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창간 104주년 폐간 원년] 기획 정규직ㆍ비정규직으로 나눠진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바꿔내는 길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는 노동자의 지력, 체력, 정신, 숙련, 피땀이 응축된 노동력이 마치 노예 “시장”에서 처럼 상품으로 팔리는 착취체제, 임금노예 체제를 철폐하는 것이다.
남의 노동, 남의 피땀과 노고로 만든 생산물, 생산의 결과를 생산수단을 소유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빼앗아가는 착취구조를 없애야 한다.
자본가들이 전적으로 소유하는 토지는 원래 지구의 일부분으로 인류의 공동소유물이며 후손에게 물려줘야할 공동의 자산이다.
자본가들이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공장, 기계, 원료 등은 노동자들이 집단적 노동으로 만든 과거 노동의 집적된 산물이다.
기업의 성장 역시 노동자들의 전체의 노고, 창조적 노력이 깃든 노동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거대기업)자본가들은 보통 착취적 성격, 노동지휘 역할 관리노동도 하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기업소유 역시 사회적 화폐자본을 집중하는 주식회사 덕택이며, 이 조차도 불법ㆍ편법의 주식소유 승계와 다단계식 주식 지배 소유 구조 덕분이다.
기업생산력의 증대 역시 전 사회적 과학기술 발전의 성과 덕분이며, 여기에도 노동자들의 집단적 노고와 노동이 들어가 있다.
자본가들이 기업, 공장을 소유할 아무런 역사적, 합리적, 도덕적 근거가 없다. 그런데도 남의 노동의 결과를 합법적으로 빼앗아가는 착취사회의 법과 소유권, 이를 폭력으로 비호하는 국가권력의 힘으로 자본가들의 기업, 공장에 대한 소유권은 마치 자연적 권리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당면하게는 정규직ㆍ비정규직으로 나눠진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철폐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의 유연화에 바탕을 둔 비정규직 제도를 철폐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제도를 철폐하여 상시적이고 안정적인 노동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중층적, 다단계적인 기업구조인 죽음의 외주화를 없애는 것이다.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불법파견을 없애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내 1, 2, 3차 하청의 중첩돠 분할구도를 없애는 것이다.
장시간, 저임금, 과도노동, 과소휴식으로 점철된 비정규직의 임금ㆍ노동조건을 향상, 개선하는 것이다.
정리해고법, 파견법ㆍ기간제법 등 반노동 악법을 철폐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결사권, 파업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으로 대폭 인상하는 것이다.
노조법 2, 3조 거부권을 거부하고 노조적대, 말살 정권을 타도하는 것이다.
최근 조선일보에서는 [창간 104주년 공동기획]의 일환으로 한석호 같은 비열한 인사들을 내세워 “전태일 재단-조선일보” 공동으로 ‘12대88의 사회를 넘자’며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없애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 비열한 캠페인에는 자본가들이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숨어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만들어 노동자들을 무한착취하고 막대한 이윤과 부를 독차지했던 자본가들에 대한 책임추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조선일보는 가증스럽게도 ‘12대88의 사회를 넘자’고 하지만 이는 80대 20도 모자라 90대 10, 99대 대자본1이 지배하는 극단적 불평등 사회를 12의 정규직이 88의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구조라며 둔갑시켜 현실을 호도하고 있다.
이들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방식은 정규직의 상대적 고임금을 깎아서 그 중 일부를 비정규직 임금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궁극목표는 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어 비정규직 일색의 ‘평등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2년 파견 뒤 정규직 전환이라는 파견법의 취약하고 미진한 독소를 더욱 더 악용하여 4년 파견으로 고용을 더 안정화 시키겠다고 기만하고 있다.
저항과 투쟁의 상징,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나눔과 상생”, (자본과의 )협조, 양보로 바꾸겠다고 하고 있다.
전태일이 어린 ‘여공’에게 풀빵을 나눠준 동정과 연민과 같은 인간적 행위는 이 불의한 세상과 타협없이 싸우겠다는 열사의 헌신과 희생, 결단이라는 숭고한 세계관, 실천으로 고양된 것이지 자본가들한테 양보하고 타협하고 협조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이들 자본가들과 조선일보의 논리의 근저에는 “임금기금제”라는 악명 높은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있다.
이는 1800년대 초반 대두돼 1830년대와 1840년대에 자본가들한테 폭발적 인기를 끌었는데,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 투쟁이 격화되고 일부 선진적 노동자들이 임금인상과 노동조건을 개선하자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악한 부르주아 변호인들이 임금은 한정된 기금과 같아서 특정 영역의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은 다른 영역의 노동자들에게 갈 임금과 권리를 빼앗아온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임금인상과 권리쟁취 투쟁은 무용하다는 이데올로기였다.
맬더스는 어떠한 나라든지 정확히 결정되고 제한된 ‘생계수단기금’이 존재한다고 이미 주장한 바 있다. 만약 노동자들에게 너무 적은 생계수단이 돌아간다면 이것은 단지 그들 자신의 지나치게 빠른 인구증식의 결과이다…
멜더스의 충고에 따르면, 노동자에게 있어서 임금이 상승하는 유일한 길은 아이를 낳는 것을 지연시켜 그들 자신의 숫자를 감소시키는 경우뿐이다. 동맹파업은 노동자 임금의 장기적 상승을 가져오기보다는 그들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본축적 속도를 감소시켜 임금기금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어느 단체의 노동자들이 보다 높은 임금을 받게 될지라도, 이것은 총임금기금 중에서 이제 상대적으로 적은 몫을 받게 될 다른 단체의 노동자들에게 고통만 가져다줄 뿐이다…
그는(매컬록) 임금기금설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그것은 노동자를 부양하고 고용하는 한 나라의 능력이 의존하는, 자신이 소유하는 임금지급에 적용할 수 있는…일정량의…자본이다. 이 사실을 예증하기 위해 임금지급에 충당되는 한 나라의 자본이 밀로 환산해 10,000,000쿼터의 양에 해당한다고 가정하자. 그 나라의 노동자수가 2백만이라면 각. 노동자의 임금이 밀 5쿼터라는 것은 명백하다.'(아이작 일리치 루빈, 경제사상사1, 함상호 옮김, 지평)
그러나 이는 자본가들의 이윤을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만들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봉쇄하고자 하는 자본의 사기적 이데올로기였다.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은 자본의 이윤의 감소를 의미할 뿐이었다.
또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전반적으로 임금이 상승하면 보다 많은 생필품을 요구하게 되고 이로써 더욱 많은 생계수단이 생산된다는 사실을 볼 때도 이 논리는 사실과 정반대에 불과하다.
이들은 하후상박 논리를 들어 정규직의 임금삭감을 정당화 하는데 전노협 당시 제기된 하후상박은 선파업 후교섭도 불사하는 파업투쟁으로 15프로, 20프로씩 임금인상을 쟁취하고 노동자들 내부의 임금격차를 좁혀 노동자의 단결을 도모하고 전체 노동자의 삶과 노동조건을 상향으로 개선하는 것이었다.
최근 수년 간 최저임금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생활임금이 명목적으로 동견 내지 최소 인상되었고 물가인상에 비해 실질임금은 대폭 삭감되었다.
노동자들이 보통 사치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야채, 고기값, 기름값, 가스비, 교통비의 대폭인상과 고금리로 인한 부채의 대폭 상승 등은 노동자들의 생활고와 빈곤을 대폭 악화시켰다.
조선일보는 MZ세대 운운하며 청년과 중장년, 일부 정규직 청년과 다수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을 교묘하게 이간질 시켰는데 이는 임금기금설을 세대별, 세대 내로로 적용하는 것이다. 청년의 부모와 형제 자매의 임금삭감은 바로 청년의 삶의 악화로 나타날 뿐이며 중장년 노동자들이 청년의 생물학적 미래임을 봤을 때 자본과 조선일보의 분열 통치 이데올로가 얼마나 사악한지 알 수 있다.
조선일보 등은 노동자들 내부를 청년과 최저임금 투쟁에 대해 소상공인들과 노동자들 사이를 이간질하기도 하는데, 오늘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나 실업으로 내일의 소상공이 될 수 있고, 오늘의 소상공인이 영락하거나 파산하여 내일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인민의 가족들이 대개 노동자와 소상공인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볼 때도 이러한 분열이데올로기는 사악하다. 더욱이 오늘날 자본의 정치꾼들이 선거 때면 전통시장을 찾아드는데, 영세 상공인들의 파산과 처지 악화가 재벌의 시장 독점과 이들의 은행부채 증가, 건물세, 이 사회가 강요하는 소상공인들 간의 경쟁격화 등으로 인한 것인데 오늘날 사기꾼 정치꾼들이 이를 해결할 수도 없거니와 이에 시장을 나서면 이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서도 이를 노동자와 소상공인들 간의 을들의 경쟁과 대립으로 전가, 둔갑시키고 있다.
창간 104주년을 맞는 조선일보 같은 사악하고 파렴치한 언론들이 폐간 원년을 맞게 하자.
여기에 전태일 열사를 팔아 열사와 노동자를 모욕하는 재단의 배반자들과 사기꾼들을 척결하는 역사발전이며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더 나은 삶과 권리를 누리는 지름길이다.
노동력이 시장이 되는 착취체제를 철폐하자.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고 생산자가 주인되는 사회를 만들자.
임금 노예제를 영속화 하는 자본가착취 양당을 분쇄하자.
비정규직ㆍ정규직 단결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철폐하자.
조선일보와 자본의 사악하고 비열한 변호자들, 배반자들을 척결하자.
이 기사를 총 93번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