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무하는 선거 방침에 대한 확고한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총선 토론 전문)

– 레닌과 볼셰비키의 선거 원칙과 전술을 2024년 우리의 방침으로 삼는 것은 낡은 것인가?

(총선 토론 전문)

 

1. 판단의 잣대를 세우자

부르주아 진영 내에서도,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지만 ‘진보진영’ 내에서도 총선에 대한 행보가 저마다 다르고 입장이 저마다 다르다. 난무하는 저마다의 행보와 입장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세워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내가 옳으니 네가 틀렸으니 아무리 논란을 벌여도 그 올바름과 정당성을 판단할 정치적 기준이 없게 된다.
쏘비에트가 해체됐다고 러시아혁명이 낡은 것이 아니듯이, 21세기에도 레닌과 볼셰비키의 선거 원칙과 전술을 우리의 방침으로 삼는 것은 낡은 것이 아니다. 낡기는커녕 우리의 원칙과 입장의 확고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는 우리가 (자주적)맑스레닌주의를 표방하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레닌과 볼셰비키의 원칙과 입장이 자본주의 선거제도와 의회에 대해 진보적 인류가 견지해야할 가장 올바르고 풍부한 입장으로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당면 총선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선거뿐만 아니라 선거제도를 뒷받침 하는 의회제도를 살펴보아야 한다. 봉건제의 선출되지 않는 절대권력에 맞서 보통선거제는 진보적 의의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 역사에서도 군부독재에 맞서 직선제는 진보적 의의를 가지고 있었으나 보통선거제가 확립된 오늘날 의회제도는 선거를 통해 자본주의 권력을 영속적으로 재생산하는 장치가 되어버렸다.
엥겔스는 보통선거가 몇 년에 한 번 누가 우리를 지배할지 결정하는 기만적 수단이라고 신랄한 어조로 자본주의에서 선거의 본질을 폭로했다. 오늘날 누가 더 부패하고 파렴치한지, 누가 더 인민대중을 잘 속이고 기만하는지 이전투구, 출세의 장으로 변해버린 양당 지배체제의 현실이 엥겔스의 말을 진실로 입증하는 듯싶다. 그러나 이로부터 선거는 나하고는 무관한 저들만의 잔치니 관심을 가지지 말고 기권하고 자기일이나 열심히 하자는 결론이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는 여론기관을 장악하고 이 자본주의 착취·억압질서를 합법적으로 재생하는 장이 되었지만 선거 시기에 정치 무관심과 혐오가 팽배한 가운데서도 대중들의 정치적 관심이 집중되고 권력이 재편되고 선거결과가 노동자계급과 대중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레닌이 의회제도가 역사적으로 폐물이 되었지만 정치적으로 폐물이 된 것은 아니라고 한 것은 이러한 점을 잘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2. 역사적으로 폐물이 된 의회·의회주의

역사적 폐물의 관점에서 선거를 통해 점진적으로 의회 내에서 의석을 확장시키고 이로써 다수당이 되거나 선거로 권력을 잡아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변모시킨다는 것은 선거에 대한 환상이다. 이는 비단 볼셰비키의 원칙이어서만이 아니고 인류의 역사가 희비극적으로 말해주는 진실이다.
독일 사민당, 영국 노동당 등 자본주의 내에서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아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하는 세력들이 얼마나 반노동자적이고 반민중적으로 타락했으며 심지어 제국주의의 추악한 대변자가 되어 다른 나라에 대한 침략전, 약탈전을 자행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독일 사민당은 러시아혁명을 반대하고 혁명 지도자 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를 참살하고 독일혁명을 분쇄했으며 1차 세계대전에서 제국주의 전쟁하는 전쟁의 도구로 전락했다.
‘제3의 길’로 악명 높은 영국 노동당은 신자유주의 첨병이 됐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팔레스타인을 침략, 학살하는 이스라엘 시오니스트를 지지하는 극우 파쇼적 면모를 보이기조차 한다.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의 치프라스는 국제금융자본과 제국주의에 굴종해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긴축정책에 앞장서 일찌감치 파산했다.
공산당 이름을 내걸고 자본주의 선거와 집권을 통해 사회주의로 평화적으로 이행한다고 하는 유로 코뮤니즘 정당이 타락한 사례도 예외는 아니다.
러시아혁명이라는 혁명으로 탄생한 볼셰비키당은 국제 제국주의의 침략과 반동들의 내전을 극복하고 이어서 사회주의 건설에 성공하고 독일 파시즘을 분쇄한 영웅적인 당이었으나 수정주의자 후르시초프의 집권 이래로 평화이행노선, 프롤레타리아 독재 대신 전인민의 국가 노선, 제국주의와의 협조 및 투항, 제국주의 문화 공세에 굴복하고 이 우경노선이 고르바초프 때 정점에 달해 부르주아 다당제를 승인하고 사유화를 도입하여 결국 옐친 도당에 의해 자본주의로 복귀하였다.
이 수정주의 경향은 중소분쟁으로 국제공산주의 국가, 세력들 내에 심각한 분열을 야기하였다. 뿐만 아니라 국제공산주의 운동을 유로 코뮤니즘으로 타락시켰으며, 혁명의 실질적 건설자인 스탈린을 악마화 하고 소비에트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려 서구 유럽과 자본주의 전반에서 무정부주의적이고 반혁명적인 신좌파 다원주의 사상을 창궐하게 하였다.
유로코뮤니즘은 유럽뿐만 아니라 대다수 공산주의 운동에 악영향을 미쳤다.
비극적으로 패배했지만 압도적인 국제 제국주의 세력의 지원을 등에 업은 프랑코 파시스트 독재에 맞서 영웅적으로 투쟁했던 스페인공산당은 스페인 내전 패배 이후 극심한 패배주의 속에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우경화 영향을 받아 맑스주의 혁명적 원칙을 버리고 유로 코뮤니즘 정당으로 타락했다.
그람시의 혁명적 전통을 이어 받은 이탈리아 공산당은 이후 유로 코뮤니즘으로 타락하여 우경화를 지속하다가 쏘련 해체 이후에는 계급정당이 아닌 사회민주주의 국민정당인 좌파 민주당으로 탈색하였다. 이후 2006년 좌파민주당은 올리브동맹으로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부터도 후퇴하여 반베를루스쿠니 연합으로 미국식 민주당을 지향하며 집권하였으나 결국 반노동 정책으로 일관하고 아프가니스탄과 레바논에 파병하여 제국주의 침략에 앞장서다가 2008년 다시 우파 베를루스코니한테 권력을 빼앗겼다. 그런데 쏘련 해체 무렵인 1991년 공산당의 우경화를 반대하며 창당한 이탈리아 재건공산당 역시 이 연정에 참여하여 연정 유지를 위해 민주당의 이중대가 되어 동반 타락해 갔다.
한 때 일제의 타도와 조선의 식민지 해방을 염원했던 진정한 청년 공산주의자 마키무라 고를 배출했던 위대한 일본 공산당은 중소분쟁 당시 중국공산당의 입장을 취했으나 이후 후르시초 수정주의 소련공산당을 지지한데 이어 마침내 천황제를 지지하고 조선을 반대하는 반공 기회주의 정당으로 타락했다.
1970년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고 사회주의 조치를 취하다가 1973년 미제와 미제 후원을 받는 피노체트 군부세력들의 쿠데타로 비극적으로 생을 마쳤던 살바데르 아옌데의 비극은 아직까지도 선거를 통한 권력장악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도 남아 있다.
이는 선거를 통한 권력장악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근거가 아니라 설사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 해도 제국주의와 반혁명 세력들의 공세를 분쇄하지 못한다면 혁명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뼈아픈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볼리바르 혁명, ’21세기 사회주의’ 실험으로 유명한 차베스의 권력 장악으로부터 시작한 베네수엘라혁명은 1997년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 그런데 차베스로부터 현 대통령 마두로까지 미제와 미제의 주구인 반혁명 세력들의 준동에 맞서 권력을 강화하고 전면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로 나아가지 못하고 중도반단 한다면 레짐 체인지로 반혁명으로 복고할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맑스와 엥겔스가 파리꼬뮌의 경험을 통해 관료군사 국가 기구를 파괴해야 한다는 교훈과 레닌의 “혁명의 근본문제는 국가권력의 문제다”라는 엄연한 진실이 21세기라고 해서 달라지거나 낡았다고 할 수 있는가?
한국에서도 진보정당들이 연립정권이나 단독권력으로 집권한다 하더라도 미제의 군대 진주와 정치·군사·경제·문화적 영향과 군사동맹 체제, 국내외 재벌의 대기업, 은행소유, 광범위한 토지소유 같은 생산수단 지배, 국정원 같은 파쇼기구, 국가보안법과 반민주 악법 및 노동악법, 조중동, 종편 같은 언론기관 등 국가관료 기구와 제반 억압·통제장치를 내버려두고 혁명적 조치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진보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인가.

3. 봉건 짜르체제 하에서 볼셰비키의 다채로운 의회투쟁

그런데 선거와 의회제도, 제반 정치제도, 기구들이 우리에게 역사적 폐물이 되었다고 인민대중에게 정치적으로 폐물이 된 것이 아니다. 여전히 대다수 대중들은 끊임없이 기만당하고 배신당하고 정치혐오와 불신에 사로잡히면서도 선거라는 수단으로 정권교체로 자신의 삶이 조금이라도 변화하고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 속에 선거를 기대하고 인물교체로 변화를 원하고 선거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다. 따라서 우리는 선거에 기권해야 하기는커녕 할 수만 있다면 후보자를 통해 선거 시기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레닌과 볼셰비키가 선거에 참여하던 당시와 지금은 시대 상황과 조건이 판이하게 다르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보편선거제가 발전하지 못했다. 당시 러시아의 권력은 봉건짜르 황제권력이었다. 러시아는 절대권력 체제고 유럽반동의 보루면서도 금융적으로 프랑스에 종속돼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그, 모스크바 같은 도시에서는 푸칠로프 공장 같이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비참한 노동조건 속에서 노동하고 있었다. 합법적인 노동조합이 존재하기도 어려웠다. 일부 대도시와 달리 절대 다수의 인구는 농민들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러시아 노동자 인민은 한 편으로는 자본주의 발전으로, 다른 한 편으로는 봉건 절대군주 체제로 인한 저발전과 후진성으로 인해 이중의 고통을 당해야 했다.
1905년 러시아에서 1차 혁명이 일어나자 짜르체제는 무자비하게 봉기를 진압하면서도 10월에는 당시 총리로 있었던 블리긴의 이름을 따서 의회를 공언하고 1906년 의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의회는 오늘날 보통선거제로 만드는 의회가 아니라 의원들은 아무런 권한도 없고 황제가 법률안을 승인하고 해산권도 가질 수 있는 자문의회격이었다. 이 의회는 재산에 따라 투표권이 차등 지급됨으로써 부자와 지주가 수십 표의 권리를 행사하기도 하였다. 또한 도시와 농촌지역구가 분리되고 노동자지역구가 분리되어 차등적으로 투표권이 주어졌다. 더욱이 이 선거제도는 직선제도 아니었고 중층 간선제였으며 노동자지역구는 선출할 대표자가 극히 적었다.
레닌은 블리긴 총리와 백작 및 공작들이 기초한 이른바 블리긴 의회 초안을 이렇게 폭로했다.

모든 법률안의 심의(그 이상은 아니다!)와 처리를 위해 (1) 심의원 (2) 국정회의의 두 개의 기관이 설치된다. 법률안의 제출권은 심의원의 전원과, 국정회의의 적어도 20명의 의원에게 주어진다. 법률안은 국정회의에 의해 심의ㆍ채택된 후 심의원에 회부되고 최후로 짜르의 재가를 받는다. 짜르는 법률안을 어떤 형태의 법률로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든지 혹은 완전히 이를 기각한다.
불리긴’헌법’은 이렇게 하여 오로지 자문위원으로서의 상하양원을 창설하고 전제를 전혀 제한하지 않는 것이다! 상원, 즉 심의원은 60개주(폴란드의 각주를 포함한) 귀족으로부터 선출되는 60명의 선출위원과 관리와 장교 중에서 짜르가 임명하는 의원으로 구성된다. 의원의 총수는 120명을 넘지 않는다….
하원, 즉 국정회의는 오로지 선출의원으로 구성된다…
선거는…3단계제도이다.(《레닌의 선거와 의회전술》Ⅰ, 태백)

볼셰비키는 혁명적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 기만적인 블리긴 의회 보이코트를 선언했다. 10월의 정치파업으로 이 선거는 실시되지 못하고 짜르 권력은 1905년 10월 17일 입법기능을 가진 의회개설을 약속하였다. 이후 1차 두마에서 4차 두마까지 블리긴 의회 초안 보다는 진전된 변화는 있었지만 기본적인 의회의 성격은 그대로 유지됐다.
볼셰비키는 이후 초기 두마 선거에서도 보이콧트*했지만, 레닌은 혁명적 위기가 고조되는 1905년을 제외하면 1906년, 1908년, 그리고 이후 몇 년 간의 보이콧트 전술은 오류였다고 선언했다. 특히 혁명운동이 여진이 남아 있는 1906년 보이콧트보다 이후 정세가 가라앉은 이후의 보이콧트는 “아주 중대하고 정정곤란한 오류였다”고 자기비판하면서 선거에 적극 결합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 레닌은 보이코트에 대해서도 “단순히 선거로부터 물러나 있다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선동을 심화시킨다는 의미에서 현실적인 이익을 가져오는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전력투구해야 한다…적극적 보이콧트는 “선동을 10배가 하는 것, 도처에서 집회를 조직하는 것, 선거집회에 우격다짐으로 끼어든다는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것을 이용하는 것, 시위, 정칮거 파업 등을 조직하는 것”이라면서 “한층 대규모로 역량을 배가하고 압력을 배가하여 선동을 수행하고 혁명세력을 결집하고 조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내에서 멘셰비키와 볼셰비키가 대립, 갈등하고 있었고 볼셰비키 당 내에서도 선거방침을 전환하면서 비합법 운동을 청산하고 의회활동에 집중하자는 청산파와 합법적인 의회활동을 전면 거부하자는 소환파가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이러한 좌우익 기회주의 입장을 배격하면서 레닌과 볼셰비키당은 다채롭고 풍부한 선거투쟁을 전개하였다.
심지어 1917년 2월 혁명 이후 10월혁명으로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은 직후에 혁명 이전 선거제도로 치러진 제헌의회 선거에도 볼셰비키는 참여했다. 그러나 볼셰비키는 이 선거를 볼셰비키의 권력장악을 용이하게 해주는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선거결과와 상관없이 제헌의회를 해산해버렸다. 이에 대해 카우츠키는 볼셰비카 독재권력이 되었다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레닌은 이에 대해 카우츠키를 프롤레타리아의 배신자로 낙인찍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제도의 근본한계를 폭로하고 무장한 소비에트 권력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레닌과 볼셰비키가 선거에 참여하던 당시와 지금은 시대 상황과 조건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교훈으로 삼을 것이 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정반대다. 짜리즘이라는 절대군주제 하의 불법적인 조건 내에서조차도 합법적인 대중공간을 적극 비집고 들어가 활용하여 선거투쟁을 대중과 결합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고, 심지어 국회 내에서 혁명적인 국회활동 전형을 만든 볼셰비키의 선거 참여 원칙과 기준, 전술, 연대연합(선거협정 및 동맹) 원칙과 조건 등은 매 측면에서 더욱더 우리의 활동근거로 삼아야 한다. 의회제도가 거의 발전하지 않았던 시기에조차 의회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면 의회제도가 고도로 발전한 21세기에는 더욱더 볼셰비키의 경험으로부터 활동의 교훈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레닌과 볼셰비키에게 부르주아 선거 참여는 혁명을 하기 위한 활용 수단에 불과했다. 주지하듯, 의회와 집권을 통해 기존 체제를 분쇄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거는 언제나 전술에 불과하고 수단에 불과했다. 레닌과 볼셰비키의 선거에 임하는 당의 기본 원칙과 전술은 다음과 같았다.

볼셰비키는 선거운동을 선전선동을 위한 기회로, 대중을 조직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했지 결코 단순한 의석 몇 개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으로 격하시키지 않았다. 물론 의회 안팎에서 의원단이 하는 활동은 혁명운동에 대단히 중요했다. 그러나 선거운동 자체도 상당히 중요한 것이며 당선되기 위하여 사회민주주의의 혁명적 관점을 숨기거나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일 없이 선거운동 전 과정을 통하여 혁명의 순수성을 유지해야 했다.(Aㆍ바다예프, 볼셰비키는 어떻게 의회를 활용하였는가?)

사회민주당은 의회주의(대의제 의회에의 참가)를 프롤레타리아를 계발, 교육하여 자주적 계급정당으로 조직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 노동자해방을 목표로 하는 정치투쟁의 하나의 수단으로 보고 있다. 이 마르크스주의적 견해는 사회민주주의를 한편으로는 부르조아민주주의로부터, 다른 한편으로는 무정부주의로부터 결정적으로 구별하는 것이다.
부르주아자유주의자와 부르조아급진주의자는 의회제도를 국사일반을 수행하는 ‘자연스럽고’ 유일하게 정상적이며 유일하게 합법적인 방법으로 보고, 계급투쟁과 근대의회제도의 계급적 성격을 부정한다.
부르조아는 의회제도가 어떻게 부르조아적 억압의 무기인가를 노동자가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또한 역사적으로 제약되는 의회제도의 의의를 노동자가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전력투구하며 갖가지 방법으로, 갖가지 계기를 통하여 눈가리개를 씌우려 노력한다.
무정부주의자도 의회제도의 역사적으로 규정되는 의의를 평가하지 못하고 이러한 투쟁수단을 싸잡아 거부한다. 그러므로 러시아사회민주주의자는 무정부주의자와도 단호하게 투쟁하고 있으며, 의회를 기반으로 하여 기존권력과의 흥정에 의해 혁명을 가능한 종식시키려 하는 부르주아의 노력과도 단호하게 투쟁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자신들의 의회활동 전체를 노동운동의 전반적 이익과 현재의 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에 있어서의 프롤레타리아의 독자적 임무에 완전히 그리고 무조건 종속시키고 있다…
우리는 다른 당과는 달리 이 투쟁을 계급투쟁의 이익에 종속시킨다…
따라서 전 선거투쟁, 전국회투쟁의 계급적 자주성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반적 임무이다. 그밖의 부분적 임무는 이것에 의하여 부정되지는 않지만 항상 일반적 임무에 종속되며 여기에 부합하지 않으면 안된다.(사회민주당과 선거협정)

4. 운동의 자주성과 능수능란한 선거협정 사이에서

노동자계급의 혁명운동에서 정치적 자주성과 독자성, 혁명성을 갖는 것은 운동의 영원한 원칙이다. 그러나 그것이 대중들로부터 고립을 자초하거나 진보적 운동 전체의 대의 보다는 자신들만의 원리를 가지고 대중들과 분리되거나 담을 쌓는 분파주의나 종파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맑스주의 운동은 운동의 독자성을 분명하게 한다는 것이 다른 정파와의 유연한 연합이나 협정이나 동맹을 거부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원칙은 선거시기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맑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선언》에서 이미 이러한 원칙은 확립됐다.

공산주의자는, 노동자계급이 직접 당면하는 목적과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싸우는 동시에, 현재의 운동 속에서 이 운동의 미래를 대표한다. 프랑스에서 공산주의자는 보수적 및 급진적 부르주아지에 반대하고 사회민주당과 제휴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대혁명의 전통에서 유래하는 문구나 환상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권리는 남겨두고 있다…
독일에서 공산당은 부르주아지가 혁명적으로 행동할 때에는 부르주아지와 공동으로 절대군주, 봉건적 토지소유자 및 소시민층과 싸운다.
그러나 공산당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와의 적대적 대립에 대한 가장 명료한 의식을 노동자에게 주입시키려고 잠시도 태만히 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부르주아지의 지배와 함께 초래될 사회적 및 정치적 제조건을 독일의 노동자가 바로 그대로 무기로써 부르주아에 대항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독일에서 반동적 제계급이 쓰러진 뒤에 즉시 부르주아지에 반대하는 싸움이 시작되게 하기 위해서다…
요컨대 공산주의자는 어디서나 현존의 사회상태 및 정치상태에 반대하는 모든 혁명운동을 지지한다.
그 모든 운동에 있어서 공산주의자는 그것이 얼마만큼 발전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가와는 관계없이 소유문제를 운동의 근본문제로 강조한다.(범우사, 서석연 옮김)

종파주의와 분파주의를 거부하는 맑스주의는 “어디서나 현존의 사회상태 및 정치상태에 반대하는 모든 혁명운동을 지지”하지만 동시에 공산주의혁명이라는 “운동의 미래를 대표”하기 때문에 운동의 자주성, 혁명성을 분명히 한다. 이에 따라 “당면하는 목적과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싸우”기 위해 당시의 최고 나쁜 적, 주적에 맞서 광범위한 통일전선을 구축하지만 동시에 제휴 세력에 대해 환상을 가지지 않고 비판적 태도를 분명하게 취한다.
이에 따라 봉건제를 폐지하고 부르주아 혁명이 완수된 프랑스에는 공산주의자는 여타의 부르주아지에 반대하면서 소부르주아 정당인 사회민주당과 제휴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휴를 하는데 있어서도 “대혁명의 전통에서 유래하는 문구나 환상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 즉 프랑스대혁명 과정에서 나타났던 자유, 평등, 박애의 문구가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부르주아지의 착취와 거래의 자유, 계급 모순을 은폐하는 박애 등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 계급협조, 화해적 관점을 설파하는 사회민주당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권리”라고 명시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계급투쟁이 고조되는 것을 목격한 독일의 부르주아는 봉건제가 아직 무너지지 않은 시점에서도 봉건세력과 프롤레타리아 계급 사이를 오가며 기회주의적이고 보수적 태도를 취했다. 맑스와 엥겔스는 이에 따라 독일에서는 “부르주아지가 혁명적으로 행동”하여 봉건세력에 맞서 싸울 때에는 정치적으로 연합하지만, 이때에도 부르주아지의 착취적 본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부르주아지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고수하고 봉건질서가 무너지고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잡을 때에 노동자들은 곧 바로 부르주아지에 반대하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공산주의자는 사회의 발전 수준과 상관없이 “사적 소유 철폐”를 “운동의 근본문제로 내세운다.
이러한 기본원칙은 이후에도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당파에 대한 혁명적 노동자 당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혁명적 노동자 당은 자신이 전복하고자 하는 분파에 대항할 때에는 이들 민주주의 당파와 공동보조를 취한다. 이들 민주주의 당파가 전진을 멈출 때 언제나 이들 민주주의 당파에 반대한다.
민주주의적 소부르주아들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해 사회 전체를 변혁할 생각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사회 상태가 변화되어 현존 사회가 가능한 한 자기들이 견딜 만하고 살기 편하게 되는 것을 갈망한다.(맑스·엥겔스, 《동맹에 보내는 중앙위원회의 1850년 3월의 호소》)

이러한 기본원칙은 선거에서도 구체적으로 적용된다.

Ⅱ. 모든 곳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파 입후보자들과 나란히 노동자 입후보자들을 내세울 것. 후보자는 가능한 한 동맹원들 가운데서 내세우고 모든 가능한 수단을 다 동원하여 그들이 당선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동자 입후보자가 당선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 할지라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입후보자를 내세워야 한다. 자신들의 독자성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역량을 가늠하며 자신들의 혁명적 입장과 자신들의 당의 관점을 공공연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이때 노동자들은 예를 들어, 그렇게 하면 민주주의 당파를 분열시키며 반동에게 승리의 가능성을 줄지 모른다고 하는 민주주의자들의 허튼소리에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모든 공문구들은 결국 프롤레타리아를 기만하기 위해서 하는 소리들이다. 그러한 독자적인 진출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당이 이루게 되는 진전은 몇 명의 반동분자들이 대의 기관에 들어감으로써 생길 수 있는 불이익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만일 민주주의파가 처음부터 단호하게 테러리즘으로 반동에 맞섰다면, 선거에서 반동배가 끼칠 영향력이란 이미 애초부터 절멸되어 있을 것이다.”(같은 글)

노동자들은 선거에서도 당선 가능성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독자적 후보를 내세우면서 혁명적 입장을 선전해야 한다. 이럴 때 이미 1850년경에도 “민주주의 당파”의 기만적인 사퇴압력이 거세가 일어났다. 지금도 횡행하고 있는 “민주주의 당파를 분열시키며 반동에게 승리의 가능성을 줄지 모른다고 하는 민주주의자들의 허튼소리에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는 사표논리다. 맑스와 엥겔스는 이러한 “반동에게 승리의 가능성을 줄지 모른다고 하는 민주주의자들의 허튼소리에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며 여기서는 운동의 장기적인 성공과 독자성을 더 강조하였다.
그런데 현실에서 운동의 독자성을 세우는 문제와 독자성으로 인해 최악의 세력에게 어부지리를 안기게 됨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분파주의 사이에서 논란이 야기될 수 있다. 이러한 딜레마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특히 선거협정 문제는 당시 러시아에서도 심각한 논란이 되었다. 먼저 레닌과 볼셰비키가 내건 선거협정 원칙과 사례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정치세력들의 양상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당시에 러시아의 유력 정당들은 다음과 같았다.

러시아에는 세 개의 기본적인 정치세력과 그에 따라 세 개의 기본적인 정치노선이 있다. 즉 흑백인조(농노주적 지주의 계급적 이해를 대표한다) 및 그들과 병행하는 또는 그들 위에 있는 ‘관료’, 다음으로 자유주의적.군주주의적 부르조아지, ‘중앙파’ㅡ 그 좌파(카데트)와 우파(10월당), 마지막으로 부르조아민주주의파(트루도비키, 나로드니키, 무당파적 좌익)와 프롤레테리아민주주의파가 그것이다.(레닌의 선거와 의회전술Ⅱ)

흑백인조는 정부를 지지하는 정당을 말한다. 이들은 전제군주제, 경찰권력, 그리고 지주토지의 보전에 편들고 있다. 군주당, 러시아국민동맹, 법치당, 상공당, 10월 17일동맹, 평화혁신당이 그것이다. 이들 모두는 인민의 직접적 적이며 학살조직자인 정부, 국회를 해산한 정부, 전시군법회의의 정부의 직접적 옹호자이다.
카데트(입헌민주당 혹은 ‘인민자유당’)는 자유주의적, 군주주의적 부르조아의 주요 정당이다. 자유주의적 부르조아는 인민과 학살조직자인 정부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 그들은 입으로는 정부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은 인민의 투쟁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하고 있다. 실제로 그들은 인민에 반대하여 군주제, 즉 학살조직자와의 흥정을 원하고 있다…
트루도비키는 소경영주, 주로 소농민의 이익과 견해를 대표하는 당과 그룹을 말한다. 이들 당 중 가장 비겁한 정당은 ‘근로인민사회당’이다. 이 당은 카데트보다는 얼마간 낫다. 그 다음이 국회의 ‘근로그룹’이다…근로정당 중 가장 혁명적인 당은 ‘사회혁명당’이다. 트루도비키는 토지와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는 농민대중의 이익을 단호하게ㅡ때로는 봉기를 통해서까지ㅡ 고수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활동 전체로서는 자유주의적 부르조아의 영향이아 부르조아적 견해에서 반드시 탈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소경영주는 노동과 자본의 위대한 전세계적 투쟁에서 어느쪽에 붙을 것인가 방황하고 있다.(레닌의 선거와 의회전술Ⅰ)

짜리즘을 뒷받침하는 극우반동 흑백인조와 카데트(입헌민주당)이라는 입헌군주제 세력, 트루도비키 부르주아민주주의파, 나중에 멘셰비키와 볼셰비키로 분화되지만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파 이렇게 크게 보아 3개의 세력을 중심으로 각각의 세력에 대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볼셰비키는 첫 번째 세력은 두 말할 없이 타도의 대상이고, 두 번째 세력은 이 타도를 가로막고 있는 세력들이라 주요 타격 대상이고 세 번째는 짜르타도를 주장하나 근본한계를 가지고 있는 세력으로 간주한다.
한국의 운동진영에서는 “사퇴하지 않는 후보전술”, “무조건적 독자전술”을 무슨 절대적이고 고정불변한 원칙으로 생각하는데 레닌과 볼셰비키는 이조차도 하나의 전술이었다. 레닌은 의회주의병에 걸린 우경적인 세력들을 엄중하게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좌익공산주의 소아병에서 국회 개입을 거부하고 “어떠한 타협도 없다”는 “좌익” 공산주의 세력들을 좌익기회주의로 간주하고 심각하게 비판했다. 부르주아 국회선거와 국회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레닌과 볼셰비키에게는 유연하고 탄력적인 전술이었고 일종의 타협이었다. 그러나 이 타협은 언제나 혁명이라는 궁극목표와 운동의 전진을 위한 목표 하에 배치되는 것이었다. 레닌과 볼셰비키에게는 불가피한 타협이 있고 배신적인 타협이 있었다. 정치적 책략도 서슴지 않았다.
레닌은 주지하듯 극우 반동 흑백인조를 주적으로 간주하면서도 나머지 정치세력들에 대해서도 타격과 폭로를 멈추지 않았다. 이에 대해 당시에도 극우 반동 흑백인조 당선을 막기 위해 표를 분산시켜서는 안 된다며 사표논리를 조장하는 압력이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당시에도 최악의 적에 맞서 대동단결론을 주장하며 사표논리를 강요하는 흐름과 이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기회주의 세력들을 폭로, 타격하는 사이에서 고심했다.

프롤레타리아의 견지에서는 정당의 계급적 구별을 명확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무당파 (혹은 인민사회당과 사회혁명당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는) 트루도비키에게 자주적으로 공작하는 편이 당과 무당파의 협정을 맺으려고 시도하는 것보다 유리하다는 것은 명백하다…선거의 낮은 단계에서는 대중에 대한 선동에서 절대로 어떠한 협정도 체결해서는 안 된다. 높은 단계에서는 의석을 배분함에 있어 사회민주당과 트루도비키의 부분적 협정에 의하여 카데트를 분쇄하고, 사회민주당과 사회혁명당의 부분적 협정에 의하여 인민사회당을 분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야 한다.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ㅡ당신들 어쩔 수 없는 공상가인 볼셰비키가 카데트를 분쇄하고자 꿈꾸고 있는 동안에 흑백인조가 당신들을 완전히 분쇄해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표를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자, 트루도비키, 그리고 카데트가 뭉치면 틀림없이 흑백인조를 전패시키겠지만 분열행동하게 되면 공동의 적에게 쉽게 승리를 갖다바치게 된다…이 반론은 종종 그럴싸하게 들리기 때문에 주의깊게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 국회선거는 직접선거가 아니라 다단계선거이다. 다단계선거 하에 표의 분산이 위험한 것은 낮은 단계에서뿐이다…
우리는 도시에서는 각 선거단위(구, 기타)의 다수의 선거인 대중앞에 등장한다. 표가 분산될 위험은 분명히 있다. 분명히 도시에서는 오로지 ‘좌익블록’이 없었던 덕분에, 또는 오로지 사회민주주의자가 카데트에게서 표의 일부를 빼앗은 덕분에 흑백인조의 선거인이 여기저기서 당선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므로 일반대중이 이 단순한 구조만을 생각하고 표의 분산을 두려워하여 반정부파 중에서도 가장 온건한 당에게 투표하게 될 것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결과 영국에서 ‘삼각’선거라고 불리는 것처럼 된다. 거기서는 도시하층민은 자유주의자의 득표를 감소시킴으로써 보수파가 승리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사회주의자에 투표하기를 두려워한다.
이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떤 수단이 있는가? 오직 하나, 낮은 단계에서의 협정이다. 즉 선거인의 공동명부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 명부 속에는 투쟁 이전에 맺은 정당간의 계약에 의해 결정된 수만큼의 각 정당 후보자가 선출된다. 협정에 가담한 모든 정당은 유권자 대중에게 이 공동명부에만 투표할 것을 호소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채택하는 데 대한 찬반의 논거를 검토해보자.
찬성의 논거는 이러하다. 엄밀하게 당적인 선동을 해도 상관없다. 단지 다음과 같은 것을 첨가해야 한다. 그래도 역시 카데트는 흑백인조보다 낫기 때문에 우리는 공동명부에 동의했다.
반대의 논거는 이러하다. 공동명부는 사회민주당의 자주적, 계급적 정책 전체에 지독하게 모순되는 것이다. 카데트와 사회민주당의 공동명부를 대중에게 추천하게 되면 우리는 불가피하게 계급적 구별과 정책적 구별의 명확성을 혼란하게 만든다. 우리는 사소한 국회의석을 자유주의자에게 가져다주기 위하여 우리 투쟁의 원칙적, 일반혁명적 의의를 무너뜨려 버린다! 우리는 의회제도를 계급적 정책에 종속시키는 대신에 계급적 정책을 의회제도에 종속시키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세력을 계산할 가능성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모든 선거에 있어 영속적이며 항구적인 것, 즉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의 자각과 결속의 발전을 상실한다. 우리는 일시적이고 조건적이며 올바르지 않은 것, 즉 10월당에 대한 카데트의 우위를 얻게 된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사회주의적 교육이라는 일관된 활동을 위험에 내맡기는가? 흑백인조 후보자가 승리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인가? 그러나 러시아의 도시 전체가 국회에서 차지하는 의석은 524석 중 35석에 지나지 않는다…따라서 도시는 그 자체로서는 국회의 양상을 어느 정도이든 본질적으로 변화시키기가 완전히 불가능하다…이러한 사정하에서 흑백인조를 지나치게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들의 계급적 후보자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단념한다는 것이 현명한가? 이러한 정책은 원칙상의 동요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협소한 실천적 견지에서 보아도 근시안적이라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카데트에 대항하기 위한 트루도비키와의 블럭은 어떠한가?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트로도비키와의 당파관계의 특수성, 그러한 블럭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그리고 이득이 되지도 않는 것으로 만드는 특수성을 이미 지적해두었다. 노동자인구가 가장 밀집해 있는 도시에서는 만부득한 경우가 아닌 한 완전히 자주적인 사회민주당 후보를 내세우는 것을 단념해서는 안된다…
카데트 혹은 트루도비키(특히 인민사회당류의)가 어느정도 많아졌다 적어졌다하는 것은 중대한 정치적 의의를 갖지 않는다…국회선거 결과를 결정함에 있어 정치적으로 결정적 의의를 갖는 것은 농민이며 주(州)선거인 집회이지 도시가 아니다. 주선거인 집회에서 우리는 농촌에서의 낮은 선거단계때보다 더욱 능숙하게, 더욱 올바르게 그리고 엄격한 원칙성에 조금도 위반함이 없이, 카데트에 대항하여 우리와 트루도비키와의 일반 정치적 동맹을 실현시켜야 한다.(레닌의 선거와 의회전술Ⅰ)

국제사회민주주의운동의 실천속에서도, 낮은 단계에서의 협정과 높은 단계에서의 협정을 구별한 경험이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프랑스 상원의원의 선거는 2단계선거이다. 유권자는 주선거인을 선거하고 이 주선거인이 상원의원을 선거한다. 프랑스의 혁명적 사회민주주의 게드파는 낮은 단계에서는 어떠한 협정, 어떠한 공동후보명부도 결코 용인하지 않았지만 높은 단계에서의 부분적 협정, 주선거인 집회에서 의석을 할당하기 위한 부분적 협정은 용인했다. 기회주의자 죠레스파는 낮은 단계에서도 협정을 체결했다.(같은 책, 레닌의 주)

사회민주당의 일반적 선거전술의 출발점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정당의 완전한 자주성이어야 한다.
이 일반적 명제에서 일탈하는 것은 만부득이한 경우와 특별히 한정된 사정하에서뿐이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와 혁명적 농민의 동맹이 필요하다는 일반적 명제에 기초하여 승인되는 것은 선거제도의 높은 단계에서의 부분적 협정(트루도비키와 하나가 되어 카데트에 대항하기 위한 협정)이 필요하다는 것뿐이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이러한 부분적 협정을 체결함에 있어서 언제나 부르조아민주주의적 정당과, 그들 당내의 파벌들을 민주주의적 일관성과 단호함의 정도에 따라 엄격하게 구별해야 한다.(같은 책)

레닌은 다양한 전술과 고민을 하지만 연대연합은 기본적으로 “반정부 세력” 중에서 입헌민주당 세력이 아닌 농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사회혁명당 세력들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멘셰비키는 입헌민주당과의 연대연합을 중시한다. 그런데 이런 선거 시기 (일시적, 조건부) 연대연합의 대상이 실제로는 당시 짜리즘 분쇄라는 러시아혁명의 첫 단계에서 누구를 동맹으로 해야 하는지 전략적 관점의 차이로부터 서로 다르게 규정됐다. 멘셰비키와 볼셰비키는 둘 다 짜리즘이 존재하고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않는 후진적인 러시아에서 당면혁명이 민주주의 혁명의 단계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멘셰비키는 이로부터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특히 입헌민주당 같은) 세력과 전략적으로 연합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 1단계 혁명이 성공하면 야당은 자본주의 발전 속에서 노자 간의 모순이 첨예화 돼서 사회주의 혁명의 객관적 조건이 무르익는 것을 기다리면서 “철저한 야당”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레닌은 이에 대해 신랄하게 우경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유럽에서 부르주아의 경험을 두고 볼 때, 부르주아는 반동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으며 노동자들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조차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이 반동적으로 변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후발 자본주의 발전 국가로서 독일 부르주아의 경우는 시작부터 자본의 착취에 맞서 노동자 투쟁이 거세게 일어나자 혁명적 노동자 보다는 봉건세력과 타협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간주하며 반동적으로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경험을 두고 볼 때도, 이 혁명이 민주주의 혁명의 단계라고 해서 이 혁명의 주도권을 (자유주의)부르주아에게 넘겨줘서는 안 되며 프롤레타리아의 동맹과 연대연합의 대상은 농민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철저한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로 만들어지는 권력도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전략적 차이로 인해 멘셰비키는 1917년 2월 혁명 뒤 입헌민주당과 사회혁명당 우파와 함께 부르주아 임시 정부에 참여하였고 아직 자본주의가 미성숙했기 때문에 조산의 혁명이라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반대했다. 레닌과 볼셰비키는 제국주의 전쟁 등으로 국내외적 모순이 무르익었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즉각 도입할 수는 없다고 해도 모든 권력을 쏘비에트가 장악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하고 이를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전략적 관점을 바탕으로 멘셰비키는 선거에서 주로 입헌민주당과 연합하려고 했고, 볼셰비키는 혁명적 독자성을 바탕으로 농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사회혁명당 세력과의 연합을 중시했다.

…당은 짜르전제와 그것을 지탱해주는 자본가ㆍ지주들의 정당과 가차없는 투쟁을 전개하는 동시에 자유주의적 부르조아지(카데츠가 그 대표)의 반혁명적 관점과 그들이 주장하는 민주주의의 기만적 본질을 폭로해야 한다. 우리가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타계급 정당과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 민주주의적 그룹(주로 트루도비키, 나로드니키, 사회혁명당원들)이 내세우는 사회주의의 쁘띠부르조아적 본질을 폭로하는 것, 그리고 대중혁명투쟁에 대한 태도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해가 된다는 것을 폭로하는 것이다.(같은 책)

레닌은 노동자가 밀집해 있는 가장 급진적인 도시인 페테르부르그에서는 반정부파들의 표가 분산된다고 하더라도 흑백인조가 승리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독자적인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유권자는 허구적인 흑백인조의 위험에 대한 공포로부터가 아니라 신념과 공감에 따라 투표해야 한다.”(같은 책, “페테르부르그의 선거에서는 어떻게 투표해야 하는가?(페테르부르그의 선거에서 흑백인조가 승리할 위험은 있는가?”)고 주장했다.
레닌은 선거협정과 관련하여 칼 리프크네히트를 통해 독일의 혁명적 의회활동 경험을 금과옥조로 삼았다.

리프크네히트는 ‘의석’이라는 견제에서도, 공통의 적인 반동파에 대항하여 ‘동맹자’(동맹자로 일컫는 자)를 끌어들인다는 견지에서도, 부르조아 반정부당과의 협정이 ‘유익’하다는 것을 조금도 부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이유에만 머물고 있지 않은 곳에, 이 노투사인 독일사회주의자의 진정한 정치적 지혜와 단련된 사회민주주의가 나타난다. 그는, ‘동맹자’는 본성을 숨긴 적이므로 이를 자신의 진영에 넣는 것은 특히 위험하지는 않은가, 이 동맹자는 공통의 적에 대하여 정말로 투쟁하고 있는가,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는가, 의석의 수를 늘린다는 견지에서 본 협정의 이익은 프롤레타리아당의 보다 장기적인, 보다 심오한 임무라는 견지에서 본 해독과 결합되어 있지는 않는가를 검토하고 있다.
…플레하노프가 협정문제를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옹색하게 제기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카데트는 반동파와 싸우는 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므로….카데트와 협정하라. 플레하노프는 그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리프크네히트는 사회민주주의자가 부르조아지 출신의 각각의 동맹자의 위험한 측면을 발견하는 방법을 명심해야 하며, 그것을 은폐해서는 안된다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멘셰비키는 투쟁해야 하는 것은 카데트가 아니라 흑백인조의 위험이어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 이와같은 무리가 리프크네히트의 다음과 같은 말을 잘 생각해보면 얼마나 유익하겠는가? “경찰적 정치가의 어처구니없는 가혹한 무단정책과 사회주의자탄압법, 혁명탄압법, 감옥법에 의한 암살행위는 우리에게 동정적인 경멸밖에 불러일으키지 않지만 그러나 선거협정을 위해 우리에게 손을 뻗치고 친구와 형제로서 우리에게 빌붙는 적, 그러한 적, 그러한 적만을 우리는 두려워해야 한다.”
보다시피, 리프크네히트도 경찰관의 폭력과 흑백인조적 법률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동자에게 대담하게 말하고 있다. 이 적을 두려워하지 말고, 거짓 친구와의 선거협정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왜 리프크네히트는 그렇게 생각했는가? 그것은 그가 투사의 힘은 자각된 노동자대중의 힘일 때만이 참된 힘이라고 항상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중의 자각은 폭력이나 징역법으로는 타락되지 않는다. 그것을 타락시키는 것은 노동자의 거짓 친구, 즉 투쟁에 관한 공문구로써 참된 투쟁으로부터 대중을 오도하는 자유주의적 부르조아인 것이다…
리프크네히트의 이 문구를 1906년 말의 러시아의 정치 용어로 번역해보자.
“흑백인조 국회는 카데트와의 선거협정 덕택으로 계급대립과 정당간의 경계가 애매하게 되는 것보다는 해가 적을 것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같은 책, Ⅱ)

의회제도는 가장 민주주의적인 부르조아 공화국에서조차도 계급억압의 기관이라는 본질이 제거되지 않으며 그것을 노골화시킨다. 의회제도는 그 이전에 정치적 사건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던 사람보다도 훨씬 광범한 주민대중을 계몽하고 조직하는 것을 돕지만, 이것은 위기와 정치혁명의 제거하는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 혁명시에 내란이 극도로 격화되는 것을 준비한다…서구에 있어서 사회개량주의적 자유주의와의, 또한 러시아혁명에 있어서 자우주의적 개량주의(카데트)와의 동맹.협정.블럭의 경험은 다음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즉 이러한 협정은 대중의 의식을 무디게 할 뿐이며, 전투적인 분자를 가장 전투력이 없고 가장 동요하는 배신적인 분자에 결합시킴으로써, 대중투쟁의 진정한 의의를 강화시키지 못하고 약화시킨다는 것이 그것이다.(같은 책Ⅱ, 마르크스주의와 수정주의)

정리하면, 볼셰비키는 선거에서 다음 당면 목표(최소강령)를 내걸고 선거협정과 관련한 기본방침을 다음과 같이 정했다.

(1) 민주적 공화제
(2) 8시간노동제
(3) 지주의 모든 토지의 몰수

위의 세가지 요구와 불가분하게 결부시켜 사회민주당의 최소강령의 다른 모든 요구, 예를들면 보통선거권, 단결의 자유, 인민에 의한 법관과 관리의 선거제, 국가에 의한 노동자보험, 상비군을 인민의 무장으로 대체하는 것 등이 선전되어야 한다.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선거에 있어서 일반전술 방침을 다음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당은 짜르군주제와 그것을 지지하는 지주·자본가의 모든 당과 가차없이 투쟁하며, 그와 동시에 부르조아 자유주의자(카데트를 필두로 하는)의 반혁명적 견해와 그들의 거짓 민주주의를 단호하게 폭로해야 한다.
선거투쟁에서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프롤레타리아 정당의 입장을 모든 비프롤레타리아 정당으로부터 구분짓고, 민주주의그룹(주로 투르도비티, 나르도니키, 사회혁명당)의 사이비사회주의의 소부르조아적 본질과, 수미일관된 대중적 혁명투쟁의 모든 문제에서 그들의 동요함으로써 발생하는 민주주의의 대업에 대한 해독을 설명하는 것이다.
선거협정에 대하여 당은 마찬가지로 런던대회의 결의에 기초하여
(1) 노동자쿠리야(선거구)에서는 모든 곳에서 우리 당의 후보자를 세우며, 여기서는 다른 당 또는 그룹(해당파)와의 어떠한 협정도 허용하지 않는다.
(2) 독자의 사회민주당 후보를 세운다는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이미 커다란 선동적 의의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제2도시유권자대회에서도, 가능하면 농민쿠리야에서도 당이 독자적인 후보자를 가지도록 배려해야 한다.
(3) 제2도시유권자대회를 위한 선거인을 선출할 시의 재투표[선거인 선출시에 법정 표수가 모자랄 때 투표를 다시 하는 것]에서는 (선거조령 제10조) 자유주의자에 대항하여 부르조아 민주주의파와, 그리고 모든 정부여당에 대항하여 자유주의자와 협정을 맺는 것이 허용된다. 1차 선거에서 던져진 표수에 비례하여 하나 또는 수개의 도시별 선거인의 공동후보자 명부를 작성하는 것은 협정형식의 하나로서 좋다.
(4) 재투표가 인정된 직접 선거가 있는 다섯 개의 도시(페테르부르그, 모스크바, 리가, 오뎃사, 키예프)와 제2급도시 유권자의 제1차 선거에서는 독자의 사회민주당 후보를 세워야 한다. 재투표의 경우에는 흑백인조의 위험이 없는 것이 확실하므로 자유주의자에 대항하여 민주주의그룹과 협정을 맺는 것만이 허용된다.
(5) 어떠한 선거협정도 공동의 정강을 내거는 것과 관계가 있어서는 안되며, 어떠한 정치적 의무에 의해서도 사회민주당 후보를 속박해서는 안되고, 사회민주주의자가 자유주의자의 반혁명성 및 부르조아 민주주의자의 기회주의성과 불철저성을 단호하게 비판하는 것을 저지해서도 안 된다.
(6) 선거의 제2단계에서는 (군(郡)선거대표 집회, 주(州)선거대표 집회, 주(州)선거인 집회 등에서는), 10월당.흑백인조 또는 일반적인 정부의 후보자 명부를 패배시킬 필요가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의석의 배분에 대해 우선 첫째로 부르조아 민주주의파(트루도비키, 인민사회주의자 등)와, 이어서 자유주의자(카데트), 무당파, 진보파 등과 협정을 맺을 필요가 있다.(같은 책Ⅱ, 제4대 두마의 선거에 대하여(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제6차<‘프라하’>전국협의회의 결의)

5. 노동자 의원단의 경험

노동자의원들은 의회에서의 대정부연설은 가장 효과적인 선동수단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여러가지 질문을 통하여 우리는 정부가 자행한 각종 비리와 범죄사실에 대중들의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었다. 각종 현안에 근거하여 대정부질문을 하면서 우리는 흑백인조에게 그들이 지배하는 체제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날릴 수 있었고 현체제에 대한 노동자들의 혁명적 공격을 강화하는 데 볼셰비키적 방법으로 의회연단을 이용할 수 있었다. 연설할 때 볼셰비키는 박력있게, 그리고 직선적으로 짜리즘과 부르조아지의 치부를 폭로했다. 질의 대상이 되는 모든 사건에 결부시켜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현체제하에서 노동자들의 지위가 향상되길 기대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장관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이렇게 끝맺는 대정부질문은 노동자의원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우리는 모든 압제와 경찰의 폭력이 질서라는 명목하에 자행되고 있음을 장관들이 알고 있고 장관은 그것을 막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는 독재정치의 본질을 노동자들에게 알리는 데, 대중들이 필요한 결론을 이끌어내도록 도와주는 데 대정부질문의 의미와 목적을 두고 있었다.”(Aㆍ바다예프, 볼셰비키는 어떻게 의회를 활용하였는가?)

의회에서 처음 연설할 때 노동자의원들은 생전 처음 경험하는 묘한 긴장감을 느끼곤 했다…여기서는 노동계급을 오랫동안 탄압했던 노동계급의 적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공개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해야 했다…
노동자의원들이 하는 말은 의회 본회의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우리들을 자기들의 이익을 지켜주는 수호자로 믿고 있는 수백만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들이 듣고 있었다. 우리들의 연설은 노동자들의 혁명적 결의에 메아리쳤고 적에 대한 투쟁을 한층 강하게 했다…
우리들 모두는 전제의 소굴에서 처음 연설할 때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다. 흑백인조의 야유를 제압하면서 연설한다는 것, 노동계급의 정치 경제적 예속상태를 설명하는 한편 의장의 끊임없는 간섭과 싸우면서 노동계급의 압제자에게 도전한다는 것은 매우 힘겨운 일이었다.
의원에 대한 면책특권과 의회에서의 ‘연설의 자유’는 짜르의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짜르는 노동자의원들을 한꺼번에 처리할 적당한 구실을 찾고 있을 뿐이었다. 2차듀마에서 한꺼번에 유형당한 사회민주의원들의 경우는 아직도 우리의 마음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위 같은 책)

볼셰비키 노동자의원단은 철저하게 당의 통제 하에 당의 원칙과 방침을 가지고 움직였다. 의원단은 비합법 운동과 합법운동을 연결시키고 당과 노동대중을 연결시키는 가교였다. 볼셰비키 의원단의 경험은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에서도 일부 원리가 차용되기도 했다. 비록 형식적이라는 판단이 들기는 하지만 의원의 당직·공직겸직 금지, 그리고 노동자평균임금을 넘는 세비의 당에 반납 등이 그것이다.
기층 노동자 민중의 철저한 대리인으로 국회에서 계급투쟁의 선도자가 되어야 하는 진보정당 의원들이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정을 둘러싼 심각한 분열이나 정의당 유호정의 탈당 사태에서 보듯 출세주의, 의회주의에 찌들어 타락상을 보이는 시점에서 전원 구속과 시베리야 유형을 당당하게 감내했던 볼셰비키 의원단의 모습은 지금도 귀감이 되어야 한다.
특히 의회연단을 현 착취, 억압체제를 생생하게 폭로하기 위하여 활용하면서 “‘장관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그렇다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이렇게 끝맺는 대정부질문은 노동자의원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는 주장은 깊게 새겨보아야 한다.

6. 비례연합정당: 민주당과 운명공동체가 된 종속적 “정치구조”

지금까지 맑스(레닌주의)의 운동적 원칙과 전술, 이에 따라는 선거에 대한 원칙과 입장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를 통해 맑스주의 전통 아래 레닌과 볼셰비키의 선거 원칙과 전술이 낡기는커녕 2024년 우리의 방침으로 삼아도 충분하게 생활력을 발취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앞에서 살펴봤듯, 유럽의 프랑스나 독일, 러시아에서 (선거)연합이 대상이 되는 세력들은 “반정부파” 중에서 하나, 또는 둘의 세력들이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민주당은 반정부파라고 하기 보다는 국내외 독점자본(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는 지배계급 중 한 분파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국민의힘이 역사적으로 가장 반동적인 세력이고 파쇼적 양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고, 이 정도의 차이가 정세에 따라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민주당 역시 친미·친자본·반노동·반민주·“흡수통일”대상이라는 본질은 변함이 없다.
미국식 양당지배체제는 혁명적 진보정치세력이 거의 존재감이 없는 상태에서 민주·공화당이 번갈아가며 집권하면서 민중을 기만하고 반동적, 반민중적인 정치체제를 영속적으로 유지하는 구조다. 미국 제국주의 체제의 실질적인 진보적 변화와 내란의 위기는 이 민주·공화당 양당체제가 번갈아가며 집권하며 봉쇄하게 된다. 한때 계급투쟁을 이끌었던 “공산당”은 유로꼬뮤니즘 평화이행 정당으로 전락하여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고, 샌더스 같은 “진보”세력은 민주당의 “왼쪽 날개”로 간혹 존재감을 보이며 간신히 생존을 유지하지만, 이들의 생존 조건은 민주당 질서를 벗어나지 않고 공고히 하는 충성맹세 속에 민주당에게 “진보적”인 색채를 덧씌우는 한에서다. 이러한 샌더스식 진보는 사민주의로 미국의 친제국주의 반노동자성을 은폐하고 미국 노동자 민중의 자주적인 정치세력화와 미국사회의 실질적인 변화발전을 가로막는 양당체제의 부속물, 들러리에 불과하다.
부르주아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세상을 창조하였듯이, 한국사회 양당 지배구조 체제는 미제국주의와 국내 친미 반공 정치세력들에 의해 우리에게도 강요되고 있고 이미 토대가 완성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자 민중에게는 양당체제를 극복해야 하는 정치적 과제가 대두된다. 이 양당체제 극복은 “제3지대”를 구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친미·친자본·분단체제를 대변하는 자본주의 양당 계급지배 체제를 분쇄한다는 의미다.
진보진영 단결과 양당체제 타파에 대한 진보적 노동자 인민의 열망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원론적인 혁명적, 독자적 입장 고수는 근본주의적 입장으로 대중운동으로부터 이탈된 분리주의, 종파주의, 기권주의이다. 그러나 기존 진보대단결 논의에서는 진보세력의 분열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이를 극복하고 공고한 단결을 위한 논의가 부재하고 기존 몇몇 진보정당 간의 상층 논의만 집중되는 한계가 있었다.(진보세력 연합의 원칙과 기준에 대해서는 “3대 전략 목표, 10대 단결강령”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동안 정의당은 기층 노동자 민중과 분리되어 다원주의를 기초로 활동하고 알량한 국회3당이라는 지위와 여론조사 결과에 취해 진보대단결을 거부했다. 의원단들은 노동자 민중의 신뢰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주성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당면 주적인 국민의힘과의 투쟁을 소홀히 하고 때로는 그들과 같은 행보를 취함으로써 대중적 신뢰를 잃었다. 이번 선거에서 녹색정의당은 의석 1석도 얻지 못하고 당의 약화와 분열이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
집권전략을 바탕으로 진보당은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함으로써 이번 선거에서 최대 5-6석까지 얻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진보당의 집권전략(?)은 집권이 전술이 아니라 전략이라는 점에서 의회주의 사고의 일종이다. 진보당의 당장의 의회주의 성공이 진보진영의 전략적 패배를 자초할 수 있다. 진보당이 과거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경험, 촛불투쟁과 문재인의 권력장악으로부터 무슨 교훈을 얻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진보당의 비례연합정당 참여는 정권퇴진 대중투쟁을 주도해야 하는 민주노총의 분열을 초래했다. 가장 큰 문제는 눈앞의 의석 확보를 대가로 운동의 근본원칙, 장기적 원칙을 약화시켰다는 점이다.
비례연합정당은 시민단체를 매개로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를 연결시키는 구조다. 미국 샌더스가 그렇듯, “진보세력”은 민주당의 시혜와 통제 하에서 민주당과 운명공동체임을 강조하며 민주당에 흡수되거나 민주당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않을 때에만 정치적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 앞으로 진보당의 성공의 조건은 민주당 성공과 번영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이 성공, 번영해야 그 대가로 일부 “성공”을 거둘 수 있으며 민주당이 실패하면 그 실패 책임을 공동으로 떠안는 정치적 구조가 고착화 되게 된다. 민주당이나 그 지지세력이 신원보증할 때만 신용을 얻어 정치적 기반을 유지, 확장할 수 있고 민주당이 파산하면 연대보증으로 공동으로 빚더미에 안게 되는 종속적 “정치구조”가 정치적 굴레가 아니면 또 무엇이겠는가?
맑스·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가 “민주주의 당파를 분열시키며 반동에게 승리의 가능성을 줄지 모른다고 하는 민주주의자들의 허튼소리에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군사독재에 맞서는 자유주의 반정부파도 아닌 이미 지배계급 한 분파가 된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수십 년 동안 우리 운동의 독자성, 변혁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진보당은 이처럼 “집권전략”하에 눈앞의 의회주의 “성공”목표에 취해 연대연합에 있어서 자주성의 원칙을 상실했다. 진보당이 민주당과의 일시적 선거연합을 넘어서 영원히 민주당을 중심으로 도는 위성이 될 우려가 심각하다. 진보당은 심지어 민주당이 권력을 잡았을 때조차도 주적이 국민의힘이라면서 민주당의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반민족적 작태에 대한 폭로를 자제해 왔는데, 비례연합정당의 참여로 이러한 기조가 더욱더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반북주의였지만 한 때 사회주의를 내걸었던 사회당이 기본소득당으로 민주당의 위성정당이 되어 국회 1석을 얻은 뒤에 사회주의는커녕 지금 민주당과 근본적으로 차별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나? 민주당을 제대로 비판해본 적이 있었나?
진보당은 민주당도 내세우고 있는 민생을 중심에 내세우면서 계급투쟁의 선명성이 사라지고 민주당 “왼쪽날개” 역할을 수행하려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남북관계의 적대적 관계로의 전환 선언 이후 그 동안 운동에 대한 전면적 평가와 쇄신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 여기에는 진보세력이 독자적으로 한국사회를 급진적으로 재편하지 못하고 흡수통일 세력인 민주당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에도 큰 원인이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진보당이 종북몰이의 압력에 눈치를 보면서 반미나 북에 대한 문제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진보진영의 주 지지, 선전 대상은 민주노총과 전농, 철거민단체 등 기층 노동자, 민중, 진보적 청년과 지식인, 여성 등을 중심으로 양당체제에 실망을 한 진보적 대중이나 국민의힘을 혐오하고 민주당을 믿지 못하나 다른 대안이 없어 민주당을 찍는 대중들을 진보진영의 지지자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7. 우리의 원칙 및 요구
1) 우리의 원칙

의회주의·출세주의·공명주의·관료주의·영합주의를 전면 배격한다.
의회제도를 타도하기 위해 의회에 개입한다.
대중투쟁을 근간으로 한다.
의회는 대중투쟁을 강화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이다.
선거에서 당면한 요구를 선전·선동한다.
의회에서 법률타협이 아니라 폭로의 수단이다.

2) 우리의 요구
선거시기에 당면 요구를 중심으로 사회주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결합하여 내건다.

윤석열 정권 타도
전교조, 공무원노조 등 전체 노동자의 파업권 보장을 포함한 노동3권 전면 보장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및 원청 사용자성 인정
정리해고제, 파견제 등 제반 노동악법 폐지
사유화 전면 금지 및 핵심 산업 국유화
무상주택 무상의료 무상교육
안정적 노후 생활이 가능한 연금보장
토지 국유화
은행 국유화 및 민중 부채 탕감
전쟁반대
미군철수 및 미일한 동맹 해체
한미군사동맹 해체
사드 철거
국가보안법 철폐
미제의 일체 제재 참여 반대
미국과 서방 중심의 종속 외교가 아닌 자주 외교
브릭스 및 비동맹 기구 참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포함한 일체의 지원 반대
검찰·판사 직선 및 소환·파면제
고위 장성 군직선제
국회의원 특혜 철폐 및 국회의원 세비 노동자 평균 임금 지급
팔레스타인 학살 지원 미제를 규탄, 이스라엘의 학살전쟁 점령 반대
팔레스타인에서 민족적 종교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차별 없는 하나의 국가 건설
역사 왜곡 전면 중단 및 반민족적 역사왜곡 시 엄중 처벌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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