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사회주의 애국주의는 대치되는가?(전문)

* 이 글은 6월 1일 [현대사상연구소]의 <노동자국제주의>로 열리는 세미나의 첫 번째 발표문입니다. 애초에 발표된 글을 수정·보완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부르주아적 탈민족(주의) 담론에 대한 비판이 추가되었습니다.
1.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성립
“의인동맹”이 내건 “모든 사람은 형제이다!”다는 구호는 맑스·엥겔스의 적극적 결합으로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정당이라 할 수 있는 <공산주의자동맹>으로 발전하면서 이 구호 대신에 “만국의 노동자는 단결하라”는 구호로 발전하였다. 《공산당선언》에서 표명된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구호는 오늘날까지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 원칙을 상징하는 전투적 구호로 남아 있다. 지금도 매 해 노동절에는(노동절에만!) 이 전 세계 노동자의 국제적 단결의 목소리가 전 세계로 울려 퍼지고 있다.

선언이 쓰이기 시작하고 발표된 시점인 1847년 11월에서 1848년 2월의 시기에는 여전히 봉건체제에 맞서 싸우는 투쟁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으나 영국, 프랑스 그 뒤를 이어 독일 등에서는 부르주아지가 이미 권력을 잡거나 시도 중에 있었다.

18세기에 이미 산업혁명을 완수하고 자본주의 발전을 계속했던 영국에서는 입헌군주제 형태로 봉건체제와 타협을 하면서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장악하였다. 영국에서는 이에 따라 노동자계급이 성장하면서 10시간 노동법 제정을 위한 투쟁과 차티스트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면서 계급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독일에서는 1844년 6월 프로이센령 실레지엔에서 직포공들이 야만적 착취와 임금인하에 맞서 봉기를 일으켰으나 군대를 동원한 지배계급의 공격으로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11명이 살해되고 24명이 중경상을 입고 150명이 체포되기도 하였다.

이미 1789년에 부르주아 대혁명이 일어났다가 다시 지롱드당의 테르미도르 반동과 나폴레옹의 권력 장악에 이어 1830년 7월 왕정으로 복귀한 프랑스에서는 선언 발표 시점인 1848년 2월에는 프랑스 부르주아가 혁명으로 다시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이때 프랑스 부르주아지는 1789년 대혁명 이후 로베스피에르, 생쥐스트 등이 지도자였던 자꼬뱅의 급진 부르주아가 아니라 반동적 부르주아였다. 2월 혁명에 앞장섰던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지에게 배신을 당하고 권리를 박탈당하자 4개월 뒤인 6월에 봉기에 나섰으나 부르주아 권력은 3천 명 노동자들을 학살하고 수천 명을 투옥하는 것으로 잔인하게 보복 대응을 하였다.

비록 독일을 예로 들었지만 공산당선언에서는 이를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공산당은 부르주아지가 혁명적으로 행동할 때에는 부르주아지과 공동으로” 싸우지만, “그러나 공산당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적대적인 대립에 대한 가장 명료한 의식을 노동자에게 주입시키려고 잠시도 태만히 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부르주아지의 지배와 함께 초래될 사회적 및 정치적 제조건을 독일의 노동자가 바로 그대로 무기로써 부르주아에 대항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권력을 잡게 될 부르주아지에 맞서 독자적으로 싸울 것을 주문하였다.

그 전에 노동자 투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 6월 봉기는 현대 사회 최초의 자본가 계급 대 노동자계급의 전면적인 계급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 투쟁으로 1871년 파리꼬뮌의 전초전이었다.

이후 1850년대 말 1860년대 초에는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세계 최초의 공황(1857년)이 발생하여 영국,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는 파업투쟁이 첨예하게 전개되었고 노동조합이 이때를 전후로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와 함께 여전히 활발한 공화제를 쟁취하기 위한 반봉건 민주주의 투쟁과 함께 독일, 이탈리아에서의 민족통일을 위한 투쟁, 폴란드와 아일랜드에서는 민족억압에 맞서는 투쟁,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의 와중에 노예제에 맞서 싸우는 투쟁이 복합적으로 전개되었다. 맑스와 엥겔스에게 국제주의는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함께 국제적으로 전개되는 반봉건 민주주의 투쟁과 진보적인 민족통일운동, 민족억압, 노예제에 맞서 싸우는 투쟁에 적극 결합하는 것으로 풍부해지고 확장되게 되었다.

이처럼 고양되는 노동자계급과 인민의 투쟁, 민족적 투쟁을 하나로 결합하여 중앙집중적으로 지도할 필요성을 느꼈던 맑스와 엥겔스는 국제적인 수준의 프롤레타리아당 창건에 박차를 가했다. 마침내 1864년 9월 28일 런던의 세인트 마틴 홀에서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 즉 1차 국제인터내셔널이 창립되어 선언에서 표명되었던 노동자의 국제적 단결의 사상이 실현되었다.

국제노동자협회 전문에 실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에 의해 이룩되어야만 한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투쟁은 계급특권과 독점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평등의 권리·의무와 모든 지배계급의 폐지를 위한 투쟁이다…
지금까지 이 큰 목적을 지향하는 노력들은 모두 각국의 다양한 노동부문 사이에 연대가 없었고, 또 여러 나라의 노동자계급 사이에 형제적 우애의 연대가 없었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갔다.
노동의 해방은 국지적 문제도, 하나의 민족적 문제도 아니며, 근대사회가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을 포괄하며, 가장 선진적인 나라들의 실천적 및 이론적 협력이 있어야 해결될 사회문제다.(W.Z. 포스터, 세계 사회주의 운동사, 동녘)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단결된 노동자들의 국제적 수준의 투쟁으로만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투 구호에 맞서는 부르주아의 구호는 “분열하여 통치한다”이다. 부르주아가 이 구호를 공공연하게 내걸지는 않지만 지금까지도 통치전략으로 삼고 있다. 자본가들은 국가 내부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열 야기는 물론이고 국가 간, 민족 간 대립과 분열을 야기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맑스가 ‘선언’에서 내건 “노동자에게 조국이 없다”는 명제는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그들로부터 빼앗을 수는 없다”는 그 다음 문장에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국가는 “국민국가”이고 그 국가에 속한 노동자계급과 인민들은 “국민”으로 표현되고, 심지어 우리에게도 한 때 “국민의 정부”를 표명하는 권력이 있었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국민선언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계급과 인민들은 기업과 토지 등 생산수단 소유권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제 당했으며, 재산소유로부터 배제당하고 가난한 생활을 전전했으며, 보통선거권의 도입 이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보통선거권의 도입 이후에도 선거 시기를 끝나면 정치적 권리로부터 철저하게 배제 당했다. 생산수단의 소유자들, 부자들, 통치배들과 그 무리들을 제외하면 국민들은 실제로는 “비국민”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조국의 이익, 국가의 이익(애국주의, 국가주의)을 내세워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 하고, 다른 나라, 민족 간 대립과 경쟁을 부추기고 민족억압을 정당화 했다.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반식민지를 차지하는 위한 제국주의 국가, 제국주의 독점자본 간 대립과 전쟁, 파괴와 학살이 자행되는 시대에는 “노동자에게 조국이 없다”,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그들로부터 빼앗을 수는 없다”는 명제는 더 선명하게 진리의 등불로 빛나고 있다.

전 세계 노동자들은 국경과 종교, 인종, 성별을 넘어 하나로 단결해야 하는데, 그 단결의 조건을 규정짓는 것은 이런 분열적·대립적·분리적 요소들이 실존하지만 이를 뛰어넘는 하나의 계급적 소속이자 착취 받는 노동자의 공통처지이다. 그리고 전 세계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하는 이유는 이뿐만 아니라 당위적, 운동적 의미가 있다. 자본의 국제화는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의 필요성을 마련하기도 한다. 분열되어서는 부르주아지, 제국주의자들에 맞선 투쟁해서 승리할 수 없다. 나라별로, 나라 내에서 수없이 많은 분열적 요소들, 심리적, 물리적 분열적 책동들에 맞서 국내외적으로 공고하게 단결해야 한다.
2. 노동자의 국제적 단결의 명제로부터 끌어낸 잘못된 정치적 결론

 

그런데 이러한 국제주의 명제로부터 잘못된 결론 심지어 심각한 정치적 결론을 끌어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국경과 종교, 인종, 성별을 넘어 하나로 단결해야 한다는 명제가 주어진 국가 소속이 없거나 종교와 인종 자체가 없다거나 자연적 성별이 애초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아간다면 심각하게 사태를 곡해하는 것이다.

노동자국제주의는 국가단위의 운동을 부정하거나 국제혁명을 내세워 일국 단위에서의 혁명을 건너 띠고 비약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맑스·엥겔스는 선언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우선 정치적 지배를 획득하고 국민적 계급의 지위에 오르고 자기 자신을 국민으로서 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부르주아적 의미는 아니지만, 그 자체가 국민인 것이다.”라고 일국 차원의 권력 장악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주장을 했다. 여기서 부르주아적 의미의 국민은 국가 내부 계급모순을 은폐하는 의미에서의 국민이지만, 프롤레타리아가 정치권력을 획득한 이후로 온전하게 국민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언의 바탕이 된 엥겔스의 <공산주의 원리>에서는 “이 혁명은 어떤 한 나라에서만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열아홉 번째 질문에서 “공산주의 혁명은 결코 일국적인 혁명이 아니라 모든 혁명국들에서, 즉 적어도 영국, 아메리카, 프랑스, 독일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혁명이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선언에서도 “적어도 문명 제국이 공동으로 행동하는 것이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의 일차 조건의 하나다”라고 하여 여전히 원리에서 제기한 최소 유럽 차원의 공동혁명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일본 오오쓰키판(대월大月서점판) , 한국 범우사 서석연 옮김) 《공산당선언》에서는 국제혁명에 대해서 “일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할 가능성”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주를 달고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은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 즉 영국·미국·프랑스·독일에서 동시에 일어날 것이며, 한 나라만으로는 이 혁명을 성공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문명국들의 공동 행동이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의 조건이라는 것은 이 생각을 말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19세기 즉 제국주의시대 이전에는 옳았다. 레닌은 제국주의시대에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및 정치적 발전이 불균등하게 진행된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견해를 수정하였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몇몇 나라에서 혹은 단 한나라에서도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 역으로 모든 나라 또는 대다수의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동시적 승리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레닌의 결론이 정당함은 그후 역사적 발전에 의해 증명되었다.

이 주장의 직접적인 근거는 다음의 레닌 글에 있다.

세계합중국(유럽만의 합중국이 아니라)은-공산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민주주의 국가를 포함하여 모든 국가를 최종적으로 소멸시킬 때까지는-우리가 사회주의와 연결시키는 국가형태, 즉 민족들의 연합과 자유의 국가 형태다. 그러나 독립된 슬로건으로서는 세계합중국 슬로건은 올바른 슬로건이라고 하기 힘든데, 첫째는 그것이 사회주의와 합치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될 수 있으며, 또한 그러한 일국과 타국들과의 관계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정치적 발전의 불균등성은 자본주의의 절대적 법칙이다. 이로부터 사회주의의 승리는, 처음에는 몇 개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심지어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나라의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가들을 수탈하고 그들 자신의 사회주의적 생산을 조직하고 나서는 세계의 나머지-즉 자본주의 세계-에 대항하여 떨쳐 일어나 타국의 피억압 계급을 자신의 대의로 끌어들이고, 그 나라들에서 자본가들에 대항하는 봉기를 선동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착취 계급과 그들의 국가에 대한 무력 사용도 불사할 것이다.(레닌, “유럽합중국 슬로건에 대하여”, 양효식 옮김, 아고라출판사)

이처럼 레닌은 “유럽합중국 슬로건”이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못 박았다. 제국주의 발전의 불균등성으로 생겨난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를 끊고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 즉 러시아에서 혁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실제 혁명을 성공시켰다. 레닌은 또한 “그 나라의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가들을 수탈하고 그들 자신의 사회주의적 생산을 조직하고 나서는”이라며, 일국에서 사회주의 생산을 조직하고 난 뒤에, “세계의 나머지-즉 자본주의 세계-에 대항”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위 글의 번역자인 양효식은 레닌의 위 글이 당시 유럽을 염두에 둔 것이지 러시아를 염두에 둔 글은 아니라며 트로츠키주의적 “국제주의”를 완강하게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 이 논쟁은 레닌 사후 1920년대 중반 소련 국제혁명과 일국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할 가능성의 문제를 둘러싸고 볼셰비키당 내부는 심각한 논란과 분열이 발생했다.

제국주의 모순의 약한 고리를 뚫고 러시아에서 혁명이 성공했다. 그러나 고대하던 유럽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이 혁명은 독일에서의 혁명이었다. 그러나 독일혁명이 패배했다. 그렇다면 고립된 러시아 혁명 권력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주의는 오직 국제적 수준에서만 승리할 수 있으니 러시아 혁명을 독일로 수출할 것인가? 독일혁명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건설할 것인가? 스탈린은 현실적인 사회주의 지도자였다. 트로츠키를 위시로 한 지노비에프, 카메네프 등은 반대파와 신반대파를 형성하여 일국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문제를 국제주의 원칙, 정신의 문제로 둔갑시켜 버렸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스탈린을 국제주의를 버린 일국사회주의자, 자력갱생을 기치로 사회주의 건설을 하고 있는 북(조선)을 “스탈린주의에서 기원하는 ‘민족주의의 극단화’”(윤소영)라고, ‘김일성주의’를 “스탈린주의의 동양적 경향의 끔찍한 과잉”(로버트 C. 터커, 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 2-Ⅰ』 9장 북한의 체제), “북한은 스탈린주의의 변종”(오세철)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역사상 최초로 자본주의는 진정한 세계 체제를 창출했고, 그 체제에서 우리의 삶은 모두 공통의 역사와 공통의 운명으로 얽혀 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그 부가 가난한 나라로 “흘러 넘칠 것”이라는 온갖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세계적 불평등은 심화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이런 현실은 일국사회주의 문제를 첨예하게 부각시킨다.
지난 세기의 쓰디쓴 경험에서 거듭거듭 드러났듯이, 아주 온건하고 전혀 사회주의적이지 않은 대중 운동들조차 세계 자본가 계급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힌다…
쿠바는 수십 년째 미국에 경제 봉쇄를 당하고 있다. 칠레에서 미국은 개량주의적 좌파 정부를 뒤엎는 피비린내 나는 군사 쿠데타를 지원했다…
오직 한 가지 길만이 러시아 혁명을 구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 혁명이 다른 나라들로 확산돼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러시아 혁명이 쇠퇴하는 과정에서 스탈린이 ‘일국사회주의’를 들고 나왔다. 그것은 승리가 아니라 패배의 신호였다.
‘일국사회주의’가 실제로 뜻한 것은 착취와 반혁명을 공고히 하는 완전히 반민주적인 체제였다.(콜린, “일국사회주의는 가능한가?”, <노동자연대>, 2005-01-05)

이것이 “국제주의”를 모토로 내걸고 활동하고 있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인식이다. 이들은 여전히 맑스·엥겔스의 초기의 이념, 세계동시 혁명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자본의 세계화, 국제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본은 국가단위를 중심으로, 국가를 매개로, 국가의 힘을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고 -노동자연대와 국제사회주의자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 따라 국가 내부에서 투쟁이 벌어지고 있고, 국가 내부의 계급모순이 첨예해지고 있으며, 국가 내부에서 권력을 잡아야 하며, 그것이 국제적인 혁명으로 나아갈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쿠바나 북(조선)처럼 고립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경제봉쇄를 당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온전하게 건설할 수 없으며 이는 결국 소련과 마찬가지로 “착취와 반혁명을 공고히 하는 완전히 반민주적인 체제”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현존하는 사회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혁명적 전망을 흐리게 하고 패배주의에 빠지게 한다. 더욱이 이러한 인식은 일국에서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을 반대하는 관념뿐만 아니라 실제 제국주의와 싸우며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나라들을 “국가자본주의”라 규정하고 이 나라에서 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반혁명 세력들을 민주주의의 투사들로 규정하고 지지하는 심각한 제국주의의 지지자들로 타락하게 만들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쿠바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라 —미국 제국주의를 경계하면서도, 소피 스콰이어, 번역 김준효, 노동자연대, 377호(온라인판), 2021-07-13), “우리는 쿠바 사회주의 권력의 굳센 벗들이다 _ 쿠바 반혁명 시위에 대한 제국주의 벗들의 논평을 규탄한다”, 2021년 7월 15일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노정협 반박 쿠바 반정부 시위는 반혁명적인가?”와 이를 다시 비판하는 “쿠바 반혁명 시위를 지지하는 제국주의의 국내 ‘진보적’ 벗들의 실체를 보라!, 전국노동자정치협회, 2021년 7월 21일) 논쟁 글들을 보기 바란다.)

이들은 “국제사회주의인가?, 일국사회주의인가?”, “국제혁명의 강령인가? 일국사회주의의 강령인가?” 이처럼 사물을 일도양단하여 변증법적으로, 통일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있다. 제국주의 모순이 약한 고리를 통해 돌파되고 이것이 제국주의 체제 전반의 위기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직 국제적 수준의 혁명만 기대하고 있다. “오직 한 가지” 구원의 길인 “사회주의 혁명이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지 않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연적으로 “일국사회주의”로 타락하고 급기야 “국가자본주의”로 반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니 일국에서 아무리 모순이 성숙해도 총을 들지 말아야 하는가? 일국에서 혁명이 위기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국제적으로 혁명을 수출해야 하는가?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로 타락한 신반대파들은 일국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가능성, 확신, 실행의 문제를 국제주의 원칙의 문제와 국제혁명의 전망과 뒤섞으면서 심각한 혼돈에 빠지고 급기야는 반당세력, 반쏘 제국주의 분자들로 극심하게 타락해 버렸다.

스탈린은 유럽 혁명이 없어도, 당장 가망 없는 유럽혁명에 기대지 않고도 일국에서 사회주의 건설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제시하고 1930년대에 이를 전 세계 노동자계급과 심지어 소련사회주의 건설의 실패를 오매불망 고대하던 세계 부르주아 눈앞에서 보여주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 사회주의의 일국에서 건설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의 간섭과 포위가 계속 있을 것이기에 제국주의를 철폐하고 국제혁명의 승리로 사회주의가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봤다.

스탈린은 혁명의 “민족적” 임무와 국제적 임무와의 통일을 추구하면서 일국에서 사회주의의 성공적 건설은 국제혁명에 해가 되기는커녕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와 피억압 민족들에게 승리의 신념, 확신, 전망을 심어줄 것이며, 이 승리가 국제적 지원과 지지로 나타나면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도 꽃피게 될 것이라 봤다.

스탈린은 일국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가능성, 승리 추구를 국제주의와 대립시키는 이들에 대해 “그들은 실제 혁명가가 아니라 요란스러운 공담을 늘어놓는 혁명가, 영화 영상 속에 나오는 혁명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할 때가 왔다”고 조소하였다.

스탈린의 이러한 입장과 사상은 사회주의 건설의 “자력갱생론”으로 발전하였다. 정치적 자주성, 군사적 자주성, 경제적 자주성은 제국주의 포위 속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하는 나라들의 기본원칙이 되었다. 게다가 사회주의 내 자주성의 상실은 사회주의 분업화를 미명으로 사회주의 나라의 공업화와 경제적 자주성을 약화시키고 대국주의로 사회주의 나라 간 우애와 평등 원칙을 약화시켰으며 심지어 사회주의권의 도미노적 해체까지 이르게 하는 중대한 원인이 되었다.

“자력갱생론”, 즉 공산주의 사상혁명을 중심으로 기술혁명과 문화혁명을 내세워 남의 힘에 의존하지 말고 오직 사회주의 국가 내부의 자원과 예비를 총동원하고 인민대중의 무궁무진한 힘과 노력에 의거하여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특수한 원칙일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포위 속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하는 나라들의 보편적인 원칙이기도 하다.

북에 대해 민족주의 고립·폐쇄주의 운운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군사, 정치적 적대주의와 경제적 포위 말살책인 제재에 맞서 투쟁하는 사회주의의 처지와 현실주의를 외면하고 제국주의 적대시 정책에 맞서 싸워야 하는 제국주의, 자본주의 나라들 내부의 노동자국제주의의 임무를 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의 자력갱생론은 국제연대를 배제하거나 반하는 것인가?

북에서 국제주의 원칙은 일제에 맞선 무장투쟁 시기에 중국에서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면서 중국 공산주의자들과 인민들과 맺은 조중친선의 역사와 일제가 소련을 배후에서 공격하려고 할 때 “소련을 무장으로 옹호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침공 기도를 막아선 것으로 실현되었다.

이후 북의 국제연대는 베트남 민족해방 전쟁의 지원과 쿠바와의 전통적인 사회주의 국제연대, 칠레 아옌데 정부 사수, 아랍권의 저항적 민족주의 세력들과의 연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지원과 국제연대, 팔레스타인의 민족해방투쟁 지지, 비동맹 국가들과의 반제 자주성을 원칙으로 하는 블럭불가담운동, 소련 해체 이후에도 푸틴의 러시아와의 전략적 관계의 형성과 현재 다극화 시대에 있어서 반미자주진영과의 국제연대의 사례들이 있다.

 

3. 국제주의의 협소한 퇴보인가? 혁명적 확장인가?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오직 계급 대 계급의 모순만 강조하면서 통일전선에 대해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경향이 크다. 국제주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국제주의는 각 시기마다 특수한 조건에 맞춰 확장되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맑스·엥겔스는 노동자 국제주의를 내세워 각국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단결을 주장하면서도 반봉건 민주주의 투쟁, 민족적 통일을 위한 투쟁, 민족해방투쟁, 노예제에 맞서는 투쟁을 강조하면서 각 시기마다 특수한 국제주의 과제를 폭넓게 제시하였다. 레닌과 스탈린, 디미트로프는 제국주의 전쟁의 시기로부터 반파쇼 인민전쟁의 시기까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확장하였다.

일부 교조주의적 입장을 가진 이들은 민족주의 일반을 부르주아 민족주의로 규정하고 (半·新)식민지 등지에서 나타나고 있는 저항적 민족주의를 부정한다.

민족문제에 대응하면서 나타나는 좌경적 오류는 민족문제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들은 미제와의 투쟁, 남북문제 등을 소홀히 한다…
최근에 또 하나의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맑스레닌주의라는 적대적인 이념을 적당히 버무려서, 민족문제에 대한 맑스레닌주의적 관점을 부정한다.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깃발에 “저항적”이라는 분홍색을 칠해서 노동자계급에게 강매한다. 전국노동자정치협회의(이하 “노정협”의 “저항적 민족주의”가 그것이다.)..
노정협의 맑스레닌주의 총서3 <민족과 계급>에서는, “조국은 하나다”(김남주)라는 시를 소개한다…
조국과 민족은 정말 하나일까? 민족대단결은 가능할까? 그러나 맑스는 말했다,

“노동자들은 조국이 없다. 그들에게 없는 것을 그들로부터 빼앗을 수는 없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누가 옳은가? 시인에게 남과 북은 모두 조국이다. 남과 북의 분단을 거부하고, 통일된 “하나의 조국”, 하나의 민족은 시인에게는, 그리고 민족주의자에게는 지고의 가치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 조국은 없다…배타적으로 사랑(편애)할 조국과 민족은 없다…
민족은 몰계급적인 개념이다…따라서 사실은 “민족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차원의 계급문제로 불러야 한다…
“해방” 이후에 한국에서 노동계급의 혁명 진영은 몰살되었다. 혁명이론이 실종되었다. 노동자 국제주의도 잊혀졌다. 결국 “반미 반제 통일운동으로 표현된 민중의 항쟁”은 “저항적 민족주의 운동”이라는 부르주아지의 이념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민족문제: 부르주아 민족주의인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인가?, 이현숙/자유기고가)

이는 맑스와 엥겔스가 아일랜드와 폴란드에서 나타나는 외세에 반대하여 나타나는 민족주의를 적극 지지하고, 로자 룩셈부르크와의 논쟁에서 국제주의를 내세워 자결권을 부정하는 것을 비판하는 레닌의 민족문제에 대한 태도, 그리고 이후 코민테른 내에서 반동적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대비하여 민족혁명투쟁, 민족해방 투쟁을 적극 지지했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현숙은 레닌이 1차 세계대전 전후로 제국주의 국가들이 애국주의, 국가주의를 내세우고 이를 사회주의를 자처하면서 동조하는 사회배외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부르주아 민족주의를 반동적이라고 비판한 문구 일부만을 근거로 민족주의 일반이 반동적이라고 규정한다. 이현숙은 “약소민족 부르주아지는 1930년대 대공황부터 반동화 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 민족주의가 반동화 된 것으로부터 민족주의 일반이 반동화 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민족문제는 순수하게 노자 간의 계급적 문제로, 사회주의혁명의 문제로, 노자 양자의 국제주의적 문제로 전화되었다”는 주장은 민족문제의 상대적 고유성을 부정하고 더 나아가 민족문제 자체를 부정하고 계급문제로 환원하는 것으로 전혀 차원을 달리 하는 문제다. 이는 결국 맑스레닌주의의 민족문제에 대한 노선에도 반하고 현재 우리의 운동의 진전에도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강령 조항들 가운데 어느 한 조항을, 예를 들어 민족자결 조항을 제국주의 하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거나 ‘환상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삭제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오류일 것이다. 민족자결권이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는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절대적, 경제적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겠고, 아니면 관례적, 정치적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겠는데, 둘 중 어느 한 경우일 것이다.

첫 번째 경우에 그 주장은 이론상 근본적으로 틀렸다. 첫째로 자본주의하에서 그런 의미로 실현될 수 없는 것은, 예컨대 노동화폐라든가 공황의 근절 같은 것들이다. 민족자결도 그와 같은 식으로 실현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완전히 틀렸다. 둘째로 그런 의미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논박하는 데는, 1905년에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분리된 예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레닌, 사회주의혁명과 민족자결권 (테제))

레닌은 이를 바탕으로 “사회주의가 확립될 때까지 문제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 민족 사회주의자들의 위선과 비겁을 특별히 고려에 넣는 명확하고 정확하게 정식화된 정치 강령으로 피억압 민족의 해방을 요구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운동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러시아혁명 이후에 당시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던 식민지에서 민족주의 운동에 대해서 이렇게 주장했다.

나는 후진국에서의 부르조아 민주주의운동 문제를 특히 강조하고 싶다. 바로 이 문제가 약간의 의견 차이를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코민테른과 각국 공산당이 후진국의 부르조아 민주주의운동을 지지해야 한다고 성명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또 이론적으로도 올바른가의 여부에 대하여 논쟁했다. 이 논쟁의 결과 우리는 ‘부르조아 민주주의운동’ 대신에 민족혁명운동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적당하는 만장일치의 결정에 도달했다. 후진국의 주민 대다수가 부르조아적=자본주의적 제관계의 대표자인 농민이므로, 모든 민족운동은 부르조아 민주주의운동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그런데 여기서 반대론이 제기되었다. 만일 우리가 부르조아 민주주의운동 운운하게 되면 개량주의운동과 혁명운동 사이의 구별이 모두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구별은 최근 후진 식민지 제국주의에서 완전히 명료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이는, 제국주의 부르조아 계급이 피억압 민족 내에서 전력을 기울여 개량주의운동을 이식시키는데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착취국의 부르조아 계급과 식민지 국가의 부르조아 계급 사이의 일정한 접근이 일어났다. 그 때문에 대단히 자주ㅡ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다고 할 수 있는데 ㅡ 피억압 국가의 부르조아 계급은 민족운동을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또 제국주의 부르조아 계급과 협력하여, 즉 그들과 손을 맞잡고 모든 혁명운동과 혁명적 계급을 상대로 투쟁하고 있다. 이 사실은 위원회에서 반박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별을 고려하여, 거의 모든 부분에서 ‘부르조아 민주주의적’이라는 표현 대신 ‘민족혁명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표현 변화의 본뜻은, 공산주의자로서의 우리는 식민지 국가의 부르조아적 해방운동이 진정으로 혁명적인 경우에만, 또 우리가 농민 및 광범위한 피착취 대중을 혁명적 정신으로 교육·조직하려고 하는 것을 운동의 대표자가 방해하지 않는 경우에만 부르조아적 해방운동을 지지해야 하며 또 지지할 것이라는 뜻이다.(코민테른 2차대회 레닌의 보고, 1920년 7월 26일, 코민테른 자료선집2, 동녘)

코민테른에서 채택한 레닌의 입장은 “식민지에서 중간층의 부르조아민주주의운동과 노동자·농민의 혁명운동은 양립할 수 없는 두 세력이라는 입장”(같은 책 주)이라는 인도 공산주의자인 로이의 좌경적인 테제에 반대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대회에서는 혁명적 민족해방운동, 민족혁명운동, 민족해방운동, 혁명적 해방운동, 혁명운동, 혁명적 해방적 조류 등 각국별로 다양하게 표시하였다고 하는데, 이 주장의 본질은 민족운동이 “개량주의운동과 혁명운동”으로 분화됐으며 공산주의자들이 식민지에서 혁명적인 민족해방 투쟁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현숙은 제국주의와 결탁한 현지의 부르주아나 지주들만 보고 민족주의 일반을 반동적으로 변했다고 비판하면서 식민지 내에서 압도적 다수였던 “농민 및 광범위한 피착취 대중”을 무시한다. 그런데 북(조선)에서는 반일무장항쟁을 하면서 제국주의에 맞서 저항하던 노동자와 압도적 다수의 민중은 물론이고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양심적”, “애국적” 지주들조차도 적극적인 통일전선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남만주 일대에서 활발하게 반일 무장투쟁을 하면서도 공산주의자들에게 적대적이었고 심지어 이들을 학살하기조차 했던 양세봉 휘하 구국군조차도 반일항쟁에 있어서 통일전선의 대상이었다. 프롤레타리아 해방이 아니라 반일 민족해방이 통일전선의 공통분모였던 것이다.

반면 당시 맑스레닌주의를 자처하는 “교조주의자들”은 식민지, 그것도 근거지가 없는 가운데 반일 해방투쟁을 하는 당시의 구체적인 현실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소비에트 노선 추종을 관철시키려 하면서 좌경 노선으로 일관하였다. 이현숙은 이러한 역사를 무시하거나 아예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현숙의 입장이 당시에 적용되었다면 좌경적 입장으로 경도될 수밖에 없다.

이현숙은 앞에서 “민족문제에 대응하면서 나타나는 좌경적 오류는 민족문제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들은 미제와의 투쟁, 남북문제 등을 소홀히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맑스가 《자본론》 서문에서 “이는 바로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했는데, 바로 여기에 정확하게 해당하는 말이다. 이는 “민족문제에 대응하면서 나타나는 좌경적 오류는 민족문제를 무시하는 것이”고, “미제와의 투쟁, 남북문제 등을 소홀히” 하는 바로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현숙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지만 이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노사과연)의 민족문제에 대한 관점을 그대로, 가장 명확한 논리적 형태로, 그리하여 가장 체계적인 형태로 분명하게 드러내는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민족끼리 반미자주”하자는 주장을 노사협조주의, 심지어 범죄라고까지 극단적이고 종파주의적으로 매도하는 노사과연의 입장을 가장 극명한 형태로 드러내고 있다.

노사과연에게는 민족은 없다. 오직 민족은 “몰계급적인 개념”으로 부정해야 하는 것이며 오직 “세계적 차원의 계급문제”만이 있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조국은 없다”는 맑스주의를 가장 저급한 형태로 축소, 왜곡시키는 것이고 트로츠키주의 특유의 정치적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노사과연은 민족·동족관계가 파탄하고 적대적 관계로 전환했다는 북의 발표가 있자, 이를 근거로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미제와 그 주구들의 반민족 적대행위로 민족관계가 파탄이 났는데, 이를 “관계”의 파탄이 아닌 민족 자체가 없었다는 근거로 삼고 있다.

1980년대 광주 학살 이후에 타올랐던 반미 통일 운동,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친미 물신 숭배가 판치는 한국에서 미제에 맞서는 반미 민족해방투쟁, 민족·동족관계가 파탄나기 전에 남북 간에 협정들(특히 북의 민족대단결과 통일운동)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이현숙은 “저항적 민족주의”에 대해 “‘저항적’이라는 분홍색을 칠해서 노동자계급에게 강매한다”고 비난하는데, 이는 누구에게 강매한 것도 아니고 강요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규정한 것이다. 이현숙은 광주학살 이후 신군부 도살자들의 배후에 있는 미국에 맞서 거대하게 타올랐던 반미 자주화 투쟁, 통일투쟁을 자신들의 종파주의적 관념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현숙에게는 혁명시인, 민중시인, 민족시인으로 불리는 김남주 시인도 몰계급적인 민족주의자에 불과하다.

“‘반미 반제 통일운동으로 표현된 민중의 항쟁’”은 ‘저항적 민족주의 운동’이라는 부르주아지의 이념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현숙의 주장은 실제로는 “저항적 민족주의”에 대해 “부르주아지”라는 회색을 칠해서 부르주아지에게 공짜로 넘겨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노사과연은 러우전 이후 미제와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 신나찌 세력들을 내세워 치르는 전쟁에 대해 서방 제국주의와 러시아 제국주의와의 투쟁으로 양비론적으로 해석하고, 중국을 “강도와 같은 제국주의”로 규정하면서 집요하게 반미 서방제국주의에 대한 반대투쟁을 회피하고 있다. 노사과연의 민족문제의 실천적 결론은 반미를 대중운동 내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민족관계의 파탄을 딛고 다시 민족·동족관계를 회복하려고 하는 투쟁에 기권하는 것이다. 미일한에 맞서는 조중러 동맹 사이에서 중립, 양비론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미일한 전쟁동맹에 맞서는 투쟁을 물타기 하려는 것이다. 러우전 이후 노사과연의 정치사는 미제국주의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면서 대신 러시아, 중국의 제국주의성을 밝히고 폭로하는데 전력하는 것으로 타락하였다.

노사과연은 그리스공산당의 제국주의 피라미드론을 추종하면서 한 줌도 안 되는 제국주의 국가가 압도적 다수의 인민, 민족을 억압, 착취, 수탈한다는 레닌의 테제가 지금 현실에는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노사과연은 억압 민족 대 피억압 민족의 대립은 자본주의 독점의 발전에 따라 사라지고 없다고 한다. 이들은 독점이 곧 제국주의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곧 제국주의고 그렇기 때문에 독점자본주의, 제국주의 간의 대립일 뿐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과연 “제국주의로부터 신식민지 민족국가의 해방이라는 민족문제”는 현대제국주의 체제 하에서 존재하지 않으며 “민족문제는 순수하게 노자 간의 계급적 문제로, 사회주의 혁명의 문제로, 노자 간의 국제주의적 문제로 전화”된 것인가? 노사과연과 이현숙에게는 현대제국주의 체제 하에서는 “신식민지”는 없다. “신식민지”가 없으니 민족해방의 과제는 없는 것이고 자주권의 과제는 국내 부르주아지와의 계급협조에 불과한 요구이기 때문에 내걸면 안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제국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동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이 바로 민족해방투쟁이 아닌가? 아프리카 니제르를 포함해 사헬지역에서 반프랑스, 반미투쟁,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지에서 나타나는 투쟁이 바로 민족해방 투쟁이 아닌가? 베네수엘라에서 미제의 간섭과 정권교체에 맞서는 투쟁은 민족해방투쟁이 아닌가? 쿠바와 조선에서 미제의 침략책동과 제재에 맞서는 투쟁은 민족해방투쟁이 아닌가? 한국에서 제국주의의 지배에 맞서 민족의 자주와 자결이라는 “민족해방”의 과제는 사라졌는가? 한국에서 분단문제를 해결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민족민주”적 과제는 사라지고 오직 순수 계급문제만 남아 있는가?

한국에서 민족해방의 과제는 미제국주의로부터 자주와 자결을 쟁취하는 문제다. 우리 운동이 경제주의적 협소함으로 고통 받고 있음에 비춰볼 때, 이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몰계급적인 관점이 아니라 가장 의식적으로 정치적이고 계급적인 것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에 이 땅의 “점령군”으로 들어와 강점하고 있는 미제국주의 군대와 미제국주의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정신적 지배로부터 해방을 쟁취하는 문제는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자본주의에서 외형적으로 어떠한 변화가 왔다 할지라도 이러한 역사적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그대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미제국주의 지배로부터 다방면으로 해방되는 문제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민족 분단해결과 통일을 위해서도, 궁극적 해방을 위해서도 전략적으로 중대한 문제다. 남북이 체결했던 4.27판문점 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의 파탄과 오늘날 남북군사협정의 전면적인 파기와 점점 더 일촉즉발로 고조되는 전쟁위기를 막기 위해서도 미제의 군사적 점령과 다방면의 지배, 미일한 군사동맹을 해체하기 위한 투쟁은 절박한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과연 이러한 투쟁이 반동적인 부르주아 민족주의이고 배척해야할 대상인가? 과연 외세 제국주의 자본에 종속, 결탁하며 성장해온 한국의 어느 재벌과 거대 자본가들, 극우들이 친미적이지 않고 반미를 주장하고 있는 사례가 단 한 건이라고 있는가?
4. 부르주아 사상 조류의 일환인 탈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애국주의
이현숙은 “노정협은 ‘노동자의 운명과 민족의 운명은 하나’라고 주장한다. ‘민족주의에 대한 [극도의] 혼란’이다. 부르주아의 운명과 민족의 운명은 하나다. 노동자의 운명은 민족의 사멸과 하나다. 노동자의 운명은 민족의 사멸을 끝까지 완수하는 것이다. 세계 인민이 하나가 되는 공산주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과연 누가 극도로 혼란을 겪고 있는가? 아니면 혼란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가? 노동자계급이 민족의 운명, 즉 1948년 단독정부(단정)·단선(단독정부) 이후 미제국주의가 지배하는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는 사명을 가지는 것이 문제가 되는가? 오히려 노동자계급이 민주주의의 전위가 되어야 하듯이, 민족분단과 통일을 완수하기 위한 주도자가 되도록 고무하는 게 공산주의자들의 임무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부르주아는 자신의 계급적 한계로 인해 부르주아 민주주의조차도 배반하고, 외세 제국주의에 종속된 처지로 인해 분단된 민족의 통일이라는 사명을 수행할 수 없었고 오히려 제국주의를 일방 추종하면서 분단을 영속화 해왔다. 반면 이 땅의 노동자계급이야말로 자본에 착취당하고 제국주의에 의해 지배당하며 분단과 민주주의 파괴라는 이 사회의 역사적 질곡에 의해 고통 받고 해방으로 나아가는 길이 가로막혀 있기에 민족의 운명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는 진보적 계급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주의는 그들의 유해한, 골수까지 부르조아적인 견해를 국제주의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제주의와 세계주의는 서로 어디까지나 적대하는 것이다. 세계주의는 민족성이 없는 것을 의미하고, 민족성의 외부에 서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문화라는 것이 생활의 현실적 기반 위에서 발생하고, 각각의 민족적 투쟁 속에서 발생하는 것인한, 세계주의는 반인민성을 의미한다. 세계주의란, 자유와 독립과 민족주권을 지향하는 여러 민족의 의지를 약하게 하려고 하는 부르조아·인텔리겐차의 발현형태이다.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는 민족을 인정하는 것, 민족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고, 인종이나 민족의 동등한 권리는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다….
공산당과 소비에트국가는 각 민족의 문화적, 진보적 유산의 깊은 존중이라는 정신으로 국민을 교육하고 있다. 소련에서는 형식은 민족적이고 내용은 사회주의적인 문화의 발전, 다민족사회주의 국가의 건설과 강화에서의 노력에 부응하며, 각 민족의 공헌이 높이 평가된다. 소련에서는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의 사상이 철저히 구현되고 있다….
국제주의의 기초에 있는 것이 타민족의 존중이라고 한다면,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존중하지 않고서는 국제주의자로 될 수 없다라고 지다노프는 1948년 1월에 개최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소비에트 음악가회의에서 기술하고 있다.

민족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위해 철저하게 투쟁하고 있는 것은 공산당에 지도되는 프롤레타리아뿐이다.
“애국주의란 고립된 조국의 수백 년, 수천 년이라는 기간에 굳혀진, 가장 깊은 감정의 하나이다.”
라고 레닌은 말하고 있다. 착취적 사회라는 조건에서는 근로자의 애국주의는 조국에 대한 애정을 착취에 대한 증오에 결합하고, 착취자의 속박을 타파하기 위한 투쟁, 조국이 자유롭게 되고 독립하기 위한 투쟁, 조국이 그들에게 있어서 계모가 아니고, 그들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개화시키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주도록 하기 위한 투쟁에 결합한다…
소비에트 애국주의는 국제주의, 여러 민족의 우호라는 강고한 토대에 기초를 두고 있다.
스탈린은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소비에트 애국주의의 힘은 이 애국주의가 인종적, 혹은 민족적 편견에 기초를 두지 않고, 우리 소비에트조국에 대한 성실과 충성, 우리 나라 전민족의 근로자의 형제적 우호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에 있다. 소비에트애국주의 속에는 여러 민족적 전통과 소련 전근로자의 공통의 생활상의 이해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소비에트애국주의는 우리 나라의 전민족·전민족체를 분리하기는커녕, 역으로 이것을 단일한 형제적 가정에 결합시킨다…동시에 소련의 여러 민족은 여러 외국과 민족의 권리와 독립을 존중하고 있고, 이웃 나라와 평화롭고 우호적으로 살아갈 용의가 있다는 사실을 항상 나타내 왔다.”

소비에트애국주의의 본질에 대한 스탈린의 규정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의 보고에 들어가는 새로운 귀중한 보물이고,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의 원칙, 근로자의 민족적 과제와 국제적 과제의 결합의 원칙을 규명하는 면에서의 새로운 전진이다.(아지쟌, 제2장 스탈린의 노작 《마르크스와 민족문제》에 대하여)

“민족적 형식과 사회주의적 내용의 결합”은 사회주의를 추구하거나 사회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중대한 정치적 과제이다. “공산당과 소비에트국가는 각 민족의 문화적, 진보적 유산의 깊은 존중이라는 정신으로 국민을 교육하”는데 열중했음에 반해 이현숙은 “민족의 생활·전통·문화”에는 “삼종지도”와 “남존여비, 군사부일체”, “사대주의” 같은 “봉건적 가부장적 민족성”과 “부르주아적인 것으로 황금만능주의, 출세주의, 한탕주의”가 있다며 이는 “결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하나가 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이현숙은 민족주의를 반동적 민족주의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저항적이고 진보적인 민족주의를 부정하는 논리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이제는 “민족의 생활·전통·문화”를 온통 반동적인 것으로 채색하여 “각 민족의 문화적, 진보적 유산의 깊은 존중이라는” 공산주의 정신을 부정하고 있다.

“저항적 민족주의”를 부정하고 민족일반을 척결해야 하는 악으로 보는 이현숙의 주장은 노동자국제주의를 협소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민족을 적대적으로 보는 부르주아 세계주의에 포섭될 수 있다. 부르주아 세계주의는 다른 나라, 민족을 지배, 침략하면서도 이를 은폐하며 탈민족 세계주의, 사해동포주의, 세계시민주의를 유포하고 있는데, 이현숙은 여기에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쩌다 민족주의에 냉담하게 된 것일까? 소비에트가 붕괴한 후, 미국의 단극적 패권이 추구되었다. 이 패권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추구했다. 미국은 각 나라의 문턱이 사라진 평평한 세상을 원했다. 자본은 생산기지와 시장의 확대를 위해 단일한 규칙에 기반한 세상을 원했다. 각 나라, 각지의 특수성은 사라지고 미국이 대변하는 보편성만이 유일한 규칙인양 인정됐다.

곳곳의 특수성, 지역성은 점점 사라져갔다. 지역의 특수성을 담보해주던 민족주의도 위태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지식인들이 민족주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임지현, 권혁범, 윤해동, 이영훈 등에서 보여지듯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결국 21세기 담론장에서 민족주의는 급기야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탈민족주의 담론이 지식대중들에게 호소력을 가지게 된 데에는 민족주의가 자민족 이기주의라는 직관적 느낌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민족주의는 자민족 이기주의에 불과한 것일까? 이런 인상은 역사상 ‘민족’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나온 판단이다. 민족주의가 집단이기주의라면 민족주의자로 자신을 희생시킨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민족주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먼저 탈민족주의 담론은 한결같이 민족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과장했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정치철학자 나종석은 논문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헤겔연구> 26권, 2009)에서 유행하던 탈민족주의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탈민족주의 담론은 민족주의 여러 형태들에 대한 인식을 추구하기 보다는 민족주의의 특정한 형태, 즉 인종적 민족주의나 억압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를 민족주의의 본래 모습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인다.” 민족주의는 원래 공격적 본능에 충실하다는 주장은 여러 곳에서 들린다. 역사학자 박지향은 아예 이렇게 단언한다. “민족주의는 본래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이념이다.” 사실일까? 정확하게는 민족주의의 특정 측면일뿐이다.(김창훈 칼럼니스트,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프레시안, 2022.10.01.)

이들은 식민지에서 벗어나서 독립을 쟁취하려 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민족주의를 매우 과소평가한다…
실제로 역사 속의 민족주의는 대외적인 경쟁과 억압, 저항을 통해 나타나고 성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외부적 억압에 저항해야 하는 민족이나 나라들에게는 아직도 큰 도덕적 정당성을 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제3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의 경우 특히 그렇다. 그러한 경쟁과 억압이 사라지지 않는 한 민족주의도 사라지기 어렵다…
위의 이야기로 근대주의적 해석이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유럽중심주의적인 이론으로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또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이론이다. 그럼에도 이런 이론이 우리 사회에서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우리 지식인들이 서양이론에 대해 별로 고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양 이론을 보편이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대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상상의 공동체’니 ‘발명된 전통’이니 ‘사회공학’이니 하는 단어들이 지식인들의 상투어가 되어 있고 민족주의는 모든 악덕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민족주의는 한국사회의 문제아인가,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63>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①, 프레시안, 2008.10.31.)

“민족문학이라는 표현이 국제사회에선 극우적 인상을 준다는 점 때문에”, “한국문학이 좀 더 넓고 보편적 지평에 서기 위해선 민족이라는 특수한 가치에서 벗어나야”(`민족문학작가회의` 명칭서 민족문학 빠질 듯, 동아일보, 2007. 1. 24.) 한다는 이유 때문에 한국의 <민족문학작가회의> 도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바꿨다. <민족작가연합>이 민족성과 계급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흐름에 맞서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 운운하는 극우 역사학자들을 비롯해 역사가들 내에서도, 한겨레신문 같은 언론에서도, 심지어 진보적인 지식인 내부에서도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와 기치를 근거로 탈민족을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도 “70년대와 80년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선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형성된 좌파와 민족주의의 20년 공존이 끝나가고 있다는 진단이 학계에서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는 20세기 우리 역사에서 생겨난 수세적이고 저항적인 민족주의와의 결별이라는 점에서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다수 사회과학자들의 진단이다.”(<“좌파+민족주의 20년 동거 끝나” 한국 민족주의의 대전환<上> ‘좌파집권 10년’ 국민실망… 영향력 상실 ‘反美親北’에 대한 대중호응 크게 줄어>, 이한우 기자, 2007.09.03.)라며 이러한 탈민족주의 흐름을 환영하고 있다.

“민족주의 여러 형태들에 대한 인식을 추구하기 보다는 민족주의의 특정한 형태, 즉 인종적 민족주의나 억압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를 민족주의의 본래 모습으로 간주하는” 탈민족주의자들과 이현숙은 논리적 출발을 공유한다. 애초의 의도와 다르게 정치적 결론도 같은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현숙은 “노동자의 운명은 민족의 사멸과 하나다. 노동자의 운명은 민족의 사멸을 끝까지 완수하는 것이다”라며 노동자 국제주의가 민족에 대해 적대적인 것이라고 사고하고 “유해한, 골수까지 부르조아적인 견해를 국제주의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민족 허무주의의 유포로 부르주아적인 세계주의를 유포하고 있다. 이는 맑스(레닌주의) 입장에도 정면 배치된다.

여러분은 동방 여러 민족 공산주의대학에서 했던 나의 연설(1925년)에 불만이다. 나는 그 연설에서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의 시기에 민족어가 사멸하고, 여러 민족이 융합하고, 민족어에 대신하여 하나의 공통어가 나타난다는 테제의 올바름을 부정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나의 언명이 사회주의의 목적인 여러 민족의 접근만이 아니라 그들의 융합이라는 레닌의 유명한 테제에 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여러분은 나의 언명이 세계규모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 뒤에 민족적 차이와 민족어가 사멸되기 시작하고, 민족어가 하나의 공통어로 대체되기 시작한다는 레닌의 테제에도 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분 그것은 전혀 올바르지 않다. 그것은 완전한 오해이다.
이미 위에서 언급했듯이 마르크스주의자에게는 <일국에서 사회주의의 승리>와 <세계적 규모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라는, 종류가 다른 현상을 혼동하는 일은 허용하지 않는다. 이들 종류가 다른 현상이 시간적(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으로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도 서로 다른 두 개의 전혀 다른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동방 여러 민족 공산주의 대학에서의 나의 연설을 인용해보자…

“사회주의의 시대에 모든 다른 민족어가 소멸하고 하나의 인류공통의 언어가 생긴다는 사람(카우츠키)이 있다. 나는 이 하나의 공통된 언어라는 이론을 믿지 않는다. 어쨌든 경험은 이 이론을 부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실이 보여주었던 바에 의하면, 사회주의혁명은 언어의 수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늘여왔다. 왜냐하면 사회주의혁명은 인류의 최하층까지 뒤흔들고 그들을 정치의 무대로 밀어내며, 이전에는 알려지고 있지 않던, 또는 거의 알려지고 있지 않던 일련의 새로운 여러 민족에게 새로운 생활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세계적 규모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 이후 민족의 소멸과 융합에 대한 레닌의 규정으로 옮아가 보자.

“사회주의의 목적은 인류의 소국가에로의 분산 및 모든 민족의 고립을 없애고, 여러 민족을 접근시키는 일에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민족을 융합시키는 일에 있다 ㅡ피억압계급의 독재의 과도기를 통해서만 계급의 일소가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피억압 민족의 완전한 해방, 즉 피억압 여러 민족의 해방·분리의 자유의 과도기를 통해서만 여러 민족의 불가피한 융합이 가능하다.”

다시 레닌의 별도의 규정을 인용해보자…

“여러 민족 및 여러 국가 사이에 민족적 및 국가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한, ㅡㅡ그런데 이 차이는 세계적 규모에서의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독재가 실현된 뒤에도 역시 매우 오랜 동안 유지되는 것이지만 모든 나라의 공산주의노동운동이 국제적 전술의 통일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다양성의 제거도 민족적 차이의 일소(이것은 현재에 있어서는 공상이다)도 아니고, 공산주의의 기본적 여러 원칙(소비에트 권력과 프롤레타리아계급독재)을 민족적 및 국가적 차이에 조응하여 적용하는 일이다….
이상의 인용으로부터 분명해졌듯이 레닌은 민족적 차이의 소멸과 여러 민족의 융합의 과정을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의 시기가 아니라, 오로지 세계적 규모에서의 프롤레타리아계급독재 실현 후의 시기, 즉 이미 세계사회주의 경제의 기초가 놓여진, 모든 나라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의 시기에 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세계적 독재 시기의 제1단계가 민족 및 민족어의 소멸의 개시, 단일공통어형성의 개시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반대로 민족적 억압이 결정적으로 일소될 것인 이 제1단계는 그때까지 억압받고 있는 민족과 민족어의 성장과 개화의 단계, 민족적인 상호불신의 일소의 단계, 여러 민족간의 국제적 연대의 설정과 강화의 단계이다.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세계적 독재의 제2단계에서만, 세계자본주의경제에 대신하는 단일 세계사회주의경제가 형성되는 정도에 따라서, 공통어라는 것의 형성이 시작될 것이다. 왜냐하면 민족은 이 단계에서야 비로소 자신들의 민족어와 함께 하나의 공통된 국제어를 가질 필요ㅡ상호교류의 편의와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편의를 위해서ㅡ를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민족어와 공통국제어가 병행하여 존재할 것이다…
세계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충분히 강고하게 되고, 사회주의가 어려 민족의 생활에 완전히 파고들어서, 여러 민족이 실생활 면에서 민족어보다도 공통어 쪽이 좋다고 확신하게 되는,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세계적 독재 다음의 단계에서 민족적 차이와 민족어는 모든 민족에게 공통된 세계어로 물려주고 사멸하기 시작할 것이다.(스탈린, 제3장 민족문제와 레닌주의ㅡ동지 메시코프, 코봐리츄크 기타 사람들에의 답장)

이처럼 레닌과 스탈린에게 민족어와 민족적 차이의 사멸은 전 세계적 범위에서의 공산주의 1단계도 아닌 2단계에 가서 가능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스탈린은 이를 “민족장래의 대강의 양상”이라고 하고 있다. 전 세계 공산주의 2단계는 국제적 공산주의가 도래하고 나서 수백 년이 걸릴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런데 국제공산주의 1단계도 아닌 2단계에 가서 그것도 완곡한 형태로 민족의 장래에 대해 말한 것과 다르게, 이현숙은 혁명 이전에 이미 민족전반을 사멸시켜야 할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참고로 북에서는 민족의 사멸에 대해 부정하고 민족과 민족문화가 더 풍부하게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민족 허무주의를 넘어서 민족적대주의다.

이현숙이 비판한 “노동자의 운명과 민족의 운명은 하나”라는 노정협의 규정은 혁명 이전 분단사회인 이남에서의 노동자들의 정치적 사명에 대해 말한 것이다. 이현숙은 혁명 직후 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노동자국가를 거부하고 국가의 소멸을 주장하는 무정부주의자들처럼, 오히려 그들보다 더 극단적으로 혁명 이전에 이미 노동자가 민족의 운명을 책임지지 말아야 할 것이며 도리어 민족의 소멸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노사과연은 극단적 교조주의 인식으로 “노동자들에게 조국은 없다…배타적으로 사랑(편애)할 조국과 민족은 없다.”고 하고 있다. 노사과연은 식민지 나라 잃은 설움, 빼앗긴 나라 되찾겠다는 민중의 염원에 대해 “국가는 지배계급의 착취와 억압, 폭력의 도구다”라는 명제를 극단적 교조주의적으로 해석하여 ‘당신들이 빼앗기고 되찾겠다는 나라는 당신들의 것이 아니라 봉건 통치배들의 것이다. 이 나라가 당신들에게 해준 게 무엇이 있는가? 당신들이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고 그 나라에서 권리를 누려본 적이 없는데 무엇을 빼앗기고 무엇을 되찾는단 말인가?’라고 주장할 것이 틀림없다. 위의 주장에서 이와 다를 바 없는 인식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위에서 예를 든 《공산당선언》 일본판 주에서는 “프롤레타리아적 국제연대는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의 조건이며, 민족 주권의 승인에 기반한 국제협력과 평화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외정책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에 의하면 오늘날 미제와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단극 제국주의 지배 체제의 고수에 맞서 반제자주 나라들의 단결을 지지, 옹호하는 것은 21세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다.

각 나라들 간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를 애호하며 제국주의 지배에 맞서 자결을 위해 싸우는 국제적 흐름에 대해 지지하는 것은 진보적인 태도다, 반면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일부 트로츠키화된 교조주의자들이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지에서 반미자주를 내부 계급모순을 들어 반대하고 중국, 러시아를 제국주의로 간주하며 반미자주의 진보성을 부정하고 있다.

애국주의는 식민지 민중의 진보적 열망이기도 하지만 사회주의에서도 진보적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국민적 계급의 지위에 오르고 자기 자신을 국민으로서 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이는 사회주의 애국주의이다.

레닌은 사회주의 애국주의에 대해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우리 대러시아인 사회민주주의자도 이 사상적 조류에 대한 태도를 정해보자. 유럽의 최동부 지역과 아시아의 상당 부분에 걸쳐 있는 강대국 민족의 대표자인 우리가 민족 문제의 거대한 의의를 망각한다면 그것은 꼴사나운 일일 것이다. 특히, 정당하게도 ‘제(諸)민족의 뇌옥(牢獄)’이라고 불리어 온 나라에서, 그리고 자본주의가 바야흐로 이 유럽의 최동부 지역과 아시아에서 수많은 ‘새로운’ 크고 작은 민족들에게 생활과 자각을 일깨우고 있는 바로 이 시대에 말이다. 더군다나 차르 군주제가 수많은 민족 문제들을, 연합귀족평의회와 구치코프, 크레스토프니코프, 돌고루코프, 쿠틀러, 로디체프 일당들의 이익에 맞춰 ‘해결’하기 위해 수백만 대러시아인과 비러시아계 민족들을 징집하여 무장시키고 있는 이 시점에 말이다.

민족적 긍지의 감정은 우리 대러시아인 계급의식적 프롤레타리아에게 낯선 것인가? 확실히,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우리말과 우리나라를 사랑하며, 우리나라의 근로대중 (즉 우리나라 인구의 10분의 9)을 민주주의적·사회주의적 의식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의 아름다운 나라가 차르의 도살자들인 귀족과 자본가들의 손에서 학대와 억압과 능욕을 겪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고통스런 일이다. 이러한 학대와 억압이 우리의 한 가운데서, 대러시아인 속에서 반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이 속에서 라디쉬체프와 데카브리스트와 70년대의 혁명적 라즈노친치를 배출한 것, 대러시아인 노동자계급 속에서 1905년에 힘찬 혁명적 대중정당을 만들어낸 것, 대러시아인 농민 속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전환과 함께 성직자와 지주 타도 투쟁이 시작된 것에 우리는 긍지를 느낀다.(대러시아인의 민족적 긍지에 대하여, 1914년 12월)

레닌에게 “대러시아인의 민족적 긍지”는 사회주의 조국에 와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레닌은 이처럼 혁명 이전에도 “우리말과 우리나라를 사랑하며” 대러시아인의 진보적, 민주적 역사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노동자에게 조국이 없”기 때문에 민족적 긍지의 관점은 버려야할 부르주아적 감정인가?

지금까지 살펴봤던 것처럼, 맑스와 엥겔스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반봉건 민주주의 투쟁, 민족통일을 위한 투쟁, 민족억압에 맞서는 투쟁, 노예제에 맞서는 투쟁으로 확장시키고, 레닌이 민족자결의 관점으로 공허한 국제주의와 싸우고 스탈린이 세계주의와 싸우는 것처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역사적 조건에 따라 부단히 확장되어야 한다.

특히 사회 전반에 반북적대가 뿌리 내리고 이에 반비례하여 친미숭배가 맹목적으로 지배하며, 민족·동족관계가 적대적 국가 관계로 악화되어 분단 척결과 통일 추구는커녕 남북이 전쟁 일보직전의 상황까지 간 상황에서 제국주의를 축출하고 전쟁을 막고 민족 관계를 복원할 임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하다 할 수 있다.
[보론]

제국주의자들의 위로부터의 국제적 계급투쟁에 복무하는 “좌파”

 

스티븐 고완스 아래 글은 제국주의의 (신)식민주의에 맞서 싸우는 아랍의 “민족주의자들”, 특히 민족주의 지도자들에 대해서 “잔인하고 살인적이거나 도덕적인 불명예와 논거로 비난하며 그 국가의 해방 목표가 가짜라고 간주”하는 일부의 “좌파”들의 인식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들 일부의 “좌파”들의 관점은 “제국주의 전쟁을 찬성하는 데에 동원되고” 더 나아가 제국주의자들의 “위로부터의 국제적 계급투쟁에 복무”하게 된다고까지 하고 있다.

리비아, 시리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과 그 나라의 지도자들에 대한 서방세계의(한국에도 횡행하는) 이른바 “좌파”, 심지어 맑스레닌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의 관점이 어떻게 하여 제국주의의 ‘진보적’ 벗들로 전락하게 되는지 알 수 있다. “공적 권력이 없는 사람들만이 억압과 착취에 맞선 계급투쟁에 가담하고 공적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억압의 대리인이라고” 간주하며 조선과 쿠바 같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와 지도자들에 대해 부정적이고 악마화 하는 것은 일종의 (범)무정부주의의 일종이다.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민주적 계획”, “사회화“를 운운하며 사회주의 국유화, 중앙집중 계획은 아래로부터 노동자 인민의 열망과 배치되는 현상으로 간주하는 사고는 레닌 시대의 노동자반대파부터 직접적인 무정부주의자들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도 유행하는 무정부주의적인 사조가 되고 있다.

말로는 정치권력 장악을 부정하지 않고 무정부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의 사고조차 잠식하여 지배하는 이러한 인식을 보면 무정부주의가 오늘날까지도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미국이 재식민지화하려는 구 식민지 지도자들과 관련해 “잔혹한 정권”, “야만적 독재자”, “도덕적 수치”에 대한 도덕적 훼손과 현란한 언사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좌파들은 전쟁을 찬성하는 데에 동원되고 (번역자: 제국주의자들에 의한) 위로부터의 국제적 계급투쟁에 복무한다.

좌파 협력자들은 도덕적으로 지지받을 수 있는 영역을 가지고는 철저히 무기력하게 인식하고 있다. 해방의 목표를 추구하는 모든 국가는 잔인하고 살인적이거나 도덕적인 불명예와 논거로 비난하며 그 국가의 해방 목표가 가짜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따라 공적 권력이 없는 사람들만이 억압과 착취에 맞선 계급투쟁에 가담하고 공적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억압의 대리인이라고 여긴다.

이라크와 리비아의 아랍 민족주의자들은 식민지주의가 그들에게 가했던 불이익으로부터 자국민을 해방시키고 서구의 지속적인 경제적 착취를 종식시키기 위해 국제적인 규모로 계급 전쟁을 벌였다. 그들의 투쟁은 한동안 성공적이었지만, 미국과 동맹국들이 악마화, 포위 공격과 전쟁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억눌렀기 때문에 결국 실패로 끝났다. 워싱턴의 승리는 착취자의 승리였다.

시리아에서 계속되는 아랍 민족주의자들의 계급투쟁을 분쇄하기 위해 워싱턴과 그들의 신식민지 동맹국들과 아랍의 총독들, 인종차별주의(apartheid) 이스라엘 그리고 좌파 협력자들(Leftist collaborators)이 하나로 뭉쳤는데도 불구하고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동시에 이란의 이슬람 공화국은 보다 큰 이슬람 세계를 해방의 대상으로 삼고 서구의 재식민지화 시도에 맞서 자신들의 계급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이란과 미국 간의 투쟁은 미국의 금융, 산업, 상업 및 석유 화학의 이해관계 속에 착취를 계속하기 위해 아직 이슬람 세계에 남아 있는 이란을 개방시키려 하는 워싱턴과의 거대한 계급투쟁이다. 그리고 테헤란은 미국 기업 주주에 대해 이슬람 세계에서 살고 일하는 사람들의 향상을 우선시하는 “저항” 경제를 건설하기 위한 계획을 주도하고 있다. 이 투쟁은 시리아가 중심이 되는 계급투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시리아에 대한 워싱턴의 확대된 전쟁은 아래로부터의 해방투쟁에 대한 위로부터의 확대된 계급전쟁이다. 워싱턴이 치르는 전쟁은 시리아의 아랍 민족주의자들을 악마화하려는 정보전에만 그치지 않고 포위 공세로부터 대리전쟁과 직접적인 군사 개입까지 다방면에 걸친 공격수단에 의존하고 있다.(스티븐 고완스Stephen Gowans, 크루즈 미사일 공격: 시리아에 대한 워싱턴의 장기 계급전쟁의 새로운 단계, 2017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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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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