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는 주어지기도 하지만, 만들어가기도 한다 ― “걸림돌”을 제거하고 주체적으로 정세를 개척해 나가자
민주노총 서울본부 정세토론회: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북(조선)의 동족관계·민족관계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의 전환 선언 이후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라는 형태로 한층 더 날카롭고 첨예하게 남북 간, 조미간 적대관계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이 적대관계로의 전환은 북의 전환 선언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다. 북의 적대관계로의 전환 선언은 남북 간 적대 관계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반영한 것이었다.
이 전환 선언이 나오게 된 것은 직접적으로는 미제국주의와 미제의 대북 적대정책을 등에 업고 대선 시기부터 집권 2년 차를 넘는 지금까지 “선제타격론”, “북한 주적론”, “참수작전”, “즉강끝”을 외치며 대북적대를 노골화하고 한미군사훈련 등 침략책동을 일삼는 윤석열 정권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광 윤석열정권 들어 노골화, 전면화 되었으나 이러한 적대관계를 배태(胚胎)한 것은 문재인 정권 하에서였다.
북의 적대관계로의 전환 선언 이후에야 보다 뚜렷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 사실이었지만, 2020년 6월 16일 개성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상징인 남북공동연락소를 북이 폭파한 것은 적대관계로의 전환을 알리는 전조,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조선중앙통신은 “쓰레기들과 이를 묵인한 자들의 죄값을 받아내야 한다는 격노한 민심에 부응해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들을 차단해버린 데 이어 개성공업지구에 있던 북남 공동연락사무소를 완전 파괴시키는 조치를 실행했다”(BBC 뉴스 코리아, “북한,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 최근 남북 긴장고조 이유는?”, 2020년 6월 16일)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6월 13일 당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같은 기사)이라며 폭파를 경고한 바 있다.
2018년 4.27판문점 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과 조미 정상회담 개최로 정점에 달한 “선대선”의 관계가 2019년 2월 27일~28일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아무런 합의점에 이르지 못하며 결렬된 이후 파탄적 상황으로 치달았다. 북미 정상회담 무산 이후인 북은 2019년 3월 22일 남북 간 연락과 상호민간교류를 위해 설치됐던 개성 연락사무소에서 철수하였다.
이에 대해 북은 “미국의 승인과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남조선당국이 어떻게 무슨 힘으로 중재자 역할,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같은 기사)라고 비난을 가했다. 결국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는 직접적으로는 “쓰레기들과 이를 묵인한 자들”, 즉 지금도 그렇지만 탈북자들의 저열하고 도발적 내용의 대북 전단 살포와 이를 “표현의 자유”라며 방치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그런데 폭파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대북전단 살포와 이의 방조만이 아니다. 그것은 조미 정상회담의 파탄이라는 외부적 조건과 함께, 그러한 불리한 외부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 선언의 정신에 맞게 민족자주, 민족자결의 관점에 입각해서 민족문제를 주체적으로 돌파해가려는 노력과 의지 없이 미국 눈치나 보며 중재자니 운전자니 얼빠진 소리나 해대며 이 파탄적 국면을 수수방관하고 대처할 줄 모르는 외세 추종적인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엥겔스는 《루트비피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에서 변증법 원리와 관련하여 헤겔의 저서 《법철학 개요》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 즉 “현실적인 모든 것은 이성적이며 이성적인 모든 것은 현실적이다”를 인용하여 “현실성이라는 속성은 동시에 필연적이”고 “필연적인 것은 결국 이성적인 것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엥겔스는 헤겔의 이 명제가 “현실적이었던 모든 것이 발전함에 따라 비현실적인 것으로 되어 자기의 필연성, 자기의 존재 권리, 자기의 합리성을 상실한다”며 변증법적 사유 방법에 의하면 대립물로 전화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은 멸망하여 마땅하다’는 명제로 바뀐다”고 했다.
주지하듯,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정상의 합의로 5개월 뒤인 2018년 9월에 세워졌다. 이 연락사무소는 당국자가 상주하며 남북이 상시적으로 교류·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 연락사무소의 설치는 남북 정상 합의의 첫 번째 사업으로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남북 간 체결한 합의가 합의 정신에 따라 자주적으로 순조롭게 이뤄질 때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며 필연적으로 존재할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합의가 지지부진하고 결렬되고 더 나아가 무산될 때 이 사무소는 “쓸모없는”것이 되어 사라져야 마땅한 흉물이 된다. 결국 이에 따라 우리는 온 민족적 기대와 염원을 안고 세워졌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된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경우에도 이것이 단순하게 경제적 이득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찬가지의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리비아식 무장해제와 항복을 요구하는 미국에 의해 하노이 조미정상 회담이 노딜 파탄에 이르게 되고 이에 긴박되어 있는 남북정상회담 남북관계가 파탄 되면서 선대선의 국면이 대립물로 전화되어 “강대강”의 격렬한 대립과 대치로 전환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김여정 부부장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3일 전인 2020년 6월 13일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고 발표했는데, 그때부터 북은 내부적으로 대대적으로 “장구한 북남 관계”를 총화하면서 남북 간 합의들이 파탄되고 민족·동족관계의 파탄과 적대관계로의 전환에 대한 평가를 하고 이후 대응방안들을 논의했을 것이다. 이것이 2023년 12월 3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 8기9차 전원회의와 2024년 1월 15일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이를 헌법에 명시하라는 발표로 나타났다.
남북 간 체결한 선언이 파탄된 이후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그 의미를 잃고 폭파된 것처럼, 민족·동족관계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의 전환 선언 이후에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기치가 담겨 있는 ‘3대 헌장탑’이 철거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로 이해할 수 있다. 언어도 순수 기능이 아니라 외부적 상황과 교류와 협력의 필요성에 의해서 나온 산물이므로 “삼천리금수강산”, “8천만 겨레” 등 어휘도 낡은 상황의 산물이므로 더 이상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은 노동당 중앙위 8기9차 전원회의에서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 노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 통일’, ‘체제 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했는데,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들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며 “대한민국 것들“에는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민주당도 포함되며 후자 역시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세력들로 배척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로써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과 체결한 6.15와 10.4, 4.27이 모두 무효화가 된 것이고 앞으로도 이들과 이러한 수준에서 합의는 체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북은 ‘흡수 통일’, ‘체제 통일’을 추구하는 정치세력이 아니라 기층의 자주적인 통일운동 진영이라고 할지라도 더 이상 평화통일을 같이 도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보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조국통일범민족련합 북측기구,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같은 기구들도 모두 정리하기로 하였다.
이 적대관계로의 전환 선언에는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결정까지 있다.
2.
북의 선언 이후에 남의 진보진영에서는 이러한 결정들에 충격을 받고 이 선언이 나온 배경을 찾기 위해 부심하며 향후 달라진 상황에서 활동 방향에 대해 다각도로 논의하였다. 북과 공동으로 만들었던 평화통일 단체들도 해산하고 달라진 상황에 맞춰 새롭게 조직을 출범하거나 조직전환을 준비 중에 있다.
북의 적대관계로의 전환 선언은 민족관계가 파괴된 현실에서 핵무력으로 전쟁 억제력을 발휘하겠지만, 그럼에도 미국과 남에 의해 침략전이 벌어진다면 이 침략을 격퇴하는 수준을 넘어 군사력으로 남을 공격하여 “점령·평정·수복”하는 것으로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켜 통치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가진 실제적 의미는 동족·민족관계를 전면 폐기하고 통일 지향 자체를 버린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러한 선언이 남이 민족이라는 사실조차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과거 민족이었던 것이 민족이 아닌 것으로 소멸된 것이 아니라 민족“관계”가 파탄이 나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전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제 민족·동족관계의 대상과의 평화적, 선린우호적 방식으로 추진되는 연방제 통일 방침을 폐기하고 전쟁도 불사하는 방식으로 “점령·평정·수복”하는 방식으로 통일하여 민족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환이 과거와는 다른 근본전환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면에서는 이것이 과거와 절대적인 단절이라고까지는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과거 연방제 통일을 천명할 시점에도 순수 평화가 아니라 그 평화 통일의 선결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자주적이고 평화적 방식의 연방제 통일을 위해서는 당장은 미제의 대북적대 정책이 폐기되거나 강점한 미군이 남에서 물러나게 해야 하며 남에서는 이를 추진할 자주적이고 통일 지향적인 권력이 들어서야 하고 이를 위한 군사·정치적 등 다방면의 투쟁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의 통일정책과 지금 통일정책이 다른 점은 과거에는 비록 통일의 필수적 조건으로 이를 추진할 남의 자주정권이 요구되었지만 그럼에도 남의 체제를 존중하겠다는 것이었다. 남이 자본주의 체제라도 할지라도 민족자주 의식만 있으면 이를 존중하고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남의 인민이 통일 이후 사회주의를 선택한다면 그건 남의 인민의 자주적 권리에 속하는 것이지 북에서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 지금 유사 시 (전술)핵까지 불사하여 “점령·평정·수복”하겠다는 것은 평화적 방식의 통일 대신에 비평화적, 군사적, 무력적 방식의 통일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한 점이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문제는 우리를 둘러싼 외부적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우리의 대응 방향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북의 적대관계로의 전환에 대해 온전하게 인식해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상황, 사태에 대한 일면적인 인식, 비주체적 인식은 반드시 모험주의적이든 대기주의적이든 기회주의적이든 여러 가지 편향과 오류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주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사태와 사물을 구체적으로 보면서도 총체적, 전면적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만 생생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치우치지 않고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북의 전원회의 결정에 대해 “점령·평정·수복”이라는 군사적 측면만을 바라봄으로써 심각하게 오류를 범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필연적으로 보고, 심지어 전쟁을 해방수단으로 “필수적”인 것으로까지 극단적으로 인식하기조차 하며 심지어 북의 무력통일 개시 시기가 한미군사훈련이 집중되는 8월이라며 구체적 시기까지 내놓고 있기조차 하다. 이는 군사모험주의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북의 당전원회의와 이후 최고인민회의에서 핵심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사회주의 강국 건설, 사회주의 전면 발전 전략이다. 이 전략에는 지방발전 20×10정책이 주요하게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최근 북의 사회주의 건설 성공 경험이 바탕에 깔려 있으며 사회주의 전면 발전을 도시에만 한정하지 않고 농촌 균형 발전까지 망라하고 있다.
북은 이 “사회주의강국건설을 공산주의건설을 위한 현 단계의 기본투쟁과업으로 내세우고 사회주의의 전면적발전과 새시대 농촌혁명에 관한 사상을 비롯하여 공산주의를 향한 합법칙적단계를 명확히 규정하고 매 단계에 따르는 투쟁목표와 과업들을 전면적으로 밝혀주는 독창적인 혁명리론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이 “사회주의강국건설”과 “공산주의건설”을 대비시켜 서술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고타강령 비판>에서 맑스가 대강을 제시한 바 있는 공산주의의 두 단계를 보다 엄격하고 세밀하게 구별하여 현 단계를 인식하고 이행과제를 서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현재 북의 발전 단계를 낮은 수준의 공산주의, 즉 전면적으로 발전되지 않은 사회주의에서 전면적 발전인 “사회주의 강국 건설”로 향하는 과도기로 설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의 사회주의 발전은 무상복리 체제를 유지, 발전시키면서 농촌혁명은 아직까지 광범위하게 남아 있는 “지방의 세기적 낙후성”을 극복하고 자체 공업과 집단농장의 발전, 현대화된 농촌 살림집 건설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북의 생산과 경제가 인민대중 제일주의 원칙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명한 사회주의농촌의 미래, 새시대 농촌혁명강령의 빛나는 승리”는 바로 사회주의 강국건설의 지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주의 전면 발전 계획은 미제국주의와 그 추종자들의 가중되는 군사위협으로 인해 방해 받고 있다. 특히 국제적으로는 전운의 고조를 넘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제와 나토 제국주의자들과 우크라이나 신나찌 대리 세력들에 의한 도발로 인해 러우전이 촉발되고 이 전쟁이 장기전으로 되고 있다. 이 전쟁은 유라시아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지만 그 실내용은 서방 제국주의 대 반서방 진영의 총력전이라 할 수 있다.
러우전이 끝나기도 전에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와 그 동맹국들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에 의한 가자침공과 대대적 폭격과 학살만행으로 또 하나의 지역적 세계전이 촉발되었다. 이 침략전은 민족해방을 위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영웅적 항전에 이어 예멘과 이란의 반미, 반이스라엘 투쟁, 중동 전역에서의 들끓는 팔레스타인 지지 반미, 반이스라엘 투쟁, 국제적인 반이, 반미투쟁으로 중동전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결전으로 변하고 있다.
미제와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일으키는 전쟁과 분쟁은 대만과 남중국해, 한(조선)반도에서도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이처럼 지역적으로 벌어지는 세계전이 전개되거나 가속적으로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제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쇠퇴가 점점 더 지속될수록 미제는 무너지는 패권을 막고 패권을 강화하려는 침략기도와 분쟁유도에 더 혈안이 되어 있다. 자국민을 전면 희생으로 하여 서방의 주구가 된 젤렌스키가 유라시아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동북아시아에서 윤석열이 수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 상황에서 북은 “전쟁을 억제”하고 사회주의 강국건설을 자주적으로 수행하려고 하는데 여기에 “핵무력의 기본사명”이 있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억제력의 구사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는 핵은 “전쟁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을 넘어 미제와 “대한민국”과 결전을 벌여 미제를 철군시키고 남을 “점령·평정·수복”하는 “둘째가는 사명”을 수행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 종합해 볼 때 북의 적대관계로의 선언의 본질은 제국주의의 침략과 간섭을 받지 않고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침략적 본질상 북이 자주적으로 사회주의 전면발전을 수행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에 외부로부터의 침략에 대비하여 군사적 억제력을 발휘하도록 하고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끝없는 대결의 근원이 되는 미제국주의 적대시 정책과 여기에 동조하는 남의 권력과 결전까지 감수하고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분단된 민족을 통일시키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결정이다.
세 번째는 국제연대의 강화이다. 여기에는 중국, 쿠바 등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관계 발전을 우선적으로 내세우면서 사상과 제도를 초월하여 러시아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자주와 정의”를 지향하는 반미자주 국가들과의 연대 강화이다. 이는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가치동맹에 맞서는 반서방 남반구 연대로 하나로 연결돼 있다. 2023년 9월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방러 이후에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임박해 있는데, 이는 2000년 푸틴 대통령의 방북 이후 처음으로 하는 방북이다. 러우전을 둘러싸고 서방의 대리전에서 우크라이나의 패전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제는 러시아 본토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공격과 서방의 직접적인 참전까지 예고되고 있는 상황이다.
북으로서는 북의 핵무력 건설 과정에서 국제적 차원의 제재가 가해지던 절대적 고립의 분위기에서 지금은 미제의 쇠퇴와 서방의 분열, 국제적인 반서방 투쟁 결속의 강화, 브릭스와 상하이협력기구의 확대 같은 반서방 경제블록 및 정치·경제·안보 협의체의 확대 강화, 전통적인 조중친선의 강화와 러시아와의 전략적 동맹의 강화 등 국제적으로 유리한 국면을 맞고 있다.
앞에서 사태와 사물을 일면적이고 주관적으로 봐서는 안 되고 구체적이면서도 전면적으로 봐야 한다고 했는데, 북의 민족관계의 적대관계 전환 선언의 배경과 그를 둘러싼 국제적 환경은 대략 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전쟁은 필연적이고 게다가 필수적이기까지 한 것인가? 지금 전쟁위기가 점점 더 고조되고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1차 세계대전이 한 발의 총성으로 촉발됐던 것처럼, 하나의 우연적, 비교적 사소한 사건으로도 국지전, 전면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전쟁이 발발할 국내외적 상황이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필연적인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 된다. 그러나 필연적이라는 것이 반드시 전쟁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전쟁의 위기가 시시각각 고조된다고 해서 전쟁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의 것이라면 주체적 활동이 뭐가 필요한 것이며, 그것은 상황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필연성은 숙명이 아니다. 숙명은 체념이나 수수방관의 다른 표현이다.
북의 사회주의 부흥전략과 전쟁 발발은 일반적으로 대립되는 것이다. 전쟁이 발발한다면 북은 사회주의 부흥전략을 포기하고 모든 예비를 전쟁예비로 돌려야만 할 것이다. 북의 전원회의 결정 사항을 전면적으로 고찰하지 않고 오직 전쟁을 통해 “대한민국”을 “점령·평정·수복”하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그것을 일방적으로 환영한다면 그것은 극히 일면적이고 사태를 왜곡하는 것이며 위험천만한 군사모험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반드시 막아야만 하는 것이다. 평화애호주의가 진보세력이 나아갈 길이다. 러시아에서 볼셰비키의 혁명은 “빵과 토지와 평화”에 대한 민중의 열망에 충실했기 때문에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볼셰비키를 민중이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여기에 기초해 혁명을 할 수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에 볼셰비키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호전 제국주의자들과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배반자들의 책동으로 인해 전쟁이 터졌다. 민중의 희생을 막고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서 짜리즘을 타도하고 혁명이 성공했던 것이다. 본말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그것은 누구의 승리를 논하고 결정하기 전에 파멸적이다. 좁은 한반도는 수백만, 수천만이 죽고 죽이는 살육의 장의 될 것이고 노동자 민중이 쌓아 올린 물질적 성과는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하게 될 것이다. 북으로서는 설사 승리하고 남을 “점령·평정·수복”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은 고사하고 참혹한 석기시대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패배한다면 미제에 의해 레짐 체인지 당하고 북의 노동자 민중은 폐허와 살육을 당할 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은 착취체제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3.
우리는 남에서 태어나 남의 대지 위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남의 정치적 조건에 제약받으면서 활동하고 있고 남을 변화, 개조시키려는 진보적 활동가들이다. 정세는 외부적 상황에 의해 규정되기도 하지만 내적 주체역량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지금 현재 외부적 정세규정력이 훨씬 더 크고 내적으로 진보세력들의 활동역량, 주체역량은 대단히 미약하다. 그러나 외부적 정세규정력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주체적으로 정세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자신의 주체역량의 공고한 발전 없이 남의 힘만을 믿거나 남의 힘에 의거하여 살아간다면 남는 것은 누군가의 한 방에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은 심각한 군사모험주의적인 것이며 파멸과 재앙을 진보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것이며 결국 평화애호적인 이 땅의 노동자 민중으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되고 버림받게 되는 길이다. 외부적 정세 규정력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그것이 내적으로 가하는 압력과 영향을 충분하게 활용하면서도 결국 “대한민국” 내부 노동자 민중의 잠재적 역량을 믿고 그 힘에 의거하여 정세를 개척해 들어가야 한다.
남북 관계의 적대관계로의 전환 선언은 국내 진보적 활동가들이나 단체, 당들에게도 그 동안 활동을 전면적으로 되돌아보고 방향을 전환할 기회가 되고 있다. 우리는 남과 북이 적대관계로 전환되었다고 해서 민족관계의 복원과 통일과 변혁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다만 북으로부터 진보진영조차 외면당하는 뼈아픈 현실을 통해 우리는 그 동안의 활동에 대한 준엄하고 전면적인 자기 평가와 쇄신, 방향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민족“관계”가 단절되었다는 것은 민족이 애초부터 아니었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민족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남과 북을 지역적 관점이 아니라 전국적 관점으로 통일적으로 봐야 한다. 그것은 분단적 관점이 아니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남과 북의 분단은 외세, 특히 일제로부터 해방 이후 분출된 민중의 해방 열망과 자주적 해방기구를 미제국주의가 분쇄하고 이남을 (신)식민지 반공 전초기지로 삼아 제국주의 침략을 기도하려고 하면서 이루어졌다.
미제국주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협정으로 전후 처리를 하면서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을 미국이 통제·제어하는 조건 위에서 다시 전쟁하는 국가로 부활시켜 반공 성전을 치르려 하였다. 이남을 반공주의 전초기지로 삼으려는 미국은 이남의 진보적 민중을 대량학살하고 군사정권을 내세워서라도 백색테러 체제를 구축하여 이남을 미국 숭배, 반북·반중·반소주의로 삼으려 했다. 미국은 이남 민중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 거세게 일어나자 박정희 시절에는 장준하를, 장준하의 타살 이후에는 김대중, 김영삼 등 야당 정치인들을 보험차원에서 관리하였다.
원제(Who Paid the Piper?: The CIA and the Cultural Cold War)에 압축돼 있듯이, 그 실체가 가려져 있었던 이 문화냉전의 요체는 ‘누가 그 (막대한) 비용을 댔는가?’라는 것이다. 물론 CIA다. 무엇을 위해? 서방 지식인들에게 “공산주의라는 병균이 퍼지지 않도록 예방접종”을 하고, “미국의 외교적 이권을 선취하는 길을 닦기” 위해서였다. 미국 뜻에 따르도록 함으로써 팍스아메리카나, ‘미국의 세기’를 열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CIA는 세계문화자유회의(CCF, 나중에 국제문화자유협회로 개칭) 등 민간 위장단체들을 만들어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35개국에 그 지부를 두었다. “사실상 CIA의 가장 야심찬 전위부대 중의 하나”요 “공산주의 사상의 확산을 막는 교두보”라고 했던 세계문화자유회의는 한국에도 그 지부가 있었다. 이 컨소시엄 구성을 주도한 이가 CIA의 아버지라고도 불린 최장수 5대 국장 앨런 덜레스(1893~69)다.
컨소시엄은 대변지 <인카운터> 등 20종이 넘는 선전매체(잡지)들을 발행했으며, 통신사까지 소유하고 수많은 학술행사, 전시회, 콘서트, 대형 국제회의 등을 열었다. 한국에서도 열린 국제펜클럽 대회가 이 컨소시엄과 무관하지 않으며, 1953년에 창간된 잡지 <사상계>가 미 공보원(USIS)의 자금 지원을 받아 탄생했다는 망명객 정경모의 증언도 있었지만 일본의 <자유>, 이탈리아의 <템포프레젠테> 같은 반공주의 잡지들이 CIA 자금 지원으로 창간됐다.(한승동 선임기자, ‘문화냉전’ 이끈 CIA는 왜 괴물이 됐나, 한겨레, 2016-10-27)
박정희 정권이 야당 정치인 김대중을 납치하여 해상에서 수장시키려 했을 때 미국 CIA가 개입했던 것도 분출할 수 있는 반미 시위를 막고 박정희의 대체자로 필요할 때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반북·반중·반소주의의 냉전은 소련 해체 이후 조중러에 맞서는 미일한 동맹의 대러 적대로 나타나면서 신냉전으로 계속되었다. 왜 서방 제국주의자들은 소련사회주의도 아닌데 자본주의가 부활한 러시아를 적대하는가?
제국주의자들, 즉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반동국가들은 마치 사악한 작은 자칼처럼 지구의 표면에서 사회주의의 모든 흔적과 자취를 지우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들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쿠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국, 베트남, 라오스,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그리고 많은 나라들을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지향의 혁명적 민주주의 인민 정부와의 관계가 소련 시절 외교 노선에 가까운 러시아는 이러한 목적에 장애물이었다. 사회배외주의자들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지만, 쿠바와 러시아의 관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관계가 그러하다. 미국 제국주의가 자신들의 앞잡이들이 권력을 잡기를 원하는 중국·베네수엘라와 러시아의 관계가 그러하다. 쿠바, 베네수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이 이들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파괴적인 경제, 금융, 기술, 군사 정책에 대한 가장 큰 장애물은 러시아였다…
1991-93년의 유혈 반혁명과 자본주의의 상당한 회복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미국의 제국주의자들은 러시아의 사회주의가 완전히 근절됐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시리아가 더 대표적인 사례이다. 러시아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날 시리아는 종교적 파시스트 살인마들의 생산과 수출 농장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경제적 활동과 정책은 제국주의자들의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구상에 대해서도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였다. 러시아의 직접적인 도움과 중국의 간접적인 도움으로 프랑스 제국주의를 그들의 땅에서 추방했던 아프리카 국가들의 빈민들과 노동자들은 이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직접 표현하는 인민들이다…
이 모든 구체적인 사실과 상황들은 크렘린 권력이 제국주의자들과 “선린관계”를 맺고 타협하고 심지어 나토에 가입하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자들이 러시아를 공격하고자 하는 중요한 이유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러시아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의 가장 중요한 이유, 즉 결정적인 이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1991-93년의 유혈 반혁명과 자본주의의 상당한 회복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미국의 제국주의자들은 러시아의 사회주의가 완전히 근절됐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가로서의 러시아의 해체와 파괴를 통해서만 러시아에서 사회주의가 인민들의 삶, 문화, 언어, 문학과 예술, 관습, 열망으로부터 완전하게 박멸될 수 있다고 믿는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1991년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소련 대통령 사임은 소련 붕괴의 시작을 의미했지만 붕괴 자체는 아니었다. 비록 소련이라는 법인격(legal personality)은 1991년 이후에 사라졌지만, 소련 붕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두 차례의 체첸 전쟁,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휴전과 교전이 교차하는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국경 분쟁, 2020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제2차 카라바흐 전쟁 등이 바로 그 예이다. 소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붕괴하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의 역사적 진실1] 서방 제국주의자들은 왜 러시아를 적대하는가?, 튀르키예 공산주의노동자당(레닌주의), 2024년 4월)
6월 18일-19일 사이에 푸틴이 방북을 하여 첨예한 국제적 대립 속에서 군사, 정치, 경제 다방면에서 조러 관계가 한층 더 공고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조러 관계는 푸틴과 김정일 시대부터 지금까지 “자주성”이라는 공통 기치 속에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분단적 관점이 아닌 전국적·통일적 관점으로, 역사적 관점으로 역사와 사물을 바라봐야 한다. 특히 역사적 관점이 없이 사물의 한 단면, 지점만 포착하게 되면 그것은 진보진영이 아니라 진보의 이름으로 제국주의의 대변자 역할을 하며 파산하게 된다.
앞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파괴의 배경에 대해 말했는데, 사태의 원인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없이 북이 연락사무소를 파괴하는 한 장면, 한 단면만 보게 된다면 남북의 공동자산이자 화해와 협력의 상징인 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하는 북의 호전성만 보이게 될 것이다.
최근 북의 오물 풍선만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던 탈북자들의 저급한 대북 전단 살포로부터 국가보안법은 위법이라면서도 대북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대북전단 살포를 정당화 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윤석열 정권의 대북 전단 비호와 대북 확성기 설치 등은 보이지 않고 북이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취한 “오물풍선”만 보이게 되며 이를 통해 북이 저급하다는 비난을 정당화 하게 될 것이다. 윤석열 정권과 조중동 등 언론들이 보이는 기만적인 행태가 바로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파렴치하고 몰역사적인 행태는 소위 ‘진보진영’에서도 횡행하고 있다. 미제가 반북 프레임의 일종으로 만든 북핵문제는 그 원인이 미국의 핵독점 전략, 핵패권, 핵위협 정책에 있다. 북의 핵은 이에 맞서는 자위권의 일환이다. 미국의 핵독점, 핵패권, 핵위협 뒤에는 미제가 이남을 강점하고 반북반공 전초기지로 삼은 근본적인 배경에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있다. 이 대북 적대시 정책이 오늘날 고조되는 위기의 근본 원인이다. 원인이 사라지지 않으면 그 결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원리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원인을 철저하게 간과했기 때문에 진보의 이름으로 활동하며 미제와 부르주아 반공주의 세력들의 대리인 역할을 수행하는 세력들이 있다. 사회진보연대와 평등의 길이 대표적이다.
이들 세력과의 투쟁은 대적 투쟁을 위해 필수적인 대내적인 오열과의 투쟁이다. 사상전으로 이들 친제국주의·반공주의 세력들을 척결하고 운동을 쇄신해야 한다. 계급과 계급투쟁, 민족과 전민항쟁, 통일전선 등 거대담론, 전략·전술적 목표를 가진 혁명적 운동을 대신하여, 운동진영 내에 침투한 분열적인 다원주의 사상을 척결하고 운동노선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진보정당 운동이 의회주의와 계급타협주의에 경도되지 않고 한국사회의 모순을 혁파하고 근본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폐기되지 않는다면 남북 간 전쟁위기도 해소되지 않고 계속될 것이며 급기야는 전쟁의 재앙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남북 간 맺은 선언들의 파탄 뒤에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이남 지배 전략이 있다.
판문점 선언과 평양공동 선언이 이뤄질 시점에서도 남북 당국자들 간의 상층 협력에만 기대고 이 유리한 정세를 활용하여 국가보안법 철폐와 미군철수를 전면화 하지 않은 문제도 있었다. 남북 관계의 적대적 관계로의 전환 이후에 교류, 협력 중심의 통일운동의 근본한계를 비판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교류, 협력 중심의 통일운동은 자주적인 운동이 아니라 “흡수통일” 세력인 민주당에게 정치적으로 기대고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주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이러한 운동이 민족·동족관계의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의 전환 선언과 진보진영에 대한 불신과 일방적인 교류단절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얻게 된 최종적인 결론은 한국사회에서 자본주의가 얼마나 발전하든, 어떠한 변화가 있든지 미제국주의의 정치·군사·경제·정신적 지배로부터 해방되지 않고, 미제국주의 군대를 이 땅에서 축출하지 않는다면 전쟁의 재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남북 간 평화와 협력은 요원할 것이며 통일과 해방도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민족·동족관계의 제반 걸림돌을 제거하여 주체적으로 정세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선대선의 국면이 제국주의와 그 주구들의 책동으로 끝나고 그것이 대립물로 전화되어 강대강의 격렬한 대립과 대치로 전환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면 이것이 새로운 수준에서의 발전적인 상황을 낳을 것 역시 필연적이다. 그러나 강대강의 적대와 대립은 극한의, 격렬한 투쟁 과정이지만 그 투쟁의 양상과 결과에 따라 새로운 수준에서의 역사발전을 추동할 것이다. 국제적 변화와 괴리된 국내적 주체역량들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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