 미국의 점차적인 쇠퇴와 패권약화, 이 추세를 되돌리기 위한 반도체법 같은 대중 압박 노선의 강화와 한국에 대한 압박 그리고 이에 대비되는 다극체제의 공고한 발전으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 실용주의 노선도 설 자리가 없다.
경제제재와 대결에 앞장서는 윤석열 정권의 대러 적대정책과 다른 정책을 구사하려면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이재명의 민주당에게 이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 위에서 고기를 낚으려 하는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다.
문재인의 적폐청산론이 그랬듯, 이 사회의 역사적, 구조적 모순을 피해가고 더욱이 그 모순들 속에서 이 사회를 조금씩 변화발전시키겠다는 이재명 식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노선으로는 이재명은 소소한 행복조차도 가져올 수 없고 도리어 축소 후퇴된 문재인 시즌 2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것이 민주당 식 문제라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그런데 한지원은 이로부터 이러한 문제들을 한층 더 노골적이고 깊게 하는 조선일보식, 윤석열 식 극우파쇼 정책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
‘북한 주적론’, 반중ㆍ반러 아시아판 나토, 우크라이나 무기수출은 전쟁위기를 고조시킬뿐만 아니라 민주당식 안미경중에서 안미경미(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로 나아가면서 새롭게 부상하는 다극화 흐름에서 소외되고 중국, 러시아와 대립ㆍ갈등하면서 경제고립을 더 깊게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동맹국’ 경제를 압박하고 있는데, 조선일보조차도 “한국과 대만 등 동아시아에 빼앗긴 반도체 패권을 다시 되돌리기 위” (“반도체법까지 만들어… 美, 보조금 수십조 원”, 2024.03.30.)한 ‘미국 우선주의’라고 항변할 정도다.
윤석열의 ‘동맹’은 우크라이나 무기 수출문제로 도청까지 자행하는 것까지 정당화 해줄 정도로 가스라이팅 당해 있고 민주당이 싫다고 윤석열을 지지하는 한지원은 이승만 식 북침론으로 나아가거나 극우적 핵무장론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지원이 추종하는 한미일동맹은 조중, 중러, 조중러 협력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더 공고하게 발전(이 관계는 특히 후르시초프 수정주의자의 등장 이래 중ㆍ소관계가 적대적 관계로 발전하고 조ㆍ소관계 역시 대국주의로 심각하게 악화되었음을 볼 때 실로 70여년 만에 공고한 전략적 관계로 복원되었다고 할 수 있다.)하고 미국이 비핵화 겁박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핵무력을 완성해 가고 있음을 볼 때도 억지력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평균 한참 이하의 두뇌와 평균 한참 이상의 속물성을 가진 평가를 받을만한 한지원에게 “바이든, 윤석열, 기시다는 이점에서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 땅의 평화와 자결을 염원하고 최소한의 역사의식과 상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3인은 퇴치해야 할 3적에 불과하다.
한지원이라는 인물에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서 우호적인 기사를 써주고 칼럼공간을 제공하는 것도 다 미국과 극우파쇼 언론의 이해를 충실하게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한지원이 [사회진보연대] 출신으로 진보진영의 일환으로 활동해 왔기에 이들 언론들이 자신들의 극우파쇼적 인식을 유포하기 더 이용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회진보연대가 반북적 관점으로 인해 조선일보의 찬사를 받았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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